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보고서는 <주간동아>에 실린 필자의 칼럼 "한국인 실용중도 전성시대: 국민 이념 트렌드 변화 분석 … 친미진보 등 ‘상충적 유권자’에 정치권도 색깔 바꾸기" (No.781. 2011.4.12)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이념무드의 변동 사이클과 정책선호 트랜드의 변화가 동인

중도수렴 현상과 친미진보·복지보수의 상충적 유권자 등장

 

1. 2012년 권력재편기 전략 : 주요 정당·차기 주자의 이념 색깔 바꾸기

 

2012년 대선 전 화면조정시간 : 주요 정당·정치인의 이념 색깔 바꾸기

 

2012년 총선과 대선을 1년 앞둔 현 시점에서 한국의 주요정당과 차기주자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의 유례없는 이념색깔 조정이 한창이다. 이러한 위치 재조정과정이 정치적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각 정치세력이 새롭게 보여주고자 하는 자신의 이념적 색깔이 기존의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던 진보-보수의 이념적 경계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한국형 복지’를 표방하며 진보 친화적인 아젠다인 ‘복지’를 핵심 아젠다로 내세웠고, 과거 한나라당내 개혁파로 인식되던 김문수 지사나 오세훈 시장은 반대로 각각 ‘보수적 안보행보’나 ‘무상복지와의 전면전’을 이끌고 있다. 야권에서는 중도성향의 손학규 대표가 ‘보편적 복지’를 내걸고 민주당 좌향좌 행보를 이끌고, 정동영 의원은‘대담한 진보’를 내세우며 민노당이 내세웠던 ‘부유세 공약’까지 차용하는 상황이다. 반면 진보정당 통합론을 주창하고 있는 유시민 신임 국민참여당 대표는 오히려 복지 문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을 강조하는 양상이다.

 

변신을 꾀하는 각 정치세력이 다양한 이념적 변신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러한 정치세력의 색깔 조정작업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권자들의 이념 트랜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정치세력인 내놓은 변신의 방향과 그 정당화 논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편차는 정치세력이 사회전반의 거시적인 이념 무드(ideological mood)와 개별 정책에서 나타나는 국민 선호의 변화(opinion trends)를 바라보는 해석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혼란스러운 변신의 논리는 두 가지 쟁점으로 압축된다.

 

2. 거시적 이념 무드(ideological mood)의 변화방향 : 진보화인가? 보수화인가?

 

우선, 국민들의 전체적인 이념성향, 즉 이념 무드의 변화 방향에 대한 진단에서 인식 차이가 나타난다. 여권만 보더라도 천안함, 연평도 포격으로 냉담해진 대북인식을 근거로 한국사회의 보수화를 주장하는 입장도 있고,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노선’ 및 ‘공정사회론’에 대한 높은 지지를 근거로 중도이념과 정책을 강조하는 흐름도 있다. 반면 야권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를 근거로 진보노선을 강조하는 입장이 강화되고 있는 데 이는 국민들의 이념적, 정책적 선호가 진보를 향해 좌향좌 했다는 진단을 전제한다.

 

[그림 1] 노무현 정부 이후 한국사회 이념 무드(mood)와 양극화 변화 추세

 

자료 : 2009년 이후 데이터는 EAI·한국리서치 정기조사 데이터, 2007~2008년 데이터는 EAI·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 패널조사데이터, 2005~2006 데이터는 EAI·매일경제 정치사회의식 조사 데이터, 2004년 데이터는 선거학회 데이터, 2002년~2003년 데이터는 EAI·중앙일보 반미인식조사 데이터.

 

이념 트랜드의 거시지표, 이념 무드의 향방 : 중도로 수렴

 

실제 국민들의 이념적 트랜드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념무드(ideological mood) 개념을 통해 한국사회의 이념변화추세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념무드 개념은 서구 학계에서는 오랜 기간 이론적, 경험적 연구가 축적된 개념으로서‘국정지지율(presidential approval)’과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과 함께 한 사회의 거시적 차원에서 유권자의 정치인식의 트랜드를 측정하는 지표이다. 한 사회의 이념 무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정권이 등장한 후 실적이 좋지 못할 경우 보수정권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전체적으로 이념무드가 진보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반대로 진보성향의 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역시 진보적 수요는 충족된 반면 진보정권에 대한 불만과 보수성향의 정책에 대한 수요 때문에 전체적인 이념무드는 진보로부터 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시적 이념무드의 사이클은 민주정부 하에서 특정 이념집단이 장기집권을 하지 못하고 정권교체를 만들어내는 주요 설명요인이 된다(Box-Steffensmeir et al. 1998; Erikson et al. 2002).

 

이를 측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유권자들 스스로 자신의 이념성향을 평가한 주관적 지표에 대한 조사결과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EAI 여론분석센터가 2002년부터 조사해온 0점(좌극단)을 ‘매우진보’, 5점을 ‘중도’, 10점(우극단)을 ‘매우 보수’로 하여 측정한 조사결과를 보면 최근 한국사회 전반적인 이념적 분위기는 진보화도, 보수화도 아닌 중도로의 수렴현상이 나타난다([그림1]).

 

노무현 정부 초기 잠시 보수화 경향이 나타나지만 탄핵 직후인 2004년 4월 조사에서는 야당의 탄핵공세에 대한 반발하며 국민들의 이념무드는 진보 쪽으로 이동한다(4.6점). 그러나 탄핵이후 정부여당이 경제위기론에 대한 대책보다 야당과 국가정체성 논쟁과 대연정 논란에 집중하면서 점차 보수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005년 12월 조사에서의 국민이념 평가는 5.3점으로 2004년 4.6점에 비해 보수로 이동했고 2006-2008년까지의 지방선거, 대선, 총선이 있었던 3년의 조사에서는 이념평균 점수는 5.5점까지 이동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총선 직후 촛불시위와 노전대통령 서거가 발생한 2009년을 거치면서 점차 유권자들의 자기이념 평가는 이전의 보수화 분위기로부터 탈피하여 이념적 U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체 국민의 이념적 위치평가 점수가 2009년 12월 조사에서 5.2점, 2010년 12월 조사에서는 5.0점까지 왼쪽으로 좌클릭하고 있다. 2011년 지난 2월 조사에서는 이념무드 점수가 5.1점으로 중도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를 정리하면 우선 이미 현 정부 초기부터 이념적 U턴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현 정국을 보수화 정국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야권의 주장처럼 이러한 이념적 U턴 현상이 진보적 이념으로 균형추가 넘어간 것도 아니다. 전임 정부와 구여권에 대한 정치적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적지 않지만 이념적 균형 상태를 깨는 상황까지 연출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수렴인가? 양극화인가? 정권교체 직후 양극화 → 임기 중반 수렴하는 패턴

 

현재의 이념적 혼란은 진보와 보수진영 사이의 이념적 갭을 이념적 양극화 현상의 강화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이념적 수렴 현상으로 해석하는 가의 인식 차이에서도 확인된다. 한편에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와 국민여론에서 진보 대 보수의 이념적 거리가 벌어지면서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달리 현재 국민 차원에서의 이념집단간 갈등은 과장되고 있으며 정작 정당과 정치인, 진보-보수 진영의 시민단체 등 정치엘리트 수준에서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증폭된다는 입장도 있다(이내영 2010).

 

[그림1]에서 다수의 우려와 달리 국민들 내에서 진보-보수층간 이념적 간극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시기와 이명박 정부 시기를 비교하면 오히려 정권교체 초기에 진보-보수 양 집단간 이념적 거리가 확대되어 이념 양극화 현상이 최고조에 달하고 임기 중반 이후에는 진보-보수층간의 이념적 거리가 좁혀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시기엔 집권 2년차의 탄핵국면을 전후로,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촛불정국과 2009년 노 전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진보층과 보수층 사이의 이념적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2002년 12월 대선 직전 조사에서 진보층의 이념평가는 2.8점, 보수층의 이념평가는 7.3점으로 4.5점 차였지만 2004년 탄핵시기엔 진보층 이념평가가 2.3점, 보수층은 반대로 7.8점으로 나타나 진보-보수 사이의 이념거리가 5.2점 차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기 보다는 어느 정도 이념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 각 이념집단 사이의 이념적 거리가 줄어드는 수렴현상이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정국을 거친 2009년 12월 조사에서 진보는 2.3점, 보수는 7.8점으로 탄핵정국 시기 만큼의 이념적 거리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후 진보-보수사이의 이념적 거리는 다시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준다. 진보층의 자기이념 평가가 2009년 2.3점 → 2011년 2월 조사에서는 2.6점으로 우향우하고, 보수층의 이념무드는 2009년 7.8점에서 2011년 2월 조사에서는 7.3점으로 좌로 이동하면서 양 집단 사이의 이념적 거리는 4.7점 차까지 좁혀졌다.

 

결국 한국의 진보성향 국민과 보수 성향 국민사이의 이념적 갈등은 다수의 우려처럼 일관되게 양극화가 악화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일관된 수렴현상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노 정권초기 탄핵이나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노전대통령 서거 정국처럼 정치권의 갈등이 크게 증폭되어 이념적 양극화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진보-보수층 간 ‘이념적 균형잡기(ideological balancing)’현상을 나타나는 특징이 발견된다.

 

국민들 사이의 이념갈등보다 정치권의 이념갈등이 더 심각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이념갈등에 우려가 사그러 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치권에서의 정치적 갈등이 이념적 요소와 중첩되면서 이념갈등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각 정당 지지층간의 이념적 성향은 상대적으로 근접해있지만 각 정당 의원들 사이의 이념적 성향 사이에는 훨씬 큰 갭이 있다. 2011년 2월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성향의 정당 지지자들의 이념적 평가 점수는 4.3점, 민주당 지지층은 4.4점으로 큰 차이가 없을 뿐 더러 중도 5점에 가깝다. 반대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지지층 역시 이념평가점수가 각각 5.6점으로 동일하여 보수적 성향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역시 중간 5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실제 해당 정당소속 의원들의 이념평균을 비교해보면 해당 정당 지지층간의 이념격차보다 훨씬 큰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2008년 중앙일보 조사결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평균 이념 점수는 1.4점으로 극단에 가까운 진보성향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으며, 민주당 의원들의 이념평균은 4.4점,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념평균이 6.0점, 선진당 의원의 이념평균은 6.2점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일반 국민 차원에서는 진보정당 지지층과 한나라당 지지층 사이의 격차가 1.3점(한나라 5.6-민노 4.3)에 불과하지만 소속정당 기준으로 보면 한나라당 소속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이념의 격차는 무려 4.6점(선진 6.0점-민노 1.4)까지 벌어진다.

 

이념평가 점수의 분포를 봐도 동일한 분석결과가 확인된다. [그림2]를 보면 한나라당 지지층에선 보수층(6~10점)으로 평가한 비율이 44.0%로 가장 많았지만 중도 5점을 꼽은 응답자도 36.2%나 되었다. 그래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일 응답으로는 중도인 5점을 선택한 응답자가 가장 많다. 한나라당 지지층 중 자신이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은 19.7%에 그쳤다. 반면 진보적 평가(0-4점)을 꼽은 응답자가 39.7%였고 5점 중도를 선택한 응답자가 41.7%로 진보응답자를 초과했다. 민주당 지지자 중 스스로 보수라는 답자는 18.6%에 불과했다. 양당 지지층은 모두 중도 응답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한나라당 지지층은 역시 보수성향의 지지층이, 민주당 지지층에는 진보성향의 응답자들이 왼쪽에 넓게 퍼져있다. 양 당 공히 중도 지지층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각 정당 소속의원들의 이념분포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나라당 소속의원의 경우 중도라고 답한 의원은 전체 의원의 20.9%에 불과했고, 6~7점 64.7%, 8점~10점 5.0%로 대다수가 보수범주에 집중 포진되어 보수정당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 역시 스스로 중도라고 답한 의원비율은 20.9%에 불과했고 4점을 택한 의원이 전체 민주당 의원의 50.0%, 3점을 택한 의원이 13.2%, 2점은 1.5%에 그쳤다. 중도 좌(3-4점) 범주에 민주당 의원의 63%가 포진함으로써 의원 성향은 진보정당의 성향이 강하다.

 

[그림 2] 각 정당 지지층과 각 정당 소속의원들의 이념적 갭

 

주: 18대 중앙일보 국회의원 이념조사에서 소수점으로 응답한 경우 소수점 이하는 버림

 

3. 이슈별 정책 태도 : 상충적 유권자의 등장

 

상충적 유권자의 부상

 

앞의 분석에서 한국사회에서 거시적 이념무드는 좌나 우 어느 일방으로 쏠리기 보다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중도로의 수렴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국민 차원에서는 진보-보수층간의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기 보다는 그 간격이 좁혀지는 수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정치적 의미는 기존의‘진보=친노동=복지=친북=반미’,‘보수=친자본=성장주의=반북=친미’라는 이분법적 이념균열이 약화되고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와 정책선호가 공존하는 상충적 태도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주류선거이론에 따르면 여러 이슈들에 대한 정책선호가 특정의 이념성향에 맞게 일관성을 보여주는 층은 스마트한 유권자이며 이러한 일관성이 없거나 입장이 없는 다수 유권자는 무지한 유권자로 이해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할 경우 한국에서 보수이념의 소유자가 반미적 태도를 갖거난 복지노선을 우선하고, 반대로 진보주의자가 친미, 성장주의 선호를 갖는 것은 정치적 무지의 결과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상충적 유권자 이론은 과거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공존할 수 없는 가치들이 충분히 공존 가능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노동친화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성장주의 노선을 선호하고, 성장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반대하거나, 미국의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상충적 태도이론의 문제의식이다.

 

북한이슈, 정치적 자유 vs. 공공질서 이슈에선 기존 진보-보수 균열 유지

 

이제 한국사회 주요 현안 이슈들에 대한 개별적인 정책선호를 통해 이러한 상충적 유권자들의 존재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EAI·한국리서치의 2010년 10월 조사에서 한국사회 이념적 쟁점 현안을 가지고 국민들의 선호를 조사했다. 그 중에서 한국 사회의 이념적 구분기준으로 이해되어 온 북한이슈, 미국이슈, 성장복지 이슈, 정규직 확대와 처우 이슈, 기업 감세 이슈 등에 대해 전체 응답평균과 각 이념집단의 선호 평균을 가지고 그 차이를 비교했다([그림 3]). 2.5를 중간값으로 하여 2.5보다 작고 1에 가까울수록 진보적이고 2.5를 넘어 4에 가까울수록 보수적 입장을 의미한다.

 

이 중 공무원의 정치활동의 자유 허용문제, 민노당에 가입한 전교조 교사 처벌의 정당성, 북한 주적 명시여부, 한미관계, 양심적 병역기피와 대체복무제 허용, 한미FTA 등 전통적인 이념 이슈에서는 보층의 선호와 보수층의 선호 점수 사이에 적지 않은 상대적인 격차가 존재하고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대체로 진보층에서는 보수층에 비해 반미-친북, 노동권/정치적 자유 우선, 복지우선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보수층에서는 진보층에 비해 친미-반북, 공공질서 및 안전을 우선, 성장우선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이슈, 부동산 보유세 인상, 기업법인세. 사형제 폐지 문제 등에서는 이념집단상 선호의 상대적인 거리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상충적 태도의 부상과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진보-보수층의 정책선호 점수 사이에 상대적으로 차이는 존재하지만 실제 선호하는 정책의 내용이 과거의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슈가 다수라는 점이다. 물론 북한주적 명시나 공공영역 종사자의 정치활동 허용 이슈의 경우에는 진보층과 보수층의 응답평균의 차이가 적지 않고 진보는 주적인식에 반대하고 보수는 찬성하는 것처럼 실제 선호하는 정책의 컨텐츠 역시 상반된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 주적명시에 대해서는 진보층에선 2.38로 반대입장이고, 보수층에서는 2.72점으로 선호하는 정책선호에 상반된 입장차가 뚜렷하다. 공공영역 종사자에 대한 정치활동 허용 문제에 대해서도 진보는 2.38로 긍정적이고, 보수는 2.89로 부정적인 입장이 강했다. 민노당 가입 교사에 대한 처벌에 대해서도 진보는 2.06으로 진보성향의 응답을, 보수는 2.68로 보수적 응답을 하고 있다. 대체로 북한이슈와 정치적 자유권과 국가안보의 가치가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보수의 전통적 균열이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림 3] 주요 이슈현안 별 전체 국민 및 이념집단 별 정책선호 평균점수 비교

 

주: F는 일원평균분산분석(Anova Test) 통계량, *: p<0.05, **: p<0,01, ***: p<0.001 수준에 집단간 차이가 유의미함.

 

성장/복지, 대미이슈에선 상충적 태도 급증

 

그러나 진보와 보수층이 선호 사이에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선호하는 정책의 내용에서 상충적 태도나 나타나는 이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이슈나 한미FTA 처럼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슈지만 최근 보수적 정책선호가 다수의 합의로 바뀌고 하고 반대로 성장복지 이슈나, 비정규직 처우, 부동산 보유세 인상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층에서 진보적인 정책 선호를 수용하는 상충적 태도의 확산을 엿볼 수 있다.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한 보수층 응답은 3.16점으로 한미동맹에 강한 우선순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진보층에서의 응답평균은 2.72점으로 역시 보수층에 비해 0.44점 낮아 상대적으로 보수층에 비해 진보성향의 정책선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응답평균 점수가 2.72점으로 정책컨텐츠 상으로는 자주외교보다 한미동맹을 우선해야 한다는 선호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FTA이슈에서도 보수층의 응답평균은 3.10점이고 진보층은 2.81점으로 그 역시 격차는 존재하지만 진보층에서도 한미FTA의 조속한 시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성장 복지의 경우 진보층에선 2.24로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가장 강했지만 보수층에서는 2.57로 다소 성장에 무게를 두기는 하지만 거의 중립에 가까운 수치라는 점에서 보수층 내부에서도 입장차이가 적이 않음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관련 이슈의 경우는 비정규직 확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다소 엇갈리지만(진보층 2.46, 보수층 2.54),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보수층에서조차 동의하는 여론이 크다(진보층 1.44, 보수층 1.63). 부동산 보유세 인상에 대해서도 진보 2.11 보수 2.26으로 찬성여론이 전체적으로 높았다.

 

진보적 한미동맹론자, 보수적 복지주의자의 등장 과정

 

[그림4]-(1)에서 이러한 상충적 입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이슈의 실제 여론변화과정을 통해 한미관계 인식 및 성장-복지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층 간 상대적인 입장 차이는 선호하는 정책의 내용에서 상충적 태도가 급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직한 한미동맹을 묻는 질문에 대해 2002년 여중생 사망 추모 촛불 전후하여 탈미자주 입장이 28.1%로 한미동맹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은 20.4%에 비해 많았다. 나머지는 중도적 정책을 선호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등장 이후 북한의 핵개발 위협이 커지면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입장이 2004년 36.9%, 2006년 39.3%, 2008년 39.3% 대로 늘어났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인 11월 조사에서는 무려 한미동맹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과반에 가까운 48.6%까지 상승한다. 반대로 탈미자주를 선호하는 응답은 2010년 조사에서는 18.1%수준까지 하락한다.

 

[그림5]-(1)을 보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강화되면서 한미동맹의 가치가 크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진보층 내에서 상충적 태도가 강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관계에 대한 진보층의 응답을 분석해보면 2006년 조사만 하더라도 41.1%가 탈미자주 외교를 선호한다고 답했지만 2011년 11월 조사에서는 26.7% 수준으로 크게 감소한다. 반대로 한미동맹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2006년 조사에서는 30.2%에 불과했지만 2011년 조사에서는 전체 평균과 비슷한 수준인 45.3%까지 급상승한다.

 

반대로 성장대 복지 노선의 경우는 보수층에서의 상충적 태도가 증가한 이슈이다. 우선 [그림4]-(2)에서 복지를 우선해야 하는 가, 성장을 우선해야 하는 가 물어 본 결과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서는 55.5%가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고 답하고, 42.2%만이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후 경제위기론이 심화된 2006년부터는 성장주의의 우위가 나타나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유지된다. 복지우선이라는 응답은 2006년에 45.3%로 떨어지고,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2월 조사에서는 40.4%까지 하락한다. 반면 성장우선 응답은 2006년 53.5%로 과반수를 넘긴후 2009년엔 58.7%까지 상승한 바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위기가 심화되고 2010년 들어와 한국사회에서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성장우선 49.4%, 복지우선 응답이 48.5%로 대등해졌고, 10월 조사에서는 복지선호 응답이 다시 54.3%로 과반을 넘고, 성장우선이라는 응답은 39.2%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위 복지노선을 더 선호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증가했다. [그림5]-(2)에서 보수층의 응답만을 비교해보면 2006년 조사에서 보수적 응답층 중에서 성장 우선이라는 응답이 61.5%로 압도적 다수였지만, 2010년 조사에서는 49.1%까지 떨어지고 복지우선이라는 응답은 38.5%에서 50.9%로 상승했다. 즉 2010년 조사 결과만 보면 진보층의 절반 가까이가 진보적 한미동맹론자인 셈이며, 반대로 보수층의 과반은 보수적 복지주의자가 된 셈이다.

 

[그림4] 바람직한 한미관계 및 성장 복지노선 국민여론의 변화(%)

 

 

 

 

 

 

 

 

 

 

 

(1) 바람직한 한미관계 인식변화

 

 (2) 성장 대 복지 노선 인식변화

  

 

 

[그림5] 진보층에서의 한미관계 인식 변화와 보수층에서의 성장-복지인식 변화(%)

 

 

 

 

 

 

 

 

 

 

 

(1) 진보층에서의 미국 태도 변화

 

 (2) 보수층에서의 복지 인식 변화

  

자료 : EAI·한국일보 데이터(2006.12), EAI·한국리서치 여론바로미터조사(2010.10/11)

 

4. 상충적 유권자 시대의 정치적 함의

 

교조적 이념·독선주의 경계하고, 소통 중시해야

 

이념적 진보화, 이념적 보수화도 아닌 중도로의 수렴현상을 고려하면 보다 각 정당 및 차기 주자들의 행보는 이념성향이 강한 이념집단보다는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상충적 유권자의 부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이분법적 이념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이슈와 상황에 따라 상충하는 가치와 정책선호가 공존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추진과정이나 정당 및 차기주자 활동에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기존의 이념적 대결 구도를 대표하는 이슈에 집착하기보다 주요 현안에 대한 유권자들의 태도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책임성의 강화가 필요하다. 한미동맹 및 성장-분배노선에 대한 급격한 여론변화를 감안하면‘진보=자주=복지 대 보수=동맹=성장’이라는 도그마에 기초한 정책은 상충적 유권자에겐 매력적이지 않다. 기존 진보, 보수의 경계를 뛰어넘는 실험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변화에 부합하는 시도들로 평가된다. 실제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중도실용노선이나 공정사회론이 진정성에 대한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역대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결과다.

 

둘째, 정당과 정치세력에 상충적 태도를 가진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은 진보 혹은 보수 진영의 한쪽에 일관되게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특정 진영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는 균형투표 경향을 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 이후 치러진 선거결과를 보면 노대통령 당선이후 탄핵 직후 2004년 선거에서 당시 여당을 밀어주고 2006년부터 2008년의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 총선에선 반대편인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들어와서 집권 초기 독선정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에 표를 몰아줬고, 그 이후 보궐선거에서는 여당의 승리를 안기면서 균형투표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성향을 감안하면 앞으로 어떤 정치세력도 밀어붙이기식 정치행태는 상충적 유권자들의 지지 이탈은 물론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하는 독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충적 태도의 국민은 일관된 태도의 유권자 보다 이슈별 정책태도가 시기와 상황에 따라 훨씬 유동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의 정치적 지지와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념적 선명성이나 강력한 정책적 카리스마보다는 여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응성과 책임성의 가치가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즉 정책의 내용에 대한 지지 뿐 아니라 소통의지와 방식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정지지율을 유지하면서도 세종시 수정안 등 핵심 국정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실패한 주된 이유로 소통의 부재를 지적한 여론이 높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결국 교조적 인식틀에서 벗어나 이념적 유연성, 화합의 리더십, 소통 능력이 다가오는 정권교체기의 핵심키워드이자 핵심 가치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각 정치세력이 펼치는 이념적 색채 조정 작업과 정치적 행보가 어떤 결실을 맺을 지 전망함에 있어 이 세 가지 핵심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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