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7월 7일~8일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다자주의의 위기가 또 다시 드러났다고 이승주 중앙대 교수는 평가합니다. 다만, 이번 위기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이끌어 왔던 미국이 독자적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릅니다. 이로 인해,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해왔던 G20에 리더십 공백이 발생했고, 중국과 EU가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이 교수는 분석합니다. 그러나 최근 국제 무대에서 소프트 파워에 기반한 리더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면서, 이미 MIKTA 회원국으로 G20 내 연대를 확보하고 있는 한국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7월 7~8일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다자주의의 위기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번 G20 정상회의는 한편으로는 지구적 공공재와 관련해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법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등 주요국의 정책적 내향성이 본격화된 데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테러리즘, 난민, 빈곤, 기아, 보건, 고용창출,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성 불평등을 포함한 여러 문제들을 지구 공동체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이에 대한 공동 대응책을 논의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 개별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근간이라고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G20 정상회의는 창설 이래 프리미어 포럼(premier forum)으로서 세계 주요 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G20 정상회의는 지구적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 원칙을 재확인하였을 뿐, 많은 한계를 드러낸 회의로 기록될 것 같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다양한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긴 했으나, 핵심 쟁점은 기후변화와 무역으로, 동 사안에 대한 합의 도출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예상대로, G20 회원국들은 두 사안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데에서 그쳤다. 미국과 나머지 19개국 사이에 갈등의 축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후변화와 관련, G20 회원국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혁신을 통한 청정에너지 사용과, 에너지 효율성 증진 등을 통해 온실 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적 합의에 대한 재확인은 파리협정 탈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병기함으로써 퇴색되었다. 공동성명에 국가별 기여 방안(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의 이행을 중단하고,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에너지 안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미국의 결정에 주목한다는 표현을 포함한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화석 연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신재생 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을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만 미국 정부가 파리협정을 탈퇴하더라도 미국의 각 주(州)와 시(市),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의 언명은 음미할 만하다. 이는 파리협정이 앞으로도 또 다른 우여곡절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구적 노력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상이한 입장의 어색한 동거는 무역에서도 반복되었다. 공동성명은 호혜적인 무역과 투자 프레임워크와 비차별 원칙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보호주의를 퇴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기존 입장을 유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불공정 무역 관행을 근절하고, 정당한 무역 방어 조치를 인정한다는 표현을 병기함으로써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였다. 또한 무역과 투자를 위한 우호적인 환경을 촉진하기 위해 동등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을 조성하기로 한 점 역시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G20 정상회의는 세계 주요 현안에 대해 전체의 입장을 조율하여 진일보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들이 주요 현안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분명 다른 국가들도 같은 유혹을 느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개국이 파리협정의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무역의 경우에도, 주요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경제 통합에 대한 국내정치적 반발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자유무역과 투자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아울러, G20 회원국들은 경제적 세계화의 과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여, 경제적 세계화의 기회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포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배가하기로 하는 원칙적 합의를 도출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G20 정상회의는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회의의 성과와는 별개로 프리미어 포럼으로서 G20은 상당한 한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G20 정상회의가 과거보다 합의의 공감대가 현저히 축소된 반면 분열과 갈등이 강화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G20이 프리미어 포럼으로서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G7과 달리 유사한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 회원국들로 구성된 협의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견이 노출되어 왔다. 또한 G20은 갈등의 축에 따라 고정된 진영 경쟁의 양상을 보이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회원국들이 이합집산하는 신축성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 국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회원국들 사이의 이견이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G20 내에서는 위기 의식이 점차 감퇴함에 따라 정책 공조가 약화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중국 정부의 위안화 시장 개입 여부, 양적 완화 문제, 지적재산권 보호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G20 참여국들이 서로 갈등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G20 회원국 사이의 이견과 갈등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G20이 ‘G19+1’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비판은 반쪽의 진실에 불과하다. 물론 갈등의 축이 미국과 다른 국가들 사이에 형성되었다는 점은 곱씹어 보아야 하지만, 과거에도 환율조정이나 토빈세 도입 등과 관련하여 미국이 다른 회원국들과 견해 차이를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함부르크 정상회의를 통해 드러난 갈등은 갈등의 축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것은 없으나, 미국이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부인하는 세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와는 판이하다. 과거에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도전은 미국과 서구 선진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유지보다는 미국의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이를 관리하는 제도로서 역할을 해왔던 G20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 있다.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리더십의 행사라는 점에서 G20은 구조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G20 정상회의는 G19+1이라기보다 ‘G19 vs. 1’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19개국이 지구적 문제에 대한 단일한 입장을 유지하기는 하였으나, 이로써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리더십 공백이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리더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EU와 중국이 파리협정의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큰 성과이기는 하나, 유럽 주요국에서 정책의 내향성이 증가하고 있고, 중국 역시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경제와 안보를 긴밀하게 연계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구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글로벌 거버넌스의 부재를 ‘G-Zero’ 세계로 칭하는 것은 G20의 구조적 취약점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Bremmer and Roubini 2011).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반드시 글로벌 거버넌스 또는 다자주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1세기에 요구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다양성과 신축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협의의 장이 공존하는 ‘G-x’ 시대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Patrick 2013).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 현 상황이 우호적인 국제 환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적 쟁점에 대한 리더십의 약화는 역설적으로 ‘중견국들의 순간’(middle powers’ moment)을 의미할 수도 있다. 국제정치에서 하드파워의 절대적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대국들이 하드파워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비전, 정당성, 설득력 등 소프트파워에 기반하여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등과 함께 믹타(MIKTA)를 형성하여 G20 내에서 연대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와의 연대도 적극적으로 추구하여 G20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이승주
_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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