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미국 시리즈] ④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으로 본 2024 미국 대선
ISBN 979-11-6617-784-2 95340
Ⅰ. 불확실성
2024년 미국 대선이 끝나고 우리는 어떤 미국을 바라보게 될까? 2024년 초반까지도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있지만 이것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대통령 선거 이후에나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변 없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현 대통령의 재대결이 성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 구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미국 시간으로 7월 21일 일요일 오후 바이든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은 대의를 위해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대신 그는 자신의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를 새로운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현 시점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후보 선출을 두고 민주당이 내홍을 겪을 조짐은 발견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내홍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 기간을 고려할 때, 그리고 바이든-해리스 팀이 모은 정치자금을 원활하게 이용하려면,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직을 승계하는 것이 민주당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해리스가 다양한 민주당의 분파를 아우르면서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을 가져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보여준 것처럼 민주당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주지하듯, 본인이 유색인종(인도계이자 흑인계)이며 여성인 해리스는 미국의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비춰지며 2020년 바이든의 백악관 입성을 도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해리스는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자신이 적극적으로 백인 노동자 층의 표를 공략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해리스는 유서 깊은 항만노동자들의 노동운동(e.g. the International Longshore and Warehouse Union)의 본거지이자 다양한 인종적인 정치의 동학이 작동하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베이 에리어(Bay Area) 출신이다. 이곳은 민주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그가 설득해야 할 보수적인 중서부, 그리고 남부 백인자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가설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민주당이 해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결정한다면, 조만간 당은 중서부나 남부 출신의 남성 정치인을 러닝 메이트로 선정하여 이 어려운 과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리스가 트럼프의 색깔(?) 공세를 이겨내고 중서부 경합주의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선거를 이길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따라서 향후 수 주 안에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내에 존재하는 회의론을 잠재우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대선 행보가 난항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바이든의 후보 사퇴 선언 시점보다 일주일 정도 전인 7월 13일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주 유세장에서 총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져 이 사건을 지켜보았다. 트럼프는 총격에서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으며 그가 총격 직후 보인 의연한 대처에 공화당원들은 더욱 트럼프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장에서 사살된 암살범의 의도가 알려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되는 분위기 속에서 트럼프의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갓 20살이 되었고 공화당원이며 다른 정치적인 메세지를 남기지 않은 암살범의 침묵이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트럼프는 자신을 신이 선택한 후보로 묘사하며 맹렬하게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본 원고의 서두에서 다루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포기 선언이 등장한 연유도 결국 서로 상관없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바이든이 6월 27일에 열린 첫 TV 토론회에서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은 어쩌면 이후 바이든의 성공적인 유세로 무마될 수 있을 에피소드에 불과하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실망스러운 모습이 공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와 그의 기적적인 생환이 중계되는 일이 없었다면 말이다. 이 같은 사건들의 연쇄 속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용퇴를 종용했고 캘리포니아 출신 해리스 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Ⅱ. 트럼프-바이든의 정치경제적 유산
1. 트럼프의 유산과 민주당의 변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은 더욱 예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을 상정하더라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투표일까지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거의 결과와 그 이후의 정책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유산을 살펴보아야 한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유산은 무엇이고 각각은 어떠한 방식으로 계승 혹은 단절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4년 전 바이든과 해리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지난 4년을 어떻게 회고하고 평가하고 있을까? 동시에 2020년의 패배에서 트럼프는 무엇을 배웠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번 선거에서는 어떤 전략을 보여 줄까?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당한 패배를 통해 민주당은 빠르게 변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을 비난하는 데 몰두하는 것으로 보였다.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워 중남미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통제하고자 한 시도나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의 인상을 요구한 일,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설립부터 깊이 관여한 국제기구들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며 다자주의 대신 미국 중심의 일국주의를 추구한 일 등을 거론하며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적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2016년 대선 패배와 그 이후 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하면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 정책의 정치적 효용에 대해서 재평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전의 민주당의 경제 정책 선호를 고려해 본다면 매우 급진적인 변화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6년 패배 이전 민주당은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주의, 시장 개방에 집중하고 정치적으로는 정체성의 정치에 매진하였다. 사실 빌 클린턴 정부의 탄생 이후 민주당은 거의 십수 년 동안 백인 유권자들에게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자유무역이 소비자 전체에게 가져다줄 이익에 비해서는 참을 만한 고통이고,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강변해 왔다. 동시에 민주당은 그 동안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이 비숙련 저임금 직종을 노리고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 행렬을 보고 느끼는 불안감과 이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을 모두 인종주의적 혐의를 갖는, 못 배운(uneducated) 반응이라 치부하였고 공적인 장소에서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정한 문제는 이 같은 민주당의 정책 입장이 실제로 경제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백인 유권자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저임금 노동시장은 점차 값싼 불법 이민자들로 채워지게 되고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점차 열악해지는 이유를 불법 이민자들의 무분별한 유입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지었다. 이렇게 백인 노동자 계층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불만을 방기한 민주당이 2016년 대선의 패배 이후로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이다(Teixeira and Judis 2023, chapters 2 and 7).
특히 민주당은 일견 비이성적이고 포퓰리즘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의 내용과 그 효과에 대해서 면밀히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Lighthizer 2023, chapter 1).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역대표부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외국 제품에 대해서 관세를 늘리고 한국 가전제품 생산 업체들을 포함한 외국 기업들이 덤핑이나 국가 보조금 제도를 이용하여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불공정 관행이라 규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하였다(Lighthizer 2023, chapter 1). 라이트하이저는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 결과 미국의 대외 경제 의존도를 완화시키고 무역 적자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Lighthizer 2023, chapter 4). 이는 공화당 주류 세력의 밖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좋은 기회로 작용했는데, 공화당 내부의 한 세력으로 존재하는 자유무역주의자들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국 연방정부가 안보와 국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할 새로운 명분과 수단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다른 무역 상대국과의 불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제조업 종사자인 블루칼라 유권자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하이저는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2020년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이러한 트럼프 정책의 성과에 주목하고 이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고 주장하였다(Lighthizer 2023, Introduction). 구체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목적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하는 것에 적극적이었으며 트럼프 행정부 때 도입된 대중국 무역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오랫동안 역임한 라이트하이저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평가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유산이 차기 정부에 상당 부분 계승되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같은 평가는 전반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이는 2021년 6월 23일 백악관 직속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NEC) 위원장이 발표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1] 그 중에서 첫 번째 의제인 글로벌 공급망 복원(Supply Chain Resilience)의 내용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미국 제조업을 재육성하고 중국 기업을 포함한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미국 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첨단기술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벤치마킹했다는 서술과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이렇게 발표한 정책 기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의 성격을 띠는 관세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2018년 10월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ouncil: NSTC)에서 발표한 “미국 첨단 제조업 리더십 확보 전략(Strategy for American Leadership in Advanced Manufacturing)” 보고서를 통해 산업정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첨단 산업 육성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이 보고서가 정부 예산 계획을 포함한 정책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NSTC 2022). 2020년 선거에서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결코 미국 제조업 분야를 대상으로 한 산업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2] 트럼프의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이어받아 어떤 종류의 산업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지는 오로지 바이든 행정부에 맡겨진 과업이었다.
2. 바이든의 산업정책과 정치적 유산
그 후 1년 뒤인 2022년 8월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였고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함으로써 발효되었다. 앞서 미국 국가경제위원회가 제시한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 두 법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3]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산업정책으로서 두 법안이 지닌 함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두 법안에 근거하여 반도체 산업, 배터리 산업, 그리고 전기차 산업 등을 포함한 첨단 제조업 산업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규제력을 행사할 것이다. 외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얻는 대가로 미국에 생산설비를 갖추고 고용을 창출해야 하며 핵심광물과 같은 민감한 재료를 생산에 이용하는 경우에는 미국 정부가 선정한 우려 집단(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으로부터 획득한 원료가 일정 비율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생산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만약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할 경우 해당 기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공제 등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으며 이는 곧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024년 11월의 선거일까지 3개월 남짓 남은 현 시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질문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행한 산업정책이 어떠한 정치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이다. 먼저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이 미국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 살펴보자. 바이든의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바이든의 산업정책이 곧바로 호재로 작용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두 가지 법안이 실효성을 거두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수 년의 시간이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법안 중 반도체와 과학법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점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반도체와 과학법에서 반도체 제조 산업에 직, 간접적으로 지원될 390억 달러의 예산 중에서 2024년 5월을 기준으로 전체 예산의 77% 정도가 용처가 정해진 후 투자되는 중이며 나머지 23%의 기금은 지금 시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업에 순차적으로 투자되고 있다.[4] 이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미국 반도체 생산 업체에 자금이 투여되어 당장의 고용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 법이 유권자들의 선호에 두루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해당 법이 당장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대중들이 깊게 생각하고 이 법안의 긍정적인 효과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면, 2024년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에게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편,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효과는 보다 복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오래 전부터 해당 법안이 부당하며 인플레이션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전기차 구매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세액 공제의 형태로 지원되는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7월 15일에 블룸버그 통신과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러한 주장을 이어가며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그린 에너지 지원 정책이 실상은 산업 발전에 기초가 되는 에너지의 공급 가격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Bloomberg 2024-07-15). 이러한 주장이 2024년 11월 5일 선거일까지 유권자들에게 얼마만큼 설득력을 지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펼친 산업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유권자들은 높은 금리와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진영은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과 구별되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할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만을 문제 삼으며 선거를 우세하게 이끌 수 있으리라 본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지원 대상인 녹색 에너지 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인터뷰한 폴리티코(Politico)의 2024년 7월 18일 기사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가 바이든 정부의 수혜를 많이 받은 일터에서 근무하지만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 때문에 체감되는 경제 지표는 매우 부정적이어서 현 정부를 지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폴리티코의 기사처럼 이러한 상황이 4년 전 바이든을 지지했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정서일지도 모른다(Bade and Hill 2024).
Ⅲ. 2024년 대선 이후 산업정책의 향방과 우리의 자세
본 원고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동향을 소개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는 시기 동안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정책들이 어떤 정치적 유산을 낳았으며 이것이 2024년 11월 선거일에 어떻게 작동할지를 예측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앞서 서술된 많은 단락들이 그러하듯이 많은 부분이 안타깝게도 명확하게 분석되지 못한 채 조심스러운 추정 정도로만 서술되어 있다. 이는 이번 선거가 유독 많은 변수들을 경험하며 급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민주당이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내세울 경우에는 그녀가 비백인 여성인 점을 고려하여 민주당은 보수적인 부통령 후보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구성된 민주당의 대선 후보팀이 기존 바이든-해리스 팀의 정책 강령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산업정책의 실험들을 대거 수용하는 방식으로 선거 캠페인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민주당이 2024년 대선에서 다시 승리를 거둔다면, 빌 클린턴의 당선 이후 정착한 자유무역주의 노선과 금융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노선이 민주당 내에서 종말을 고하고, 대신 트럼프의 경제적 민족주의를 일부 수용한 보수적 산업정책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일찌감치 J. D. 밴스(Vance)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하며 선거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트럼프의 경제정책 공략은 복잡할 것이 없이 현 정부의 고금리, 고물가 정책을 비난하는 것에 집중하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에 보여준 산업 정책적인 유산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 강화, 그리고 동맹국을 상대로 미국이 부당하게 부담했던 여러 가지 특혜를 철회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어떤 방식을 통해서 그러한 정책을 실현할 것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다. 트럼프의 리더십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우며 의회를 통한 입법의 정치는 양극화의 추세 속에서 결코 트럼프가 넘기 어려운 장애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이 되든,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는 차기 행정부에 상당 부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전 산업정책이 변화 없이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거시경제의 지표 및 다른 돌발적인 상황에 맞춰 여러 부분이 수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칙적으로 상, 하원의 동의를 거쳐 법으로서 제도화된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은 지속성을 갖고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대통령 선거와 함께 진행되는 상,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백악관은 물론 양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은 현재 극히 낮아 보인다. 만약 하나의 원이라도 민주당에 내주는 경우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다고 해도 행정부는 관련 법안을 일방적으로 수정하거나 폐기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입법의 정치를 통해서 산업정책을 정착시켰다는 점은 정치 양극화의 시대 속에서 쉽게 성취할 수 없는 정책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행정부는 바이든의 정책 유산의 집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며 결국 해당 정책이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 실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부처는 행정부이므로 행정부는 집행의 단계에서 재정 지원 시점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그리고 계획보다 재정 지원량을 줄여 정책의 온전한 실행을 방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정책의 지연 및 실패에 대한 책임을 두고 법적인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행정부 입장에서도 막무가내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정리하면, 미국 시장에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기업들은 기존 반도체와 과학법, 그리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응하는 전략을 유지한 채 새로운 정부의 등장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행정부는 여러 조건에서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제도 변화에 나설 가능이 크다. 대한민국의 이해관계자들은 바로 이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날 법령, 그리고 그 수정된 법령의 적용 방식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Arcuri, Gregory. 2024. “Innovation Lightbulb: What's Left of the CHIPS Act Fund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Newsletter. May 8. https://www.csis.org/analysis/innovation-lightbulb-whats-left-chips-act-funds (검색일: 2024년 7월 24일)
Atlantic Council. 2021. “The Biden White House plan for a new US industrial policy.” June 23, https://www.atlanticcouncil.org/commentary/transcript/the-biden-white-house-plan-for-a-new-us-industrial-policy/ (검색일: 2024년 7월 24일)
Bade, Gavin, and Meredith Lee Hill. 2024. “Biden has poured billions into Rust Belt economies. His ‘Blue Wall’ is crumbling anyway.” Politico. July 18. https://www.politico.com/news/2024/07/18/wisconsin-democrats-biden-midwest-elections-green-00167994 (검색일: 2024년 7월 24일)
Bloomberg. 2024. “The Donald Trump Interview Transcript.” July 15. https://www.bloomberg.com/features/2024-trump-interview-transcript/?embedded-checkout=true (검색일: 2024년 7월 24일)
Information Technology and Innovation Foundation: ITIF. 2020. “Trump vs. Biden: comparing the Candidates’ Positions on Technology and Innovation.” September. https://www2.itif.org/2020-trump-v-biden.pdf (검색일: 2024년 7월 24일)
Lighthizer, Robert. 2023. No Trade is Free: Changing Course, Taking on China, and Helping America's Workers. New York: HarperCollins.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ouncil: NSTC. 2022. “National Strategy for Advanced Manufacturing.” October. 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22/10/National-Strategy-for-Advanced-Manufacturing-10072022.pdf (검색일: 2024년 7월 24일)
Teixeira, Ruy, and John B. Judis. 2023. Where Have All the Democrats Gone?: The Soul of the Party in the Age of Extremes.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1]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 기조는 다음의 다섯 가지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1) Supply Chain Resilience; 2) Targeted Public Investment; 3) Public Procurement; 4) Climate Resilience; 5) Equity. (Atlantic Council 2021-06-23)
[2] 이는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 ITIF)에서 2020년 9월에 발간한 양당 대선 후보의 기술 정책을 비교한 자료집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ITIF 2020) 특히 해당 전자문서의 23페이지를 참조할 것.
[3] 두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또한, 법안의 세부 내용이 한국 기업들에 미칠 영향에 대한 법적 자문 및 경영 자문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글도 이미 많이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두 법안에 대한 구체적 소개를 생략할 것이다.
[4] 2024년 5월에 발간한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es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의 소식지에 따르면, 관련 법에서 할당한 예산의 23%만이 미사용으로 남아 있다(Arcuri 2024). 한편, 미국 상무부의 부속기관인 미국기술표준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NIST)에서는 반도체와 과학법의 지원을 받는 사업들을 계속해서 업데이트 하고 있다(https://www.nist.gov/).
■ 정영우_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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