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미중 패권 경쟁은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패권전이 이론에 따르면 구조적 차원에서는 불균등 성장의 속도와 점진적 적응 여부에 따라 평화적인 패권 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복합적 상호의존 이론은 양국 간 민감성과 취약성이 얼마나 불균형한지에 따라 판이한 전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구성주의이론은 실제 권력과 위신의 괴리 정도가 패권 경쟁의 성격과 강도를 좌우한다고 본다. 손열 소장(EAI 일본연구센터)은 중국 경제성장세 둔화로 미중의 GDP 역전 예상 시점이 늦춰지고 있으며, 양국이 직접적 충돌보다는 제도 수립 경쟁에 집중하면서 경쟁의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패권전이, 복합적 상호의존, 구성주의 등 어떠한 주요 국제정치이론으로 분석하더라도 당분간 미중의 경쟁은 군사보다 경제와 제도 등 연성권력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미중 아시아 태평양 패권 경쟁 속에서 양국이 드러내고 있는 실제 역량과 수사의 간극을 메울 국가로 일본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문

 

"그렇다면 미중 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역전 시기는 언제일까. 2010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중국이 7.5% 성장, 미국이 2.5% 성장세를 지속하고, 위안화가 연 3% 정도 달러화 대비 평가절상될 경우 2019년 미중 역전이 일어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2014년에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골드만 삭스는 2027년에 역전이 될 것이라 전망하였다. 2015년 미 농무부(Department of Agriculture)는 2030년 전망을 내어 놓았는데, 미국이 24.8조 달러로 여전히 1위를 지키는 반면 중국은 22.2조로 미국과의 차이를 좁히고 있으나 여전히 역전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림 1] 참조). 요컨대 시간이 지날수록 즉, 최근으로 올수록 미중 경제 역전 시점이 길어지고 있는데,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여진 속에 나왔다고 할 수 있는 2010년 이코노미스트 전망을 정점으로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즉,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의 확산보다는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추세가 감소하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경제 성장률의 완화와 더불어 미국 경제의 견조한 회복세가 양국 간 경제력 역전의 시점을 늦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력 격차의 축소라는 구조적 추세는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배경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양국 간 경제관계의 상호의존성과 보완성 정도에 따라 갈등의 정도가 완화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신형대국관계’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세력전이에 따른 패권갈등과 전쟁의 양상과 현재 미중 간 관계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전제의 출발점인 것이다. 신형대국관계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상호의존은 상대국이 잘 하지 않으면 자국이 성공할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미국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미래를 써 나가야 한다.”라며 화답한 바 있다."

 

"미중 양국은 상대국 시장에서 직접 경쟁을 벌이는 한편, 아태지역의 경제질서 건축의 주도권을 놓고도 본격적 경쟁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도권 장악 능력은,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자국의 경제력 등 물질적 능력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 경제네트워크의 규칙과 규범, 플랫폼을 설계하는 능력과 연관된다. 즉, 지역 내 정당한 경제질서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능력이라 표현할 수 있다. "

 

"중국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이면에는 미국의 TPP란 강력한 무기에 맞대응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다양하고 화려한 비전과 제안 이면에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에 걸맞는 매력적인 컨텐츠를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RCEP은 주로 관세 자유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구세대형 FTA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추구하는 자유화율 역시 높지 않다. 21세기 무역 현실을 담는 새로운 무역 거버넌스 규범과 규칙 수립과는 거리가 있다. FTAAP도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으며, 일대일로의 경우 인프라 투자가 우선이며 무역을 통한 네트워크 형성은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0월 TPP 협상이 타결되면서 중국은 아태 무역 거버넌스 차원에서 수세에 몰렸다."

 

"트럼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첨단 제조업과 금융부문의 눈부신 성장을 가져온 반면,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로 인해 제조업 부문의 좋은 일자리가 축소되고 서비스 부문의 나쁜 일자리가 양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저임금, 저교육, 저소득 계층이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회생시키는 핵심수단으로 통상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2017년 3월 발표된 미무역대표부(USTR)의 “2017년 무역 어젠다”(2017 Presidential Trade Agenda)는 미국우선(America First)이란 기본 원칙 하에서 (1)무역정책에서 국가주권의 수호, (2)미국 통상법의 엄격한 적용, (3)모든 가용 수단(레버리지)을 동원한 해외시장 개방, (4)새롭고 더 낳은 무역협정의 체결이란 네가지 우선순위를 제시하며 자유주의적 다자규범 보다는 경제민족주의에 근거한 관리무역(managed trade) 활용을 중시하고 있다."

 

"아태지역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미국우선주의와 양자주의(bilateralism)에 기초하고 있다. 양자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의 힘의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미국우선 무역협정을 실현하겠다는 의도로서, TPP 탈퇴는 이런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은 주요국과 양자협정으로 추진하고자 하며 일본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고, 한미 FTA 재협상도 이런 맥락에서 재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아태 지역에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치사슬(value chain) 혹은 생산 네트워크의 원활한 작동을 돕기 위한 메가 FTA 혹은 다자 FTA 추세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 된다. 당장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 정부의 일련의 행보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TPP 탈퇴와 한미 FTA 재협상 요구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공공연한 경제민족주의적 언사는 한일 양국이 동조하는 미국주도 아키텍처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오히려 중국에 리더쉽 획득의 기회를 가져다 주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세계화의 기수를 자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서비스, 상품, 투자, 금융 등 여러 부문에서 개방정도가 낮다는 사실은 중국이 전면적 개방•개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역내 개방무역질서와 경제통합을 주도할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은 저수준의 자유화를 지향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점에서 RCEP은 설사 성사되더라도 지역무역질서를 주도하고 통합력을 제고하는 기제가 되기는 어렵다. 실제 중국의 경우 국제다자규범의 준수보다는 위반의 사례가 빈번하다. 겉으로는 세계화를 천명하면서 정경분리 원칙을 어기면서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경제보복을 지속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

 

"이렇듯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책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고 중국이 정당한 지역경제질서를 제시하면서 주도권을 행사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은 결국 아태 질서의 공백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일본의 지위 상승이다. 호주와 싱가폴을 중심으로 TPP 11(또는 TPP minus USA)을 대안으로 추진하는 움직임에 중추적 행위자(pivotal player)는 일본이다. 현재 11개 회원국중 최대 경제국인 일본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동력을 받을 수 있으나, 과연 일본이 미국을 제외한 지역다자협력을 주도할 수 있을지, 미일 FTA에 어느정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흥미로운 관찰거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아태 지역의 자유주의적 통상질서 재건을 위해 적극적인 경제외교를 펼쳐야 한다. 현재 미중 양국이 이를 담당할 능력과 의지가 보족한 조건하에서 오히려 한국에게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은 TPP 이후(post-TPP) 통상질서 건축을 위해 RCEP, 한중일 FTA, FTAAP 등을 추진하는 한편 한일 FTA 교섭 재개도 이런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저자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AI 일본연구센터 소장과 지구넷 21회장, 연세대학교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과 국제학 연구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일본정치경제, 통상정책의 정치경제 등이며, 최근 논문으로는 "The Role of South Korea in the Making of a Regional Trade Architecture," "The Abe Effect on South Korea's Trade Policy," "Regionalization, Regionalism and the Double-Edged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