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미중정상회담 스페셜리포트] ‘관리된 경쟁’과 ‘발전권 확보’ 사이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2023 APEC 미중 정상회담
스페셜리포트 | 2023-11-20
손열, 김양규, 이동률, 이승주, 전재성, 하영선
손열 원장(EAI; 연세대)을 대표 집필로 하는 저자 6인(김양규, 이동률, 이승주, 전재성, 하영선)은 샌프란시스코 APEC 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핵심 현안으로 설정한 ‘대만 문제’와 ‘경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타협은 이루지 못했지만, 양국 관계를 2022 발리 정상회담 시점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고위급 소통 채널 강화 및 신뢰 구축 조치 확보 등에 합의한 것은 미중 관계가 대립을 넘어 군사적 충돌로 치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 하에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고 투명성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이 선별된 협력 분야를 모색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전략적 경쟁을 유지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은 첨단산업 등의 분야에서 내부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한편, 미중 경쟁의 리스크를 관리하고 유사입장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규칙 제정자’로 변모할 기회로 삼을 것을 제언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작년 11월 발리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의 전략 경쟁이 대결과 대립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책임 있는 경쟁을 추구하기로 약속했다. 올해 2월 정찰 풍선 사태로 인해 양국관계가 경색되었으나 일련 고위급 회담을 통해 협력을 향한 “탐색”과 “조정” 시기를 거쳤다.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5월 비엔나, 9월 몰타, 10월 워싱턴 DC에서 만났고, 6월 토니 블링컨(Antony John Blinken) 국무장관을 시작으로 미국의 장관급 인사 4명이 잇달아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APEC 정상회담 직전에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장관이 허리펑(何立峰) 중국 부총리를 만나 마지막 조율 과정을 거쳤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에서 열린 양국정상회담은 발리 정상회담 시점으로 양국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온 양대 핵심 현안은 대만 문제와 첨단기술/수출 통제와 관련된 경제문제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의 성과는 양대 핵심 현안에 대한 의견 접근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에 달려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현안의 타협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고위급 군사대화 재개를 통해 소통 강화와 신뢰구축 정도에서 합의를 보았다. 양국은 마약과 인공지능(AI) 분야 정부간 대화 수립, 민간교류 활성화 등에도 합의했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앞선 여러 차례 미중 고위 관료의 만남과 새로운 관계 모색 속에 이미 결정된 측면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평가를 위해서는 지난 6월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친강(秦刚) 전 외교부장, 왕이 부장, 시진핑(习近平) 주석 등과 치른 회담과 9월 몰타에서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주임이 만나 12시간 대화한 당시의 성과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 관리된 경쟁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경쟁(competition),” “협력(cooperation),” “대립(confrontation)”이라는 세 개의 “C”로 자주 표현되는데, 블링컨 국무장관은 6월 방중 기간 ‘경쟁’에 방점을 찍는 행보를 보였다. 미국이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compete vigorously)”할 것을 분명히 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판(miscalculation)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통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미중 인적교류 강화, 펜타닐과 같은 합성 약물 대응, 중국의 불공정 경제 관행 시정, 신장·티베트·홍콩의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 대만 해협에서의 안정 등을 논의했다(U.S. Department of State 2023/6/19).
반면 시진핑 주석과 왕이 부장은 미국이 미중관계를 “경쟁”으로 정의하는 데 반대하며 “상호존중(相互尊重, mutual respect),” “평화공존(平和共存, peaceful coexistence),” “합작공영(合作共赢, win-win cooperation)” 등 3대 원칙의 견지를 강조하고, 역사적 필연으로서 중화민족의 부흥과 발전을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의 신냉전 추구 및 중국 체제를 변환하려는 시도 그리고 “중국 위협론”을 내세워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제재를 가함으로써 중국의 과학 기술 진보를 막는 행보를 멈출 것과, 대만 문제와 같은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PRC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23/6/19a; 2023/6/19b).
9월 몰타에서 회의에서도 설리번 보좌관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전략적 소통채널의 유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White House 2023).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대만 문제가 중국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라는 점, 중국의 성장은 강력한 내부 동력에서 기인한 역사적 필연으로 저지될 수 없으며 발전권은 중국 인민의 정당한 권리로 빼앗길 수 없다는 점, 미국이 디리스킹(derisking)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작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은 결국 중국의 발전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디커플링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Bai 2023/9/18).
반면 미국은 대중정책 기조는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조정을 보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략경쟁에 기초한 대중 강경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지난 6월 14일 커트 캠벨의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시진핑이 집권하고 있는 한 양국간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전략 이익이 충돌하며 추구하는 정책 방향의 기본 규칙과 규범이 상이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협력은 현재 어렵다는 것이다.(U.S. Department of State 2023/6/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의 발전이 자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기회를 주고 있으며, 초국가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중국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중국을 압도하는 우위를 유지하면서, 미래 군사적 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신기술 영역에서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을 통해 중국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한편, 경제 영역에서는 미국의 기업과 동맹국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광범위한 상호 의존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1년간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점차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저하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코로나 사태나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와 같은 비교적 단기적 추세 때문이 아니라,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질적 성장과 혁신의 기회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고, 특히 개인주의적 권위주의 정치 체제가 강화되면서 경제의 예측 가능성이 줄어들고, 시장의 논리보다 정치의 논리가 강화되는 중장기적인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경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으며, 정찰 풍선 사태가 시사하듯이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비록 독재자라 하더라도 모두 관리하지 못하는 결함을 중국 정치 체제가 안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중국이 추진해 온 일대일로전략이나 지구안보구상, 지구발전구상, 지구문명구상 등이 국제사회의 전격적인 호응을 불러오지는 못하고 있고, 오히려 중국의 전랑외교 등 이념화된 대외 정책이 중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 속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일정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전략 경쟁을 지속하되, 경쟁이 대립으로 화하는 사태를 막는 것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생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APEC 미중 정상회담 이후 시진핑 주석과의 대화는 “건설적이고 솔직했다”고 답변하면서,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략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면서 주변국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중국 - 발전권 확보
반면 샌프란시스코에 입성한 시진핑 주석은 부동산 위기와 지방 경제의 침체, 높은 실업률, 외국자본의 대중 직접 투자 감소, 그리고 리커창 전 총리의 돌연한 사망에 대한 국민들의 애도 물결 등으로 인해 복잡하고 불안정한 국내 정치·경제 상황 속에서 감행한 미국행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국내 불안정을 상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외교 성과가 필요했다.
시 주석은 경제를 전면에 내건 외교 자세를 보이며 미중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계 개선을 지지하며, 자유무역과 외자의 대내투자 확대를 향한 개방 전략을 천명하였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회담이 긍정적, 포괄적, 건설적이었으며 중미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긍정적으로 개괄했다.
그렇지만 정작 회담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고자 했던 양대 핵심 의제, 즉 대만 문제와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제재 문제 그 어느 것도 중국이 요구한 실질적인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 주석의 주장과 발언 중심으로 회담 내용을 선택적으로 개괄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 외교부가 다분히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한 평가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살펴보면 중국이 회담에서 중시한 의제는 대만 문제와 중국의 발전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통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했고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봉쇄,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홍콩 및 신장에 대한 인권 탄압 등을 경고했고, 남중국해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항해와 항공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미국은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도 언급했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은 이른바 3대 핵심이익으로 ‘주권,’ ‘안보,’ ‘발전이익’을 내세우고 있고 시진핑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핵심이익 중의 핵심이익은 주권, 특히 대만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대만 문제는 당위의 문제이지만 사실상 독립도 통일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해결 난망의 과제이다.
그런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역점을 두고 강조한 것은 발전이익, 즉 발전권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를 설명하면서 중국식 발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정당하며 미국이 저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시 주석은 미국이 수출 통제, 투자심사、일방적 제재 등으로 중국의 정당한 발전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집중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경제위기로 체제 불안정에 직면한 시진핑 정부에게 경제발전은 집권 정당성 강화와 체제 안정에 직결된 현실적이고 긴급한 과제이다. 시진핑 정부가 경제발전궤도에 재진입하여 집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제 및 첨단기술 분야 제재를 완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면서도 핵심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시주석은 향후에도 미국 기업계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바이든 정부의 제재를 완화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시 주석은 이번 샌프란시스코 방문에서 정상회담 못지않게 미국 업계 등 민간에 대한 외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시 주석은 APEC 회원국을 겨냥한 경제 외교를 본격화하였다. 최근 중국은 일대일로 10주년을 맞이하여 일대일로 정상포럼을 대대적으로 주최했고, 시진핑 주석이 주변 외교 이념 제시 1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움도 직접 참석하여 연설했다. 미국의 경제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번 정상회담에서의 실질적인 성과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추진한 배경에는 APEC 정상회담이 주변국 외교와 다자외교가 결합된 중요한 외교 무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개막 연설에서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디커플링 압력을 비판하며 “개방지향의 견지”를 호소하고, 산업 공급망의 안정화와 원활화를 저해하는 “경제-무역관계의 정치화와 무기화, 안보화”를 반대한다고 선언한 것은 역내 신흥국 및 개도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타협과 합의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기술 수출 통제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 또는 확대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첨단기술 수출 통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 빅테크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변화의 계기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고 협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구체적 이행 방안과 성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미중 사이 여전히 간극이 상당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첨단기술을 중국에 제공할 생각이 없음을 단호하게 표명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 내 미국 기업의 활동이 제한되는 데 대한 우려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디리스킹이 첨단기술의 전용을 통한 국가안보 위협을 제거하고,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성을 유지, 확대하려는 전략이라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정상회담은 펜타닐 마약의 생산 물질 유통 금지와 같은 합의를 이끌어냈고, 미중 간 국방 정책 및 해상 안보를 위한 대화를 추진하며, 위기 방지를 위한 고위급 군사회담을 유지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내었다. 또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정부간 대화 수립을 합의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첨단기술 수출 통제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우려에 일축하면서, AI 규범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중국을 끌어들인 것이다. 두 지도자는 전문가들이 AI 리스크와 안전 문제를 논의하는 장을 만드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중국이 AI 규칙과 규범 수립에 관한 논의 참여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청신호이다. 어느 누구도, 어느 국가도 AI에 의해서 핵무기가 통제하는 세상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AI 관련 자율적인 국제 규범을 수립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중국이 이를 수용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국이 협조적 자세를 유지할지는 미지수이다. 2023년 10월 바이든 대통령은 ‘안전하고, 튼튼하며,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Safe, Secure, and Trustworthy Artificial Intelligence)에 서명하였다. 이 명령은 ‘AI 안전을 위한 가장 의미 있는 조치’일 뿐 아니라, 미국이 AI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는 교두보를 확보하였다는 평가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행정명령이 실행 단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규범과 규칙의 수립이 안보적 함의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발빠른 조치에 중국이 보조를 맞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IPEF와 지역 경제 질서
이번 정상회담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역 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APEC은 IPEF 협상을 진전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다. IPEF는 개도국들에게 ‘인기 없는 협상’으로 알려져 있다. APEC 정상회의에서 IPEF 협상 타결을 발표함으로써,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재관여하는 공식 통로를 확보하였음을 공표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당초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청정 에너지를 통한 탈탄소화 협력과 조세 회피를 포함한 반부패 조치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공급망 축(pillar)에 대한 기존 합의를 포함하여 세 분야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최대 관심 분야인 무역 축에서는 참가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과 환경 기준 강화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해 개도국들의 저항이 거세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역 관련 혜택이 제한적이라는 미국 테크기업들의 불만까지 더하면 합의안의 도출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신뢰하지만 검증한다(trust but verify)
미국은 앞으로도 이슈를 빠르게 선점하면서 중국을 때로는 압박하고, 때로는 협상의 장으로 불러내는 전략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대화 채널을 복원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하고, 협력 조건을 탐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 기반의 협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방식은 차선책인 셈이다. “시진핑 주석을 신뢰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신뢰하지만 검증한다’(trust but verify)라는 오랜 격언에 빗댄 바이든 대통령의 대답이 미중 관계의 현주소임을 시사한다.
한국의 대응은 미중 관계의 양면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의 토대 위에 수립되어야 한다. 미중 관계에서 변화하는 요소와 구조적으로 변화하기 어려운 요소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디리스킹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변화의 전기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나, 이번 정상회담은 성과와 앞으로의 도전과제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한국은 미중의 핵심 목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에 기초한 대응과 사안별 탄력적인 대응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첨단산업의 경쟁력과 같은 내부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미중 전략 경쟁에서 파생되는 리스크를 상시적으로 관리하며, 유사입장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첨단기술을 포함하여 미중 전략 경쟁의 영역에는 지구적 차원의 규칙과 규범이 확고하게 수립되지 않은 이슈가 다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현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사 입장국과의 협력을 통해 역할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높은 불확실성을 헤쳐나가야 하는 도전이 만만치 않지만, 현 시점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규칙 추종자에서 규칙 제정자로 변모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중 고위급 군사 대화와 소통
미중 정상회담은 위기 방지를 위한 고위급 군사회담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중국 측은 미중 관계가 상호존중과 평화공존, 그리고 협력상생의 3원칙에 기초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CEO 만찬 연설에서 미중 관계가 진영 대립이어서는 안되며, 신냉전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협력 관계 속에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유엔에 기초한 규칙 기반 질서를 강화하며, 보호주의를 극복하는 다자주의의 복원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중국의 경제발전이 국제사회에 큰 이익이 되며, 중국은 평화로운 경제 발전을 추구하며, 개방적인 현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사실상 중국 역시 미중 관계를 긴 경쟁으로 보고,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APEC에서 국제사회를 향한 중국의 발전 전략에 관해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APEC에서의 공식 담론 속에서 중국은 대립과 충돌을 경고하며, 공존과 공영을 이야기하지만, 미국 측이 규정하고 있는 경쟁이라는 단어는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중국이 경쟁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미중 관계가 사실상 경쟁 관계라는 것을 의식하고, 이를 관리하면서 발전의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양국 관계가 대립, 더 나아가 군사적 충돌로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공동 이익에 기초한 잠정적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협력 분야를 선별하고 협력의 기초를 놓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을 만들고, 오해를 방지하며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고 투명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주안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 양국은 고위급 대화를 지속하기로 약속하고 있고, 더 많은 협력 분야를 조심스럽게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핵 군비통제와 인공지능의 규제는 매우 중요한 미래의 이슈가 될 것이다. 중국이 급속도로 핵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현재, 미중 간의 핵 군축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미 11월 7일 차관보급 미중 군비통제 대화가 열렸고, 여기에서 핵안전 및 군비 통제 일반에 관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양국 간의 핵 군비 통제를 명확하게 언급하고 투명성 증진을 주된 이슈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일반적인(regular)” 군비 통제만을 언급하며 양국의 핵경쟁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 수준의 핵전력을 갖추기 전에 중국의 핵전력 발전을 제한하는 핵 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핵무기 운용 과정을 자동화하려는 인공지능 기반 핵전략에 관한 논의가 미중 간에 시작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핵무기의 명령, 통제 시스템이 자동화될 경우 예기치 못한 핵전쟁으로의 확전도 가능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대한 선제적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긍정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미중 핵 군비 통제 논의 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더불어 논의될 수 있을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접근과 한미일 안보 태세 강화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조차 부정하는 신냉전 담론을 적극 수용하여 이제 신냉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면서 한반도를 넘어 지구적으로 무기 수출과 확산의 정책을 통해 경제적,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국제 정세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북한의 신냉전 전략을 적절히 제한하고 비핵화의 목표를 재확인하는 한국의 주도적인 외교적 노력이 더욱 필요함을 보여준 계기라 하겠다. ■
참고문헌
Bai, Yunyi. 2023. “Wang-Sullivan talks last more than 12 hours; Taiwan question takes up longest time, Chinese FM official told GT.” Global Times. September 18. https://www.globaltimes.cn/page/202309/1298392.shtml (검색일: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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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23b. “Wang Yi Meets with U.S. Secretary of State Antony Blinken.” June 19. https://www.mfa.gov.cn/eng/zxxx_662805/202306/t20230619_11099852.html (검색일: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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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____. 2023. “Deputy Assistant to the President and Coordinator for Indo-Pacific Affairs Kurt Campbell and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East Asian and Pacific Affairs Daniel J. Kritenbrink On the Secretary’s Upcoming Travel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the United Kingdom.” Special Briefing. Office of the Spokesperson. June 14. https://www.state.gov/deputy-assistant-to-the-president-and-coordinator-for-indo-pacific-affairs-kurt-campbell-and-assistant-secretary-of-state-for-east-asian-and-pacific-affairs-daniel-j-kritenbrink-on-the-secretary/ (검색일: 2023.11.20).
■ 손 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김양규_EAI 수석연구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사.
■ 이동률_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이승주_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하영선_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담당 및 편집: 박지수,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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