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와 대선캠프, 정치권, 미디어, 인플루엔서를 예상 독자로 하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 양극화를 넘어 통합과 공생을 주문하는 ‘차기 대통령을 위한 안내서’를 곧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오랫동안 한국정치를 통찰해온 대표적 지식인들을 모시고 [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로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질 최대 유산으로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를 꼽으며, 촛불 시위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역사청산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시위’에 ‘혁명’이라는 정치적 옷을 입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과제 달성을 위해 국가 권력의 비대화와 개인의 자유 축소,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기 대통령이 지난 정부와 대통령의 실패를 냉정히 성찰하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를 제안합니다.

 


 

I. 대통령의 유산: 민주주의 후퇴

 

전 지구적 현상으로 주목받는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는 차기 대통령이 마주할 커다란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 민주주의는 양극화와 국가 권력의 비대화, 개인의 자유 축소로 후퇴하였다. 촛불 시위 이후 집권한 대통령과 정치 주도층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정부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산적한 정책 과제 – 경제 회복, 일자리 확충, 격차 축소, 복지 확대, 부동산 안정, 한반도 평화 – 등을 추진하는 데 험난한 정치적 조건을 물려받을 것이다. 이 글은 촛불 시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을 점검하며, 당면한 극단적 양극화를 포함한 주요 쟁점들을 돌아보고, 지난 정부와 대통령의 실패를 냉정히 성찰하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촛불 시위가 촛불 혁명이 되기까지: 적폐청산과 역사청산

 

문재인 정부를 엄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2016년 촛불 시위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문 정부가 스스로를 ‘촛불 정부’로 부를 만큼 그 의미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 이행 및 공고화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우리는 촛불 시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87년 민주화 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이행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민주화 이론가들은 지난 세기 70, 80년대 여러 나라에서의 민주화를 권위주의 체제의 집권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합의에 의해 민주화를 성취한 ‘협약에 의한 민주화(pacted transition)’ 라고 특징 짓는다.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군부의 탈정치화를 통한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상호 인정하는 협약에 기초해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러 정치학자들은 민주화 이후 출현한 정당 체제를 ‘1987년 체제’라 부른다. 그해 10월 구체제의 정당 대표와 민주화 세력의 정당 대표 간의 협약으로 ‘민주헌법’이 제정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이행이 실현되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와 이듬해 있었던 제13대 총선(1988년 4월)은 민주주의 이행을 제도화한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였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보수-진보 간 민주적 경쟁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2016년 촛불 시위가 동반한 반정부 시민운동이 당시 대통령(박근혜)의 탄핵을 이뤄내자 보수-진보 간 경쟁체제는 전환점을 맞기에 이르렀다. 민주당 정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2017년)와 2018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구체제 척결,’ 즉 적폐청산과 역사청산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고 그에 따라 향후 정책 방향을 결정지었다. 적폐청산은 박근혜 정부를 포함한 보수 세력이 헤게모니를 누렸던 이전 시기를 구질서로 정의하며 광범위한 민주주의 재건축을 핵심 주장으로 한다. 촛불 시위를 마치 ‘제2의 민주화 운동’처럼 해석하여 한국 정치가 최근까지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복구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견 수긍할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후자, 역사청산이었다. 역사청산은 민주화 이전의 군부 권위주의와 보수 엘리트만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는 식민지 유산의 청산과 반일운동을 군부 권위주의와 보수 엘리트 심판과 연계하는 작업으로, 사실상 한국 현대사를 다시 쓴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의 정신과 가치, 해방 이후 분단국가 건설과 냉전 시기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 결여를 한꺼번에 연결하려는 복합적인 작업이었다. 한국 역사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간과하고 한국 사회를 ‘권위주의 세력과 비권위주의 세력,’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보수와 진보,’ ‘분단에 책임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민족주의자와 반민족주의자’ 등으로 단순화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행위였다.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하자, 80년대 민주화 이후 “촛불 혁명” 이전 박근혜 정부를 포함하는 보수 정부들과 80년대 민주화 이전의 군부 권위주의와 관련된 보수 정부들, 지배 엘리트들이 역사청산과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설정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과거청산과 역사청산을 앞세운 광범한 개혁정책은 두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80년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협약에 의한 민주화”의 파기했다는 점이다. 당시 협약의 대상이었던 권위주의적 보수세력을 청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80년대 민주화이 후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던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라는 사회와 정치의 전면적인 양분화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새로 구축하는 것은 물론, 깊이 양극 분화된 한국 사회를 다시 협력 가능한 범위 안으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촛불 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필연적으로 깊이 분열될 수밖에 없게 됐다. 편 가르기 행태(양극화)가 정치갈등과 정치경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개혁자’와 ‘개혁 대상,’ ‘아(我)’와 ‘피아(彼我)’라는 분류, 양분화 작업 또한 계속되었다. 개혁자가 도덕적인 평가자와 심판자로서 정당성을 주창하고 있는 동안, 사회 한편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풍자적 말이 심판자들의 도덕적 진실성과 권위는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임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심판의 대상으로 범주화된 사람들은 심각한 혼란과 균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는 문재인 정부의 운동론적이고 민중주의적(populist)인 민주주의관을 통해 뒷받침됐다. 문 정부는 촛불 이후 민주주의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응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장려하면서, 운동의 관점에서 ‘민주적 시민 대 기득권자’의 구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제도권 정치에 대한 혐오, 정당정치와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입법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6.10항쟁 기념사에서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위해 (...) 직장과 가정으로 민주주의가 확장되고, 그것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고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을 바로 “깨어있는 시민”, “개념 시민”, “민주 시민” 등으로 호명하고 있다. 그들은 ‘제도 밖에서 행동하는 인민 개념’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정치이론과 정치사를 연구한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Jan-Werner Müller)는 이러한 시민 개념을 ‘도덕화한 反다원주의자’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또는 다른 각도에서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가 말하는 ‘총체적 시민’(total citizen)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 국가’(total state)에 상응하는 현상의 동전의 양면이라 하겠다. 한 개인이 인간의 사적, 공적 생활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은 곧 정치 참여로 온 사회를 정치화하는 “과도한 정치화” (over-politicization)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을 축소하고 다원주의를 허용치 않는 상황,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존립하는 공간이 소멸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III. 국가 권력의 확장과 개인의 소멸

 

문재인 정부가 던진 특정한 민주주의관과 그에 기반한 개혁 과제 추진은 양극화와 더불어 국가 권력의 확대라는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켰다. 국가 권력의 확대는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고 이끌어가는 원리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이기도 한데, 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유주의 문제와 충돌하게 된다. 자유주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 내재한 자유주의의 약함이라는 문제와 관련있다.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와 달리, 한국 사회는 개인의 권리 보호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를 내면화할 정치적 경험과 역사적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민주화 이전 냉전 시기 구체제 하에서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자유주의를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자유주의는 이름만 존재했을 것이고, 계속해서 관심의 대상 밖에 머물렀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냉전 자유주의’를 냉전 이전의 서구 자유주의 이념과 동일시했고, 진보 진영은 자유주의를 냉전과 분단의 기저 이념으로 여겨 부정적으로 해석하였다. 자유주의에 관한 오해는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기반을 갖추지 못한, 혹은 자유주의가 약한 민주주의만을 구현하는 데 그쳤다. 그에 따라 자유주의적 헌법의 효능과 지배를 가능케 하는 이념적 기반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 사회는 통치자나 정부가 법의 지배를 따르지 않는 것을 두고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자의적 권력 행사(tyrant) 또는 전제정(despotism)이라 부른다. 이 말은 서구의 정치사나 현실정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독재나 군부 권위주의라는 말은 널리 쓰여도, 법의 지배 유무를 핵심으로 하는 정부 형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명칭이 없다.

 

한국 헌법은 (모든 헌법이 기초를 두고 있는 제헌헌법을 두고 말한다면) 법조문 상으로는 완벽하다. 당대 최고의 헌법인 미국과 독일 헌법을 이상적으로 취합 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하여 대통령중심제를 이루고 있다. 동시에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정신을 따라 정당의 역할, 사회 경제적 문제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냉전, 분단국가, 전쟁은 개인의 권리 보호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철학과 규범이 설 수 있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여지를 허용치 않았다. 현대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약칭이고, 법과 제도는 그 원리를 이상적으로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의 정치사는 그것과는 커다란 괴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지난 80년대 민주화를 권위주의 체제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자유주의를 회복하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설립하려는 체제변화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민주화는 ‘속에서 누리지 못한 자유주의를 회복하자’라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민중의 소리를 구현하자”는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민주화는 민족 문제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이기도 했다.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뒷받침하고, 그것과 병행했던 민주주의, 민주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민주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최대 정의적(maximalist) 민주주의관”과 친화성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 이해 방식이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촛불 시위를 “촛불 혁명”으로 정의하도록 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이 앞에서 언급한 문재인 정부의 운동론적, 포퓰리즘적 민주주의관으로 이어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취약한 자유주의 조건하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국가(권력)의 확장이라는 조건을 유지하고 실현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권위주의적 위협에 항시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국 이래 한국의 국가 권력은 냉전과 분단국가라는 시대적 조건을 유지하면서 사회와 경제로부터 뚜렷하게 자율성을 누렸다. 더욱이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시장에 국가 권력이 깊이 개입하는 발전지향형 또는 발전주의적 국가(developmental state)를 추구하면서 자율적 결사체 위주의 다원적 권력이 자리 잡기 어려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갔다. 그리하여 법적 규범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좀처럼 스스로 강화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관행은 제1공화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문재인 정부 집권 중 한층 더 강화되었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 권력의 확장과 정당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입법권과 사법권의 취약성은 삼권분립을 약화시키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마치 국가 권력의 행사와 구조 자체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라 작동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화된 조건처럼 보인다. 이 가운데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가 개혁의 주체가 되고 조타수가 될 때, 대통령 권력의 행사와 운영방식은 개인의 일상적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가 권력이 더욱 팽창한 상황 속에서, 시민의 자율적 영역과 사적 생활공간의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IV. 차기 대통령에게 전하는 말: 자유주의 정신은 키우고, 청와대와 정부의 권력은 줄이고

 

차기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커다란 장애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와 국가 권력의 비대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조건하에서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나?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과업에 대해 몇 가지 제안사항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은 자유주의 정신과 법의 지배를 존중하여야 한다. 한국에서도 많이 읽힌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엘 지브라트(Daniel Ziblatt)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붕괴되나> (2018)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법으로 명기되지 않은 두 가지의 권력 행사의 규범으로 “자제”와 “관용”의 중요성을 말한다. 여러 요소들 가운데 저자들은 특히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한다. 하나는 정부 부서 가운데 가장 강력한 부서인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이 다른 두 부서인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해 자신의 권력 행사를 “스스로 자제할 것”을 강조한다. 다른 하나는 정당들 사이에서 적대적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 정당을 “상호 관용”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정부라는 오늘날의 한국 상황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3분의 2에 육박하는 압도적 다수 의석의 정부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입법을 강행한다고 할 때,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은 곧 혼란에 빠지거나 마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마비 현상은 이미 20대 국회와 압도적 수적 우위를 점한 민주당 지배하의 21대 국회에서 쉽게 목격된다. 집권 여당인 문재인 정부 하에서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 권력은 내각의 책임과 역할을 벗어나 청와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정책 분야에서 양극화를 창출하거나 그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저지하려면 차기 대통령에게는 권력 확대를 자제하는 마음가짐이 극히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위해 향유할 수 있는 권력은 인사권부터 예산 배정과 편성, 검찰, 국세청, 감사원,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 관장까지 실로 엄청나다. 그러므로 그에게 귀속된 그/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정책적, 정치적 성과를 얻으려는 유혹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작동하도록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한 권력 행사를 자제하고 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 5년 임기 동안 그럴싸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제시하여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려 하지 말고 청와대 권력을 내각으로 이양하여 스스로 축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민정수석실의 폐지는 이런 노력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대통령과 경쟁 관계에 있는 정당과 비판세력들을 관용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야당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협치’를 강조하며 진보정당과 보수정당, 여야당 간의 협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양극화를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 하에서 협치라는 말은 공허한 언어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치의 조건을 탐색하고, 그것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태도와 규범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협치라는 말은 공허한 듣기 좋은 소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상대 정당, 정치적 경쟁자들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존중하고 관용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자율성, 특히 강력한 대통령 권력을 향유하는 집권 여당이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이 정당 후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이 대통령에 의해 행위하는 조건이 된다면,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등의 양분화는 이제 더이상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회와 경제가 요구하는 것을 ‘대표’하여 ‘민주적으로’ 법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고 그에 진력하기 위해서는 제한적 국가(limited state)를 실현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뿌리를 더 튼튼히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새로이 선출될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 ■

 


 

저자: 최장집_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민중에서 시민으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정치의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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