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워킹페이퍼] 2022 EAI 신정부 외교정책 제언 시리즈 ⑨_ 글로벌 팬데믹과 신협력외교
ISBN 979-11-6617-229-8 95340
[편집자 주]
본 워킹페이퍼에서 김태균 서울대학교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한 코로나19 문제가 단순한 보건 위기를 넘어 식량, 기후환경 등 보다 넓은 범위에서의 위기를 야기하며 신흥안보이슈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글로벌 거버넌스는 미중 양국간 전략 경쟁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후 글로벌 질서와 대응은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한국의 협력외교 위치를 재설정해야 하며, 다양한 이슈영역을 서로 연계하는 통합적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동맹, 지역협력 그리고 다자협력의 전략적인 연계가 중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신협력 외교 3대 정책과제
1. 심화하고 있는 미중의 전략경쟁 구조에서 선택을 강요받기 전에 한국은 스스로 글로벌 규범의 충실한 이행 주체이자 중도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임을 강조하여야 한다. 미중 간 선택에 있어서 팬데믹 시대에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파트너로서 미국 또는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규범적 타당성을 강조하여 글로벌 규범에 따라 글로벌 문제를 해결한다는 한국의 적극적인 위치 설정 전략이 필요하다.
2. 정부는 글로벌 수준에서 한국의 위치를 재설정함에 있어 내부적으로 통합된 방식의 협력외교를 준비해야 한다. 현재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정책수준 및 이행수준의 개발협력 추진체계를 통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이슈영역 간의 연계 및 통합에도 필요하다. 팬데믹 시대의 보건위기는 기후, 식량, 개발 등 다양한 협력외교의 이슈들과 연계되기 때문에, 단순히 보건협력만을 기획하는 것보다 보건과 연계될 수 있는 다양한 이슈영역을 거시적인 프레임 안에 연계하는 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3. 정부는 동맹, 지역협력, 다자협력을 개별 수준에서 독립적인 운영기제로 대응하기보다 상호 인터페이스를 강화해야 한다. 한미간 합의한 신흥안보 협력방안은 동아시아 지역 수준에서의 협력외교와, 그리고 글로벌 수준에서의 다자협력과 체계적으로 연결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하에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I. 서론: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협력외교 대응과제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히 글로벌 수준의 보건위기에 그치지 않고, 식량위기·기후환경위기 등 복합적인 위기국면으로 전환되고 이는 곧 국제질서의 변화와 힘의 균형을 움직이는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이슈로 확장되고 있다. 차기 정부는 팬데믹이 해결되지 않은 국제정치질서의 재편 과정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글로벌 신흥안보 이슈인 팬데믹에서의 협력외교에 대한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위기에서 시작된 글로벌 위기에 현재 작동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팬데믹 기간이 지속될수록 새로운 방식의 글로벌 협력체제가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중 전략경쟁이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대일로 중심의 중국형 협력체제와 G-7 중심의 미국이 제안한 이른바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 B3W)’ 협력체제가 대립하는 형국이다. 특히, 글로벌 남반구(Global South)로 통칭되는 저개발국가들과의 보건, 인프라 등 개발협력 이슈로 연결되는 협력외교가 미중에 따라 그 기본방향과 접근법이 다르게 구현되고 있어 이러한 갈등구조 속에 한국이 어떠한 전략적 입장을 선택하는가가 차기정부의 현안이 될 것이다.
팬데믹 위기가 당분간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향후 차기정부가 글로벌 무대에서 도모해야 할 협력외교의 새로운 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하여 제안하고자 한다. 글로벌 팬데믹 시대에 한국 협력외교의 새로운 위치 설정, 지금까지의 분절적 정책이행 구조에서 이슈연계를 위한 통합화로 전환, 그리고 한국의 글로벌 협력에 포괄적 관여를 위하여 동맹-지역협력-다자협력의 인터페이스 강화가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을 제안하기 위하여 코로나 팬데믹 현상과 신흥안보의 대두로 대표되는 글로벌 환경의 변화를 검토하고,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협력외교의 문제를 차기정부의 신협력외교 구상과 제언에 필요한 제반 조건으로 분석한다.
II. 코로나 팬데믹 현상과 신흥안보의 대두
1. 팬데믹 창발과 각자도생의 외교
코로나 팬데믹의 창발로 2020년 초부터 전 세계는 새로운 뉴노멀의 국제정치질서로 빠르게 진입하였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COVID-19) 신종감염병이 빠른 속도로 아시아, 유럽, 미국으로 확산되면서 WHO가 공식적으로 2020년 3월 11일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으로 선언하게 되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저개발국 및 선진국까지 예외 없이 전방위로 팬데믹과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 수준에서의 코로나 팬데믹은 기존의 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 국가보다 국정관리에 있어 우월한 체제라는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미국, EU, 일본 등 민주주의 대표 선진국 대부분이 코로나19의 홍역을 치르는 반면, 중국, 싱가포르 등 권위주의 국가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공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팬데믹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은 결국 정치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감염병 피해의 경험이 있는가에 대한 변수가 코로나 팬데믹 대응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되면,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국제사회의 다자협력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국제공조가 붕괴되고 개별 국가가 자국 국민보호 차원에서 각자도생의 전략을 택하는 현상과 연결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 LIO)로 구현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문명기준이 팬데믹으로 인하여 자유질서와 시장주의가 쇠퇴하고 국민국가가 부활하는 국가주의의 ‘성곽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코로나19 문제를 초기부터 대응하지 못한 WHO가 중국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WHO를 탈퇴한 트럼프 행정부를 비롯하여 글로벌 북반구의 선진국들의 각자도생 전략은 다자협력을 근간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일제히 멈추게 되는 역효과를 낳았다.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후퇴는 국제질서의 공백으로 이어지게 되어 새로이 등장한 바이든 행정부의 LIO 복원 노력은 중국 주도의 포스트-팬데믹 세계질서와 문명기준과 경합하게 될 전망이다. 앞으로 다자기구를 통한 다자협력외교의 행보는 단순히 미중 간의 전략경쟁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팬데믹으로 인해 동시다발적으로 창발되는 글로벌 수준의 복합적 신흥안보에 의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팬데믹 현상을 이른바 ‘신데믹’(Syndemic)으로 새롭게 표현할 정도로 팬데믹이 보건위기에 국한되지 않고 복합적인 신흥안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의 보건이슈는 동물 및 생태계의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하에 지역, 국가, 세계적 차원에서 모두의 보건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다분야에서 협력해야 하는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요구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 ‘인류세’(Anthropocene)의 개념도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단지 보건안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안보·식량안보·개발안보 등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와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재생산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복합적 신흥안보의 등장은 코로나19 이전의 신흥안보 영역을 더욱 복합적인 공간으로 확장시킨 효과를 유도하였고, 이에 따라 공생을 위한 협력외교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편도 복합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2. 팬데믹 시대의 미중 전략경쟁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
2021년 1월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미국 정치의 전환되는 변수로 인해 다자주의 협력이 재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WHO의 중국편향성을 비판하며 회원국 지위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기후환경레짐인 COP21에서도 탈퇴를 하였는데 반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COP21 회원국 지위 복귀와 WHO 재가입을 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과 협력국에 ‘미국이 돌아왔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2021년 6월 영국 콘월(Cornwall)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한국, 인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초대해서 미국 중심의 팬데믹 이후 자유민주주의 중심으로 국제정치질서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편을 예고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와 결별하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 회복과 동맹 복원을 추진하는 동시에, 백신외교에 있어서도 자국 백신수급을 넘어 동맹국과 저개발국들에게도 미국의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은 팬데믹 이후 국제질서를 기존 LIO 중심으로 복원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의도와 함께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1) 미국의 신협력외교
미국의 경우, 이번 G7 정상회의 결과에서 보다 명확하게 포스트-코로나 팬데믹의 국제관계 질서와 중국과의 전략경쟁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하기 위한 대규모 글로벌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이에 대한 주요 7개국 회원국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에 맞서 대중 강경정책을 밀어붙여 온 미국이 G7을 통해 중국의 대규모 대외경제협력 구상인 일대일로를 겨냥해 서구 동맹국들의 결집을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G7 회원국들은 정상회의를 통해 B3W계획으로 불리는 글로벌 인프라 프로젝트에 합의했는데,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이었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에서 따온 명칭이다. 글로벌 북반구 선진국들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대안을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민간업체들의 개발금융 방식 등으로 추진되는 B3W의 규모는 수천 억 달러에 이를 전망으로 제2차 세계개던 후 유럽 재건을 위해 미국이 진행했던 마셜플랜의 규모를 크게 넘어서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B3W를 통한 미국의 대중국 전략경쟁은 G7 국가들이 민주주의 부국들이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치경쟁과도 연계된다. 이번 콘월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하였듯이, 이는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라는 거시적인 문명의 기준과도 연결되며 대중국 전선을 확대하면서 팬데믹 이후 시대의 미국주도의 질서재편과 함께 팬데믹 현상을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규범적 가치를 민주주의 복원에 집중하는 효과를 낳는다. 미국과 전세계 많은 파트너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오랫동안 회의적이었으며 중국정부는 투명성 부족과 빈약한 환경, 노동기준, 그리고 많은 나라를 더 열악하게 만드는 접근법을 취했다라는 비판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이는 갑자기 새롭게 구상된 전략이라기보다 쿼드(Quad) 전략을 통해 인도, 일본, 호주와 같이 대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 태평양 협력과 지속성을 가지며, 특히 팬데믹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쿼드 내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최근 팬데믹 이후에 급속도로 가까워진 EU의 인도에 대한 인프라 개발협력 지원의 확장, 그리고 중국의 반인권 인사 8명에 대한 제재를 EU가 2021년 5월 결정하는 등 중국부상에 대한 견제와 미국의 대중정책과 정합성을 제고하는 경향을 목도할 수 있다.
2) 중국의 신협력외교
한편,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재검하고 새롭게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맞게 최신화하는 구상을 시현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이른바 ‘신(新)실크로드 전략’으로 불리는 글로벌 경제협력 구상으로, 중국 서쪽으로 내륙과 해상을 각각 잇는 경제벨트를 구축해 주변 국가들과의 경제, 무역 협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돼 현재 아프리카와 유럽, 동남아 등지의 100여개 국가가 2600건에 이르는 철도와 항구, 고속도로 등의 인프라 구축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3,300억 달러가 투자된 것으로 추산되는 반면, 개도국의 부채규모는 약 3,8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이 제공하는 자금의 융자금리가 높아서 시행국가에 심각한 부채문제가 발생하여 부채함정에 빠지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항구의 운영권 등을 중국에 양도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였는데, 파키스탄은 과다르항 운영권을 43년 간, 그리스는 피레우스항을 35년 간, 스리랑카는 함반토타항을 99년 간 운영권을 중국에 이양하였고, 지부티에는 중국의 해외 군사기지가 건설되었다.
이러한 부채문제를 해결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한 외부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중국은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2019년 4월 북경에서 개최하여 일대일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인 ‘일대일로 2.0’을 제안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사업으로 개선할 것을 천명하고 일대일로 참여국과의 부채협상 과정에서 채무국의 입장을 상당부분 수용하는 포용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국경이 봉쇄되고 인적, 물적 교류가 중단되었으며 사업시행국의 경제가 침체하여 일대일로 사업의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일대일로 사업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디지털실크로드와 보건실크로드의 구축을 가속화하고 공격적인 백신외교를 통해 일대일로 참여국에게 백신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자국 내 팬데믹 사태 해결에 집중함으로써 글로벌 거버넌스의 보건협력 공백현상이 발생하는 틈을 활용하여 중국은 코로나 방역과정에서 축적한 임상 데이터와 방역경험, 그리고 막대한 의료 물품을 개도국에 공급하며 코로나 방역을 주도하는 책임 있는 대국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노력 중이다.
3)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
팬데믹 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미중 간의 전략경쟁의 산물로 전략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농후하다. 글로벌 남반구의 맹주국가로 중국은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을 일대일로의 개편을 통해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은 G7을 통해 글로벌 북반구의 민주주의 복원 및 세계질서를 다시 미국 중심의 LIO로 회귀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보건실크로드 및 디지털실크로드에 맞서 B3W가 환경 및 반부패, 자유로운 정보의 유입과 소통 등 복합적인 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협력외교의 플랫폼으로 강조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과도한 부채를 지거나 중국의 압박과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 상황과 대비시켜 이에 대한 대안으로 B3W를 제시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은 투명한 인프라 파트너십을 통해 2035년까지 개도국들이 격차를 줄이는데 필요한 40조 달러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3W 이니셔티브에 투입된 대규모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추진계획이 구체화될 지는 미지수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의 글로벌 질서와 대응은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가 된다는 구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와 중국 중심의 전체주의가 충돌하는 가운데 포스트-팬데믹 시대 문명기준 간의 충돌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팬데믹 사태에 국제사회가 통합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분절적 상태에서 갈등과 협력이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로 대응 시스템이 구조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신외교와 백신민족주의로 표방되는 자국 중심의 백신 공급망 독점 경쟁이 미중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다자외교 무대에서 이해관계 국가 간의 정책이 절충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다자이슈를 다자외교 공간으로 다시 복원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며, 다자협력 질서를 새롭게 판을 짜는 데 미중 간의 경쟁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WHO 등 기존 전통적인 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함으로써, G-7 내지 D-10과 같은 소수의 선진국들이 모인 클럽외교가 포스트-코로나 위기 국면에 대한 협력외교의 해법을 제시하거나 글로벌 거버넌스를 대표한다는 문제가 있다. 인태전략 등 4개국의 협력 플랫폼, 미국의 기존 블루닷 네트워크(Blue Dot Network), G7의 B3W 등 유엔과 같이 전 세계 국가들을 대표하는 정통성이 떨어지는 소수 국가들의 협의체가 가지는 한계는 클럽 멤버가 아닌 국가들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으며, 핵심층에 포함되지 않은 개도국 및 중국과 같은 국가들에게 대응기제를 국제사회가 아닌 일부 국가들이 주도하는 또 다른 소다자 협의체 방식으로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전통적인 다자협력기구(UN, World Bank, WTO 등)의 정통성(legitimacy)과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개혁과정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제는 팬데믹 시대에 발생하는 복합적인 글로벌 위기에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 문제이다.
3. 신흥안보의 출현과 신협력외교의 필요성
앞서 강조하였듯이,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 온 문제의 이슈영역은 복합적이다. 미시적 수준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개개인의 건강과 보건 문제로 취급하여 적절한 방역정책과 의료 서비스 제공으로 해결될 것이라 접근할 수 있지만, 중범위 수준에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지역사회와 국가 전체의 보건문제로 확장되고 더 나아가 단순히 보건문제가 아닌 사회문제, 실업문제, 경제문제로 단숨에 확산된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개인과 국내의 보건문제가 양적으로 확장됨을 반복하면 질적인 변화의 임계점에 달하게 되고 이는 국가의 범주를 넘어서 국가안보와 국제사회 공동의 문제로 확산되어 그 파괴력과 위험도는 글로벌 수준으로 상승하게 된다. 신흥안보로 보는 코로나19 사태는 이미 보건안보의 임계점을 넘어섰고 주변의 다른 안보 이슈와 연계되어 계속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복잡계의 위기로 보아야 한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는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을 타고서 창발하여 거시적 차원에서 국가적 생존을 거론할 정도의 위중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구테레즈 UN 사무총장이 예견하고 있듯이, 코로나19로 발생한 보건안보(health security)의 위기가 식량안보(food security)의 위기로, 식량안보의 위기가 다시 기후안보(climate security)의 위기로,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개발안보(development security) 위기라는 총체적인 글로벌 위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2020년 동안 팬데믹으로 확장된 코로나19 사태는 위험의 수위가 다른 이슈와 연계될 정도로 그 임계점이 이미 넘어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구테레즈 사무총장은 더 이상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라 “COVID-19 global food emergency”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더 이상 보건안보, 식량안보, 기후환경안보, 개발안보가 각각 개별적인 이슈영역으로 취급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복합적인 현상으로 다양한 이슈가 연계된 하나의 위기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다차원적인 안보 위기는 일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다자협력이 필요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보건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이며 복합적인 글로벌 위기의 문제에 국제사회가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팬데믹으로 발생한 복합위기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대응전략도 적절하게 변화가 필요하며, 개별 이슈 대응이라는 분절적 구조가 아니라 복합위기에 맞는 통합적 관리방식과 이슈연계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팬데믹 대응구도는 미국의 B3W 대 중국의 일대일로로 수렴되는 강대강의 대립구조라는 점에서, 통합적인 글로벌 거버넌스의 체제가 구축되기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글로벌 거버넌스를 이끌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유엔은 재정구조의 문제를 비롯하여 실질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인도하고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글로벌 수준에서 미중 전략경쟁을 중재하고 이를 규합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이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신협력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III. 한국의 신협력외교 현안
1. 한국 신협력외교의 이정표: 한미정상회담 결과 분석
한국정부가 2021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간에 합의한 내용은 현 정부의 마지막 1년뿐만 아니라 차기정부의 향후 5년 내내 한국이 추진해야 할 신협력외교의 근간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앞으로 한국이 팬데믹 시대에 신흥안보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신협력외교의 이정표로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팬데믹 이후 신흥안보에 대한 한미 간의 신협력외교 이슈영역과 협력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한반도를 넘어서 한미 협력외교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되고 두 동맹국의 공동 가치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연계하고, 한미 양국은 아세안 중심성과 아세안 주도 지역 구조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아세안 지역의 신협력외교는 복합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법 집행, 사이버안보, 공중보건, 녹색회복 증진, 디지털 혁신, 메콩지역의 지속가능한 개발, 수자원관리, 에너지 안보, 미얀마로의 무기판매 금지 등 다양한 이슈영역이 연계되어 있으며,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이 공유되었다.
둘째,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포괄적 협력’이라는 모토 하에,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국제사회의 도전과제로 기후환경, 글로벌 보건, 5G 및 6G 기술과 반도체를 포함한 신흥기술, 공급망 회복력, 이주 및 개발, 인적교류 등 양국 간의 새로운 유대를 위한 파트너십 강화의 필요성을 공유하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관련 글로벌 보건 도전과제가 강조되었고, 상호 국제 백신 협력 강화를 통해 신종감염병 공동대응 역량 강화와 포괄적인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WHO의 역할 강화를 지원하고 코백스(COVAX) 및 감염병혁신엽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 CEPI)과의 조율 등을 포함하여 전 세계 국가들에게 코로나 백신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셋째, 한미 양국은 WHO의 보건위기에 대한 조기의 효과적인 예방진단대응을 통한 팬데믹 방지 능력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진작하며,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WHO의 개혁에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 내 전염병 대유행 준비태세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든 국가가 전염병 예방진단대응 역량을 구축할 수 있도록 다자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글로벌보건안보구상 선도그룹(Global Health Security Agenda: GHSA) 및 행동계획워킹그룹(Action Package Working Groups)에 대한 관여를 확대하고 2021년-2025년 동안 GHSA에 2억 달러 지원을 공약하였다. 또한 양국은 새로운 보건안보 재원마련을 위한 메커니즘을 창설하기 위하여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들과 협력할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한국은 향후 세 가지 정도의 신협력외교 방향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팬데믹 시대의 신흥안보는 개별 이슈영역에서의 협력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특징을 반영해야 한다. 둘째, WHO 개혁 등 유엔의 글로벌 거버넌스 개선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셋째, 신흥안보와 이를 위한 신협력외교는 단지 국제사회의 이슈인 동시에 인도-태평양과 같은 지역 다자주의에 적극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된다.
2. 팬데믹 대응의 명과 암: 공공외교로서의 K-방역
결론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다자외교 무대에서 한국에게 새로운 위기와 기회라는 복합적인 공간이 열리게 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경우 K-방역으로 국제사회에 성공적인 방역사례로 회자되기도 했지만, 백신 수급 문제로 인해 K-방역의 성과가 퇴색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현재는 초기의 방역단계를 넘어 백신수급으로 팬데믹 대응방식이 전환되고 있지만, 한국은 대외적으로 계속해서 백신의 글로벌 공공재화를 주창해 왔으며 코백스 체제가 출범한 2020년 6월부터 백신공급의 다자협력을 옹호하였고 호주와 같은 방역의 성공사례인 중견국과의 협력을 논의해 왔다. 백신민족주의로 표방되는 현재의 보건안보 위기의 거버넌스 문제를 한국이 적극적인 다자협력외교를 통해 차기 정부가 한국의 국격을 제고하고 기존 LIO가 다시 안착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적절하게 조율될 수 있는 역할을 전략화하는 것이 중요한 외교정책이 될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방역 경험이 앞으로 신협력외교에 중요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은 지나치게 한국 방역시스템의 성공사례를 ‘K-’라는 수식어를 통해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한국적인 경험이 다른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하며, 모든 것을 한국적인 성과로 해석하고 홍보하는 방식은 바람직한 공공외교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또한 K-방역이라는 개념은 다른 이슈영역으로 연계될 수 있는 확장성을 낮추는 효과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롭게 등장하는 복합신흥안보에 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신협력외교의 접근법으로 적절치 않다. 차후 한국의 방역 성과를 홍보하고 전략화하며 다른 이슈들과 적극적인 연계를 위해 한국적 사고에 배태된 개념화 작업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신협력외교 문제
미중 간의 경쟁구도가 양 진영으로 나뉘어 세력 장 안으로 다른 국가들이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지대의 진공상태로 이어지는 영역을 누가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중심의 B3W 전략과 중국 중심의 일대일로의 경쟁관계에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선택이 어떻게 전략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한국은 봉착할 것이며,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ODA 등 개발협력 정책이 어떠한 전략으로 미중 간의 전략경쟁 구도에서 생존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여 한국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지속될 예정이다. 한국은 이미 중국과 일대일로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으며, 동시에 이번 G7 회의에 참석하여 B3W 전략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중 전략경쟁은 더 이상 전통적인 외교정책 수준의 선택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개발협력을 비롯한 신흥안보 이슈에 있어서도 일정 정도 노선을 설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되는 숙제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미국 중심의 글로벌 북반구 선진국 그룹과 중국 중심의 글로벌 남반구 개도국 그룹 간에 벌어지는 간극과 불평등 문제는 팬데믹 이후 시대에 더욱 첨예한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안보를 대응하는 방식과 가치의 차이로 발생하는 두 그룹 간에 한국의 위치선정에 대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고 이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이러한 중간지대에 한국과 같은 방역에 성공한 중견국가들의 연합체가 새로운 소다자협력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4. 협력외교의 분절화 문제
지금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협력외교는 국제개발협력 정책과 사업으로 압축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개발협력 정책에는 다양한 이슈들이 포함되는데, 대표적으로 기후환경 이슈, 보건의료 이슈, 평화유지활동 이슈, 공공외교 이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양한 이슈영역으로 구성되는 국제개발협력 정책은 아직까지 상호 이슈영역 간에 유기적으로 통합되거나 하나의 프레임으로 사업화되지 못하여 지속적인 분절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협력외교의 분절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 개발협력의 방식에 따른 분절화의 문제이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르면, 양자원조 중 무상원조 및 다자원조 중 유엔기관의 기여금은 외교부가 주무기관이며, 외교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가 시행기관으로 되어 있다. 한편, 양자원조 중 양허성 차관인 유상원조 및 다자원조 중 다자개발은행의 기여금은 기획재정부가 주무기관이고, 기재부 산하의 수출입은행 대외개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이 시행기관이다. 무상원조 대 유상원조, 유엔기여금 대 다자개발은행 기여금 간의 분절화 문제는 2010년 한국이 OECD 개발원조위원회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에 가입했을 이후부터 줄곧 거론되어 온 고질적인 이슈였다. 분절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동원되었지만, 아직까지 수정되지 않고 있으며 외교부와 기재부 위에 국조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옥상옥으로 배치되어 법적으로 상위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절화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결정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팬데믹 관련 개도국 지원이 더 이상 유상 대 무상의 문제가 아니라 대면 대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팬데믹의 경우 병원건설 지원(유상)과 의료서비스 지원(무상)이 동시에 투입되어야 하고, 이에 더불어 식량원조 등의 다른 이슈영역의 협력외교와 통합적으로 시행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의 ODA 규모가 OECD DAC 회원국 평균 보다 적은 상황에서 유상과 무상 비율이 4:6로 나누어져 있어 상호 간의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고 어느 사업을 시행해도 그 가시성이 중국, 일본, 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은 규모의 예산을 분절화된 구조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둘째, 또 다른 하나의 분절화 문제는 개발협력의 이슈영역에서 발생한다. 현재까지 한국은 중장기적이고 복합적인 협력방식인 프로그램(program) 방식을 취하지 않고 단기적이며 개별 이슈에 국한된 프로젝트(project)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프로젝트 방식은 보통 1년 단위로 시행되기 때문에 사업의 연계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보건의료로 책정된 프로젝트가 기후환경 또는 식량 및 농업개발 사업과 연계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프로그램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지만 복합성을 띠는 신흥안보 이슈에 통합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분절화 문제 외에 한국의 개발협력은 대단히 낮은 유상원조의 가시성 문제를 앉고 있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문제로 더욱 유상원조를 통한 인프라 사업이 시행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져 있으며, 일대일로와 B3W와 한국 유상원조 프로젝트가 결합될 때 미국과 중국 자본에 묻혀 한국의 역할과 기여가 협력대상국의 입장에서는 뚜렷하게 인지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앞으로 한국은 유상원조를 통한 인프라 지원을 소규모로 기획하고 여기에 무상원조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통합적 관리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IV. 차기정부의 신협력외교 전략
1. 글로벌 팬데믹 시대에 한국 협력외교의 위치 재설정
앞서 분석한 팬데믹 시대에 전개될 글로벌 협력외교의 당면과제를 바탕으로 차기정부의 신협력외교 전략 중 가장 우선적으로 한국의 협력외교 위치를 재설정하는 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협력외교 영역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이 일대일로와 B3W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중 사이에 대립하는 국제정치 구조에서 한국의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기 전에 한국은 스스로 글로벌 규범의 충실한 이행 주체이자 중도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임을 강조하여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협력외교 무게중심이 미국 중심의 B3W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이러한 선택에 있어서도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참여한다는 소극적인 전략보다는 팬데믹 시대에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플랫폼으로서 B3W를 선택한다는 규범적 타당성을 강조하여 글로벌 문제에 글로벌 규범에 따라 한국의 전략이 기획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위치 설정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곧 한국의 신협력외교가 어느 수준까지 한국 역할의 가시성(visibility)을 제고할 수 있는가 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B3W와 일대일로 모두 개발협력 분야 중 인프라 구축과 연결되는 이슈인 만큼 한국이 인프라 지원의 유상원조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어느 편에 서는가에 따라 한국의 역할과 입지가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가시성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의 유상원조, 특히 인프라 지원의 경우 아직 중국과 일본에 비해 그 비중과 예산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일대일로 또는 B3W 중 어느 전략과 협력한다 하더라도 그 가시성은 높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한국은 두 선택의 기로에서 유상원조를 양 쪽과 협력할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고, 동시에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효과적인 개발협력 전략인 무상원조 중 지식공유(knowledge sharing)와 같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인프라 지원과 통합적으로 연계하여 한국의 기여를 레버리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분법적 외교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 러시아, 호주, 인도 등 또 다른 주요 지역 및 국가들과의 외교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소다자협력이 시도될 수 있다. 기존의 MIKTA(Mexico, Indonesia, Korea, Turkey, Australia간 협의체) 및 신남방정책이 이에 포함될 수 있는데, 신흥안보를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전략적으로 연대체를 확산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소다자협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차기정부가 고려할 수 있다. MIKTA의 경우 지금까지 특별한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한국의 선도적 역할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고려사항은 이러한 소다자협력체가 다층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좋으나, 상호 연계성을 확보해서 인터페이스를 강화할 수 있도록 통합적 관리가 요구된다.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운영될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거시적인 프레임 안에 소다자협력이 다른 플랫폼, 즉 동맹-지역협력-글로벌협력과 같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을 때 더욱 효과성을 제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여 보건의료, 백신, 방역, 기후환경 문제가 주된 이슈로 다루어지도록 전략적인 프레임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견국 협력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팬데믹 이후 국제정치질서 개편 과정에 한국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차기 정부에서 모색하는 다자협력외교는 단순히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글로벌 역할을 찾아가는 소극적인 접근에서 글로벌 북반구와 남반구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적극적인 로드맵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국면에서 미국이 북반구의 대변인으로 전략적 다자외교를, 그리고 중국이 남반구의 대변인으로 다자외교를 확장한다면 미중 간의 갈등 국면이 전통적인 남북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으며 남북갈등의 이슈를 담당할 주체가 불명확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은 백신을 미국의 동맹국 중심으로 배포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공격적으로 남반구의 저개발국들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 간의 백신외교는 남북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팬데믹 시대에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유엔의 거버넌스 개혁을 한국과 이와 뜻을 같이하는 중견국들이 주도하고 이로써 한국이 중견국으로서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중견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인 다자외교 전략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격을 제고하고 UN 기구 내에서 북유럽 국가들의 영향력과 입지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사례를 한국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자외교에서 북유럽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향상될수록 한국의 양자외교에 있어서 한국이 가질 운신의 폭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해 볼 수 있다.
2. 분절적 구조를 넘어 이슈연계 중심의 통합화 강화
기존 한국의 협력외교는 분절적으로 기획되고 상호연계가 부족한 상태로 집행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내재적 문제가 있다. 차기정부는 글로벌 수준에서 한국의 위치를 재설정함에 있어 내부적으로 통합된 방식의 협력외교를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 협력외교의 가시성은 반감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향후 차기정부 초반에 현재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정책수준 및 이행수준의 개발협력 추진체계를 통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2022년 4조원이 넘는 규모의 ODA가 책정될 정도로 개발협력의 재정규모는 독립된 부로 통합할만한 대상이 된다. OECD 회원국 중 한국과 같이 이중으로 – 정책수준(외교부 대 기재부) 및 이행수준(KOICA 대 EDCF) - 분절화된 협력외교 추진체계를 가진 국가는 없을 정도로 한국의 분절화 정도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니 한국 협력외교의 효과성, 효율성, 지속가능성, 책무성 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도 통합화 노력은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통합화 전략은 협력외교 추진 기관 간의 통합에도 적용되지만, 이슈영역 간의 연계 및 통합에도 필요하다. 앞서 강조했듯이, 글로벌 팬데믹 시대의 보건위기는 기후, 식량, 개발 등 다양한 협력외교의 이슈들과 연계되는 창발성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단순히 보건협력만을 기획하여 이행하는 것보다 보건과 연계될 수 있는 다양한 이슈영역을 미리 거시적인 프레임 안에 연계하는 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남방정책의 경우, ‘더불어 잘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를 실현한다는 거대한 보편적 비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세안의 시장개척을 통한 사드로 인해 중국일변도의 무역구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파트너를 찾기 위한 현실주의적 국익의 사고에서 출발한 지역협력 프로젝트였다. 신남방정책에 경제협력과 ODA를 통한 개발협력이 주가 되었고 아세안 국가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공공외교와 평과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평화외교, 그리고 COP21 이후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환경외교는 같이 포함되지 못하였다. 낮은 수준에서 지역주민과의 소통과 협력은 공공외교가 담당하고, 국가발전의 다양한 이슈영역과 교차하는 지점에서는 개발협력외교를 제공하며, 한국과의 무역신장 이슈는 경제협력을 통해 추진하고, 글로벌 이슈인 기후환경문제는 기후관련 외교정책을 통해 신남방국가들과 협력을 제고할 수 있다. 신북방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차기정부는 신협력외교라는 차원에서 팬데믹 이후 변화하는 안보의 지형, 즉 신흥안보에 대응하기 위해 하나의 통합된 패키지로 한국이 가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영역에서의 협력외교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K-방역이라는 현 정부의 성과물을 차기정부는 백신수급과 더 나아가 보건안보의 글로벌 협력, 그리고 보건안보와 연계된 다양한 이슈영역과 같이 가는 큰 그림의 전략으로 전환하는 비대면 시대의 협력외교가 필요하다. 현재 미국 등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코백스 등을 통해 백신의 글로벌 공공재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같이 대면으로 한국이 진행해 온 협력외교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기정부는 협력외교 방식을 어떻게 팬데믹 상황에서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언택트(Untack)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새로운 협력외교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기존의 양자원조 중심의 ODA 정책이 이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비대면 중심의 신협력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고려할 사항은 디지털기술을 통한 한국의 기여외교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개발협력 관련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직접 개도국 공무원이 한국에 오거나 한국에서 파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식공유를 디지털화하여 패키지로 개도국에 제공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인프라 지원사업의 경우 직접 인적자원이 현장에 파견되어야 하기 때문에 무상원조 중심의 보건의료 지원, 재생에너지 지원, 현지 시민사회 지원 등 디지털을 활용한 비대면 방식이 중요한 전달체계로 제도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다자기구 지원금 규모가 타 선진국에 비해 적은 편인데, 포스트-팬데믹 시대에 다자협력기금을 증액하여 유엔 및 다자개발은행을 지원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한국의 역할과 입지를 확장해 나가는 전략적 사고전환도 필요하다.
3. 포괄적 관여의 인터페이스 강화: 동맹, 지역협력, 다자협력의 전략적 연계
팬데믹 시대에 신흥안보와 한국이 연결된 지형은 다층적이다. 한미 양국 간의 동맹관계,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와 같은 지역 수준의 다자협력, 그리고 국제수준의 글로벌 거버넌스 참여를 통한 다자협력으로 구분해서 접근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방식의 협력외교는 상호 연계되어 있다. 동맹-지역협력-다자협력 각각의 지형도 팬데믹으로 인하여 빠르게 진화되고 있는데, 대부분 팬데믹으로 인한 복합적인 이슈가 연계되어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미동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포괄적 협력이라는 프레임 안에 보건의료, 디지털, 기후환경, 에너지, 빈곤, 인프라까지 복합적인 협력 이슈영역이 포괄되어 있다. 인태전략도 인도적 지원과 개도국 개발협력이 중요한 협력 이슈로 포함되어 있으며, 일대일로는 인프라 협력 중심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번 G7 회의에서 표방되었듯이, B3W 전략도 트럼프 정부의 블루닷 네트워크와 같이 대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통한 일대일로의 대안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어느 하나 상호 교차하지 않는 협력방식은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상위 수준인 유엔 중심의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코백스 등의 팬데믹 대응 플랫폼과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복합적으로 글로벌 이슈를 커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래 수준인 동맹부터 지역협력까지 포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차기 정부는 동맹, 지역협력, 다자협력을 각각의 개별 수준에서 독립적인 운영기제로 대응하기 어려운 팬데믹 시대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분리된 방식으로 전략을 기획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한미 간 합의한 신흥안보 협력방안은 결국 동아시아 지역 수준에서의 협력외교와 글로벌 수준에서의 다자협력과 체계적으로 연결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하에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다층적인 수준의 협력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강화하고 한국의 신협력외교의 원칙과 입장이 명확하게 구축될 때에만 미중의 전략경쟁이란 변수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다자협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분절적 협력외교라는 과거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대일로와 인태전략 또는 B3W 간의 선택이라기보다 한국의 강점이 무상원조 중심의 기술원조, 지식공유, 가치외교가 미중의 전략에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가시성이 떨어지는 유상원조 중심의 인프라 지원은 미중 사이의 공통분모로서 협력의 공간을 확보하는 자산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협력 수준별 인터페이스를 강화하되, 명확한 차기정부의 협력방식이 결정되어 유상과 무상이 전략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협력 수준 간의 인터페이스를 강화하기 위해서 차기정부는 인터페이스 강화를 위한 뚜렷한 원칙적 가치를 설정해야 한다. 한국만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의 하나이지만, 지구적 문제인 신흥안보 대응을 위한 기준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보건의료 제공,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식량원조, 기후환경 및 생태계 파괴 해결을 위한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 지원 등은 한국만을 위한 협력외교가 아니기 때문에 다층적 수준의 인터페이스 강화에 있어 현실적인 국익 확장과 함께 보편적인 국제규범이 동시에 통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포괄적 관여는 한국이 중도적 가치를 보편적 가치와 현실적 국익 사이에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동맹과 지역협력국가와 국제사회가 모두 한국의 신협력외교의 중도가치를 부인하지 못하게 전략화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
■ 저자: 김태균_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미국 존스홉킨스 고등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개발학, 평화학, 국제정치사회학,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The Korean State and Social Policy: How South Korea Lifted Itself from Poverty and Dictatorship to Affluence and Democrac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대항적 공존: 글로벌 책무성의 아시아적 재생산》(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한국비판국제개발론: 국제개발의 발전적 성찰》(박영사, 2019)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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