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보고서는 <중앙선데이>에 실린 필자의 칼럼 "한나라 압승한 선거도 30대 표심은 '野性' 강해 "(No.217호. 2011.5.8)와 <주간동아>에 실린 필자의 칼럼 "'봤지, 정치 똑바로 해' 중산층 분노 폭발 " (No.785호. 2011.5.2)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여야의 중원전쟁 점화될 것인가?

 

1. 4.27 재보궐 선거 “분당”혁명의 동력 : “중산층 역할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임태희 후보에게 71%의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줬고 50%를 넘는 한나라당 정당 지지율로 세 번 연속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수도권 한나라당의 아성 분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보궐선거의 승자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물론 탄핵으로 위기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다수당이 된 데에는 수도권 30, 40대 중산층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기에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코 앞에 둔 지금 한나라당이 분당의 패배로 인해 받을 충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번 선거에서 손학규 대표가 승리한 요인에 대해 정당대결 구도 대신 인물 대결로 끌고 간 선거전략, 후보단일화 효과, 정권견제 심리의 확산 등 다양한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설득력 있고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무기력한 보궐선거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사지(死地)’에 뛰어든 ‘대탐소실’의 정치적 결단과 “중산층 역할론”을 내세운 선거캠페인 효과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후 대권경쟁구도를 고려할 때 “중산층 역할론”은 여야 간 대선 승부의 최대전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2. “중산층/중도층 역할론”의 힘 : 정부불신, 정치 불만 여론의 근원지

 

일반적으로 두터운 중산층과 이념적 중도층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사회통합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특히 여와 야, 진보 대 보수 진영이 공고하게 갈등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 계층, 특정 이념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중간층의 여론이 전체 여론의 무게중심을 잡아 왔다. 참여정부 후반기 탄핵 이후 참여정부 심판론과 이명박 실용정부의 탄생을 낳은 것도,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등장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의 이탈이 본격화 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중산층, 중도층의 여론변화가 주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매 선거마다 여론의 균형추역할을 해온 중산층, 수도권 30, 40대에 관심을 집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번 분당 보궐선거에서 30-40대의 표심이 선거결과를 가른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현 정부의 탄생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중산층/중도층이 현 정부에 대한 잠재적인 비토그룹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중앙일보와 진행했던 2009년 실시한 <중산층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그 어느 계층보다도 심지어 빈곤층보다도 정치적 불만과 불신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1]에서 불 수 있듯이 “정부 정책이 가장 잘 대변하는 계층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빈곤층의 56.7%, 상위층의 60.6%, 중산층에서는 무려 67.1%가 “정부는 상위계층을 대변한다”고 답해, 정부 정책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법집행의 공정성이나 정부의 민주성에 에 대해서도 중산층의 불신이 가장 크다.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집행이 어느 정도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불평등하다”고 응답한 비율을 보변 빈곤층에서 51.5%, 상위계층에서는 55.7%였지만 중산층에선 60.0%로 가장 많았다. “소수가 정부와 정치를 좌우하고 있다”는 주장에 빈곤층 74.4%, 상위계층의 78.8%로 타 계층에서도 공감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역시 중산층에선 81.2%가 공감하여 정부의 비민주성에 대해서도 가장 큰 불만세력으로 나타났다(강원택 2009).

 

[그림1] 계층별 정치적 대표성·공정성·민주성 평가(%)

 

자료: EAI 여론브리핑 제59호(2009)

 

3. 왜 중산층/중도층은 최대 비토세력이 되었나?

 

MB정부의 중도실용노선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

 

재미있는 것은 이들 중산층/중도층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었다. 경제 위기 이후 ‘중산층 복원’정책에 힘을 쏟은 점은 부인할 수 없으며 필자는 여러 지면을 통해 집권초기 바닥을 쳤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데 ‘중도실용노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꾸준히 지적해온 바 있다.

 

[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집권 초기 촛불 정국 이후 최대 위기로 평가할 수 있는 2009년 6월~9월까지 노전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서거정국에서 20%대까지 추락했던 지지율을 40%대까지 끌고 올라온 데에는 중도실용노선의 힘이 컸다. 실제로 [그림3]에서 이념성향별로 보면 국정 지지율이 중도층에서 무려 18.6%포인트(7월 28.4%→10월 47.0%)나 상승하여 보수층에서의 최대상승폭 8.2%포이트(8월 43.2%→9월 51.4%)과 진보층에서 최대 상승폭 12.7%포인트(6월 18.8%→31.5%)를 크게 상회한다. 문제는 이렇게 지지율이 회복하면 곧바로 미디어법이나, 세종시 수정안 및 4대강 사업 등 정권의 핵심 아젠다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진정성의 위기를 낳고 정치 불신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그림2] 2009년 정치적 불안국면과 중도실용노선 이후 국정 긍정평가 상승(%)

 

자료: EAI·한국리서치 여론바로미터조사(2009)

 

[그림3] 2009년 정치적 불안국면에서 이념성향별 국정 긍정평가 상승 곡선(%)

 

자료: EAI·한국리서치 여론바로미터조사(2009)

 

야권의 좌향좌 노선, 상충적 태도의 중산층/중도층을 대변 못해

 

중산층/중도층의 정치적 냉소와 불신이 심각해진 데에는 야당 특히 제1야당의 민주당의 정치적 판단 미스도 한 몫했다. 정부여당은 중도실용노선, 친서민정책, 공정사회론 등 중산층/중도층의 마음을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온 반면 민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론의 효과를 본 이후 무상급식론은 무상복지론, 보편적 복지론으로 발전하면서 급격히 진보이념과 진보정책을 강조하는 좌향좌 행보를 걸어왔다. 특히 2010년 10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된 이후 거의 북유럽 사민주의 수준의 복지국가론의 입장에서 한나라당과 복지논쟁을 전개해왔다.

 

6.2 지방선거 초기에 무상복지, 보편적 복지론에 대한 이슈선점 효과로 지방선거에서 적지 않은 효과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이 선별적복지론, 부자급식론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상위계층/보수층은 물론 중산층/중도층 역시 민주당의 무상급식론, 보편복지론에 대한 공감도가 크게 떨어져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림4]에서 초등학교 무상급식론에 대한 정책선호를 보면 중도층에서조차 무상급식론에 대한 지지는 34.4%, 선별적인 무상급식론이 54.7%, 무상급식 전면 금지론이 9.9%로 나타났다. 그 결과 이념적 중도층만 뽑아 비교해보면 중도층에서 한나라당과 대등한 정당지지율 경쟁을 벌여온 민주당이 10월 전당대회 이후 11월 조사부터는 한나라당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4.27 재보궐 선거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중도층의 지지율이 38.0%까지 올라가 34.1%로 정체된 한나라당을 역전했다. 앞으로 한나라당과 치열한 중원전투를 예고하는 대목이다[그림5].

 

[그림4] 이념적 중도층에서의 무상급식론 선호(%)

 

자료: EAI·한국리서치 여론바로미터조사(2011.2)

 

[그림5] 이념적 중도층에서의 복지논쟁 이후 정당지지율 변화(%)

 

자료: EAI·한국리서치 여론바로미터조사(2010.7~2011.3)

 

4. 중산층 내세운 손학규의 선거전략, 민주당의 2012년 대선전략 될 수 있을까?

 

필자는 여러 통로를 통해 민주당의 지지율 정체가 정당 포지션에 대한 오판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지난 해 당대표 선거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선택은 뚜렷한 정책적 선명성보다 차기 대선에서 중산층/중도층에서의 잠재적 득표력에 주목했다. 그것이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대표의 선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노선 공세에 진정성에 대한 비판에만 집중했을 뿐 민주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중산층/중도층 대상의 정책 대신 급작스런(?) 진보노선으로의 전환을 계기로 당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고 중산층/중도층의 이탈로 보궐선거 직전까지 무기력한 싸움을 전개했던 것이다.

 

사실 손학규 대표는 대표 복귀 후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왔다고 볼 수 있다. 손 대표 자신조차 당대표 선출 이후 민주당내 좌향좌 분위기에 눌려 중산층/중도노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보지 못했다. 이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전력과 중도성향의 자신의 정체성을 약점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지난 전당대회 직후 15%대까지 올랐던 차기 주자 지지율이 현재 정치복귀 직후 수준인 3-6%대를 오가는 수준으로 떨어져 유시민 대표와의 경쟁에서도 밀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절박성이 사지나 다름없는 분당선거에 뛰어드는 손 대표의 결단을 촉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손학규 대표는 대표적인 수도권 중산층 지역인 분당에서 지금까지의 민주당이 보여준 좌향좌 행보와‘전면적인 복지 노선’대신‘중산층의 역할’을 내세워 결국 분당혁명을 만들어냈다.‘소탐대실’의 이미지를 남기며 차기주자로서 큰 흠집을 안은 유시민 후보와의 경쟁은 물론 앞으로 한나라당의 대권주자와도 해볼 만한 싸움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손학규 대표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민주당의 집권전략에서 중산층/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중원전투가 얼마나 차기 대권 싸움에서 중요한지 보여주었고, 자신이 그 싸움에 얼마나 강점을 갖는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분당의 선거는 문제의 출발점일 뿐 종착지가 아니다. 손 대표는 물론 지금까지 좌향좌 행보를 해온 민주당이기에 중원전투에 내세울 컨텐츠는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손대표의 등장을 계기로 중원전투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에 대한 비토여론도 적지 않다. 특히 야권후보단일화를 위한 진보정당과의 정책적 합의사항을 보면 전체여론과 중산층/중도층 여론과 배치되는 사안이 적지 않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민주당의 진보화 과정에서 이슈화된 선별급식론은 물론 한·EU FTA, 한미FTA 이슈의 경우 진보층의 기대와 달리 전체여론 및 중산층/중도층은 선별급식론, FTA의 조속한 인준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상황이다. EAI·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의 올 2월 정기조사에서 “한미FTA를 조속히 인준해야 한다”는 데 65.8%, “한·EU FTA를 조속히 인준해야 한다”는 데는 71.5%가 동의한다고 밝혔다(정한울·정원칠 2011). 이처럼 진보와 중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슈에 대한 손대표 체제의 포지션이 이후 손대표 및 민주당 지지율 상승을 지속시킬 것인가, 다시 추락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당장 4.27 재보궐 선거 직후 역시 한·EU FTA 통과 과정에서 대한 박지원 원내대표와 정부여당과의 합의를 번복함으로써 이후 손학규 대표체제 하에서의 이슈 및 정책포지션이 기존의 진보강조 노선에서 중산층/중도 우선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 반대로 야권대연합을 추진하고 있는 진보성향의 정당 들에서는 민주당의 어정쩡한 태도에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중도노선으로의 전환을 기대한 중산층/중도층이나 자칫 진보-중도 모두에게서 고립될 수 있다. 이 경우 어렵게 반등의 기회를 잡은 지지율 까먹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번 선거결과에 도취되어 전가의 보도인 ‘MB심판론’과 ‘후보단일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러한 컨텐츠 개발과 정책타겟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게을리 할 경우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바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경험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뚜렷한 정책비전과 전략 없이‘MB심판론’과 ‘후보단일화’에만 의존할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를 김해을 보궐선거가 잘 보여준 셈이다. 중산층/중도층의 불신과 불만은 현 정부여당 뿐 아니라 민주당에 대해서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은 진보-보수 이분법 대신 이슈별, 상황별로 때론 진보적 포지션을, 때론 보수적 포지션을 유연하게 오가는 상충적 태도의 유권자들이다(정한울 2011). 보편적 복지우선론-FTA 반대론으로 중산층/중도층을 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구나 차기 대선은 현 정부와에 대한 회고적 평가(retrospective evaluation)의 측면 못지 않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국정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전망적 평가(prospective evaluation)의 장이다. 결국 남은 대선 정국에서 중산층의 변화에 대한 요구에 부합하는 손학규식, 민주당식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다가올 2012년 대선정국의 향방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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