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하승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북한 주민 접촉 규제 완화의 함의를 분석합니다. 하 교수에 의하면 기존의 “북한 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은 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전환하여 민간의 대북접촉을 제한했으나, 지난 7월 해당 지침이 폐지됨에 따라 민간 교류의 활성화, 학술연구활동의 긍정적 변화, 남북한 인식의 개선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저자는 남북교류협력법 제 9조의 ‘명백한 우려’ 조항 등이 상황논리 및 담당자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주민 접촉을 제한하고, 갈등과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상 거부 사유를 개관적인 요건으로 대체하고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

 

낮아진 접촉 문턱

 

대한민국 헌법은 통일을 국가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 대상은 북한 주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북한 주민을 만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사전에 신고해야 하는 절차가 존재한다. 이 절차는 1990년 8월 1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도입된 ‘북한주민접촉신고’ 제도로,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할 경우 사전에 통일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접촉‘에는 대면 회합 뿐 아니라 전화·이메일·온라인 메시지 등 비대면 방식까지 포함되며, 학술·문화·경제 교류 뿐 아니라 사적 만남까지 신고 대상으로 규정한다. [1]

 

2025년 7월 30일, 통일부는 이 제도의 실질적 운영 근거였던 ‘북한 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을 폐지했다. 이 지침은 접촉 대상자나 신청인의 성격을 이유로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세부 항목을 담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게 만들었고 민간 대북 접촉을 제한하는 관행을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를 국민 주권을 제약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판단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접촉이 상호 이해를 낳고, 상호 이해가 공존으로 이어진다"며 향후 정부에 따라 지침 폐지와 함께 신고제가 허가제로 운영되지 않도록 관련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2] 이는 접촉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책 전환이자 민간 교류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는 상징적 조치다.

 

이번 변화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학술·종교·문화예술·비영리 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율적 접촉이 가능해지면서 과거 승인절차에 막혔던 활동이 이제는 신고만으로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민간 차원에서의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남북 간 사회문화적 인식에 있어서도 변화를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접촉의 문턱이 낮아진 만큼 합법적 접촉 확대는 물적 교류, 민감 정보 공유, 정치적 발언 등의 사안에서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폐지는 허가제적 운영을 배제하고 신고제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지만, 동시에 ‘북한 주민’의 범위와 정의, 접촉의 경계에 대한 재검토라는 과제를 안긴다.

 

확장된 기회

 

‘북한 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 폐지는 남북 교류·협력 제도 운영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실질적 변화를 예고한다. 법률과 별도로 존재했던 지침은 모호한 표현과 자의적 해석으로 학술·언론·문화 교류를 제한해 왔지만, 폐지 이후에는 법률이 정한 요건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어 해석상의 경직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민간교류의 활성화다. 과거 해외 학술대회, 국제회의, 다자간 문화행사에서 남북 인사가 비공식적으로 마주치는 경우에도, 지침은 이를 사전 승인이나 사후 보고의 대상으로 삼았다. 앞으로는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접촉이 한층 유연해질 수 있다. 이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기에도 비정치적 교류의 통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학술·연구 활동에서도 긍정적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 관련 연구자들은 1차 자료 확보를 위해 해외 학계나 국제기구 주최 행사에 참여하거나, 조총련계 인사, 북한 인사와 직접 인터뷰를 시도해 왔으나 제도적 제약에 부딪혔다. 폐기 이후에는 법률 범위 안에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절차를 밟을 수 있어, 학문적 자유와 연구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언론과 NGO 활동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인권, 이산가족 상봉, 접경 지역 인도지원과 같이 현장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사안에서, 직접 증언과 기록 확보는 정책 설계와 국제 여론 형성에 필수적이다. 지침 폐지는 현장 취재와 자료 수집의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 국제 NGO와의 공동 프로젝트 추진에도 탄력을 줄 수 있다.

 

여전히 살아있는 ‘명백한 우려’

 

접촉의 자유 확대는 부작용도 수반한다. 제3국에서의 비공식 접촉은 정보 전달 통로로 악용될 수 있으며, 인도지원 분야에서는 접근과 모니터링이 제약되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검증 한계가 발생하고, 이는 곧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민간 네트워크가 비공식 권력화되거나, 특정 단체가 대북 정보와 인맥을 독점하는 구조가 심화될 수 있다. 인도주의 지원사업에서도 북측이 공식 채널보다 비공식 민간 경로를 선호하는 점을 악용하여, 민간단체가 대북지원사업으로 전달한 물품의 실제 전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사업 투명성이 훼손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불법 활동의 온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률 조항의 모호함으로 해석의 재량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침 폐지 이후에도 법률상 불명확성이 남아 있어, 명확한 판단 기준 부재가 행정기관의 소극적 판단이나 정치적 부담 회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는 여전히 ‘명백한 우려’라는 포괄적 문구를 승인 취소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특수한 경우라 하더라도 사실상 제한사항과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추상성은 모호성과 자의적 판단을 정당화하는 근거와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특히 북한 당국의 ‘적대적 두 국가론’ 채택 이후 나타난 대외전략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과거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국적과 신분을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했으나, 최근에는 한국 국적자까지 포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국방문단 구성 시 한국 국적자를 포함하거나, 재일동포 기념행사와 문화 예술 교류 프로그램에 한국 국적자를 초청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동향은 정치적 태도와 활동 성향을 기준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접촉의 판단 기준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북한 국적자 또는 조선적 여부가 핵심 판단 요소였으나, 이제는 국적에 관계없이 정치적 입장, 활동 이력, 소속 네트워크가 법 집행의 해석과 적용 범위를 결정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해석은 더 이상 명확한 경계 안에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다. 접촉신고 지침이 폐지된 상황에서 이러한 전략 변화는 판단 기준을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으며, 남북 교류의 안전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률 차원의 명확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동안 지침은 세부 항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폐지 이후 승인 취소에 대한 판단 권한은 여전히 행정당국에 있다. 정치·외교 상황이나 담당자의 해석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지침 존폐보다 중요한 것은 법률 기준의 구체화다. 접촉 자유화는 남북관계의 유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불명확한 기준 위에서의 확대는 새로운 갈등과 불신을 낳을 수 있다. 내부의 냉정한 재평가와 제도 재정비 없이는 같은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법률상 거부 사유를 구체화하여 모호한 표현을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요건으로 대체해야 한다. 접촉의 목적, 내용, 수단, 상대방의 실제 역할 등 판단 기준을 명문화함으로써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 제7항 제3호 및 제4호의 ‘명백한 우려’ 요건은 범위가 넓고 모호하여 행정기관의 자의적 해석과 집행, 정책 재량의 불필요한 확대, 실무자의 책임 회피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3] 따라서 ‘명백한 우려’라는 불확실한 표현은 수정 또는 삭제하고, 새로운 유형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보완 조항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북한 간 무력 충돌을 유발할 위험이 현존하는 경우, △접촉 대상자가 사법기관에 의해 간첩·공작원으로 지목되거나 법원 판결로 금지된 단체의 구성원일 경우 등으로 한정할 수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 학술 연구, 종교·문화 교류 등은 예외 조항을 신설해 민간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는가

 

신고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 인식 제고와 자발적인 신고를 유도하는 대국민 홍보도 필수적이다. 그동안 제도의 목적과 절차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사회적 신뢰 형성이 어려웠던 만큼, 법률의 일관된 적용과 집행, 그리고 명확한 절차 안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고제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국민 안전과 안보, 그리고 민간 교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장치임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

 

이번 ‘북한 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 폐지는 규제 완화인 동시에 제도 재정비의 기회다.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법률 구체화, 투명한 절차, 국민 홍보를 기반으로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남북 협력은 무조건적인 경계 해제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제도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접촉의 자유가 단기적 성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번 변화를 새로운 협력 질서와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변화가 안정적인 성과로 정착되면, 접촉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라 신뢰와 공존의 자산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의 문이 열린 지금,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왜 만나려 하는지에 대해 사회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References

 

김예슬, 「정동영 통일장관 '대북 민간접촉 전면 허용… 제한지침 폐지'」, 뉴스1, 2025. 7. 31, https://www.news1.kr/diplomacy/unikorea/5865009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https://www.law.go.kr

 

통일부 남북교류협력시스템, 「북한주민접촉 안내」, https://www.tongtong.go.kr

 


 

[1] 통일부 남북교류협력시스템, 「북한주민접촉 안내」, https://www.tongtong.go.kr

 

[2] 김예슬, 「정동영 통일장관 '대북 민간접촉 전면 허용… 제한지침 폐지'」, 뉴스1, 2025. 7. 31, https://www.news1.kr/diplomacy/unikorea/5865009

 

[3]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https://www.law.go.kr

 


 

저자: 하승희 _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담당 및 편집: 오인환_EAI 수석연구원; 정종혁_국립외교원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2) | ihoh@eai.or.kr
 

6대 프로젝트

문화와 정체성

북한 바로 읽기

세부사업

북한 바로 읽기(Global NK Zoom & Connect)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