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盧대통령 1년] 2. 정치·행정

  • 2004-02-20
  • 김용호 (중앙일보)

- 대통령 - 국회 충돌 "野보다 盧 탓"


- "통치 파트너"란 생각 가져야


- 권위주의 벗어난 건 잘한 일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대통령의 탈 권위주의, 분권화, 국민의 정치 참여에서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게 정치.행정 분야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 협력관계, 국정운영 시스템 구축, 인사정책의 쇄신, 부정부패 척결에서는 대체로 실패했다는 평가다.

 

중앙일보와 EAI(동아시아연구원)가 공동 기획한 盧정권 1년 평가(본지 2월 19일자 1, 4, 5면)에 참여한 정치.행정분야 전문가 55명은 국정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지지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방법이나 효과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우리 정치가 발전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을 평가했지만 盧대통령이 효율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 리더십에 의존함으로써 사회갈등이 심화하고 국민의 불만이 높아졌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또 盧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한 3대 주요 과제로 ▶대통령-국회 간의 협력관계 조성 ▶효과적인 국정운영 시스템 구축 ▶공직자 부패척결 및 깨끗한 정치의 실현을 꼽았다. 이밖에 ▶포퓰리즘적 요소 제거 ▶이념과 세대 간 갈등해소 ▶정치권의 물갈이 ▶4년 중임제 개헌 등을 盧대통령이 추진해주길 다수의 전문가들이 바라고 있다.

 

이런 평가의 정치적 의미는 첫째, 노무현 행정부의 정책방향이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포함한 전 지구적인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盧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 정치 참여의 확대와 분권화 정책, 그리고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정보화.지방화라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전문가들은 낡은 정치의 청산, 정치적 부패의 척결 등 盧대통령의 정치개혁 방향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개혁이 국정운영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니라 "결단"과 "선언"같은 포퓰리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盧대통령이 위헌성 짙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럴 경우 개혁의 내용은 제도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1회용 바람몰이로 인식될 수 있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평가를 기초로 할 때 몇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충돌과 적대관계는 盧대통령이 타개해야 할 최대의 숙제다. 전문가의 86%도 지난 1년간 대통령-국회 간 협력이 실패했다고 봤다. 성공했다고 평가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특히 양자간 대립의 책임소재는 야당보다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았다.

 

盧대통령 취임 후 3金정치 시대의 적폐인 "제왕적 대통령"상은 사라지고 있으나 대신 대통령과 국회 간 대립은 빈번해졌다. 盧대통령은 전직 대통령과 달리 카리스마.지역패권.가신이 없기 때문에 소속당을 앞장세워 국회를 장악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당정분리를 고집함으로써 소속당조차 장악하기 어려웠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의 분당은 정치사상 최악의 여소야대 상황을 만들어 盧대통령과 국회와의 불화는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국회의 견제를 받은 盧대통령은 국회를 우회하여 국민에게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등 현행 헌법과 정당체제를 뛰어넘으려고 시도했다. 결국 여소야대 속 盧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과 국회의 무책임한 대응이 양자 관계를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과 국회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선 양자가 국정운영의 두 수레바퀴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중앙당 중심의 대권 추구형 정당 운영이 국회 원내활동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회를 향한 盧대통령의 "설득 리더십"도 필요하다. 행정부만 통치기관이라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도 수정돼야 한다. 국회도 입법활동 등을 통해 행정부와 함께 통치기능을 행사하는 기관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아침 일찍 당사로 출근해서 대통령이나 상대 당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는 지극히 한국적인 행태도 고쳐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정위치는 당이 아니라 국회다. 국회에서 입법안을 심의하고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당정을 분리해야 하는 것이다.

 

당은 사회명망가 출신의 원외인사에게 맡기고 국회의원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대통령이 국회의 협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카터 대통령이 재임 중에 성공하지 못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후자가 여소야대 상황이지만 의회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 통치기능을 가진 국정운영의 파트너라는 새로운 인식 아래 싸움을 중단하고 상대방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줘야 한다. 우리 정치가 국가경쟁력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김용호 인하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