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 정부는 문화예술 자료를 전면 개방하면 ‘선량한’ 시민들이 그 자료들에 현혹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북한 자료를 전면 개방하더라도 갈등과 혼란은 미미할 것으로, 과도한 두려움과 한국 사회의 총체적 역량에 대한 폄하에서 비롯되는 폐쇄적 방식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방식에 의한 무지를 조장하는 것은 국가보안법과 ‘전략적 인내’라는 의미에 그친다고 덧붙입니다. 북한 사회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정책적 실패를 줄이고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는 첫걸음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한국정부의 선제적 개방 노력은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북한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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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자주 봤던 그 단어, ‘급진 좌경화’가 걱정되는 것인가? 북한의 문화예술 자료(책, 영상, 음악등)를 전면 개방하면 한국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수언론에서 ‘종북’이라며 일부러 부풀리지 않는다면 잠시 소동이 벌어지겠지만 곧 잠잠해질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의 일반 시민들의 삶과 연결될 고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아무리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도 일반시민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관심을 가질 동력이 없다. 일부러 찾아서 실상이 어떤지 확인한다 할지라도 그 텍스트들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끝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에게 북한은 ‘허구인 듯 허구 아닌’ 뜬구름같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한편에서는 북한의 문화예술 자료에 대해 경기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보인다. 지난 4월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출판됐으나 압수조치와 함께 출판사 대표는 9월 1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필자가 전8권 28만원의 고가에 구매를 망설이는 사이 판매금지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과연 다 완판될 수 있었을까? 일반 시민들이 호기심만으로 구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소수의 구매자 대부분은 필자와 같은 연구자들이었을 것이다. 궁금한 점은 그 책을 읽은 일반 시민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反)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을 찬양하거나 선전할(국가보안법 제7조)’ 가능성은 얼마나 됐을까, 거기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믿고 찬양할 ‘남조선 인민’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것이다.

 

과거 한국 정부가 일본의 대중문화예술을 개방(1차 1998.10, 2차 1999.9, 3차 2000.6, 4차 2004.1)하면 한국의 문화산업 전반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북한문화예술의 개방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일본문화예술에 대해 그러했듯 북한문화예술의 선동성과 위험성에 대한 경계심은 실소와 함께 급속하게 사라질 것이다. 상식적 판단을 하는 시민이 그러한 왜곡, 거짓을 믿으려면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 하고 놀라운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실은 북한이야말로 한국 문화예술의 확산을 두려워하고 있다.

 

북한은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야 한다>(『노동신문』, 2021.9.28)는 논설에서 “내부를 변질 와해시키려는 적대 세력들의 반동적인 사상문화침투 책동”에 대응해 “대중을 집단주의 정신으로 무장시키고 정신 도덕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사상교양 사업에 품을 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시드니 사일러 북한담당관의 발언, ‘북한은 내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한국과 지속적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으며, 한국과의 일관된 교류로 인한 비용이 이득보다 크다고 생각한다’에 부합한다. 북한 주민들 중 많이 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반동적인 사상문화’의 산물인 한국의 문화예술상품(특히 TV드라마와 대중가요)를 접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한 사상통제를 강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시도가 성공하리라고 예상하는 이들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징어게임> 역시 북한에서 유통 중일 수도 있다. 탈북자들은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TV드라마의 내용을 상세히 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북한의 현실과는 반대로 소위 한국의 사회지도층조차 북한 이해의 수준은 높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 이유는 일반 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에 대한 무지를 조장한 것은 국가보안법과 ‘전략적 인내’이다.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을 염두에 둘 때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기를 암묵적으로 조장한 것, 혹은 미국의 주요관심사가 아니었기에 방치한 것이 아니라면 북한의 능력과 북한 사회의 운영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정책적 실패이다. 이러한 오류는 현 정부 이전 9년 동안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숙한’(이라 말하고 ‘미숙하기를 바라는’) 김정은에 대한 저항에서 야기되는 내부붕괴를 기다렸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을 지워버린 채 한국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에 유학을 가고 여행을 가듯 북한 사회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런데 자유 왕래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연구자들에게조차 자료 접근과 보관을 매우 불편하게 제한하고 있는 현 상태는 너무 궁색하다. 북한 문화예술 자료를 전면 개방하면 ‘선량한’ 시민들이 그 자료들에 현혹되어 모두 종북‘좌빨’이 될지 몰라 사전에 방지하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모욕적이다. 전면 개방을 해도 그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북한 연구자들뿐이다. 단군 이래 최초로 K-문화예술이 전 세계적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북한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한국 사회의 총체적 역량에 대한 폄하에서 비롯되는 폐쇄적 방식은 시대착오이다. 한국의 시민들을 마치 조련사에게 조련당해 자신의 야수성을 상실한 서커스단의 호랑이로 취급하고 있는 촌스러운 족쇄를 하루빨리 풀어버려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정한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제 그 갈등을 발전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문화적 저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예술 개방처럼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상호개방했을 때 발생할 내부적 충격과 소란의 양상은 누구나 짐작하듯이 북한에서 더욱 극심할 것이다. 따라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동시 개방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먼저 전면 개방할 테니 북한은 가능한 시점에 시작하라고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극적으로 상호개방을 주장하고 선제적으로 개방해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북한의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

 


 

저자: 홍재범_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 대학원 문학예술치료학과 교수를 겸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국어국문학, 철학, 교육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출판한 책들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조선예술>>』(편), 『북한5대혁명연극』(편) 등이 있다. 최근에는 주로 북한의 문화예술과 한류드라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담당 및 편집: 민지윤 EAI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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