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국민은 이런 정부를 바란다] 上. 탈보수화와 정치개혁

  • 2003-02-11
  • 특별취재팀 (중앙일보)

오는 25일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국정 운영의 기치로 내걸었다. 다수 국민의 참여를 통해 진정한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겠다는 다짐이라고 한다.

 

중앙일보는 EAI(동아시아 연구원)와 공동으로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부의 모습을 일반 국민과 여론 주도층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제시한다. 국정 우선순위와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 새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국민의 주문도 정리한다.

 

국민 이념의 탈(脫)보수 흐름은 한국 정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보수성향의 유권자가 다수(majority)라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이제는 진보성향의 유권자와 대등하게 영역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국민 이념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연령층은 40대로 나타났다.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책임있는 세대인 40대의 경우 지난해 1월 조사에서는 국민 이념 평균(5.2)보다 다소 보수적(5.4)이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4.88로 바뀌었다.

 

강원택(康元澤.정치학) 숭실대 교수는 "국민의 이념 평가는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여덟차례의 조사에서 탈보수 흐름을 보이고 있어 학문적으로도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화를 일으킨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고려대 이내영(李來榮.정치학) 교수는 "3金정치 종식과 지역주의 완화라는 구조적 요인과 이념성이 강한 대미.대북 정책이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했던 이번 대선의 특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경희대 김민전(金珉甸.정치학) 교수는 선거과정에서의 유권자 의식변화에 주목했다. 金교수는 "선거는 가장 광범위하게 정치교육이 벌어지는 장(場)"이라며 "지난해 대선에서는 상반기부터 민주당.한나라당 경선이 시작됐고 본격적 선거국면에 접어들면서 어느 때보다 이념.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을 "중도"로 자리매김했던 사람들이 2002년 1월 절반(49%)수준에서 최근 30%대로 떨어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을 표방하는 데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적 환경이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이념지형의 변화는 기존 정치.행정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수술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노무현 정부의 최우선 개혁대상으로 "국내 정치"를 꼽은 사람이 34.5%로 가장 많았다. "관료조직과 행정부처 기능"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24.8%나 됐다. 국민 5명 중 3명 꼴인 59.3%가 "국내 정치와 행정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답한 셈이다. 이는 盧당선자가 줄곧 강조해온 "낡은 정치 청산"과 국민의 뜻이 어느 정도 일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분야 최우선 개혁 대상은 "정경유착 근절"(41.3%)이었다.

 

김민전 교수는 "확고한 지지층이 넓지 않은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뜻에 따라 개혁의 우선 순위를 잘 잡아야 한다"며 "국민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의 무게중심이 선거구제 변화나 국가보안법의 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정치, 정당 민주화 등에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이념성향에 대한 국민의 판단 결과도 흥미롭다. 金대통령의 이념 평균(가장 진보:0, 중도:5, 가장 보수 10)은 5.7로, 국민이 스스로 생각하는 이념 평균 4.97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金대통령의 이념적 역정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金대통령은 집권 이후 보수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햇볕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강원택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이 기대했던 수준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측근과 아들들의 부패사건으로 金대통령을 기성 정치인과 동일시하게 됐고, 대선과정에서 노무현.권영길(權永吉)후보가 등장한 것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정치부 이하경 차장.신용호 기자, 여론조사팀 안부근 전문위원.김주한 연구원


EAI(동아시아 연구원)측 참여교수=김병국.이내영(고려대.정치학).강원택(숭실대.정치학).김민전(경희대.정치학).송치영(국민대.경제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