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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으나, 양측이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습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미국 또한 북한이 핵무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외교·군사 체제보장안을 북한 측에 제시하지 못할 경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하영선 EAI 이사장은 분석합니다. 특히, 1, 2차 북미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탐색전’의 성격이 강했던 바, 3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재자로서의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즉, 한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가도록 설득하는 한편, 미국과 함께 북한의 체제보장과 번영을 위한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최종 합의문을 마련하지 못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북한은 심야 기자회견에서 비핵화를 위한 북한식 계산법을 분명하게 밝혔다. 첫째, 미국이 유엔제재 일부, 즉 민수 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를 해제하면 북한은 영변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양국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 폐기한다. 둘째,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실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을 문서형태로 표명한다. 셋째, 비핵화에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 담보 문제이나 미국이 아직 더 부담스러워 하므로 부분적 제재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기한다. 넷째,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첫 단계 공정이 불가피하며 우리가 제시한 최선의 방안이 실현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다섯째, 그러나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한편, 미국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의 미국식 계산법을 설명했다. 첫째,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만으로 불충분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핵시설을 추가로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영변 핵시설의 폐기만으로는 북한이 원하는 핵심 제재의 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 셋째, 북한은 현재 미국과 다른 비핵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난 한 해 동안 비전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줄어 들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같은 비전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넷째,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면 경제 강국이 되도록 국제지원을 도모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현재의 북한식 계산법과 미국식 계산법이 수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싱가폴 정상회담 이후 국내외 정책당국자와 전문가들 사이에는  두 계산법의 차이가 충분히 조정 가능하다는 낙관론과 전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첨예하게 맞서 왔다. 동아시아연구원은 이 문제에 대한 소박한 낙관론과 비관론의 이분법을 비판하고, 북한은 한미형 완전 비핵화와 다른 북한형 완전 비핵화를 위해서 3단계의 협상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첫 단계에서는 풍계리 핵 실험장과 동창리 엔진 실험실과 미사일 발사대의 자진 폐기를 통한 신뢰구축 조치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유도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는 대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체제보장을 위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식과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시각에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포함한 핵군축 회담을 제안하는 것이다(EAI 논평(2018.6.21)/하영선 칼럼(2019.1.3)).

2차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이 완전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낙관론이나 전혀 합의하지 않았다는 비관론 대신에, 현재와 미래의 비핵화는 신뢰 조성과 상응 조치에 따라서 합의할 수 있으나 북한의 안전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최소 억지체제를 유지하는 과거의 핵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신중론이 결과적으로 올바른 분석이었음을 증명해 줬다. 따라서 영변 핵시설은 상응 조치에 따라 폐기할 수 있으나 미국이 요구하는 추가 핵시설의 신고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은 현재 어려운 난관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리룡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이러한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 미국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하는 경우에도 우리의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마무리했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의 북한식 계산법을 계속 추진하는 한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와 안전 담보라는 상응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말한 것처럼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면 체제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으면서 제재는 심화되어 북한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할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 없이 체제 보장과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는 북한식 계산법을 하루 빨리 새롭게 마련해야 할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 역시 3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위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재의 미국식 계산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이 명실상부한 완전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계산법을 신속하게 마련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외교와 군사의 체제보장 논의를 미국이 한국과 중국의 긴밀한 협력을 받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미, 북중, 남북한 같은 양자, 6자회담과 같은 다자, 유엔 같은 국제 차원의 다중 체제보장 구축 논의가 시급하다. 둘째, 북한이 완전 비핵화의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영변을 포함한 전체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의 신고·사찰·폐기와 상응한 제제 해제와 경제 지원을 진행하는 방안을 국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한국도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선 신중론의 시각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북한식 계산법과 미국식 계산법을 수렴할 수 있는 한국식 계산법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차와 3차의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1차회담은 북한의 3단계 협상 방안에 따라 신뢰구축 수준에서 진행된 것이다. 2차회담은 기존의 북한식 계산법과 미국식 계산법의 수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3차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새롭게 계산법들을 마련하여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따라서 1차나 2차 회담과는 전혀 다른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이 새롭게 완전 비핵화 계산법을 만들도록 최대한 유도해야 하며, 동시에 미국과 함께 북한의 체제보장과 번영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북한 비핵화 방안을 보완하여 3차 회담에서 두 계산법이 수렴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는 빠르게 진실의 순간에 접어 들고 있다. 그 동안의 1차와 2차 회담이 탐색전이었다면 3차회담은 링 위의 모든 주인공들이 승리하는 역사적 만남이 되어야 한다. ■

 

 

■ 집필: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 《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 《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최수이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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