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6월 13일에 치러진 지방선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선거 후 논의는 선거 결과 자체보다는 이것이 향후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정치학에서는 유권자와 정당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변화되고 지속되는 과정을 ‘재편성’이라 일컫는데, 이번 선거로 볼 때 현재 우리 정당체계가 재편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짙다고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박 교수는 정당 간 상대적 균형이 유권자-정부-조직 차원에서 일제히 무너지고 있고, 보수 정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체계적으로 이탈하고 있으며, 기존의 이슈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슈가 부상하고 있음을 그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3일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는 각 17명의 시도지사와 교육감, 그리고 226명의 기초단체장 등을 포함한 4,016명의 당선인을 탄생시켰다. 또한 동시에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하여 12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와 관련된 그 어떤 논의도 ‘지방’ 선거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그려낸 전체적인 그림과 그것이 우리 정치의 미래상에 던지는 의미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통과하고 있고, 지난 선거는 단순히 각급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선거를 넘어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로 읽혔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보낸 메시지를 우리는 아마도 정당정치의 재편성(realignment)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4천여 명의 개별 당선자들보다, 유권자들이 어떤 집합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 정당정치에 어떤 변화를 함의하는가?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탄핵과 남북화해 국면을 통과하는 시기의 잠정적인 당파적 힘의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당히 오랜 기간 장기적으로 지속될 새로운 정당체계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인가?

모든 사회과학 연구들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선거와 정당에 대한 연구가 일반적으로 정태적인 상태를 서술하고 분석하는 것에 보다 익숙하고, 거대한 구조적 변화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이론적·경험적 툴 박스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이번 지방선거가 한국정당정치의 장기적 재편성에 어떤 가능성과 함의를 던지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정당 재편성의 이론적 논의

미국의 투표행태와 선거사 문헌은 유권자와 정당 사이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변화되고 지속되는 과정을 “재편성”(realignment)이라 부른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 재편성이라는 것은 여러 차원에서 존재한다. 예컨대, 키 교수(Key 1955)에 의하면 정당은 조직으로서(party-in-the-organization), 정부 혹은 의회를 구성하는 배후로서(party-in-the-government/legislature),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유권자의 마음속에(party-in-the-electorate) 동시에 공존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가 정당과 정당체제가 재편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단기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며, 이는 단순히 정치인의 집합이나 이들의 상대적 역학관계의 변화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당―그것을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라 부르건 당파심(partisanship)이라 부르건―의 변화까지를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가 “양당제”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의회 내 양당의 상대적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 지지의 분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재편성은 이러한 균형이 모든 차원에서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정당과 유권자와의 애착 관계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존속된다. 유권자들이 정치사회화 과정을 통하여 특정한 정당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정책과 후보를 지지하며, 정치적 실천들을 통하여 이러한 연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계는 반드시 합리적인 정책적 지지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미국의 소수인종은 링컨의 정당인 공화당을, 그리고 미국 남부의 보수적 유권자들은 상당기간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는 그 역사적 기원의 색채가 상당히 바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정책적 입장과 비교적 무관한 것이었다. 미국 선거연구의 바이블이라 할 《미국의 유권자》(The American Voter)는 사실 이렇게 지속되는 정당에 대한 충성심에 대한 연구였으며, 본서에 의하면 미국의 선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정책도, 후보도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당일체감이라는 것이다(Campbell et al. 1960). 

셋째, 이러한 정당과 유권자들의 관계는 때로는 특정한 역사적 환경에서 파국을 맞기도 하며, 흥미롭게도 그 주기는 30년 정도이다. 지면의 제약상 모든 해당 선거들을 다 기술할 수는 없지만, 1932년 미국 선거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된 ‘뉴딜 연합’이 이전까지의 민주당 지지층과는 전혀 다른 대도시 노동자, 소수 인종, 지식인, 남부 백인 등을 아우르면서 장기간의 민주당 정부가 시작된 것은 가장 전형적인 재편성의 사례이다. 이후 흑인들의 지지가 민주당으로 온전히 넘어간 1964년 인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국면, 그리고 종교적 대립이 부각되면서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점하게 된 1994년 선거 또한 재편성이 시작되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중대선거들은 30년 가량의 주기로 일어난다(Burnham 1970).

넷째, 이러한 재편성은 무중력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이슈를 계기로 만들어진다. 새로 부각되는 이슈들은 이전의 이슈들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균열이 기존의 균열구조를 대체한다. 일례로, 미국의 1964년 선거는 이전의 뉴딜 연합이 기반하고 있던 국가복지의 이슈를 인종대립 이슈가 잠식하면서 진행되었다(Carmines and Stimson 1989).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삼위일체 테제: 상당기간 지속되던 정당 간 세력 균형이 정당조직, 정부 내 정당, 유권자 당파심의 모든 차원에서 변화하였는가?
2) 당파심 테제: 유권자들이 내면화하고 있있던 정당과의 심리적 애착관계가 특정 집단의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변화하였는가? 이러한 변화는 구조적이며 지속적인가?
3) 주기설 테제: a) 형이상학적 주기론: 30년 정도의 주기로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반복되는가? b) 경험적 세대론: 30년이라는 기간이 한 세대가 대체되는 기간이라면 어떤 세대론적 변화가 일어나는가? 
4) 이슈 테제: 이러한 변화를 야기할 새로운 이슈가 제기되었는가? 새로운 이슈는 이전의 이슈를 대체할 정도로 강력한가? 그리고 해당 이슈는 지속되는가?

우리는 재편성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가?

이상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현재 한국정치의 전개양상을 평가하고 장기적 예측의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방금 치른 선거를 단순히 기술(記述)하는데 그치지 않고 논의의 결절점들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각 테제들을 중심으로 이번 지방선거를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1) 삼위일체 테제: 유권자, 정부, 조직으로서의 정당 간 균형의 붕괴

사실상 이번 선거에 대한 모든 언론의 비평은 이 질문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비평들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높은 대중적 지지분포가―즉 ‘유권자 내 정당’이―지방정부의 구성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러한 대중적 지지분포와 매우 상이한 국회 내 정당들의 역학관계가 앞으로 변화할 것인가 하는 암묵적인 질문으로 수렴하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이번 지방선거로 드러난 대중적 지지분포가 2년 후인 국회의원 선거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특히 모든 분석들이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를 강조했던 이유는 해당 선거 결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도 해당 선거구가 2년 후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구와 가장 흡사하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물론 같은 이유로, 12명의 보궐선거 결과 또한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가 알려준 것은 유권자들의 정당 지지분포가 적어도 2년 전에 치러졌던 국회의원 선거와 매우 상이한 분포를 보이며 그것이 득표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상당기간 지속되었던 양당제적 대립이나 지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통해 드러났던 유권자들의 다당제적 분포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거의 일당 우위제(dominant one-party system), 혹은 하나의 우세한 다수당과 약한 소수당으로 구성되는 “1.5 정당 체제”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특히 강조해야 할 내용은, 유권자의 진보와 보수 성향 분포가 약 4:6에서 짧은 기간에 6:4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부 내 정당’을 산출하는 과정에서는 매우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번 선거가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중선거구제(기초의회)나 제한적 비례대표제(기초광역의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의 기반에서는 유권자 분포의 변화보다 더 급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여당은 기초단체 226곳 중에서 2/3에 해당하는 151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켰으며, 서울에서는 1곳, 경기도에서는 2곳만을 제외한 모든 지자체를 석권하였다. 경기도 의회의 경우, 129석 중 여당이 128석을 휩쓸었다. 아마 국회의원 총선이 당장 내일 치러진다면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것임은 비교적 명백해 보인다.

정당 조직 또한 선거를 전후하여 매우 빠르게 여당을 향한 구심력과 야당으로부터의 원심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이전에는 후보자를 구할 수조차 없었던 영남 지역에서 경선을 치러야 할만큼 정당 조직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으며, 야당의 경우에는 다수의 야당 간의 분열•경쟁과 당내 책임론 등을 거치며 재정비의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까지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 충분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정당 조직의 상대적 균형은 적어도 지금 상태에서 확고한 1당 우위제인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유권자-정부-조직의 세 차원에서 각 정당들 간 힘의 균형이 명백히 깨졌다는 점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분포보다 여당이 압도적으로 대표되는 지방정부가 구성되었고, 이는 정당 조직의 상대적 균형 또한 더욱 심각하게 무너뜨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야당들이 적어도 소선거구제를 벗어나는 정치관계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며, 여당의 경우에는 이전까지 옹호하던 비례대표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유인이 존재한다.

(2) 당파심 테제: 한국의 유권자들은 변화하였는가?

보다 자세한 유권자 수준의 연구가 진행돼야 하겠지만, 유권자들의 정당일체감이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이것이 특정한 전기를 맞아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는가 등의 문제들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정당들이 끊임없는 당명 변경이나 합당과 분당을 통하여 매우 ‘유동적’인 정당체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근본적으로 유권자들이 ‘나의 정당’이 어디인지를 찾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단기적인 이슈나 정책, 그리고 후보 특성과는 상당히 독립적으로 자신이 애착심을 갖고 있는 정당을 기반으로 투표했던 것으로 이해된다(박원호 외 2014). 그 토대가 지역주의나 경제정책이었건, 혹은 권위주의에 대한 태도나 세대였건 간에 이러한 유권자들의 정당에 대한 애착심이 상당기간 지속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며 우리는 이 체제를 ‘87년 체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특정 집단, 특히 보수정당 지지층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나의 정당’을 포기하고, 군소 보수 정당, 혹은 여당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가설적으로 한국의 보수정당이 3당 합당 이래 구성하고 있던 연합, 즉 발전국가 보수와 시장주의적 보수가 박근혜 정부 집권시기를 통하여 더 이상 동거가 불가능해진 측면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강원택 2017). 수도권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높은 비교적 젊은 유권자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더 이상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으며 차선으로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결과가 존재한다.

셋째, 이러한 보수정당으로부터의 ‘이탈’이 단기적인지 혹은 장기적인지에 따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정당체제의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러한 이탈이 2016년에 이미 감지되었고(박원호 2016), 촛불과 탄핵을 통해 구체화되어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났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든 논의를 위한 자료가 모두 수집되고 분석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런 변화가 단기적인지, 지속될 것인지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몇 번의 선거를 더 관측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2016년 이래 상당기간 동안 보수정당으로부터의 이러한 이탈이 가속화되고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3) 주기설 테제: 세대론의 다른 이름인가?

사실 미국 선거 문헌에서 재편성이 왜 30년을 주기로 일어나는지에 대한 심각한 논의는 없다. 다만 한 세대가 완전히 소멸하고 새로운 세대로 대체되는데 약 30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민주주의와 보통선거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의 맥락에서 30년 주기설을 운위하는 것은 물론 섣부른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현재가 “87년 체제”가 시작된 지 30년이 되는 시점이라는 사실이며, 그 기간 동안 한국 인구구성의 세대론적 변화와 일정하게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구의 약 20%를 점하는 2018년의 50대가―‘386 세대’로 더 잘 알려진―10년, 20년, 혹은 30년 전의 50대에 비해 그 정치성향이 현재의 여당과 상대적으로 가깝고 이들이 정치적으로 노화(age effect)되지 않았으며, 전체 유권자 구성비에서도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이다. 40, 50대는 현재 전체 유권자의 40%에 육박하는 반면,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25%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구구성의 변화는 매우 점진적이지만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불가역적이라 할 것이다. 앞서 밝혔지만, 유권자의 당파적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더라도 그것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파괴력은 매우 크다는 사실 또한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진행된 흥미로운 논의는 보수-진보 정당 간 정권 교체의 10년 주기설이다. 정권이 한 정파에서 다른 정파로 이동하면 약 10년 동안―아마 2번의 대통령 임기 동안―국정운영의 기회를 가지게 되고, 해당 기간 동안의 실정(失政)을 통해 다시 반대 정파로 권력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이번 지방선거를 12년 전, 한나라당이 압승했던 2006년의 제4회 지방선거와 병치시키는 분석이 빈번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년 주기설이건 30년 주기설이건 이것이 경험적 검토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보수-진보가 10년을 주기로 정권을 주고 받는다는 가설은 유권자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수반되는 사적 권력의 필연적 부패를 전제로 한 형이상학적 논의이므로 심각한 고려 대상은 아니다. “30년 주기설” 또한 30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함의하는 세대론적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386 세대론’ 못지않게 최근 주목 받았던 논의는 20-30대들의 ‘보수화’에 대한 연구들이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최근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이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며, 이러한경향이 지속된다면 한국 보수정당의 지지 기반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4) 이슈 테제: 새로운 이슈는 무엇인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누면서 현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유권자 연합을 구성하게 한 이슈가 존재하였는가? 이에 대한 가설적 대답은 아마도 첫째는 적폐청산, 둘째는 남북한 화해 두 가지 이슈일 것이다. 학술적 자료 수집과 분석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론적으로 둘 다 상당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정치균열이 지역과 세대를 중심으로 나누어졌다면 이러한 균열을 야기하는 이슈들 또한 분명히 존재하였다. 대표적으로 민주화(혹은 권위주의) 이슈를 들 수 있고, 경제성장(혹은 복지분배) 및 안보(혹은 통일) 또한 한국 유권자들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주요 이슈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슈의 진화와 관련된 정치학 문헌이 지적하는 것처럼, 2018년에 새롭게 제기되는 이슈들이 완전히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 기존의 이슈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면서 이슈 연합의 구성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적폐청산’은 정확하게 말해 개발독재 권위주의 청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며, 전통적인 이슈인 민주화-권위주의 대립의 현재적인 변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화-권위주의의 이슈는 과거와는 달리 촛불과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명확한 반대의 대상을 발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나 개성공단의 일방적 폐쇄 등의 정책적 선택을 통해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미 2016년 총선에서 시장친화적 보수적 유권자들의 이탈을 불러왔다면, 탄핵국면에서 드러난 국정농단은 이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게 했다. 요컨대, 2018년에 의제화된 ‘적폐청산’은 2000년대에 치러진 선거들이나 멀게는 1987년에 치러진 선거에 비해서도 훨씬 더 큰 연합을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안보는 전통적으로 한국 보수정당이 선점한 유리한 이슈였다. 특히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40-50대들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진 20-30대들을 포괄하는 이슈이기도 하였다. 연초부터 급박하게 진행된 남북한과 미국 사이의 화해국면은 안보 이슈를 여당이 유리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도록 도왔다는 가설도 가능하며,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여당도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대통령과 여당이 안보 이슈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 어느 누구도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으며, 오히려 관련된 주요 키워드는 ‘화해’와 ‘공존’이었다. 전통적인 안보 이슈가 국방-통일 이슈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 것이다. 보다 자세한 자료를 통해 검증해 봐야 알겠지만, 한국의 20-30대들이 지니는 북한에 대한 태도의 핵심에는 사실 일정한 무관심과 적극적 경제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정부-여당은 이들이 수용할 수 있는 최소 의제를 찾은 셈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안보 보수’는 오히려 매우 수세적인 입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새로운 이슈에 대한 논의는 매우 시론적(試論的)일 수 밖에 없으며, 실제로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그리고 이들이 앞으로도 한국 선거를 정의할 장기적인 이슈로 남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두 가지 이슈가 가장 강력한 설명력을 지니는 것은 확실하다.

결론을 대신하여: 지금은 언제인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새벽에만 날 수 있는 것처럼 과연 한국의 정당들이 지금 전면적으로 재편성되는 시기인지를 한국 사회과학이 아직 확언하기는 어렵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급격히 동시에 유동하는 길을 통과하고 있는 셈이며,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정당 간 균형이 깨지는 지점은 선거제도 등 룰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을 고려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울러 복잡하고 섬세한 주변의 국제 정세는 또 다른 차원의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의 현재 상황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거칠게라도 가늠해 볼 책무를 지우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나,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를 규정했던 정당체계, 혹은 “87년 체제”가 2016년 말에 시작된 촛불과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어떤 형태로든 변화와 적응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며, 이번 지방선거는 이에 대해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답변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방식은 지금이 정당체계의 재편성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인가, 혹은 우리가 막 지나쳐온 선거가 ‘중대선거’였는가 등의 질문들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 글의 논의에 따르면 그렇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정당들의 상대적 균형이 유권자-정부-조직 차원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있으며, 특히 보수정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의 체계적인 이탈과 불리한 세대론적 전망, 그리고 기존 이슈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슈의 부상 등은 재편성의 가능성을 일깨워 준다.

현재의 변화가 도달할 미래가 바람직한 미래일지에 대한 규범적 논의는 또 다른 차원의 난제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일당우위의 정당정치가 한국에서 가능하고 바람직한지, 지방이 증발된 지방선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이 그 와중에 가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모든 답변의 출발점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며 지금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시점인가 라는 물음일 것이다. ■

 

참고 문헌

Burnham, Walter Dean. 1970. Critical Elections and the Mainsprings of American Politics. New York: Norton.

Campbell, Angus, Philip E. Converse, Warren E. Miller, and Donald E. Stokes. 1980. The American Vot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armines, Edward G., and James A. Stimson. 1989. Issue Evolution: Race and the Transformation of American Politics. Reprint edition.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Key, V. O. Jr. 1955. “A Theory of Critical Elections.” The Journal of Politics 17 (1): 3–18.

강원택. 2017.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의 보수 정치.”《한국정당학회보》16 (2): 5-33. 

박원호. 2016. “중앙시평: 20대 총선과 87년 체제의 재편성.”《중앙일보》5월 27일.

박원호· 신화용. 2014. “정당 선호의 감정적 기반.”《한국정치학회보》48 (5): 119–42.

 


 

저자

박원호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정당학회 부회장,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 한국조사연구학회 연구이사 등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투표행태, 비교정당, 한국정치 및 계량분석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한국사회의 변화를 돌아보다》 (공저),《한국지방자치의 현실과 개혁과제》(공저),《이슈를 통해 본 미국정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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