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홍구-킴 캠벨, 한국-캐나다 前총리 대담

  • 2003-09-04
  • 박소영 (중앙일보)

"北 핵개발 위협은 자살폭탄"

캐나다 최초의 여성 총리를 지낸 킴 캠벨 여사가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 고려대 교수)과 북미 고르바초프재단(GFNA)이 공동 주최한 동북아평화회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그는 1993년 10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하고, 마드리드 클럽 부회장으로 동유럽을 비롯한 신생 민주국가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캠벨 전 총리는 3일 본사 이홍구 고문과 만나 냉전 종식 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역할과 북한 핵문제를 논의했다.

 

이홍구=우리가 마드리드 클럽 창립 때 처음 만난 지도 벌써 2년이 됩니다.

 

캠벨=마드리드 클럽은 2001년 10월 1백여명의 석학과 35명의 전직 대통령 및 총리가 주축이 돼 출범했습니다. 클럽의 회장은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주 전 브라질 대통령이고,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등 전직 국가수반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동유럽의 옛 공산국가들과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겪는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군사 등 광범위한 분야를 조언하고 있습니다. 전직 국가수반이 스스로 겪은 국정운영의 경험을 들려줘 신생 민주국가들에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현직 국가수반들은 할 수 없는 역할이지요.

 

李=냉전 이후 민주화의 길을 선택한 여러 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한국은 민주화에 일단 성공하고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최근 수개월간 한국 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시민운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정부기구(NGO)와 노동조합 등 시민들의 목소리가 국민이 스스로 뽑은 의회와 정부의 권위.기능에 맞서는 양상입니다.

 

캠벨=시민단체는 민주제도의 중요성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정부와 시민단체는 제로섬 관계가 아닌 공생관계에 있습니다.

 

李=냉전 종식 후 중국과 베트남 등 공산국가들에 큰 체제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남북한은 철책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대치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북한 핵문제가 동아시아 전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캠벨=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국민에 대한 억압과 군비 확장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이런 상태를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위협은 자살폭탄과도 같은 것입니다. 베이징(北京)의 북핵 6자회담은 북한의 정권교체 없이 위기상황을 다독이고, 관계국이 공동의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李=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전통적인 구미(歐美)동맹에 심각한 균열상을 연출했습니다. 전통적인 한.미동맹 역시 최근 들어 여러 요인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미국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캐나다의 지도자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캠벨=미국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수용해야 합니다. 유럽국가들은 유럽연합(EU)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정치.경제분야에서 미국의 대항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동맹국과 적국을 명백하게 구분짓는 독단적인 외교노선을 채택했습니다. 물론 9.11 테러가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죠. 미국은 독단적으로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피를 흘렸고,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최근 캐나다는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이념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여전히 국경을 맞댄 채 1분에 1백만달러 이상의 엄청난 교역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李=캐나다 최초의 국방.법무장관, 그리고 총리를 지낸 여성으로서 캠벨 여사는 한국 여성들의 우상입니다.

 

캠벨=여성 대통령과 총리를 지냈거나 현직에 있는 여성 지도자는 줄잡아 30여명입니다. 나를 포함해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과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 등 전.현직 각국 총리와 대통령들로 구성된 "세계 여성지도자"모임은 정치.경제.사회분야의 정책이 여성의 시각을 보다 더 많이 반영하도록 국제사회에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여성정치인들의 보다 큰 활약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