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G2’로 대변되는 세계 최강국 미중 정상 간의 첫 회담이 4월 6~7일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온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것으로, 양측은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미중 간 협력과 타협의 기회를 모색하는 데 치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였던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측이 사안의 심각성과 상호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해법에 있어서는 입장 차이를 크게 좁히지는 못한 듯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양국 간의 경쟁이 한반도를 둘러싼 ‘기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 ‘비핵화 후 평화공존하는 한반도’가 한국이 원하는 바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정상회담이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라라고(Mar-a-Lago) 리조트에서 개최됐다. 1박 2일간 진행된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첫날 환영만찬을 비롯해 확대정상회담과 실무오찬 등 총 세 차례의 공식 만남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다. 세계 최강국의 강력한 두 지도자의 첫 만남으로, ‘세기의 회담’으로 불리며 개최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향후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모색하는 ‘탐색전’의 의미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느 때와 달리, 이번 회담은 공동 기자회견도, 공동성명 발표도 없이 막을 내렸다. 미국은 주요 각료 3인의 짧은 합동 브리핑으로 정상회담 결과를 알렸고, 중국은 외교부 성명을 통해 “긍정적이고 성과가 풍성한” 회담이었다는 평가만 전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적어도 양국 정부는 이번 회담을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국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많지 않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100-day Plan)의 경우, 이름 외에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브리핑에서도 ‘100일 계획’을 통한 미국의 목표는 대중 수출을 늘리고 무역적자를 줄이는데 있으며, 아직은 추가 협상이 필요한 단계라고만 언급됐다. 그럼에도 로스(Wilbur Ross) 미 상무장관은 이를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the most significant thing)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중국 측에서는 외교부 성명은 물론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브리핑에서도 ‘100일 계획’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두 번째 합의사항은 양국간 새로운 대화채널의 구축이다. ‘전략과 경제’ 두 축으로 구성됐던 기존의 미중 전략경제대화(S&ED)를 1) 외교안보, 2) 포괄적 경제, 3) 법 집행 및 사이버 안보, 4) 사회문화 등으로 세분화하여 4개의 고위급 대화로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모든 이슈를 아우르는 포괄적 대화(The U.S.-China Comprehensive Dialogue)는 양국 정상이 주관하게 된다. 이는 효율적인 대화채널 운영을 통해 사안 별 진전을 이루기 위한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중 간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북핵 및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상호존중의 토대를 마련하는 선에서 논의가 이뤄진 듯 하다. 양국의 브리핑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핵 문제의 심각성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양측이 공감하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과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독자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고, 중국은 여전히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협상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밖에도 남중국해 문제 및 사이버 테러, 환율, 인권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공개된 내용만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바, 회담 전후 상황을 고려해 보다 큰 맥락에서 회담 결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의 전략: 정책 우선순위 전달, 협의과정 설정

 

이틀에 걸친 짧은 일정이었기 때문에 미중 정상이 양국 간 많은 이슈를 논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러 국내외 문제로 인해 대중 전략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축적되지 못했다. 또한 장관급 인사까지만 마감된 상황에서 아시아를 다루는 지역 전문가가 실무진에 충분히 배치되지 않은 것도 이번 정상회담 성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긴급하고 중요한 현안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설명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중국에 전달하는 한편, 향후 중국과의 협의과정을 설정하는데 주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취임 100일을 향해 가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기간 중 공언했던 정책 성과를 거두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대외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소위 공정무역의 기틀을 놓고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성과를 거두어야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확보될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경제, 특히 양국 간 무역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로스 장관은 ‘100일 계획’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해소가 중대한 문제이며, 이를 100일 내에 진척시키기로 한 것은 무역 정책의 측면에서 이례적인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단기간에 가시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환율조정 및 대미 인프라 투자에서 일정한 기여를 해주기 원했을 것이고, 중국은 특정한 약속은 하지 않았더라도 경제부문에서 미국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도록 노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환율조작국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에서도 아직 환율보고서가 완결되기 전이므로 일정한 여지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어 미중 경제관계가 향후 상보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함으로써 ‘100일 계획’의 성과를 평가하고, 아시아 정책의 진용이 갖추어지는 대로 본격적인 대중 경제협상에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사안은 북핵 문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이전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대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매우 시급한 문제이며 중국의 협력이 없다면 독자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집권 4년 이내에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고 전제 한 바 있고, 그 시기는 향후 수년 내로 귀결될 것을 예상하고 정책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상정하고 있는 레드 라인(red line)이 무엇인지, 중국에 대해 어떠한 협력을 원하는지, 그리고 미국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제재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북 경제제재를 가하고 ‘세컨더리 보이콧’ (secondary boycott)이라고 불리는 이차제재를 발동하여 중국의 기업들과 금융기관을 제재할 뜻을 명확히 밝혔다. 경제제재가 충분히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것을 여러 차례 논의하였기 때문에 이 역시 간접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 한반도 전략 무기 전개 및 전술핵 재배치 등을 포함한 다양한 선택지들이 그 내용이다. 미중 정상회담 전에 일단락되었다고 보도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포괄적 계획 안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수단 사용은 한반도 전면전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군사적 수단이 협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려면 실제로 군사작전을 할 의지가 강고하다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고 이를 시진핑 주석에게 설명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력 사용의 신뢰성을 전달했다. 미중 정상회담 중 북핵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고 시리아 공습을 단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군사적 수단의 가용성과 의지를 암시함으로써 중국의 제재 참여를 압박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의 병행안을 반복 제시했을 것이다. 더불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보다 큰 정치적 맥락과 미북 관계를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핵무기 개발이라는 문제에 국한함으로써 중국의 문제설정 방식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 압박이 제고되어 북한의 핵개발이 중단된다면 미국은 그때 중국의 병행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난 네 행정부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틸러슨 장관의 언급에서 현재 병행안을 시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중국의 새로운 제안은 없었고,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한 자국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중국의 새로운 반응을 기대하는 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전략: 부상의 시공간 확보 위한 탐색

 

이번 회담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북핵과 사드 등 한반도 현안들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이와 관련해 새로이 진전된 논의는 공식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에 대한 강경입장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은 북핵과 사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이른바 쌍궤병행(雙軌並行: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과 쌍중단(雙中斷: 북핵, 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훈련 동시 중단)을 해법으로 재차 제기하였고, 대화 재개를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는 기존의 원론적인 입장만을 간략하게 밝혔다. 이 과정에서 왕이 부장은 중국이 ‘소개’하고 ‘제안’했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중국은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중국도 북한의 연이은 도발이 야기하는 안보 불안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분명히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의 인식 변화가 실제로 정책 변화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정상회담 직후 중국의 행보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칼빈슨함 등 전략 자산을 한반도로 이동시키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특별사무대표를 한국에 파견하여 북핵과 사드 문제에 대해 병행 논의하면서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성과가 있었다.’는 정상회담 직후, 오히려 여러 상황이 새롭게 전개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북한 도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함께 했지만 대응 방법에 대한 이견도 재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양국은 회담 이후 각자의 방식대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시도를 전개하면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이제 트럼프 정부의 예상 밖의 강경한 대북 입장에 직면하여 기존의 ‘북한 관리’ 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 후 12일에 다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것은 이례적이며, 그만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이 풍성한 성과가 있었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4월 8일과 9일 이틀간 정상회담의 성과를 소개하는 글을 외교부 홈페이지에 싣고 있다. 중국이 부각시키고 있는 정상회담의 성과들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다. 첫째, 양국 정상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증진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의 통치 이념과 국내외 주요 정책을 소개하여 많은 사안에서 이해와 공감을 얻어냈다고 밝히고 있다. 둘째, 미중관계의 발전 방향과 원칙을 확인했다고 한다. 양국 정상이 중미관계 발전을 위한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계획도 수립했다고 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이 미중관계의 ‘새로운 시기’에 ‘새로운 출발’을 하는 상징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선물한 서예 작품의 노자(老子) 구절도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千里之行始於足下)였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격을 향후 미중 간의 먼 여정을 앞둔 첫 걸음이자 탐색의 기회로 상정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왕이 외교부장의 설명대로 ‘긍정적이고 풍성한 성과’가 있는 성공적인 회담이어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는 왕이 부장이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이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 후의 첫 해외 순방이었으며, 올 가을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성사된 중대한 외교활동이라면서 당대회 개최를 앞두고 안정적이고 유리한 외부환경을 조성했다고 평가한 데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2기 시진핑 체제의 안정적인 출범을 위해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위상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외교 행사였기 때문에 자칫 회담의 실패로 비쳐질 수 있는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무리하게 의제화하지 않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핵과 사드처럼 첫 회담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내놓기 어려운 쟁점은 각자 입장을 밝히고 확인하는 이른바 ‘각설’(各說)이라는 절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기간부터 지속적으로 무역불균형 문제로 거칠게 ‘중국 때리기’를 하고 심지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서 공세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맞대응을 자제해왔다. 중국은 국내외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트럼프 정부의 초기 강경 기조에 휘말려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회피하면서 부상 일정을 진행해 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잠정적인 상황관리 입장은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그간 시진핑 브랜드로 미국과의 대화에서 놓치지 않고 역설해왔던 ‘신형대국관계’와 ‘운명공동체’라는 언술을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례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은 것도 이러한 신중한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무역불균형에 대한 미국 공세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대응논리와 ‘선물’도 준비했다. 예컨대 시진핑 주석은 양국간 무역이 양국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언급하여 양국이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공급측 개혁, 내수확대, 서비스업 비중 제고 등을 통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대외무역 비중을 줄이기 위한 국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에너지와 인프라 건설에서의 협력을 언급하고 일대일로의 참여를 미국에 제안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선물’ 즉,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협력을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라고 평가한 반면, 중국은 양국간 고위급 대화채널을 4개 영역으로 세분하여 재편한 것을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양국간 대화채널 구축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였다. 특히 양국 군관계가 미중 전략관계의 주요 구성요소라고 하면서 양국 군간 대화와 신뢰강화를 역설한 것도 주목된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으며 양국간 예기치 않은 충돌을 적극 관리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전략: 한반도 비핵화 후 평화공존 강조

 

중국은 자국이 제시한 병행협상안과 북한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의 강력한 경제 제재라는 미국의 요청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경우 협상은 없다고 밝혀 사실상 중국의 병행협상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은 그저 미국의 독자적 행동을 두고 볼 것인가? 아니면 제재 강화에 동참할 것인가?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몰락 혹은 약화라는 위험을 무릎 쓰고 제재 강화에 나서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상당한 비용이 초래되는 결정이다. 한편, 미국은 독자 행동을 예고함으로써 중국 측에 협력 거부로 발생하는 비용이 제재 참여 비용보다 높을 것임을 강조한 듯 하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상회담 중에 시리아 공습을 목격한 시 주석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과 불가측성에 대한 불신과 경계가 더욱 깊어졌을 지도 모른다. 어떠한 경우든, 중국은 결국 자국의 지정학적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을 선택하려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향후 행동의 선택지와 결의 정도를 민감하게 저울질할 것이다. 다만, 현재 중국은 국내 주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일단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자 북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압박과 설득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의 기존 입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핵 해법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간극은 미래 한반도 전략 지형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관계의 불일치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중 양국 간 경쟁이 한반도를 둘러싼 '기싸움'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강력한 제재를 통한 북한 붕괴 시나리오가 아닌 비핵화 후 평화공존하는 한반도임을 천명함으로써, 비핵화된 한반도가 중국 측에도 유리한 상황임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

 

 


 

 

저자

 

이동률_ 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과 한중전문가 공동연구위원회 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대외관계 및 중국 소수민족, 중국의 민족주의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시진핑체제 외교정책의 변화와 지속성,"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중국 미래를 말하다》(편저), 《중국의 영토분쟁》(공저) 등이 있다.

 

전재성_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정치는 도덕적인가》,《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등이 있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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