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전 국민이 BTS처럼 되는 날...美·中 제치고 한국이 세계 1위 오른다” [송의달 LIVE]

  • 2022-06-12
  • 송의달 기자 (조선일보)

동아시아연구원(EAI·East Asia Institute)은 우리나라 민간 싱크탱크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이다. 외부 평가부터 남다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이 세계 1만여 싱크탱크를 평가해 발행하는 보고서(Global Go To Think Tank Index Report)에서 EAI는 2013년부터 줄곧 60위권에 올라있다. 2020년 조사에서는 세계 67위였다.

이는 국책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16위)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32위)을 빼면 한국 연구기관 중 으뜸이다. 독립 싱크탱크로는 글로벌 순위 42위이다. EAI는 대기업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국내외 중견·중소 기업과 정부·개인의 기부와 지원으로만 경비를 충당한다. EAI의 이사장과 원장은 무보수(無報酬)로 일하고, 9명의 상근 직원 모두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하영선(河英善·75)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는 2002년 5월 출범한 EAI의 산파(産婆)로 활동했고 올해로 만 10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달 7일 낮, 기자는 서울 종로구 사직터널 주변에 새 건물을 최근 마련한 EAI를 찾아 하 이사장을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3시간을 꽉 채웠다.

 

올해 창립 20주년...권력·돈·학연에서 ‘자유’

 

- 20년 동안 EAI가 지켜온 원칙이 있는가?

 

“처음부터 3가지 자유(自由)를 확보하고자 했다. 국내외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자유, 즉 보수·진보에 치우치지 않는 초당파성을 지키고자 했다. 금력(金力)과 학연(學緣)으로부터 자유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재정 사정이 어려워도 재벌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 나이와 지역·소속 대학 등을 묻지 않고 최고 전문가들로 연구팀을 구성하고 있다.”

 

- 2021년도 연례보고서를 보면 총예산이 16억 원 남짓하던데.

 

“미국을 대표하는 브루킹스연구소는 연간 예산 1억 달러(약 1200억 원)에 직원 1000여 명을 두고 있다. 헤리티지재단과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연간 예산은 7000만 달러, 3000만 달러에 달한다. 우리는 미국 모델로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대기업의 독점적 후원 없이 소액 기부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후원회 모델을 택해 성공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미국 이외 나라에선 싱크탱크가 뿌리 내리기 매우 힘들다. 일본과 유럽, 중국만 해도 국력에 상응하는 민간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 EAI가 외형 규모로는 적지만 세계 싱크탱크 순위에서 10년째 6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고 했다.

 

- EAI의 특징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21세기형으로 집단 지혜를 모으는 ‘집현(集賢)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상근 직원을 최소하고 연구주제별로 국내외의 베스트 멤버를 네트워킹했다가 작업이 끝나면 해체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 유목민(nomad)형 싱크탱크이다.”

 

하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내의 연구소나 언론들이 많은 돈을 들여 외국 전문가를 초청해 화려한 국제회의를 열고 있지만, 경비 대비 성과는 대단히 낮다. 우리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행사를 최소화 하는 대신, 국내적으로는 최고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공부 모임을 강조한다. 국제적으로는 세계 일류의 싱크탱크와 지속적인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도 다양한 국내 공부 모임을 진행 중이며, 브루킹스에 이어 하버드의 벨퍼 국제문제연구소(Belfer Center)와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 민간 연구소 중 유일한 英文 북한 사이트 운영

 

- EAI가 진행하는 연구 과제는 어떤 것인가?

 

“크게 다섯 개이다. 첫째, ‘2050년’을 내다보는 안목에서 미중(美·中) 전략경쟁의 미래와 아시아·태평양 신문명건축을 미·중의 대표적 싱크탱크와 공동 연구하고 있다. 둘째, 북한 문제를 보수와 진보의 시각을 넘어 21세기 복합 시각에서 해석하고 풀어 보려 하고 있다. ‘Global North Korea: Zoom and Connect’라는 영문(英文) 인터넷 사이트는 이런 노력을 세계로 발신하는 창구이다. 셋째, 한일(韓日) 관계와 관련해 2013년부터 매년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일 미래대화’를 진행한다. 넷째, 14개국 22개 싱크탱크가 참여하는 ‘아시아 민주주의 연구 네트워크’ 사무국을 맡아 이를 주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중반 세계질서의 중심 화두가 될 기본 개념들을 미래 개념사 연구라는 시각에서 검토하고 있다.”

 

- 왜 ‘2050년’을 내다보는가?

 

“지금부터 30년 앞을 철저하게 예습하고, 고민하며, 준비하지 않으면 21세기 중반 세계 무대에서 빠르게 밀려나 주변에서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1970년대 초 국력이 엇비슷했던 남한과 북한의 현주소를 보라. 두 세대(世代)를 지난 오늘의 세계 무대에서 한국은 세계 최상위 10위권이지만, 북한은 세계 최하위 10위권이 됐다. 1990년대 초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던 일본은 30년 만에 한국과 비슷한 1인당 국민소득을 보여 주고 있다. 한 세대의 미래지향적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다. 30년 후인 2050년을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전략을 짜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30년의 미래지향적 노력 필요..;‘2050년’ 내다 봐야”

 

- 여러 장기 연구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주력하는 것이라면?

 

“21세기 세계질서의 기본 방향을 결정할 미·중(美中) 관계다. EAI는 10년 전부터 2050년대 미·중 관계 속의 한반도를 장기적 안목에서 내다보면서 추적·분석해 왔다. 한·미(韓美)나 한·중(韓中)이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봐서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2050년과 2100년대의 세계질서라는 바둑판을 전망하면서 2020년대의 미·중 관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2050년 미·중 경쟁의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나?

 

“미·중의 전략경쟁은 현재 경제·기술·규범·군사 무대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2050년 미국’은 상대적 쇠퇴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중국을 최대한 배제하고 동맹과 파트너와의 협력을 더 긴밀히 해서 21세기 중반 세계질서의 주도국 위치를 계속 유지해 나갈 전망이다. 이미 미국 GDP의 80%, 미국 군사비의 3분의 1 규모로 성장한, ‘2050년 중국’ 역시 미국의 배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대의 중심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 이사장의 이어지는 말이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는 근대 이래. 보통 100년마다 전쟁을 통해 교체됐다. 새로운 주도국은 역사적으로 ‘질서 형성 국면(局面)→신흥 도전 국가와의 규범 논쟁 국면→치열한 군비 경쟁 국면을 거쳐 결국 전쟁이라는 마지막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핵무기의 등장과 핵전쟁 위험으로 현대 세계질서는 과거처럼 전쟁을 통한 주도 국가의 교체가 어려워졌다. 현재의 미·중 경쟁 관계가 2050년을 앞두고 본격 군비 경쟁으로 치닫는다면, 공멸(共滅) 위기에 직면하게 되므로 조심스레 공생(共生)의 돌파구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美와 동맹이 최우선...中도 세련되게 활용해야”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고 움직여야 할까?

 

“현재와 미래의 세계질서를 동시에 고려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자명(自明)하다. 21세기 중반의 한국은 우선 미국과 동맹이 주도하는 국제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21세기 중반 세계질서의 공동 설계와 공동 건축의 중요한 일익(一翼)을 담당해야 한다. 21세기 중반 세계질서 무대에서 건재할 중국의 역량도 활용해야 한다. 미국 역량을 기반으로 중국 역량을 활용하는 세련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중국 배제 정책 속에서도 인도, 일본, 아세안은 중국을 활용하기 위한 미묘한 노력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이 ‘새로운 문명의 설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근대적 국력 기준인 영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만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복합 시공간에서 근대와 탈근대의 복합력(複合力)을 동시에 키우기 위해, 우리가 상상력의 나래를 본격적으로 펴고 다음 한 세대를 달린다면,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과 함께 무대의 중심에 얼마든지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