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노사갈등과 노조

  • 2004-08-01
  • 이근 (한국일보)

노사 분규는 한국 경제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말이 됐습니다. 왜 이처럼 노사간 협상은 타결이 쉽지 않을까요? 시장 경제의 효율성은 수요와 공급 양측 모두에 다수가 존재하는 경쟁적시장을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노동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팔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반면 자본가는원하는 노동자를 선택해서 골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시장은 일단 수요자 쪽의 힘이 더 강한 수요 독점적 성격이 강합니다. 수요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은 완전경쟁 상황에서보다 더 적은 수의 노동자를 더 낮은 가격으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처럼 노동력이 풍부하던 시절이바로 이런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죠.

 

노동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전태일과 그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 시장의 공급도 한 사람(조직)만 존재하게 돼 이제 수요와 공급 양측이 모두 독점적인 구조로 재편성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전쟁이고, 또 갈등입니다. 경쟁적 시장이 아니어서 시장이 결정해 주지도 않고, 어느 한쪽만 독점이어서 힘의 균형이 쏠려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양측이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쌍방 독점인 것이죠.

 

실제로 현실에서는 임금이 생산물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쟁적 시장을 전제로 한 이론이 타당한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 노사간의 단체 협상에서 임금이 결정되죠. 노조는 사용자의 수요 독점에 대항한다는 면에서그 정당성이 인정되긴 하지만, 시장을 예측할 수 없는 쌍방 독점 체제로만든다는 면에서는 불안정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쌍방 독점 체제에서서로를 인정하며 협조적 노사 관계를 달성하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노동조합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개별 회사 노조 중심 체제와 산업별 노조 중심 체제입니다. 산별 노조 체제란 각 회사 노조 위에 산업 차원에서 조직된 노조가 협상의 중심이 되는 중앙집권적 체제입니다. 북유럽에흔한 형태입니다.

 

반면 분권적 체제인 단위 노조 체제에서 단체 협상은 해당 기업의 사용자와 노조가 전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사실 단위 노조 체제가 합리적인 면이 있습니다. 같은 업종에 있다 해도 기업별로 성과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각 기업의 여건에 따라 임금을 많이 주기도 하고 못 주기도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단위 노조 중심입니다.

 

하지만 단위 노조 체제의 문제는 조금밖에 받지 못한 기업의 노동자들이이웃의 여유있는 기업의 사례를 들어 불만을 표출하고 이것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중앙집권적 산별 노조 체제에는 각 기업사정에 상관없이 똑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비합리성이 있지만 기업 간에서로 임금 상승률을 비교해 생기는 분쟁 요소는 적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체제가 좋을까요. 어느 체제이든 간에 노사간의 신뢰가 결국 관건입니다. 가령 단위 노조 체제에서 아무리 자기 기업의 임금 상승이낮더라도 그것이 회사 사정을 감안할 때 적절한 것이고, 또 이런 정보가노조 측에도 충분히 알려져 있다면 임금이 낮다는 사실 자체가 분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산별 노조 체제에서 서로 신뢰가 없어 단체 협상이 타결되지않는다면 이는 그 산업 내 전 사업장이 장기적 분규에 노출되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죠. 더구나 최근 병원 노조의 사례처럼 산별 교섭을 해놓고도서울대병원 등 단위 노조가 이를 거부한다면 이 체제의 이점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