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친한 정책이 동북공정의 암초 만났다

  • 2007-04-21
  • 박성현기자 (뉴스위크 한국판)

역사 분쟁에다 수출 경쟁까지 깊어지면서 한국인의 중국 호감도 내리막길

 

중국 정부는 올 들어 주한 중국 외교관들에게 새로운 지침을 내렸다. 책상머리에 앉아 주어지는 업무만 하지 말고 인간적이고 정서적 교감을 나눌 만큼 한국인과의 접촉을 강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얼마 전 외교안보연구원 김홍규 교수가 중국 측 지인에게 전해들은 얘기다.

지난해 중국 정부 안에서도 중국이 경제면에서는 강대국이 아니니 대외적으로 튀는 행동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회람 됐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1인당 국민총생산(GNP)으로 따져볼 때 2050년께 세계 40위권, 2100년께에야 겨우 10위권에 든다고 스스로 예측했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해외에 나가 지나치게 튀거나 뻐기는 행동을 자제하며, 그 나라의 예법을 지키고 의식과 자존심을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 그 권고의 요점”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 추구 정책은 한국에서 어떻게 반영됐을까? 한국 외교통상부 동북아 2과의 조원명 과장은 20년 가까이 줄곧 중국 관련 분야에서만 일해 왔다. 그가 봐 온 중국은 약소국이라 해서 차별하지 않을뿐더러 경제지원도 이런저런 군더더기 조건을 붙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대외정책 기조가 바뀌는 미국·영국 등 여타 강대국보다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 그래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중국에 호감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주권 평등의 원칙 아래 힘에 호소하거나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조 과장은 말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도 중국은 책임 있는 처신으로 점수를 많이 땄다.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 국가들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힘이 됐다(이정남 고려대 평화연구소 박사)는 평가도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10일 방한했다. 방한에 앞서 가진 베이징 주재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한반도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이미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못한 일은 대단히 비정상적이다”고 원 총리는 말했다.

뒤집으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에 중국이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로 읽힌다. 사실 북핵 6자회담 타결 과정에서도 중국과 한국은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했다고 알려졌다. 김홍규 교수는 “중국은 6자회담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라는 신뢰감을 관련 국가들에 심어줬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반미 분위기가 팽배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을 미국의 대안으로 보는 시각까지 조금씩 퍼져갔다. 2004년 4월 실시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1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3%가 한국의 외교·통상 우선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미국이라는 의견은 26%에 불과했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미국을 싫어하는 감정이 같은 동양권인 중국을 친숙하게 느끼는 감정으로 이어졌다고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적했다. 심지어 “국제사회가 중국의 위협론, 패권국가론을 우려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만 유일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당시를 기억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 여론과 한국 여론은 완전히 따로 논다. EAI는 2006년 11월 말∼12월 초 영국 BBC, 한국의 매일경제와 함께 한국인 성인남녀 514명으로 대상으로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대체로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물었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자가 29.8%인 반면, 부정적이라는 응답자는 51.6%에 달했다. 같은 기관들이 같은 방식으로 2004년 1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48.6%였으며 부정적이라는 응답(46.7%)보다 더 많았다. [물론 2006년도 조사에서도 중국은 일본(59.7%), 러시아(55.5%), 미국(54.1%)보다 부정적인 응답률이 낮게 나왔다. 하지만 중국을 보는 긍정적 인식은 줄고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는 현상은 유의할 만하다.]

나아가 지난해 조사에서는 29세 이하 젊은 층에서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이 58%로 가장 높았다. 또 고학력, 고소득층일수록 중국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이는 한국 사회 여론을 주도할 계층과 연령층에서 거부감이 심화됐다는 의미로 중국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정한울 부소장은 “2004년 이후 불거진 고구려사 왜곡 등 동북공정이 중국의 대(對) 한국 외교 성과를 일거에 무력화했다”고 분석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과거 중화주의 패권적 발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로 한국민이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겉으로는 친선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통일 한국을 겨냥한 기만적인 역사 편입 작업을 준비해 왔다는 반감까지 싹텄다. 게다가 최근에는 백두산(중국식 명칭 창바이산)의 표현과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이정남 고려대 평화연구소 박사는 “한국이 중화 문화권에 편입될 가능성에 따른 기피 심리와 멀리 떨어진 미국보다 중국이 더 우려스럽다는 인식이 번졌다”고 했다.

경제적 변수도 있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긴 하지만 4년 연속 증가세였던 중국과의 무역흑자는 지난해 9.9% 감소했다. 게다가 해외 수출시장에서 저임금으로 무장한 중국 제품이 한국 제품과 본격 경쟁하면서 중국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

서울대 외교학과 정재호 교수에 따르면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확산은 동북공정뿐 아니라 날로 강성해지는 중국의 경제력에 위축감과 두려움을 느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에 느꼈던 호감이 무너지는 현상은 일면 예정된 결과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중국이 원래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데다 교류가 확대되고 접촉 면이 늘어난 만큼 갈등은 증가하는 법”이라고 한석희 교수는 지적했다.

외교부 조원명 동북아2과장은 “그동안 부풀었던 기대치에서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 비유했다. 조 과장은 “중국의 소프트 파워 세례를 받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도 중국에 일정 정도 거부감과 경계심은 갖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권을 둘러싼 화교와 현지 주민 간 충돌이 만성화된 인도네시아가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한국인들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한 중국 전문가는 얼마 전 중국 학술지 관계자에게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자 믿기지 않아 했다고 한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대 중국 인식과 너무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일보는 지난해 2006년 1월 26일자로 한·미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한·중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 근거의 하나가 한국의 국회의원 중 친중파 성격의 의원이 친미파를 넘어섰다는 2004년 4월 설문조사 결과다. 하지만 인민일보 기사가 보도될 당시엔 한국 정치권과 국민 여론이 동북공정 때문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중이었다.

지난해 동북공정 문제로 시끄러울 때 주한 중국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역사 문제는 학술의 문제임에도 한국에서는 너무 큰 쟁점이 돼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믿거나 듣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사태만 확산됐다. 게다가 대사관 인력도 부족해 손써 볼 여지가 없을 때가 있다.”

이 관계자는 한·중 정부 간 대화로 충분히 풀어나갈 사안도 여론이 가세하면 엉키고 오해만 증폭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한국 드라마는 동북공정보다 더 웃기는 일들을 지어내는데 우리가 언제 시비를 걸었느냐고 중국 정부가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국 측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한석희 연세대 교수는 “중국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순간순간 사태를 모면하면서 조금씩 동북공정의 목표에 다가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적 이익이 걸린 사업이므로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얘기다.

올해로 한·중 수교 15년을 맞는다. 양국은 국방 학술대회와 군인 체육교류 등을 올해 안에 추진한다. 또 한국의 해양함대가 중국을 방문하는 계획까지 논의되는 등 양국 간 교류는 군사적인 문제까지 넓어져 간다. 그런데도 많은 전문가는 한·중 관계의 미래를 선뜻 낙관하지 못한다. 동북공정이 수시로 양국 관계의 토대를 흔들어 놓으리라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