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한국인의 핵무장 요구 증대

 

지난 수년간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한국 국민의 자체 핵무장 지지율은 70% 내외를 기록했다. 이웃 일본 국민의 핵무장 지지가 20% 이내라는 점을 본다면, 매우 높은 지지율이 아닐 수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의 한 여론조사(2022.5)에서 “제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핵무장을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지지 여론이 63.6%를 기록한 것을 보면 국민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지지는 상당히 공고해 보인다(아산정책연구원 2022).

 

보통 한국인은 북한의 핵위협 때문에, 다시 말해 ‘안보’ 동기 때문에 핵무장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은 핵으로만 억지할 수 있다.” “미국 핵우산을 믿을 수 없으므로 핵무장해야 한다” 등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 국민이 핵무장을 지지하는 동기는 복합적이다. 상기 아산 여론조사를 보면, 핵무장을 원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의 32.1%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를 선택했고, 33.7%가 “주권 국가로서 핵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서,” 33.4%가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서”를 선택했다.

 

이 수치를 보면, 한국민은 핵무장 3대 동기(안보, 정치, 위신) 중에서 ‘위신’을 매우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냉전기 들어 1995년 핵비확산조약(NPT)이 영구 연장된 이후 국제사회, 특히 시민사회에서는 핵무기가 갖는 무차별적인 대량살상과 항구적인 환경파괴 특성으로 인해, 반평화적, 반인류적, 반환경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퍼졌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 내에서 반핵무기 정서는 크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왜 핵무장을 지지할까? 사실 한국인들의 핵무기에 대한 높은 관심과 지지는 북한 핵무장 시대를 앞선다. 한국은 국가 규모로 ‘중소국’이며,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끼인 국가’이다. 결국 한반도는 강대국 정치로 인해 분단되었고, 한국은 건국 이래 항상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과 북한의 안보 위협에 시달렸다. 냉전기 한국은 국가생존을 위해 핵 초강대국인 미국과 동맹을 맺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핵무장 대신 핵우산을 선택하고 NPT에 가입했다. 이후 한국은 미국 핵우산의 보호 속에서 정치와 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탈냉전기 들어 세계적인 중견국으로 부상했다. 이런 중소국가, 끼인 국가의 속성과 이로 인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강대국”을 열망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민의 핵무장 동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인식과 일치한다.

 

북한의 경우, 탈냉전기 들어 전통적인 후원 세력인 공산 진영이 붕괴하고 국내적으로 안보 위기, 체제 위기가 심화하자 핵개발을 자구책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후반 마침내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하자,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도 핵무장 해야 하는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전통적인 핵전략 지식에 따르면,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이 약육강식의 무정부적 국제 무질서 속에 있고, 또한 핵 강대국을 동맹국으로 갖지 못했다면 온갖 국제적 제재압박을 무릅쓰고 핵무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 최강의 핵 초강대국을 후원 동맹국으로 갖고, 동맹의 보호 속에서 경제발전에 성공하고 세계적으로 통상국가로 부상했다. 또한 핵개발을 포기하고 NPT 체제에 참여한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국가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핵무장을 위해서 이런 성과를 포기할 것인가.

 

위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인들의 핵무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하지만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통일연구원의 2023년 연례 여론조사를 보면, 핵무장에 따른 부작용(경제제재, 동맹 훼손 등)을 감수하며 핵무장 하겠느냐는 질문에서는 지지도가 약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통계는 한국민의 핵무장 지지가 핵무장의 정치적·경제적 비용에 따라 크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II. 자체 핵무장론의 오류

 

이 글은 국내 핵무장론이 불확실한 핵무장 이익과 한국의 핵무기 개발 역량을 비현실적으로 과대평가하는 한편,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 핵비확산 국제레짐의 실효성, 제재의 효과를 현저히 과소평가한다고 본다.

 

첫째, 핵무장론은 “한국이 적법하게 NPT 제10조 탈퇴조항을 탈퇴하고 핵개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 한국이 NPT를 탈퇴하는 절차에 들어가면, 유엔안보리, IAEA, 미국, 일본, EU 국가, 중국 등 주요 국제기관과 국가의 강력한 비판과 제재 압박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이 실제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을 진행하면, 제재 위협에 그치지 않고 온갖 실질적인 다자적·양자적 제재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한국이 NPT 10조가 규정한 절차에 따라 탈퇴하더라도, 유엔안보리와 주요 이해 관계국은 세계평화, 지역안정,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제재를 적극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한국은 그동안 쌓아 올린 선진국, 중견국, 비핵평화국가, NPT 모범 회원국, 원자력 이용 모범국가의 국제적 지위에서 순식간에 핵확산 국가, 국제규범 위반국가, 불량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둘째, 핵무장론은 “미국이 한국 핵무장을 묵인하고, 결국 수용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한국이 자체 핵무장과 한미동맹(핵우산)을 둘 다 가질 수 없는 국제정치 현실을 간과했다. 또한 이 주장은 미 정부가 일관되게 핵비확산 원칙을 견지하고, 한국에 대해서 평화적 이용을 위한 농축재처리에 대한 접근마저 철저히 차단한 역사적 경험도 무시하고 있다. 미국은 1945년 첫 핵실험 직후부터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견제했고, 1970년 NPT가 발효한 이후 더욱 엄격한 핵비확산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동맹국에게 핵우산 제공을 조건으로 독자적 핵무장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했다. 심지어 핵개발을 우려하여, 1970년대 중반부터는 농축재처리 시설 비보유국이 새로이 농축재처리 기술을 획득하는 것을 반대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새로운 농축재처리 기술의 유입이 역내 핵확산, 지역 불안정, 군비경쟁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더욱 엄격히 농축재처리 기술 도입을 차단했다.

 

최근 일부 미국 인사가 한국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핵무장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의 주체는 모두 전직 관료들이며,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의 핵개발을 동의할, 심지어 묵인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트럼프 행정부가 핵확산에 다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후속 행정부는 누구든 다시 엄격한 핵비확산 원칙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셋째, 핵무장론은 “한국이 단기간에 핵개발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핵무장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이른 시일 안에, 심지어 1년 내 핵무장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추고 있다”라고 발언했다(2023.4). 그런데 1975년부터 미국이 한국에 농축재처리 기술에 대한 접근을 금지한 이후 국내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었고, 관련 전문가도 없는 실상을 볼 때 1년 내 핵개발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농축 또는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시설을 새로이 건설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최소한 3~5년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넷째, 핵무장론은 “국가생존용 핵무장을 위해 경제제재는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제 제재가 초래할 경제적·외교적 고통은 북한과 이란의 사례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과연 한국이 이런 제재를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우 폐쇄적, 자주적, 자조적 정치경제체제를 가진 북한을 제외하고 국제 제재에 맞서 핵개발을 강행한 사례는 없다. 더욱이 한국은 전형적인 개방적 통상국가로서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특별히 높아 다른 어떤 국가보다 제재에 취약하다.

 

다섯째, 핵무장론은 “미국의 ‘찢어진 핵우산’을 신뢰할 수 없으며, 오직 ‘핵 자강’만이 남북 간 ‘핵 평화’를 달성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핵무장은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 하면 한미동맹은 현저히 약해질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있다. 과연 한국 핵무장의 가치가 한미동맹(핵우산, 주한미군 주둔)의 가치보다 크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동안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 안보, 특히 북한의 침공 억지와 전쟁 방지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미국은 냉전기에 소련의 압도적인 핵위협에도 불구하고, 동맹국에 대한 안보공약과 핵우산을 충실히 제공했다. 최근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화하고 핵위협이 증대하자, 미국은 핵협의그룹(NCG)을 설치하고 전략자산의 배치를 더욱 가시화하며 확장억제를 한층 강화했다.

 

또한 인도-파키스탄 사례를 보변, 핵무장국 간 상호 핵억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수시로 발생했고 핵사용 위험도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남과 북은 분단국으로서 인도-파키스탄 간 안보 경쟁보다 더욱 열악하게 서로 상대방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극단적인 제로섬 안보경쟁, 즉 통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만약 한국의 핵무장 한다 해도, 미국-러시아 간 상호 억지는 막론하고, 인도-파키스탄 간 상호 억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핵 억지 관계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III. 핵잠재력 주장, 소위 ‘일본 모델’에 대한 비판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전문가 중 일부는 자체 핵무장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여, 차선책으로 농축재처리 역량을 획득함으로써 ‘핵잠재력’을 보유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핵 옵션은 농축재처리 역량을 보유한 소위 ‘일본 모델’이다. 그런데 이런 핵잠재력 주장은 일견 자체 핵무장론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한국의 외교안보 현실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실현성도 매우 낮다.

 

첫째, 한일 간에는 원자력 도입 역사와 역량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일본 정부는 일찍이 1950년대부터 자신의 취약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 원자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무한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기대를 받았던 플루토늄과 고속증식로에 기반한 폐쇄형 원자력 시스템의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일본은 1960년대에 농축재처리 기술을 이미 확보했고, 1966년에 원전 1호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1974년 인도가 평화적 원자력 프로그램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이용하여 핵실험을 실시하자, 미국 정부는 추가적인 핵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이미 농축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농축재처리 기술 이전을 철저히 차단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농축재처리 시설과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에 미국의 농축재처리 협력 금지 대상국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은 일본에 엄격한 핵비확산 정책의 적용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에서 일본의 농축재처리 활동에 대한 포괄적 사전동의를 부여함으로써 그 기득권을 인정했다.

 

반면, 원자력 후발국인 한국은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미국이 핵비확산 정책을 강화한 탓에 농축재처리 기술을 추가로 획득할 기회는 놓쳤다. 한국은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농축재처리에 대해 미국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했다. 여기서 “사전동의”는 사실상 금지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도 한국은 농축재처리에 대한 사전동의를 획득하지 못했고. 그 결과 관련 원자력 활동은 여전히 금지된 채로 남아 있다.

 

둘째, 미국은 핵비확산 신뢰성 기준에서도 한국과 일본을 차별적으로 보았다. 미국은 일본을 핵확산 가능성이 낮은 국가로 인식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핵확산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본다. 일본은 1967년부터 “비핵 3원칙(핵무기 보유·생산·반입 금지)”을 유지하면서, 핵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었다.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가로서 국민의 반핵 정서가 만연하고, 핵무장 지지도가 일관되게 20% 이하인 점도 높은 핵비확산 신뢰성의 근거가 된다.

 

셋째, 한국과 일본의 핵 옵션이 각각 지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미국의 인식도 구분된다. 미국은 일본의 농축재처리 역량 보유가 핵무장 욕구를 억지하고, 동북아에서 전략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일본의 농축재처리 역량은 미국의 철저한 통제와 감시하에 관리되고 있으며,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본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농축재처리가 역내 군비경쟁과 핵확산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심지어 전쟁 위험성도 고조시킬 것이라고 본다. 또한 한국이 핵잠재력과 핵 옵션을 갖게 되면, 한국이 독자적인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고 한미동맹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의 농축재처리 획득 기도를 반대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산업용, 민수용 농축재처리 요구를 핵확산 위험성을 이유로 철저히 거부했다. 하물며 ‘핵잠재력’을 위한 농축재처리를 요구한다면, 이를 단순히 반대할 뿐만 아니라 IAEA와 함께 한국의 원자력 활동 전반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크다.

 

IV. 한국의 민수용 농축재처리 추구와 이를 위한 핵비확산 조건

 

오늘날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경쟁, 그리고 AI 혁명 시대를 맞아 모든 국가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무탄소 에너지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가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무탄소 에너지를 제때 충분히 공급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문제를 넘어서 경제안보, 국가안보 문제가 되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시대에 재생에너지가 가장 주목받지만, 한국처럼 지리적·기후적 제약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대량 공급이 불리한 국가에서는 원자력이 핵심적인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원자력은 전 세계 32개국에서 총 413기가와트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원자력과 안정된 에너지 전환(Nuclear Power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보고서(2022.6)에 따르면, 현 화석연료 시대에서 무탄소 에너지 시대로 원활하게 전환하려면 과도기적으로 원자력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특히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급전성(dispatchability)과 확장성의 장점을 갖고 있어, 전환기적 에너지로서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되었다(국제에너지기구 2022).

 

한국은 에너지자원이 빈약한 탓에 일찍이 원자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현재 세계 5위의 원자력 발전국이자 원전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한국은 원자력의 지속적인 활용을 보장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바로 농축재처리 역량의 부재이다. 한국은 원자력 활용 대국 중에서 유일하게 농축재처리 시설이 없고, 관련 기술에 대한 접근마저 차단된 나라이다. 따라서 한국은 핵연료 공급의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가 매우 취약하다. 원전 수출 시에도 다른 원전 수출국에 비해 핵연료 공급보장과 재처리 서비스의 미비로 원전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

 

현재 핵연료 공급은 극소수 원자력 선진국과 핵보유국이 독점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은 러시아의 로사톰(40%), 중국의 CNNC(12%), 영국·독일·네덜란드의 유렝코(27%), 프랑스의 오라노(14%) 등 4개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소수 국가와 기업이 세계 농축시장을 지배할 때, 향후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될 때 이들이 농축 공급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2022) 발발 이후, 미국과 서방 국가는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공급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자신의 에너지 안보가 취약하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농축 역량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는 2028년부터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Prohibiting Russian Uranium Imports Act)까지 통과시켰다. 이에 대항하여 러시아는 미국 및 서방국으로 핵연료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핵연료 공급시장은 미국·서방·일본으로 구성된 서방측의 ‘삿포로 5’, 그리고 러시아·중국으로 구성된 반서방 진영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 현재 농축우라늄 수입의 약 3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향후 미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미국이 우라늄 농축을 자립하게 되면, 미국이 동맹국에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의 구매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러시아가 선제적으로 농축우라늄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자체 농축시설에 설비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고, 원자력 활용 서방국들은 ‘삿포로 5’를 결성하여 농축 역량을 확충하고 있다. 만약 국제 핵연료 시장에서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을 더 이상 구매할 수 없게 되면, 한국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 피해는 대형 원전의 안정적, 지속적인 가동이 위협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미래 원자력을 위한 SMR 개발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은 농축재처리 기술의 부재로 인해 선진 SMR의 개발이 현저히 늦다. 향후 SMR이 개발되어도 한국은 상당 기간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또는 초우라늄(TRU) 핵연료 등 첨단 핵연료를 조달하지 못해 SMR 시대에 뒤처질 우려가 크다.

 

이런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2022년 한미 정상은 “농축우라늄을 포함한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위해 공동 협력”하기로 합의했고, 2023년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 경감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협의와 협력은 아무 진전이 없다.

 

이에 더해, 한국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 국가는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처분하지만, 프랑스, 러시아, 일본, 인도, 중국과 같은 원자력 대국은 모두 재처리·재활용 정책을 선택했다.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하면서, 재활용 또는 직접 처분을 모색 중이다. 직접 처분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처분을 촉진하려면 폐기물의 양과 독성을 줄이기 위한 처리가 필요하다. 또는 SMR용 TRU 핵연료를 만드는데도 재처리 또는 파이로 처리가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이 높은 핵확산성을 이유로 습식 재처리를 반대함에 따라 대안으로 재처리의 일종이나 핵확산성이 낮은 파이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과거 한국의 농축재처리 획득 기도는 번번이 미 정부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반대하는 주요 명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자발적으로 농축재처리시설 보유를 포기했다. 둘째, 미국이 한국에 농축재처리를 허용하면, 다른 나라의 그것을 반대하는 명분이 없어진다. 셋째, 한국 농축재처리의 객관적인 필요성과 경제성이 의문시된다. 넷째, 한국의 농축재처리 보유는 북한 비핵화 외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다섯째, 한국은 과거 핵개발 시도 이력과 국민의 높은 핵무장 지지율로 인해 핵비확산 신뢰성이 낮다. 요컨대, 미국은 한국의 핵개발을 우려하여 그 길을 차단하기 위해 농축재처리를 반대했다.

 

따라서 한국이 지속가능 원자력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농축재처리를 도입하려고 한다면, 이런 미국의 핵확산 우려를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수용 농축재처리를 추진하려면, 국내 정치적으로 핵비확산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민여론에서 높은 핵무장 지지도도 낮추는 것이 선결 요건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평화적 이용, 산업용 원자력 정책의 일부로서 ‘국가 농축재처리 정책’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정책은 농축재처리의 용도와 필요성, 농축재처리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합의와 국가 의지, 농축재처리 도입 일정과 규모, 국가적 핵비확산 의지 재확인, 핵 투명성 제고 조치 등을 포함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한국 농축재처리 반대 논리에 대해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반박 논리를 개발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

 

VI. 참고문헌

 

아산정책연구원. 2022. “South Koreans and Their Neighbors.” June 8. https://www.asaninst.org/contents/south-koreans-and-their-neighbors-2022/

 

윤석열. 2023. “하버드 대학교 윤석열 대통령 연설.” 대한민국 대통령실. 4월 28일. https://www.president.go.kr/president/speeches/UWTpwQnG

 

IEA. 2022. “Nuclear Power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 June. https://www.iea.org/reports/nuclear-power-and-secure-energy-transitions

 


 

전봉근_국립외교원 명예교수

 


 

담당 및 편집:김채린, EAI 연구보조원; 성예나, 인턴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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