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대통령을 위한 총리?

  • 2006-03-13
  • 강원택 (한국경제)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문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사실 처음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별 일 아닌 걸 갖고 소란을 떤다고 할 수도 있었다.

 

철도 파업으로 우리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가져오긴 했지만 평일도 아닌 공휴일에 총리가 골프 친 걸 책망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 보도가 나간 후 마치 고구마 줄기 캐듯이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됐고 그러한 의혹은 석연치 않은 변명과 거짓말로 인해 점점 더 증폭돼 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 총리가 그동안 많은 국민들에게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에서 책임총리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하며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제에서 국무총리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 봉사하는 "일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해임하는 인사권을 가진 만큼 총리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고 일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따라서 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이 얼마나 신임하고 권한을 부여해 주느냐 하는데 따라 달라진다.

 

이 총리처럼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가깝고 커다란 신임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총리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총리의 업무 수행에 대해 대통령이 만족하면 할수록 신임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마치 기업에서 소유주가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문제는 총리가 대통령이 "고용한 일꾼"이더라도 그 역할은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국가 정책의 최고 관리자라는 사실이다. 총리의 언행에 주목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총리에 대한 신임은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밀도 못지 않게 국민들이 얼마나 총리의 국정 수행에 만족하느냐 하는데 따라 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전문경영인이 자신을 고용한 소유주와 개인적으로 얼마나 가깝나 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수익을 냈느냐 하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골프 파문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 총리가 그동안 대통령과의 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민생 업무를 책임진 총리로서 국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데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개혁적 정치인이었던 이 총리를 보면서 지금 그에게서 개혁과 변혁 의지를 떠올리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총리가 그 직책으로부터 성취하고 싶은 어떤 원칙이나 신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지를 느낄 수 없게 되니 국회의원들과의 언쟁이나 언론에 내뱉은 독설만 부각되고 그것도 대통령을 위해 최전방에서 몸소 야당과 싸우는 투사와 같아 보이게만 된다.

 

대통령과 국민간의 정치적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총리마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 일을 하는 것 같은 인상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느끼는 괴리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골프 사건이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그동안 이 총리의 모습이 최고 권력자만 바라보면서 그의 신임과 비호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즐겼던 과거 정권의 2인자 모습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총리로서는 억울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골프 접대, 황제 골프,골프 로비,특혜 시비 등 권력자가 누릴 만한 모든 요소가 포함된 한편의 정치 드라마로 비치고 있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총리와 같은 고위 공직자에게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와 신임은 언제나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고위직이 될수록 공복(公僕)의 자세로 자신의 몸을 낮추고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쥐게 되면 이런 근본을 쉽게 잊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도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