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내각제 결단의 시점이다

  • 2003-12-29
  • 이홍구 (중앙일보)

한국 정치의 파란곡절이 이쯤 되면 "대통령 무책임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차제에 정치퇴화를 조장하는 대통령제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내각책임제로의 전환을 결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대통령제는 별로 선진형의 제도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우리 국민은 간과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절대 다수는 내각제로 안정된 민주정치를 운영하고 있는 반면, 대통령제를 채택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의 대부분이 고질적 정치불안과 퇴화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매일같이 뉴스로 듣고 있다.


예외적으로 성공한 美대통령제

 

아시아에서도 인구 10억명의 세계 최대 민주국가인 인도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은 의원내각제로 민주정치의 제도화에 성공한 데 비해 대통령제를 선택한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심각한 정치 불안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제를 2백여년에 걸쳐 정착시킨 미국의 경우는 다민족이 모여 만든 국가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예외적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을 뿐 무작정 모방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대통령제를 오랫동안 고집해 왔는가.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를 항상 제일로 꼽아왔으며 이는 역사적.상황적인 배경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우리의 정치문화 속에는 수천년 내려온 제왕적 전통이 아직도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태조 왕건 같은 지도자에 대한 대중적 향수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도 본인들이 왕권을 장악했다는 생각이나 자세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강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해방과 건국,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진 상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지도력의 소유자가 강조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쳐 고착된 우리의 대통령제는 이제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폐단이 훨씬 더 앞서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내각을 집행기구로 전락시킨 청와대 비서 중심인 측근정치의 정례화, 국회를 국정의 사이드 쇼(side show)로 밀어낸 의회정치의 파탄, 전부를 한판 승부에 거는 대통령 선거가 자아낸 불법정치자금의 일상화 등 일련의 추세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책임정치와 대의정치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저질러진 불법적 모금의 충격적 내용이 알려지면서 범국민적 질타 속에 정치자금법 및 선거법에 대한 획기적 개정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병세는 그러한 부분적 치료로써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위중한 시점까지 와 있다. 그러기에 지금이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회생을 위해 "대통령 무책임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의 결단을 내려야 될 때인 것이다.

 

다가오는 4월 총선에 임하는 여야 모든 정당이 내각제 개헌을 국민에게 공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마침 2008년 2월과 4월에 노무현 대통령과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거의 동시에 끝나게 돼 있다. 늦어도 2008년 봄에는 내각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17대 국회 초에 여야 합의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정치인과 정당에 꼭 필요한 4년의 준비기간을 갖게 된다.

 

정치인들은, 특히 대통령 지망생들은 부시 대통령이나 푸틴 대통령보다는 블레어 총리나 고이즈미 총리를 모델로 삼아 총리지망생으로 방향을 바꿔 가는 노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새 시대의 국가지도자는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동료들을 결집시키는 데 앞장서는 화합과 타협의 명수여야 한다. 정당은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뒷받침하는 보조집단이 아니라 정치의 중심에 선 정책집단으로 국정의 성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지는 본연의 자세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사실 개헌을 통한 한국 정치의 원천적 개혁의 필요는 이미 대부분의 여야 지도자와 많은 국민이 빈번히 지적한 바 있다. 지금이 바로 결단의 시점이다. 운명적 갈등의 쇠사슬에 얽매인 듯 이전투구로 세월을 낭비하기엔 조국의 운명이 너무나 위험한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새해를 맞으며 모두의 용기있는 결단을 호소한다. 한국 정치의 파란곡절이 이쯤 되면 "대통령 무책임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차제에 정치퇴화를 조장하는 대통령제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내각책임제로의 전환을 결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대통령제는 별로 선진형의 제도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우리 국민은 간과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절대 다수는 내각제로 안정된 민주정치를 운영하고 있는 반면, 대통령제를 채택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의 대부분이 고질적 정치불안과 퇴화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매일같이 뉴스로 듣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인구 10억명의 세계 최대 민주국가인 인도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은 의원내각제로 민주정치의 제도화에 성공한 데 비해 대통령제를 선택한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심각한 정치 불안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제를 2백여년에 걸쳐 정착시킨 미국의 경우는 다민족이 모여 만든 국가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예외적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을 뿐 무작정 모방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대통령제를 오랫동안 고집해 왔는가.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를 항상 제일로 꼽아왔으며 이는 역사적.상황적인 배경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우리의 정치문화 속에는 수천년 내려온 제왕적 전통이 아직도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태조 왕건 같은 지도자에 대한 대중적 향수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도 본인들이 왕권을 장악했다는 생각이나 자세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강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해방과 건국,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진 상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지도력의 소유자가 강조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쳐 고착된 우리의 대통령제는 이제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폐단이 훨씬 더 앞서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내각을 집행기구로 전락시킨 청와대 비서 중심인 측근정치의 정례화, 국회를 국정의 사이드 쇼(side show)로 밀어낸 의회정치의 파탄, 전부를 한판 승부에 거는 대통령 선거가 자아낸 불법정치자금의 일상화 등 일련의 추세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책임정치와 대의정치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저질러진 불법적 모금의 충격적 내용이 알려지면서 범국민적 질타 속에 정치자금법 및 선거법에 대한 획기적 개정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병세는 그러한 부분적 치료로써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위중한 시점까지 와 있다. 그러기에 지금이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회생을 위해 "대통령 무책임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의 결단을 내려야 될 때인 것이다.

 

다가오는 4월 총선에 임하는 여야 모든 정당이 내각제 개헌을 국민에게 공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마침 2008년 2월과 4월에 노무현 대통령과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거의 동시에 끝나게 돼 있다. 늦어도 2008년 봄에는 내각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17대 국회 초에 여야 합의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정치인과 정당에 꼭 필요한 4년의 준비기간을 갖게 된다.


정당, 정책집단으로 우뚝 서라

 

정치인들은, 특히 대통령 지망생들은 부시 대통령이나 푸틴 대통령보다는 블레어 총리나 고이즈미 총리를 모델로 삼아 총리지망생으로 방향을 바꿔 가는 노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새 시대의 국가지도자는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동료들을 결집시키는 데 앞장서는 화합과 타협의 명수여야 한다. 정당은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뒷받침하는 보조집단이 아니라 정치의 중심에 선 정책집단으로 국정의 성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지는 본연의 자세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사실 개헌을 통한 한국 정치의 원천적 개혁의 필요는 이미 대부분의 여야 지도자와 많은 국민이 빈번히 지적한 바 있다. 지금이 바로 결단의 시점이다. 운명적 갈등의 쇠사슬에 얽매인 듯 이전투구로 세월을 낭비하기엔 조국의 운명이 너무나 위험한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새해를 맞으며 모두의 용기있는 결단을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