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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미국 시리즈] ⑤ J.D. 밴스: MAGA 운동의 사도 바울?

  • 2024-08-29
  • 차태서

ISBN  979-11-6617-000-0 95340

I. 미국의 영혼전쟁과 공화당의 변화

 

2016년 이래 이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미국 대선들은 각각 별개의 사건들로 해석될 수 없다. 경쟁의 한편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라는 문제적 인물이 줄곧 존재해 왔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선거들은 동일한 주제를 둘러싼 두 사회 세력 간의 지속되는 충돌을 반영해 왔기에,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묶일 수 있다. 조 바이든(Joe Biden)은 이 정치적 대립을—남북전쟁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표현을 빌려—“미국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라고 이름 짓고, “우리의 더 나은 천사와 어두운 욕망” 사이의 갈등으로 그 본질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신학적 메타포(metaphor)가 가리키는 단층선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는 미국을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국가로 상상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자명한 진리”와 연방헌법에 명기된 제헌 원칙과 기본권이 아메리카 합중국의 정수를 이룬다고 믿으며, 이러한 원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는 미국을 백인 기독교 공동체로 보는 배타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누가 미국인인가는 “핵심문화”의 공유 여부와 귀속적 정체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차태서 2024, 239-290).

 

이와 같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국내 영역에 그치지 않고,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주목된다. 주지하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살아온 세계 질서는 상당 부분 미국의 대전략 비전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전의 내용물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존재 이유와 세계사적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자아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세력 간 “영혼 전투”는 미국 내부의 차원을 넘어 전지구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자의 보편지향적 공민 민족주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미국의 예외주의적 역할 수행을 주장하는 자유국제주의 독트린과 직결된다. 반면, 후자의 특수지향적 종족-종교 민족주의는 미국의 패권적 역할이 자원의 낭비였다고 비판하며, 현실정치적 대전략을 지지한다. 이들은 미국 역시 다른 평범한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차태서 2024, 135-169).

 

이러한 시대사적 배경에서 우리는 공화당의 중장기적 변화가 어떻게 미국의 정치 지형을 형성해 나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직 취임 등의 이벤트를 중요 기폭제로 삼아,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 복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운동이 차례로 정당기구를 포획하면서 공화당은 점차 이념적으로 극우화되어 왔다(손병권 2024). 과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네오콘적 대외 개입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레이건 이후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포퓰리즘과 백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트럼프화된 정당으로 변화한 것이 오늘날 “위대하고 오래된 정당(Grand Old Party; G.O.P)”의 현실이다. 향후 이러한 변화가 정당 재편(party realignment)의 수준에서 공고화된다면,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운명과 상관없이, 공화당이 앞으로도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개입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 백인 노동계급의 비자유주의적 요구를 공론장에 운반하는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면, 미국의 대전략 자체가 크게 요동치면서 해외 국가들의 대미 신뢰도가 약화하고, 세계질서 자체가 교란될 가능성마저 커지게 될 것이다.

 

II. 탈자유주의 우파의 수령으로서의 J.D. 밴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J.D. 밴스(J.D. Vance)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전부터 그는 단순히 트럼프에게 충성을 바치는 흔한 공화당 정치인에 그치지 않고, 신우파, 탈자유주의 등으로 불리는 이념 운동의 핵심적 정치인으로 떠올라 왔다. 다시 말해, 밴스는 트럼피즘(Trumpism)에 사상적 깊이를 더해 트럼프 시대에 시작된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더욱 급진화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함으로써, 오늘날 젊은 엘리트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체제 전환(regime change)” 흐름의 중심에 자리 잡아 왔다. 이 때문에, 대안 우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ideologue)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밴스가 자신들의 운동의 “신경중추(nerve center)”로서, 비유컨대 “사도 바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교리화하여 널리 전도한 것처럼, 트럼피즘의 “복음”을 방방곡곡에 확산하는 열렬한 “개종자” [1] 의 사명을 밴스가 맡을 것이란 예언이다(Ward 2024a).

 

밴스는 단지 공화당 내의 변화만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내외 정책 전반, 나아가 헌정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계획을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규정함으로써, 여타 포퓰리스트 공화당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면모를 보인다. 특히 밴스는 기성 공화당 지도부마저도 “리버럴 레짐(liberal regime)”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시장 근본주의와 해외 개입주의 사조에 찌든 리버럴 엘리트들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체제 전체에 반대하는 혁명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왜 밴스가 입법활동과 관련해 종종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민주당 좌파와 협력적 관계를 맺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모두 대기업의 특별이익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워런이 비록 이념적으로 자신과 상극인 골수 좌파이지만,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망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때때로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Ward 2024a).

 

밴스의 독특한 정치이념에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이 거론되지만, 그가 표방하는 탈자유주의 및 체제 전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지목되는 것은 노터데임 대학 정치학 교수인 패트릭 드닌(Patrick Deneen)이다(Ward 2024b). 드닌은 2018년 베스트셀러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를 출간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시 지식계 논란의 중심 주제였던 트럼프 현상을 근대 서구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라는 거시적 분석틀로 설명해 줌으로써 이 책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큰 찬사를 받았다. [2] 사상사적 계보에 있어 드닌은 공동체주의 학파와 함께 가톨릭 내 현실 참여파(integralism) [3]에 속함으로써(Liedl 2024; Linker 2024), 근대 자유주의의 오도된 개인주의적 “자유” 추구가 낳은 불평등 증대와 정부/기업으로의 권력집중, 사회 해체와 전통•규범의 상실 등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대안으로서 고대적인 의미에서 덕성을 함양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 복원을 제시하였다(Deneen 2018). 사실 여기까지는 미국 정치사상 학계에서의 고전적 테마인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혹은 공화주의) 논쟁의 맥락에 속하며, 그의 주장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고대 폴리스의 자유 개념을 복원하려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드닌의 자유주의 비판은 훨씬 더 급진화되어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운동의 형태로까지 진화하였다. 기성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하 보수와 진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리버럴 컨센서스를 초월하기 위해—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혁명적”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최근 저서, 『체제 전환: 탈자유주의적 미래를 향하여』의 핵심 문제의식이다(Deneen 2023). 이러한 사상적 진화 과정에서 드닌은 국내적으로는 성소수자 권리, 비판 인종 이론, 낙태 및 이혼 등에 반대하는 등 ‘안티워크 문화 전쟁(anti-woke culture war)’의 선봉으로 나섰고,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의 초청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여 탈자유주의 질서의 미래를 논하는 등 해외의 권위주의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Ward 2023).

 

이런 가운데 밴스는 2023년 5월 미국 가톨릭 대학에서 열린 드닌의 출판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탈자유주의 우파”임을 자처하면서, 의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명백히 반체제적(explicitly anti-regime)”인 것이라고 발언했다(Ward 2023). 한편, 드닌은 올해 7월 밴스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그가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더욱 진전시킬 “이상적 후보자”라고 찬사를 보냈다(Liedl 2024).

 

III. “체제 전환” 이후의 미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J.D. 밴스가 트럼프에 의해 부통령 후보자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은 향후 공화당이 트럼프“주의”를 교조화하고 있는 탈자유주의 우파에 의해 장악될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4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여부와는 별개로, 극우 포퓰리즘 운동이 공화당을 제도적 운반체로 삼아 장기적으로 미국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기반이 밴스의 “세자 책봉” 형태로 마련된 셈이다. 이하에서는 밴스의 주요 연설문들을 전거로 삼아 탈자유주의 세력이 꿈꾸는 “체제 전환” 이후 미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를 엿보고자 한다. 비록 자신들을 “신우파”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이들은 오히려 보수주의의 오래된 버전을 옹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전간기의 보수 포퓰리즘을 따라, 반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기초해 현실주의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정책들—고관세, 이민 제한, 그리고 해외 개입 축소 등—을 옹호한다.

 

1. 포퓰리스트적 민족주의

 

충실한 포퓰리스트로서 밴스는 이 세상 사람들을 “악당”과 “희생자”로 양분해 설명한다. 한쪽 편에 “미국에서 제외되고 잊힌 곳”, “작은 마을들”에 살고 있는 순수한 근로인민이 존재한다면, 다른 편에는 이들을 착취하며 억압하는 국내(“미국 지배계급”, “부패한 워싱턴 내부자들”, “월스트리트 귀족들”, “다국적 기업들”)와 국외(“중국 공산당”,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의 빌런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상황은 트럼프 집권 전까지 미국의 통치계급이 계속해서 실패해 왔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가령, 기득권층의 대표 인사인 바이든은 자신의 정치 커리어 내내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창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가입, 이라크 전쟁 등과 같은 정책을 지지했고, 이런 잘못된 결정들의 대가를 평범한 미국인들이 치러왔다. 이에 밴스는 트럼프가 미국이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마지막 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 또한 본인의 출신지인 러스트 벨트 지역의 고통을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고 강조하였다(Vance 2024d).

 

보다 근본적인 국가 정체성 정치의 차원에 있어 밴스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의 의미를 “조국(homeland)”과 “민족(nation)” 개념으로서 구획짓는다. 우익 포퓰리스트의 노선에 잘 부합하게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추상적인 일련의 “관념”이나 “원칙”이 아닌 “공유된 역사와 공통된 미래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밴스가 이 집단 정체성의 성격을 부연설명하기 위해 동부 켄터키 애팔래치안 산맥에 위치한 가문의 선산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전쟁 시기부터의 조상들이 대를 이어 그곳 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왔으며, 본인과 배우자, 자식들까지 묻히게 되면 7대가 한곳에 모이게 된다고 한다(Vance 2024d). 근본적으로 장소와 혈연 공동체(“Blood and Soil”)로서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럽식의 반동적 내셔널리즘이 밴스의 정치사상에 짙게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Serwer 2024).

 

이러한 밴스의 언설은 사실 의도적으로 바이든의 “신조적 민족(creedal nation)” 개념의 안티테제로서 제시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바이든은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 미국을 하나의 관념(“America is an idea”)으로 정의했으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독립선언문의 핵심문구를 반복해 인용한 바 있다(Biden 2019; 2024a; 2024b). 이와 같이 선명한 국가 정체성 관념상의 대조는 결국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근본적 패러다임의 차이를 낳게 된다.

 

2. 현실주의적 대외정책

 

대외전략을 논함에 있어서도 밴스는 트럼프주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기성 외교정책 기득권층 [4]의 “오랜 슬로건들”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탈냉전기 미국의 외교정책 역시 “재앙의 연속”이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 20여 년간 미국외교정책을 떠받쳐 온 “도덕 본능” 혹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관념은 이라크전의 결말에서 보듯 완전한 오류로 밝혀졌다. 그 전쟁은 민주주의의 확산은커녕, 기독교인들의 집단 학살을 초래했을 따름이라는 것이 밴스의 평가이다. 둘째, 오늘날 대외정책의 최대 화두인 미중경쟁 이슈에 있어 밴스가 가장 분노하는 점은 미국 지도부가 스스로 중국의 부상을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 워싱턴의 초당적 컨센서스가 중국이 미국 중산층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중산층을 구축하는 과정을 묵인해 버렸다고 진단한다. 같은 맥락에서 제조와 기술 혁신을 임의로 분리할 수 있다는 서구의 자만심은 환상으로 증명되었고, 그 증거가 바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이라는 것이 밴스의 비판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네오콘의 대중 접근법이 가장 어리석은데, 한껏 중국이 모든 것을 제조하게 허용해 힘을 키워준 다음, 그 강력해진 중국과 전쟁하자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Vance 2024c).

 

그렇다면 밴스가 제시하는 대안적 대전략 비전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독트린이 국익 우선의 현실주의와 국내경제 부흥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해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철학적 토대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다극 세계(world of multi-polarity)”를 향후 30-40년간 미래 국제질서의 모습으로 상정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40년간 양대 정당이 함께 추진해 온 대전략 노선의 실패로 인해 현재 미국은 더 이상 복수의 전쟁을 치를 수 없을 만큼 쇠퇴해 버린 반면, 중국이 근미래에 몰락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현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밴스식 지정학 리뷰의 결론이다(Vance 2024c).

 

따라서 이러한 다극 세계에서 미국은 “자원의 희소성”을 인식하고, “취사선택 대상(trade-offs)”을 결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어떤 이익이 가장 사활적인지 판별하고 국력을 어느 곳에 집중할지 결단해야만 한다. 밴스는 공화당 주류를 포함한 워싱턴의 기성 리더십은 이런 절충이나 타협을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역내 세력균형을 복원해 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정세를 안정화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이 동아시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Vance 2024c).

 

보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양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밴스는 이와 같은 “역외 균형전략”을 관철하고자 한다. 우선 중동분쟁의 경우 당면한 목표는 하마스 격퇴이지만, 아브라함 협정 프로세스를 부활시킴으로써 이스라엘과 수니 국가들이 연합해 이란을 견제하는 역내 세력균형 형성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서방진영이 충분한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의지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군수품 제조 능력이 진짜 한계를 설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야기된 탄약 부족 상황은 대만에서 유사 사태 발생시 치명적이란 점도 덧붙인다. 아울러 밴스는 푸틴이 유럽에 존재적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합리적 목표는 “협상을 통한 평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즉,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가 1991년의 국경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은 판타지일 뿐이며, 바이든 정부가 푸틴과 협상할 수 없다고 반복 선언했지만, 막상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은 전무하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키이우(Kyiv)의 군사 전략을 방어 전략으로 변경시키고 모스크바와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연장선상에서 밴스는 유럽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유럽인들이 스스로 충분한 억제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록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해체하거나 유럽을 방기할 생각은 없지만, 향후 40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이 동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유럽인들이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Vance 2024a;b).

 

IV. 결론

 

현재 미국 사회에서 탈자유주의적 방향성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밴스가 대변하는 MAGA 운동세력의 급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보통 더 부각되고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망각되어버린 백인노동계급에 대한 관심, 국가 간 관계에 있어 선악이분법에 근거한 무분별한 개입을 비판하는 현실주의적 대안 제시 등은 미국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귀담아들을 문제 제기이다.

 

다른 한편, 기성 자유주의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도 일정 부분 반영된 바 있다. 가령, 현 정권은 국내적으로 뉴딜혁명의 추억을 소환하며 워싱턴 컨센서스의 극복을 추구해 온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식의 중상주의적 “미국 우선” 외교를 어느 정도 계승한 바 있다. 아울러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좌파 블록도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오랫동안 미국사에서는 주변화되었던—비미국적(혹은 북유럽적) 노선을 모색 중이기에 주목된다. 최근 민주당 주류를 깜짝 놀라게 만든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예시해 주듯 향후 밀레니얼 세대의 반예외주의, 반개입주의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여부에 따라 왼쪽으로부터의 탈자유주의 패러다임도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 하츠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국은 늘 로크적 자유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상상의 공동체였다(하츠 2012). 그런 면에서 탈자유주의적 사조의 도전은 미국의 근원적 정체성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미국사의 유례없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탈단극 시대, 미국내 사회세력 간 경합의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질서 전체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건 세계사적 계기를 경유하고 있는 셈이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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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2024b. “The Seven Thinkers and Groups That Have Shaped JD Vance’s Unusual Worldview.” Politico. July 18. https://www.politico.com/news/magazine/2024/07/18/jd-vance-world-view-sources-00168984 (검색일: 2024년 8월 23일).

 


 

[1] 밴스는 사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후보로 부상할 당시, 그를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 밴스는 트럼프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축복을 받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2] 뉴욕 타임스에 여러 차례 관련 리뷰와 칼럼이 실렸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호의적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하였다.

[3] 국가 기구와 법을 동원해 구교 보수주의의 사회적 비전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핵심교의이다.

[4] 비판 대상으로서 설정된 대외정책 분야의 내부자들에는 물론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 같은 공화당 주류도 포함된다. 밴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84년부터 상원의원으로 활동해 온 맥코넬이 외교 분야에서 취한 거의 모든 입장들이 오류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한다.

 


 

차태서_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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