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북한 大예측: 4. 군사적 충돌경우] 한미 굳건한 연합태세 보여줘야 전면전 막을 수 있다

  • 2007-01-04
  • 안용균기자 (조선일보)

확전 막은 사례
99년 1차 서해교전… 韓·美 긴급회의… 航母 등 신속 배치
02년 2차 서해교전… 확전 피하기 위해 증원군 파견 자제

 

처음부터 국가간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6·25처럼 북한이 전면 남침을 감행하는 사태가 아니라면 국지전(局地戰)이 확대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6·25 이후 50여 회에 걸쳐 북한이 해온 비교적 큰 규모의 대남도발은 모두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남성욱 고려대 교수)고 한다.

 

어떻게 하면 전면전으로의 비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한반도 위기 관리를 하면서 잠시도 소홀히 해선 안 될 명제다. 전직 국방 관련 고위당국자들과 군사분야 전문가를 통해 과거 사례를 분석해 봤다.

 

◆ 한·미연합군의 억지력 사례=99년 1차 서해교전, 8·18 도끼만행사건

1999년 6월 6일 북한 경비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 돌아가는 ‘치고 빠지기’ 식으로 9일간 작전을 계속했다. 15일 우리 해군이 북한 경비정 선체를 밀어내기 식 충돌로 저지하자 북한은 기관포 공격을 개시했다. 우리 해군도 응사했다. 북한 어뢰정과 중형 경비정 각 1척이 침몰했고 다른 경비정 3척도 크게 파손된 채 퇴각했다. 당시 고위 군장성은 “북한의 보복전을 예상, 북한 후방과 공군·미사일 기지 등의 감시에 들어갔다”고 했다.

 

당시 사태와 관련해 김진호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당시 한·미가 긴급회의를 통해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미 항공모함을 신속히 한반도 주변에 배치했다”며 “한·미 연합사 체제의 대북 억지력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사례로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들었다. 당시 북한군은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유엔군(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했다. 사건 직후 한·미연합군은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미군은 전폭기·항공모함을 출동시켰다. 이에 당시 김일성 주석은 사과문을 유엔군에 전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전직 장성은 “당시 지상에서는 미 2사단, 하늘에서는 1군단 소속의 공격용 헬기가 호위하는 가운데 문제의 미루나무를 한·미연합군이 제거했다”며 “만약 연합태세의 위력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상황은 수없이 많다”고 했다.

 

◆ 확전 자제 사례=2002년 2차 서해교전

2002년 6월 29일 2차 서해교전은 1차 때와 달리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사전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 경비정의 포탄이 우리 해군 함정 조타실에 명중됐다. 우리 해군도 응사했지만 북한 배는 1999년과 달리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포를 개량했다.

 

북한 고속정은 피해를 입었지만 완파(完破)되지는 않았다. 우리 해군도 6명 전사·19명 부상, 고속정 1척 침몰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김동신 국방장관은 “지휘부가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확전 방지 대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전 상황 이후 북한군 함정이 부서진 자기네 배를 끌고 가려고 내려왔는데 인근 북한 지역에서 미사일 발사 징후가 우리 레이더에 포착됐다”며 “우리가 증원군을 보낼 경우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만약 북한군 후방이나 공군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면 대응을 했을 것”이라며 “한·미의 정보를 종합 분석한 결과 전면전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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