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요란한 개혁보다 가시적 업적을

  • 2004-04-13
  • 이내영 (조선일보)

탄핵철회하고, 대통령 사과해야...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 이후의 한국 정치의 달라진 지형(地形)을 살펴보고 정치적 과제들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한 달간 국민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탄핵 반대와 지지로 분열시킨 탄핵정국의 소용돌이가 총선이 끝나면서 가라앉기를 바라지만, 총선 이후의 한국정치는 당분간 혼돈과 불안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탄핵으로 인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 정치 불안의 요인이다. 또한 열린우리당의 제1당으로의 부상, 한나라당의 상대적 위축, 민주당의 지지기반 와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 등 이번 총선에서 기존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혼돈과 불확실성을 가져올 요인이다. 정당의 세력판도의 부침이 너무도 극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지형에 정치권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총선 이후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우선 분열된 국론을 결집시키고 갈등을 통합하는 일이다. 이번 총선은 탄핵정국과 맞물리면서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혼란과 분열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또한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정치권이 지역감정과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러한 분열과 혼란이 총선 이후에도 지속된다면 한국사회가 큰 위기에 빠질 것이 우려되기 때문에 탄핵사태로 불거진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고, 세대·지역·이념 갈등의 골을 메우는 데 정치권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극한대결의 여야 관계를 타협과 상생의 정치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정치가 탄핵이라는 파국적 상황에 도달하게 된 이유는 노무현 정부의 등장 이후 여야가 극한대립과 오기의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새 국회에서는 급진적 노선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게 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여야가 상대 당의 이념과 노선을 인정하고 경쟁하고 타협하는 "관용의 정치"가 정착되지 않으면, 국회가 이념과 노선 갈등으로 인해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무현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 헌재에서 탄핵기각을 통해 직무에 복귀한 노 대통령이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야당을 배제하고 "코드정치"를 지속할 경우 분열과 대립은 계속되고, 반대로 야당과 반대세력을 껴안는 통합의 정치를 펴나갈 때 분열과 갈등이 극복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정치권이 탄핵문제를 현명하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탄핵 여부에 대한 판정은 헌법재판소에 넘겨졌지만, 우려되는 점은 헌재의 판정에 대해 탄핵을 반대 진영이나 탄핵찬성 진영 어느 쪽이든 승복하지 않고 대립양상이 더욱 첨예해지는 사태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여야가 탄핵철회를 합의하고 대통령은 야당에 사과하는 정치적 타협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이 어렵다면 정치권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판정에 승복하겠다는 공동선언이라도 해서 탄핵으로 인한 더 이상의 대립을 막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은 총선과정에서 간과된 중대한 국가 현안들을 돌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라크 파병문제, 경제회복과 실업문제, 신용불량자 처리문제 등 산적한 국정 현안들에 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극적 반전을 통해 일거에 소수정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만큼 책임도 커졌다.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고, 요란한 개혁 구호보다는 가시적인 업적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