언론보도

'대포동 2호'가 보여준 것

  • 2006-07-17
  • 하영선 (중앙일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국내외가 시끄럽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더욱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착각이다. 이번 발사의 꽃인 대포동 2호는 군사 기술적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북핵 문제 해결의 정치판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새판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 안 보인다면 국제정치 색맹이거나 집단사고의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새판을 뒤늦게라도 짜지 못하고 헌 판을 고집하면 국제 정치판에서는 실격 처리될 수밖에 없고 국내 정치판에서는 정권 재창출 실패의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북한식 전략적 결단의 결연한 행동 표현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월 1일 미국의 힐 국무차관보를 평양으로 초청하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북한은 핵포기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이미 내렸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북한이 말하는 전략적 결단은 미국이 강조하고 있는 선(先) 핵포기가 아니다. 죽어도 선 핵포기는 할 수 없다는 결단이다. 물 위에 비친 달을 건져 보려는 허황된 망상은 일찌감치 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다만 핵포기 문제와 함께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경수로 제공을 포함한 경제 지원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식 전략적 결단을 단호히 거부하자 북한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결단을 증명했다. 북한의 정치 미사일은 정확하게 예정 궤도를 날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백악관 성명은 짧지만 단호했다. 북한의 행동은 북한과 북한 주민들을 국제사회로부터 더 고립시킬 뿐이며 미국은 6자회담의 공동성명에 기반을 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줬기 때문에 미국은 관련 당사국들과 긴밀하게 협조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성명에 따라 다자외교를 치밀하게 펴고 있다.

 

대포동은 북한과 미국의 죽어도 못 바꾸는 정치적 입장을 행동으로 다시 한번 확실하게 증명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국제.국내여론의 변화다. 반외세 자주의 상징인 대포동 발사의 선물은 세계 정치판 위의 고립이다. 외로운 북한의 오랜 후견인인 중국의 미묘한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핵.미사일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 중국이 판의 변화를 읽으면서 처음 주장하던 의장성명 대신 보다 형식을 갖춘 결의안 채택에 동의했다. 판의 흐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여론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집단 사고의 포로가 돼 있는 골수의 좌우 정치세력과 무관하게 하루하루 사느라고 바쁜 무명의 영웅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혼란의 와중에 무리하게 추진했던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했던 북한 대표단은 일정을 다 끝내지 않고 철수하면서 "대화 일방의 성의와 선의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상대방을 타이르는 데도 정도가 있고 인내가 있는 법이다"고 우리 대표단을 꾸짖는 성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같은 시기에 북한을 방문한 중국 대표단이 옛날 조공외교 시절의 칙사 대접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의 대접이다. 시정의 일반 정서는 힘든 속에 어려운 북한을 돕느라고 돕고 있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호통외교 대신 오랜 침묵외교 끝에 현재의 대북제재는 선참후계(先斬後啓:일단 처형하고 따짐)라는 어려운 표현을 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국제사회는 참(斬)이 아니라 계(啓)를 논의하고 있어서 무슨 의미인지 더 혼란스럽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현 대북정책은 역설적으로 여당의 정권 재창출보다는 야당의 정권교체 목표에 더 기여하고 있다.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단기적인 정권이익만 생각한다면 야당은 오히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미사일 발사의 가장 큰 후유증은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 하는 단기적 정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새 역사판에서 낙오하는 것이다. 아픈 환자를 억지로라도 구급차를 태우지 않고 이인삼각으로 잘못된 고난의 행군을 함께하다 보면 남북한 우리끼리만 고독의 행군을 하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새 대북정책을 짜자.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