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집권 첫날부터 정책을 편다? 오만하고 위험한 태도"

  • 2021-11-30
  •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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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성공한 대통령’은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신기루다. 고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功)도 있다”고 재평가된다. 이마저도 불허되는 대통령도 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위한 조언을 모아 발간했다.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다. 2002년과 2007년·2013년·2017년에도 같은 제목으로 나왔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다. “퇴임 후 성공했다는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에 고집스레 반복한다”고 했다. 그간 대통령 당선인을 염두에 두었다면 이번엔 대통령 후보들과 캠프를 겨냥했다고 한다. 당선조건을 넘어 성공조건까지도 염두에 두고 공약을 제시하고 소통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봐서다.

 

엮은이인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와 28일 오후 만났다. 손 원장은 “후보자들이 좀 참고해 5년을 염두에 두면서 캠페인 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대통령은 안 해본 업종의 최고경영자(CEO)를 하는 것이다. 본인 혹은 몇몇 그룹이 다 하려고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이라면서다.

 

이번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 구조에 보다 밀착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보다 강화된 형태로 나타난 ‘청와대 정부를 혁파하라’는 주문이 그 예다.

 

-대통령 권력에 보다 더 주목했더라.

 

▶강원택 교수=“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유지된다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사회적 분열을 경험했고 대통령으로의 권한은 더 강화된 듯하다. 국민이 체감하는 구체적 정책성과는 없는 상태다. 이런 부정적 현상에 주목하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려고 필자들(9명)이 노력했다.”

 

▶손열 원장=“권력을 나눠야 성공한다는 건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갖는 권한을 나눠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고, 국가권력이 굉장히 비대화됐다는 문제가 두 번째다. (현) 정부가 촛불혁명이라고 규정하며 혁명정부처럼 들어서 개혁한다며 개인의 삶에 국가가 깊숙하게 들어온 측면이 있다. 코로나 요인도 있다. 포스트코로나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모색할 때 경제 아닌 다른 영역 특히 사회에선 국가의 비대화, 개인의 왜소화 이런 건 시대적 과제인 듯하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중앙포토]

 

▶강 교수=“국가가 옛날만큼 전지전능하지 않은데 의식에 시차가 있어선지 여전히 발전국가시대의 인식에 통치자들이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다. 지금 후보자들이 국가 권력을 동원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는데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출발선상에서부터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가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식의 전환이 굉장히 중요하다.”

 

대통령의 성공조건』엔 박정희 대통령 때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한 김정렴 전 실장의 증언도 담겼다. 그 기간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한 게 두서너 번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현 정부에선 매주 월요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열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발언이 중계되기도 한다. 화요일 국무회의보다 더 비중 있게 다뤄질 때도 많다. 천양지차다.

 

-박정희 시대엔 청와대가 말 그대로 비서였다는 의미인가.

 

▶강 교수=“그렇다. 비서에겐 정말 보좌하는 역할을 맡겼고 단기간 처리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만 비서실에 맡겼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 입장에선 매우 현실적으로 박정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18년 동안 통치를 하며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실패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람이다. 행정관료 활용이나 비서실과 행정부 간 관계설정은 잘 했고 권위주의 체제이긴 했지만 일정하게 당의 역할을 잘 끌고나갔다. 지금 대통령이 가진 자원이 굉장히 많은데 그걸 왜 협소하게 하고 더구나 행정부가 가진 수많은 정보와 자원과 인력을 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지는 안타깝다.”

 

-지금은 캠프 인사가 청와대는 물론 행정부까지 진출해 사실상 비공식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이게 공식 조직을 압도한다는 평이다.

 

▶손 원장=“세 가지로 나눠 봐야할 것 같다. 대통령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가 국정을 운영하는 게 맞지만 대신 책임 있게 움직일 권한을 줘야 한다. 공식 포스트, 즉 투명성과 설명책임이 따르는 자리여야 한다는 의미다. 책임을 안 지는 자리인 청와대에 배치하면 비공식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둘째 ‘영원한 캠페인’이라고 선거 캠페인을 했던 사람들이 청와대나 중요한 기관에 들어가서 대통령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5년 내내 캠페인을 하는 식으로 한다. 정책이 이벤트성으로 흐르게 된다. 외교안보에선 대표적인 게 남북 정상회담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자리 사냥꾼’이다.”

 

▶강 교수=“검증이 안 된 사람들이 들어간다는 문제도 있다. 또 권력을 잡는데 능한 사람이 있고 정책을 펴는데 출중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권력을 잡는데 능한 사람이 중용된다. (박근혜·문재인) 두 번의 정부에서 나타났던 똑같은 문제점은 청와대가 매우 동질적인 사람들의 폐쇄적인 구성으로 형성되고 정책결정의 중심에 놓인다는 것이다. 비서다 보니 공적 판단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나 인기·의중을 반영하는데 훨씬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대통령은 인기가 없더라도 장기적인 국가 관점에서 필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되는데 (비서실 중심에선) 절대 그런 게 나오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에선 그래도 연금개혁과 재정건전화는 했었다.

 

▶강 교수=“그래서 정책실장직을 폐지하고 인사수석의 역할도 굉장히 축소하라고 조언했다. 일을 해야 하는 건 행정부고, 중요한 사람은 장관이든 차관으로 임명해서 대통령의 뜻이 정책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하고 국무회의를 활성화해서 거기서 말 그대로 국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모두 중앙정치·의회정치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제도나 체계에 의한 통치가 이뤄져야지, 대통령 개인을 중심으로 한 사조직 중심으로 가게 되면 매우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 (캠프의) 누군가는 집권 이후 제도적 형태의 통치방식에 대해, 대통령이 가진 자원들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알게 모르게 국회로 상당 부분 권한이 넘어갔다는 현실이다. 『대통령의 성공조건』에선 대통령이 ▶정치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 ▶국민을 동원하는 게 득보다 실이다 ▶다수제보다 합의제다 ▶야당과의 협상은 불투명한 게 좋다 등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중앙포토]

 

-다 맞는 말인데 어렵다.

 

▶손 원장=“이번엔 정책여론조사를 했는데 사회정책부터 외교안보까지 제1·2당 사이에 모든 정책에서 국민이 분열돼 있다. 중간이 4이고 (나머지가) 3 대 3이었다. 그냥 ‘저쪽 저런 거는 난 반대’라는 것이다. 의회에서 밀어붙여 통과시킨들 엄청난 사회적 반발이 있을 것이다. 글로벌 현상이라지만 한국 사회에 더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걸 차기 대통령이 명확히 알아, ‘야당을 품고 가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5년 후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해야할 것 같다.”

 

▶강 교수=“두 후보 모두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어서 야당과의 관계를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있다. 그래서 정무수석 등 여야 접촉 창구는 무게감이 있게 가야 한다. 의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성공하는 대통령의 매우 매우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이재명 후보는 며칠 전 입법 강행을 지시했다.

 

▶강 교수=“깜짝 놀랐다. 지방자치단체에선 단체장이 갖고 있는 힘이 훨씬 커 의회를 압박하는 건 해봤겠지만, 중앙정치에선 그렇게는 안 된다.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오만과 권력 독점에 대한 환상이랄까 이런 것들이 처음부터 일을 그르치게 한다. 인수위 단계부터 조심하고 겸손하고 신중해야 한다.”

 

▶손 원장=“인수위 역할 중 하나가 기존 정책의 공과를 가리고 자기 정책을 어디까지 할지 세우는 정책 검토(policy review)다. 바이든을 봐라. 대북·중국 리뷰한 게 1년여 걸려 나왔다. 우리는 점령군이 되어 여태까지 있던 건 다 접어 넣고 새 정책을 들고 오는 것도 모자라 ‘데이 1’(첫날)부터 정책을 편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며 한편으론 오만하고 대단히 위험한 태도다.”

 

-사실 대통령의 일의 복잡성은 더 늘었다. 외교안보적 격변기에다 기후변화란 지구적 문제도 있다.

 

▶강 교수=“대통령에게 ‘나는 무엇으로 기억이 되고 이 시대적 상황에서 나한테 주어져 있는 과제는 뭔가’란 역사적 평가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오만 가지로 바쁘게 지내는 것보다는 몇 가지, 즉 대통령의 어젠다에 집중해야 한다.”

 

▶손 원장=“메가트렌드 즉 전체 큰 흐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어떤 어떤 사람과 부처가 모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큰 흐름을 잡아주는 건 대통령 아니면 누구도 못한다. 안목이 구비돼 있어야 하는데 안 돼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