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6~10일간 북한 제7차 당대회가 36년만에 평양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공식화하는 한편, 북한의 미래 비전이 담긴 ‘휘황한 설계도’를 공개했습니다.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본 설계도에 담긴 내용이 신년사에서 예고된 것 이상의 새로움은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기본 전략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선택한 북한의 미래는 어둡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휘황찬란한 21세기 북한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19세기적 과잉 안보론에서 벗어나 적합 안보론에 입각한 핵 없는 신 병진노선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가 36년 만에 평양에서 열렸다. 첫날 개회식으로 막을 올린 데 이어, 둘째·셋째 날에는 7만자가 넘는 사업총화보고와 40명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김정은을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한 후 폐회식으로 막을 내렸다.

 

국내외 많은 관람객들은 4일 동안 펼쳐진 무대를 보고 나서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좀처럼 당대회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대본의 피상적 내용 분석 대신 대사 속에 숨은 무대 연출자의 뜻을 제대로 찾아보기로 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5월 6일 개회사에서 "조선 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는 총결기간 우리 당과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와 고귀한 경험을 총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대번영기를 계속 힘차게 열어나기 위한 전략적 로선과 투쟁 과업들, 우리 혁명의 전진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라고 말하고, "이번 당대회는 영광스러운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리정표를 마련하는 역사적 인계기"라고 밝혔다.

 

셋째 날, 사업총화보고의 결론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당 제7차 대회를 소집한 목적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성스러운 한생이 어리여 있는 주체혁명 위업을 완성하기 위해 드놀지 않을 기틀을 마련하고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높은 목표와 투쟁 강령을 제시하며 혁명과 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데 있다." 라고 강조하고, "당의 류일적 령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높은 단계에서 심화"시켜 나가고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병진시킬 데 대한 당의 전략적 로선을 계속 철저히 관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병진노선은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합법칙적 요구와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 가장 혁명적이고 과학적인 로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마지막 날 폐회사에서 당 제7차 대회를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기치 밑에 사회주의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여 우리 인민의 꿈과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 놓았으며 조국의 자주통일을 기록하고 온 세계의 자주화를 다그치는 데서 나서는 강령적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요약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사를 종합해보면, 제7차 당대회의 3대 핵심은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유일영도체계, 연극 대본으로서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휘황한 설계도, 연기 지침으로서 병진노선이다.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의 중요성은 김정은의 총화 발표에 이은 40인의 토론 중에 문고리 실세인 조연준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의 토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조 부부장은 지난 4년간 당의 유일영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회고하면서 김정은이 주체혁명 위업계승의 중대한 시기에 '당내 현대판 종파일당'을 적발 분쇄한 것은 당의 유일영도체계를 세우고 당의 통일단결을 위한 투쟁에서 근본적 전환을 가져온 특별한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일영도체계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당내 '이색적인 사상'이 스며들게 되어 당과 혁명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미치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사업총화보고의 첫머리에서 제6차 대회이래 지난 36년간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회고하면서 "총결기간 우리 당과 인민이 주체혁명 위업수행에서 이룩한 모든 승리와 근본 비결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 밑에 투쟁하여 온데 있으며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하여 온데 있습니다."라고 유일영도체제의 지속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3대째 수령으로서 무대에 선 김정은은 당대회 둘째 날, 세 시간에 걸친 사업총화보고를 하면서 신년사에서 이미 예고한 '휘황한 설계도'를 본격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본편은 예고편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예상대로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 수령체제의 역사적 지평을 마련해 온 '3대 혁명역량'의 시야에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높이 평가한 다음, 이러한 위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첫째, 사회주의 강국건설, 둘째, 조국의 자주적 통일, 셋째, 세계의 자주화, 넷째, 당의 강화발전이라는 4장으로 설계도를 구성하고 있다

 

우선 1장에서는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위해 21세기 첨단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강국을 최우선으로 해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을 포함하는 경제강국, 교육· 보건·체육·문화예술을 포함하는 문명강국, 그리고 사회주의 정치제도와 사상, 군사를 포함하는 정치군사강국의 4대 강국을 제시하면서 신년사의 내용을 보다 심화 확대하고 있다.

 

설계도의 2장은 북한의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이어 통일강국 건설이다. 2장의 주제는 21세기의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는 대신, 1972년 7.4 공동성명이래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자주와 민족 대단결, 평화보장과 북한 형 연방제 실현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이었다. 그런데 자주를 위해서는 한국은 친미사대 근성을 버리고 굴욕적인 '대미 추종 정책'과 결별하고 동족을 모해하는 '외세 공조 놀음'을 그만 두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평화 보장을 위해 미국은 핵 강국의 전열에 들어선 북한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한국에서 군대와 전쟁 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하고, 한국은 무분별한 정치군사적 도발과 전쟁연습을 전면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 대단결을 위해서는 과거에 "반통일의 길을 걸은 사람이라도 그에게 민족적 양심이 남아 있다면 주저 없이 손을 잡고 마음을 합쳐" 북한 체제의 붕괴라는 허황된 제도통일에 매달리지 말고 북한 형 통일역량에 기반을 둔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고 말하고 있다.

 

설계도의 3장은 국제강국의 건설이다. 이를 위해서 "제국주의의 핵 위협과 전횡이 계속되는 한" 병진노선에 따라 '자위적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고, "적대세력이 핵으로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진보 국가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적극 발전시키고, 과거 적대관계에 있었더라도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인 나라들과는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도는 마지막으로 노동당의 유일영도체계 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당중앙위원회의 두리에 단결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의 위업을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세계 자주적 위업의 실현을 위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휘황한 설계도'를 국내외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기본 전략노선으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그 관철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따라서 "병진로선은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로선이며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하루 빨리 건설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로선"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당대회 마지막 날 '조선로동당 규약' 개정을 알리면서 병진노선과 사회주의 4대 강국 건설을 당과 국가의 최대 중대사이고 혁명의 전략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제7차 당대회를 계기로 유일영도체계의 본격화를 국내외에 알린 김정은이 '휘황한 설계도'라는 북한 형 21세기의 꿈을 병진노선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통해 현실화해 보려는 노력의 미래는 어둡다. 《북한 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 2010년 동아시아연구원이 출판한 책 제목이다. 2008년 초 북한경제연구의 대표적 선두주자인 조동호 교수와 어두운 북한의 미래를 휘황하게 비쳐줄 만한 21세기 설계도를 그려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그 이후 3년 가까운 공부모임과 글쓰기를 거쳐 선군시대의 후퇴(2008-2011), 이행과 개혁의 선진화 공진전략 1단계(2012-2021), 복합 그물망화의 선진화 공진전략 2단계(2022-2032)라는 설계도를 마련했다. 그리고 북한 당국자들이 우리 설계도를 참고하여 북한의 21세기 생존전략을 제대로 마련하고 실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휘황찬란한 21세기 북한을 건설하려면 제7차 당대회에서 밝힌 설계도와 전략노선을 21세기의 국내외 현실에 맞게 하루 빨리 변환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경핵병진노선의 과잉 안보론 대신 핵 없는 신 병진노선의 적합 안보론으로의 변환이 시급하다.

 

현재의 병진노선은 19세기 제국주의 국제정치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21세기형 제국을 꿈꾸는 미국은 더 이상 19세기형 제국주의를 추진하지 않는다. 19세기가 자주를 꿈꾸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공주(共主)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는 비현실적 가상의 적(敵)을 설정하고 엄청난 경제제재 비용을 자초하고 있는 병진노선을 추진하는 대신,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하는 21세기형 안보 번영을 위한 신 병진노선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늦어지면 질수록 유일영도체계의 어려움을 심화시킬 것이다.

 

반세기 전인 1960년대에 3대 혁명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마련된 '조국통일 3원칙' 에 따른 통일강국의 꿈도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국내외 현실 속에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하는 '제도통일론' 및 북한의 '혁명역랑' 강화를 통한 연방제 통일방안과 같은 20세기 구시대 유물들을 하루 빨리 청산하고, 21세기에 걸맞은 복합 네트워크 통일방안을 본격적으로 설계하고 건축해야 한다.

 

이미 동아시아연구원의 설계도에서 자세하게 제시했듯이, 19세기 부강국가 건설과 21세기 복합국가 건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사회주의 4대 강국론도 3단계 선진화 공진 전략에 맞게 다시 한번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산으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제8차 당대회를 열어 명실상부하게 21세기 북한의 미래를 휘황찬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새 설계도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이러한 21세기적 노력은 한국과 주변 당사국들의 공동 진화적 노력과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다. ■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저서 및 편저로는《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등이 있다.

 

 


 

 

〈EAI하영선 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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