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미지 정치를 위한 변명

  • 2006-04-15
  • 장훈 (한국일보 )

지금부터 40여년 전인 1963년, 첫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박정희와 공화당의 상징은 누런 황소였다. 귀족적인 윤보선 후보와 차별되는 ‘농민의 아들’이요 젊은 일꾼임을 부각시키려는 박정희의 전략이었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1993년, 백발의 민주투사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겨 강력한 리더십의 이미지를 전달하려 했다. 임기 초반의 군 개혁, 금융실명제, 세계화 추진과 같은 굵직한 개혁 작업들은 이러한 이미지의 도움을 받았다.

 

"콘텐츠 빈약" 비관은 편견

이제 인터넷과 모바일의 시대에 이르러 한나라당 오세훈 예비후보의 녹색 이미지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예비후보의 보라색 이미지가 5ㆍ31 지방선거 정국을 뒤덮으면서 이미지 정치에 대한 논란은 한번 더 재연되고 있다. 과연 이미지 정치는 유죄인가? 동영상과 유비쿼터스의 시대는 알맹이는 없고 그림만 화려한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프로정치인들을 대체하는 역전의 시대인가?

강풍, 오풍에 대해서 정치권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이들은 콘텐츠는 빈약하고 포장만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정치인’이라는 비난이다.

과연 그런가? 강금실, 오세훈 두 후보가 걸어온 길, 이들의 대중적 호소력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정작 빈약한 것은 이들에 대한 비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했던 변호사 강금실이 온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1년여에 걸친 법무장관 직을 통해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뻣뻣하고 위계질서가 강한 검찰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그녀의 탈권위의식, 유연함, 유머감각이었다. 취임 초의 거대한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조직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초연함, 소탈함, 부드러움이 서서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변화를 불러왔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었다.

환경운동가, TV 토론 사회자로 알려져 있던 오세훈 후보가 국민들의 뇌리에 남게 된 것은 물론 지난 국회의원 선거의 불출마였다. 당선이 보장된 자리를 내던짐으로써 그는 단호함과 아울러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이 아닌 자유를 보여주었다.

결국 강풍과 오풍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자리잡고 있다. 엘리트의식, 위계질서, 폐쇄성, 무사안일에 대해서 우리는 ‘비호감’을 느낀다. 반면에 이들 ‘반정치적 정치인’들이 상징하는 자유로움, 소탈함, 삶의 방식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미지 정치에 대한 두번째 공격은 사뭇 세대갈등, 문화갈등의 혐의가 짙다. 기성세대들은 강금실, 오세훈 후보의 이미지와 정치인의 고전적인 미덕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옷맵시가 좋고 패션감각이 뛰어난 것이 그들의 정책능력, 정치인으로서 자질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강풍, 오풍은 "정치의 연예화"를 재촉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신세대들의 반응은 차갑다. 이들에게 정치가, 정치인이 엄숙하게 사회를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 빼어난 옷맵시, 건강한 몸은 디지털 신세대에게는 곧 그 사람의 성실성, 자존심, 준비성의 표현일 뿐이다.

 

"엄숙한 정치"의 시대는 지나

박정희의 ‘황소’ 상징에 이끌려 표를 몰아주었던 산업화 세대도, 김영삼, 김대중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던 민주화 세대도, 강풍-오풍의 인터넷 세대도 모두 나름의 이미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한 대중과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이미지 정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의 이미지 정치 논란이 또 다른 세대전으로 치닫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한 사회 안에 다른 문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틀린 문화와 옳은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요즘 높은 인기를 누리는 어느 아나운서의 멘트에 귀기울일 만하다. OLD and NEW 세대공감, 공부하세요!

 

장 훈 EAI 거버넌스센터 소장 ·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