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반도·동북아 평화 틀 마련을

  • 2003-07-25
  • 이홍구 (중앙일보)

지금의 상황이 급하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걸어온 길, 우리가 나아갈 길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베이징 6자회담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과 번영을 확보해야 되는 이 민족의 운명을 다시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우리가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하는 침착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6자회담에서 점검할 문제들

 

6자회담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나 국제여론의 초점은 북한 핵문제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그 긴박성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문제는 하루아침에 솟아난 것이 아니고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반도 분단의 역사 속에서 불거진 상황이었음은 우리 한국만이 강조할 수 있는 관점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핵무기 확산 방지라는 차원을 넘어서 한민족의 분단 극복이라는 큰 틀 속에서 해결해야 되는 과제임을 우리는 강력히 주장하고 설득해야만 한다.

 

사실, 미.러.중.일, 그 어느 대표단도 한민족 분단에 관한 적절한 역사인식과 이해를 지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있어 1945년의 분단이나 1950년의 한국전쟁은 역사책에서 읽은 한 토막의 지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 정부는 우리의 입장을 그들에게 설득하고 계몽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도 미국과의 흥정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음은 물론 이미 남북 간에 이뤄진 민족공동체로 향한 일련의 약속을 지키고 이행하는 의무와 맞물렸을 때만 가능하고 유효하다는 것을 두루 이해시켜야 한다.

 

지난 30년에 걸쳐 남과 북이 민족자주의 정신에 입각해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 "남과 북 사이의 평화와 불가침 및 교류에 관한 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6.15 남북공동선언"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도 6자회담의 결과에서 재확인돼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닥치고 있지만 보다 원초적으로는 민족 앞에 엄숙히 서약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민족적 차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간의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우리는 북한이 이번 6자회담을 계기로 김일성 주석이 약속한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으로 어서 빨리 돌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이렇듯 6자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임무는 막중하다. 그러기에 한국이 참석하지 않거나, 혹 못하는 한반도 관련 국제협상을 우리는 한사코 반대하는 것이다. 회담의 방식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일견 순진한 생각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외교에서는 회담이나 협상의 방식이 그 내용이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교훈을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이며, 특히 북핵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에서는 절대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이번 6자회담은 북한의 핵 포기와 체제의 보장을 맞바꾸는 식의 편협한 협상의 장보다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새로운 틀을 개발하는 공동의 작업이 돼야만 한다. 특히 한국을 손쉬운 공격과 위협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북한의 습관적 "인질전략"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사실 핵무기 개발 등 위기를 조성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전쟁 불사"라는 강경한 위협공세는 워싱턴.베이징.도쿄(東京).모스크바보다는 서울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고 있어 비겁하고 반민족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기회에 북한이 남북협력에 의한 민족공동체 건설이라는 약속된 궤도로 들어서는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통일이 중요해도 자유희생 못해

 

이러한 국민적 염원의 구현은 우리의 주권과 자유는 어떤 경우든 반드시 지켜나간다는, 그리고 어떤 위협의 볼모도 될 수 없다는 의지와 실력을 갖췄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통일이 아무리 중요한 민족의 목표라 할지라도 평화를 깨뜨리면서 급히 서두를 수는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평화와 통일이란 민족의 꿈도 자유를 희생할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국민적 의지를 다져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자유.평화.통일의 세 원칙을 토대로 우리는 6자회담에서 능동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