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화 이후 집회 시위 어떻게 달라졌나? 민주화 20년 시위양태의 변화

 

(1) 건수와 거리시위 비중 : 집회건수는 줄었지만 거리시위 비중이 높아져

 

• 1997-8년 IMF 거치며 증가하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다시 감소. 2007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서

• 집회시위 중 거리시위가 차지하는 비중 커져 : 촛불시위 등 일상화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에 보도되는 시위건수는 줄고 있지만 그 중 가두시위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대 말까지 집회시위 관련보도가 집중되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이 1988년부터 2007년까지 중앙일보 ∙ 한겨레신문 ∙ 주간조선 ∙ 시사저널에 실린 시위보도 7,431건을 분석한 결과다.

 

1980년대 후반에 집회시위 보도가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문민정부 초기에는 급격히 시위관련 보도가 줄었다. 그러나 1996년부터 IMF 사태가 발생한 1990년 대 후반 다소 늘어나는 추세다. 노동법개정에 반발한 노동계의 총파업과 IMF 당시 대량 해고 사태가 시위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이후 시위건수가 차츰 줄다 시위건수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로 돌아섰고 노무현 정부가 등장한 이후에는 탄핵을 기점으로 다시 수그러드는 양상이다.[그림1]

 

민주화 초기인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집회시위 중 가두시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슈에 따라 늘고 줄고를 반복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꾸준하게 가두시위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추세가 반전된 것은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전개된 각종 시위와 12월의 촛불집회로 인해 2002년에는 언론에 보도된 집회시위 중에서 거리행진이나 가두집회의 비중이 72.8%에 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시위 중에서 가두집회나 가두시위가 차지한 비율이 평균 75.2%에 달한다. 그 후 다시 하락하다 2007년에는 80년대 말부터 90년 대 초반 민주화 초기 다양한 이해관계 표출되던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기에도 50%대를 오락가락 했을 뿐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가두시위 비율이 1998년, 1999년에 32.6%, 33.2% 정도였고, 2000년 2001년에는 12.9%, 16.2%에 그쳤다.[그림2]

 

노무현 정부시기 가두집회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은 2002년 사망한 여중생을 추모하는 첫 대규모 촛불 집회 이후 대규모 촛불시위나 가두집회가 일상화된 결과로 보인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시위, 2004년 대통령탄핵 반대시위, 2006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등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 마다 대규모 가두집회 및 촛불집회가 등장하였다. 심지어 2005년 북한인권을 촉구하는 보수진영의 집회에서도 촛불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림1] 1988~2007 시위보도 건수 및 거리시위 비율(case=7431/5529)

 

주1: 1988년은 한겨레신문 창간 이전 시점으로 중앙일보 및 월간조선에 실린 보도분석 결과이다.

 

[그림2] 정권별 시위장소 분포 변화(%, 1988~2007, case=5529)

 

(2) 시위 주체 및 목적의 변화

 

• 화이트칼라가 주도하는 시위비중이 가장 높아

• 사회적 약자 층이나 사양산업(농축산/수/어업) 종사자 시위 비중 낮아져 항의의 정치에서도 소외되는 현상

• 80년대 운동의 주력군, 청년학생 주도 정치시위 비중 급감

 

1) 시위주도층의 변화(1988-2007)

 

민주화 이후 집회시위, 넥타이 부대 ∙ 생산직 노동자가 시위 주도

1988년~2007년까지 집회시위 6553건을 분석한 결과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사무관리직 시위 비율이 25.1%로 가장 많았고, 생산직 근로자 주도의 시위가 22.9%로서 노동자들이 민주화 이후 집회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그 뒤를 청년학생(20.4%), 지역주민 및 소비자(12.8%)가 잇고 있다. [그림3]

 

시기별로 봐도 화이트칼라 노동계층이 주도한 시위가 22~28%대로 꾸준하게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의 시위는 김대중 정부 시기에 37.8%로 급상승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정부에서는 16~21%에 머물렀다. IMF직후 대량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이들 계층의 시위가 급증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화를 주도했던 청년학생 계층의 경우 전체 종합결과로는 20.4%로 여전히 높은 순위에 올라 있지만 최근 그 영향력은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시기 각각 이들이 참여한 시위가 전체 31.5%, 21.4%에 달했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9.6%, 9.3%에 그쳤다.

 

대신 공공부문 종사자(공무원, 군경, 공기업 종사자)나 장애인 ∙ 여성 ∙ 외국인노동자 등 소수자를 대변하는 시위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시기 각각 3.2%, 2.6%에 불과했던 공공부문 집회나 소수자 집회가 노무현 정부 시기를 거치면서 둘다 8.2%대로 상승했다. 전체 평균을 보면 공공부문 종사자 집회가 5.6%, 장애인 ∙ 여성 ∙ 외국인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5.1%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사양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농축산업 ∙ 어업 종사자들이 주도한 집회건수도 4.8%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들어와서는 3.3%로 내려갔다.[그림4]

 

선진민주주의의 정치참여의 딜레마 : Unequal Voices

정치적 능력 갖춘 고학력 층이 시위를 주도, 소외계층은 시위에서도 소외

이러한 패턴은 한국 고유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서구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가 정부나 의회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소위 ‘대의제의 위기’가 확산되면서 시위가 같은 비전통적 방식의 정치참여가 줄지 않을 뿐 아니라 교육수준이 높고 정치적으로 각성되어 있는 중산층과 인텔리층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딜레마는 집회시위와 같은 비제도권 정치에서조차 중산층이나 인텔리 층이 주도할 때 정작 사회적 약자 계층/소수자 이익이 과소 대표된다는 점이다(APSA Task Force Report 2004; Russel J. Dalton 1996). 중산층이나 인텔리 층은 제도정치(정당 ∙ 이익단체 ∙ 선거) 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여유를 보유하고 있지만, 낮은 교육수준의 하위계층이나 소외계층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할 수단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다. 집회시위조차 불균등한 목소리를 갖게 될 때 정작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시점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림3] 1988년 ~2007년 집회시위 주요 참가자의 직업 분포(%, response=6553)

 

주1: 직업적 시민운동가는 2004년부터 조사 결과

주2: 다중응답분석(multiple response analysis), response 기준 분석

주3: 자료없음 case는 제외

 

[그림4] 정권별 시위주도층 구성 변화(%) (1988~2007, response=6533)

 

사무직/관리직 시위 꾸준, 생산직 시위 줄고

 

80년대 시위 주역은 지고

 

공공부문, 소수자 운동은 기지개

 

주1: 다중응답분석(multiple response analysis), response 기준 분석

주2: 자료없음 case는 제외한 시위건수 중 차지하는 비율

 

(2) 무엇을 위해 누구를 대상으로 싸웠나?

 

• 노동조합 : 물질적 보상 목적으로 한 이익단체 성격 강화, 경제이슈 시위(물질적 보상경제적 문책) 42%로 가장 높아 

• 전문직단체 ∙ 학생 : 80~90%가 정치 이슈 관련 시위(정책 반대 ∙ 정치적 책임 요구)

• 지역운동단체 : 71.4%가 정치이슈 시위, 23%가 경제이슈

 

정치적 시위 58.5%, 경제적 시위 41.5%

1988년부터~2007년까지 진행된 시위의 성격은 역시 정치투쟁 성격이 강했다. 분석대상이 된 2,467건 중 58.5%가 특정 정책에 반대하거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등의 정치이슈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머지 41.5%가 물질적 보상이나 일반적인 경제적 요구, 경제정책 수정요구, 경제정책 실패 책임 문책요구(사퇴) 등 경제이슈였다.[표1, 그림5]

 

화이트칼라 전문직 단체가 정치투쟁 이끈다

시위의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화이트칼라층의 전문직 단체들은 경제적 문제보다 정치적 이슈로 집회시위를 이끌고 있다. 특정 정치인의 사퇴 등 정치적 책임을 묻는 시위가 47.6%, 정책적 차원의 항의시위가 그 다음이었다(42.4%).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거나 특정 경제정책의 변화, 일반적인 경제이슈를 위한 시위는 다 합쳐도 10%에 못 미친다. 청년 ∙ 학생단체나 지역운동단체의 경우도 전문직 단체와 동일한 패턴을 보여준다. 정치이슈 관련 시위가 많고 압도적으로 많고, 경제이슈 관련 시위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 청년 ∙ 학생단체의 경우 경제이슈 관련 시위가 19.0%였고, 지역운동 단체의 경우 28.6%에 불과하다. 이들 단체들의 경우 정치적 편향의 문제가 제기된다. 구성원들의 생활 ∙ 경제적 이익 실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조의 이익단체화 강화, 54.5%가 경제적 목적의 시위. 정치시위 비중도 적지 않아

한편 80-90년대 정치투쟁을 이끌었던 노동조합은 이제 상당부분 이익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이들이 주도한 시위가 내건 요구를 분류해보면 물질적 보상 요구가 29.5%로 가장 높고, 경제정책 변화나 경제정책 결정의 책임을 요구하는 건수가 12.2%, 일반적인 경제적 차원의 요구가 12.8%로 경제이슈가 절반(54.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정치적 정책에 대해 반대(23.3%)하거나 그 정치적 책임을 요구(22.3%)하는 등의 정치적 시위는 45.6%로 여전히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 타겟, 기업대상 시위가 뒤를 이어

정치투쟁 우위가 유지되면서 시위의 대상도 주로 정부나 정치권(국회)/지방정부에 집중된다. 2007년 한 해만 보더라도 정부를 타겟으로 한 시위가 30.1%였고, 국회나 정당을 대상으로 한 시위가 17.4%였다. 한편 IMF이후 크게 급증했던 기업을 타겟으로 한 시위 비율은 2000년대 들어와 줄어들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7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시위는 전체 6207건 중 13.1%로 정부와 정치권의 뒤를 이었다.[그림6]

 

[표1] 시위 주요단체별 시위요구 특징(빈도/%)

 

[그림5] 1989년 ~2007년 집회시위 주요 주도/참여 단체별 요구사항(case=2467)

 

주1: 다중응답분석(multiple response analysis), response 기준 

주2: 자료없음 case는 제외

주3: 각 수치는 아래 표(백분율) 의미

 

[그림6] 1989 ~2007 집회시위 대상 비율 추이(%, case=6207)

 

 

2. 민주화 20년, 성숙한 집회시위 문화를 위한 제언

 

• [시위 3대속설] 요구수용 = 시위규모 × 시위기간 × 시위강도(불법시위)

• 많이 모이고, 오래 싸우고, 불법 시위일수록 수용율 높아져, 갈등의 사회적 비용 높여

 

거칠게 많이 오래 외쳐야 요구 관철한다는 속설

 

20년간 시위보도를 분석해보면 시위와 관련한 3대 속설이 그대로 적용된다. 많이 모여 목소리 거칠게 오래 외쳐야 요구 관철 가능성이 높다는 것.[그림7],[그림8]

 

우선 시위 규모를 살펴보면 조사 사례 중 200명 이하가 참석하는 소규모 집회가 52.6%, 200명~2000명 규모의 중간규모 시위가 32.0%, 2000명 이상이 모이는 큰 시위는 15.4%에 불과하다. 그만큼 사람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지난 20년 간 200명 미만이 참여한 집회의 요구가 실현된 비율은 27.6%, 200~2000명 규모일 때 37.6%지만 2000명 이상이 모일 때는 41.3%까지 상승한다.

 

시위기간이 길수록 요구수용률이 높아진다. 시위의 지속기간을 보면 1일 이내 집회가 74.9%가 주를 이루고 있다. 2일~일주일간 지속되는 집회는 전체 4018건의 시위 중 10.9%에 불과하다. 일주일을 초과하는 장기시위도 14.3%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두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 장기 시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그 만큼 요구를 관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일 미만 단기 시위에서 요구가 수용된 것으로 보고된 사례는 20%에 불과하지만 일주일간 끌면 44.1%로 두 배이상 높아진다. 일주일을 초과하는 장기시위에는 68.5%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장기시위와 대규모 시위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일주일을 초과하는 장기시위의 경우 노태우 정부시기 14.1%에서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시기 25.6%까지 상승한다. 그러나 IMF 이후 장기시위에 눈총이 따가워져 김대중 정부시기에는 장기시위가 4.7%에 불과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15.9%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태우 정권 시기 11.9%, 김영삼 정부시기에는 15.5%에 머물렀지만, 김대중 정부시기에는 21.5%, 노무현 정부시기에는 20.6%로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7] 규모와 지속성(1988~2007, %)

 

               (1) 규모(case= 4270)                      (2) 지속성 (case=4018)

 

[그림8] 규모와 지속기간에 따른 요구 수용률 차이(1988~2007)

(%, 규모 = 1196, 지속기간 case= 1439)

 

[그림9] 2000명 이상, 일주일 초과 시위 비중 변화

(%, 규모 case=4018, 지속기간 case=4270)

 

 

• 불법시위가 더 잘 통한다는 속설

• 합법시위의 인센티브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

 

불법 시위의 경우 법질서를 교란하고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노태우 정부 때 불법시위 비중이 43.5%을 기록한 이래 김영삼 정부 시기 21.2%, 김대중 정부시기에는 14.9%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시기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서 22.7%까지 상승하게 된다.[그림10]

 

김대중 정부 불법시위에 대해 가장 강경, 노무현 정부 가장 유화적

불법시위는 강경진압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로 인해 민주화 이후 각 정부는 강경진압에 보다 신중을 기하고 있다. 노태우 정권 시기 불법 여부를 막론하고 강경 진압한 비율은 24.1%다. 김영삼 정부시기에는 13.1%였고, 김대중 정부(10.6%)와 노무현 정부(10.3%)가 강경진압으로 대응한 비율이 가장 낮은 편이다.[그림11]

 

그러나 불법시위에 대해서는 대처방식에서는 달랐다. 민주화 직후 노태우 정권은 불법집회에 대해서 강경 진압한 비율이 55.8%였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는 67.4%에서 71.1%로까지 높아진다. 두 정부에서는 불법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처를 한 셈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불법시위에 대한 강경개입 비율이 35.6%로 크게 떨어진다. 노무현 정부에서 불법시위가 용인되었다는 비판에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이다. 그러나 불법시위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법시위가 더 잘 통한다는 믿음이 문제

합법시위 문화가 정착되기 힘든 요인 중의 하나는 불법을 불사하며 큰 목소리를 내야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1425건의 시위보도를 분석해보면, 합법시위에서 요구가 관철될 확률은 28.2%에 불과하지만 불법시위의 경우 42.4%로 훨씬 높다.[그림12][표2]

 

정권별로 보면 불법시위 건수가 가장 많았던 노태우 정권 시기에 불법시위의 요구관철 비율이 62.8%로 가장 높았다. 합법시위 요구가 관철된 비율이 33.5%에 그쳐 이 시기에는 불법시위를 해야 요구를 들어준다는 법칙이 생길 법 했다. 김영삼 정부시기에는 불법시위 시 요구실현률 35.0%, 합법시위 시 33.5%로 불법시위의 인센티브는 크게 줄어들었다. 김대중 정부시기에는 불법시위 요구실현 비율이 24.6%로 합법시위 시 요구실현 비율인 29.3%보다 낮아 합법시위의 매력이 커졌던 시점이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불법시위의 요구관철 비율은 28.8%로 다른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합법시위의 요구관철 비율(21.9%)에 비해서는 잘 통했다고 할 수 있다. 불법시위의 인센티브가 유지되는 한 대응강도를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불법시위 회수를 줄이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힘들다. 오히려 대응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대응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합법시위의 인센티브를 강화함으로써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림10] 정권별 불법시위 비중 변화(%)(1988-2007, case=5161)

 

[그림11] 정권별 전체 폭력진압율과 불법시위 폭력 진압률 비교(%)

 

주1: 폭력진압률 case=5018, 불법시위 폭력진압율 case=3954

 

[그림12] 시위형태별 요구수용율의 차이(%) (1988-2007, case=1425)

 

주1 : 합법시위 (합법+불법이었다 합법), 불법시위(불법+합법이었지만 불법이었다)

주2 : 1989~2007 데이터만 보면 합법시위시 요구수용 비율은 26.2%, 불법시위 시 요구수용 비율은 31.2%로 격차가 줄어든다.

 

[표2] 정권별 시위형태별 요구수용도 비교(%)(1988-2007, case=1425)

 

 

• 타협과 갈등조정 문화가 절실하다

• 협상과 조정 시 요구 관철비율 80~90%, 최선 대신 차선의 지혜가 필요

 

불법시위로부터 초래되는 법질서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대응강도를 높이는 것 못지 않게 사회적 갈등과 이익의 충돌이 극단적인 거리의 정치로 돌변하기 전해 예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합법시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갈등과 이익의 충돌을 중재하고 타협시키는 제도와 문화를 시급히 구축하는 것이다. 민주화 과정 및 이후 한국사회는 이념적 ∙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타협과 조정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심지어 기회주의로 매도되기도 한다. 민주화 성년을 넘어선 한국사회에서 이제 협상과 갈등조정을 통해 성숙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시점이 되었다.

 

조사결과 지난 20년간 집회와 시위 과정에서 당사자간 협상이나 제3자에 의한 조정 시도는 매우 낮았지만 그 효과는 기대이상이다. 우선 보도된 시위 2375건 중 당사자간 협상이 이루어진 비율은 83%였고, 협상이 진행된 사례는 17%에 그쳤다. 조정시도를 하지 않은 건수는 무려 89.7%였고, 조정시도가 이루어진 경우는 10.3%였다. 협상의 경우 노태우 정부 시절에 30.5%에 달했던 것을 제외하면 이후 10.7%~14.0% 대에 머물렀다. 조정의 경우 노태우정부시절 14.9%였지만 김영삼, 김대중 정부로 들어오면서 10%에 못 미치다 노무현 정부시기에 다시 14.0%로 상승하고 있다. 절대적 수치로 보면 집단행동에 대한 협상과 조정의 관행이 거의 자리잡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시위에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 간 협상이 이루어질 경우 시위의 요구안이 전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수용된 비율은 무려 92.7%(전면수용 35.5%, 부분수용 52.3%, 수용 약소 5.0%)에 달했고 전혀 수용되지 않은 경우는 7.3%였다. 반대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시위 참가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경우(전면수용 4.6%, 부분수용 8.5%, 수용 약속 0.6%)는 13.8%에 불과했다. 한편 제3자에 의한 중재나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도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비율은 전면 수용 34.9%, 부분 수용 47.7%,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경우가 2.7%로 총 85.2%에 달했다. 조정이나 중재노력이 없을 경우 시위참가자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는 비율은 15%(전문수용 5.0%, 부분 수용 9.4%, 수용 약속 0.5%)에 불과하다.

 

물론 부분수용이나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경우 애초 참가자들의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정이나 협상을 시도하지 않은 경우 전혀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비율이 85%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정 혹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이면서도 바람직하리라고 판단된다.

 

협상과 조정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배척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이유가 크다. 신뢰가 무너진 조건에서 상대의 이익은 나의 손해라는 제로섬적 사고가 팽배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만을 주고 받다 실력행사로 들어갔던 것이 그 간의 모습이다.

 

상호불신으로 인해 서로 배신해서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는 것은 민주화 20년을 맞이한 한국 민주주의로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최악보다 차선을 택하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림13] 조정 및 협상시도 비율(%)(1988-2007)

 

주: 협상 여부(case=2375), 조정 여부(case=2224)

 

[그림14] 정권별 협상 및 조정 시도(%) (1988-2007)

 

   (1) 정권별 시위 중 협상 비율(case=2375)          (2) 정권별 시위 중 조정 비율(case=2224)

 

[표3] 조정 및 협상 시 요구 수용율 차이(1988~2007, %)

 

[그림15] 협상 및 조정중재 시 요구수용도 차이(%)(1988-2007)

 

(1) 협상 여부에 따른 수용도(case=1539)   (2) 조정중재여부에 따른 수용도(case=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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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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