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음의 거울’을 가진 청년, EAI 사랑방 5기 수료생 조문희 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럴듯함은 그러함일 수 없음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EAI 사랑방]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보이는 모습이 전부라 믿으며 살았을지 모릅니다. 다행이 [EAI 사랑방]을 통해 저는 마음의 거울 하나를 가졌습니다. 세상을 깊이 보는 눈과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은 별개가 아님을 섣부르나마 깨달았습니다.

 

쉽지 않은 공부

 

“미칠 것 같다.” 이 말을 지난 5개월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한주 한주의 읽기 자료가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두 번째 주에는 군주론, 리바이어던, 루소의 생피에르 비판, 영구평화론, 그리고 몇 개의 참고 논문을 읽어가야 했습니다. 턱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찾아오는 세미나가 두렵기만 했습니다. 내용도 온전히 숙지하지 못한 채 예습일기를 쓰고, 지적 공백을 절감하며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은 날카롭기만 했습니다. 내용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카, 모겐소, 왈츠, 웬트 등 잘 알려진 국제정치학자들의 주저를 가까스로 읽었고, 카플란, 불, 포퍼, 쿤 등의 국제정치학 및 사회과학 방법론 논쟁을 훑듯이 보았습니다. 역사사회학의 문제의식을 살필 수 있었고, 동아시아 국제정치학의 흐름에도 잠깐이나마 발을 담갔습니다. 읽을 자료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꾸역꾸역 읽고 토해내듯 썼습니다. 그리고 세미나가 끝나면 잊었습니다.

 

공부함의 의미를 생각하다


다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이전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교과서 공부와 2차 문헌 참조를 통해 국제정치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국제정치학 하늘의 별자리를 하나쯤 갖고 있는 학자들은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대와의 처절한 대결 속에서 길어 올린 그들 각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알지 못했고, 그 시대의 사상사적 맥락을 알지 못했던 탓이기도 합니다. 왈츠가 TIP에서 정말 하고자 한 말은 무엇인지, 왈츠는 왜 ‘구조’의 문제를 지각하게 되었는지, 한 편의 독서 이후 제기된 질문들은 모두 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하나, 내 자신에게 문제의식을 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식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떤 이점, 어떤 오류가 발생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작금의 국제정치는 전환기를 맞이한 것인지,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변화의 예감 속에서 우리는 공부의 뿌리를 지금과 같이 해도 좋은지 혹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매주 질문은 꼬리를 물어 학생들 모두의 마음에 절실하게 들어박혔습니다.

 

‘한계’에도 탐색이 필요하다


사랑방 5기의 여정을 마치며 우리는 일본 규슈 지역으로 답사를 떠났습니다. 각자 맡았던 지역에 관해 발제를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맡았던 곳은 데지마 였습니다. 나가사키 내부 그 작은 공간에서 네덜란드와 일본의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시즈키 타다오의 <쇄국론>을 소재로 삼았던 저의 연구는, 서구의 일본 인식과 일본의 서구 인식, 양자의 교류 속에서 나타난 사회 변동과 대외관 변화가 모두 담겨져야 했습니다. ‘전파’의 문제를 깊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 학기의 사랑방 공부. 짧다면 짧은 배움이었지만, 하영선 교수님은 국제정치학이 단순한 사회과학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시는 듯 했습니다. 개념사, 형성사라는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국제정치라는 현상이 지닌 복잡성을 사상시키게 된다고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동주 이용희 선생의 ‘전파’라는 관점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동서고금 가운데 서금에만 치우친 공부가 얼마나 얕은 것인지를, 동고도 살피되 그 또한 부족한 것임을 생각했습니다. 동-서-고-금이 교류 속에서 현상과 개념을 만들고 변화시켜간 탓입니다. 전파라는 관점에 서서, 그 긴 역사 속에서 공간의 교류를 모두 살필 수 있을지 아득한 기분이었습니다.

 

‘한계 안에서’는 교수님께서 자주 쓰시는 말입니다. 분명 다 살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의식이 있고 그것이 한 평생을 걸어볼 만 하다면, 다만 한계 안에서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교수님은 물으셨습니다. 그 말을 나보다 한계의 크기가 큰 사람, 그것도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발휘하는 사람에게서 듣게 되었을 때 그 자극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나보다 앞서 간 이들의 삶, 앎, 함, 그리고 꿈을 살피고 내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나의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사이 저의 마음속에 들어온 이 불이 나의 삶과 앎과 함, 그리고 꿈에 영향을 미치리라 예감이 들었습니다. 진리를 찾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야 자신의 한계를 밝혀볼 결단이 섰을 따름입니다.

 

짐승만을 좇는 이는 태산을 보지 못한다


회남자의 한 구절입니다. 답사 첫날 저녁 하영선 교수님께서 인용하신 “짐승만을 좇는 이는 태산을 보지 못한다.”는 구절에서 저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글을 떠올렸습니다.

 

"오늘날처럼 사회변동이 격심한 시대에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분하게 공부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최고학부에 들어왔는지, 또 들어오려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현실상황이 긴박해져 학문보다 실천운동 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설프게 대학 같은 곳에 들어오기보다 생동하는 노동운동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학문에 전념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며 쉽지 않은 지적인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 같은 인식에 대한 정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학교에 있어도 끝내 학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학문의 엄격함이나 깊이 사고하는 어려움을 감내할 수 없는 학생에게 저희들은 일본의 장래를 맡길 수 없습니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말은 본래 '사물의 근원에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진정으로 래디컬하게 학문해보지 않겠습니까."

 

- 마루야마 마사오 "공부와 학문에 대한 두세 가지 조언"(1949)

 

우리가 오를 산이 태산인지 작은 둔덕인지는 미리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짐승만 좇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 믿습니다. 짐승보다 더 큰 카테고리를 가진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 겨레의 미래도 바뀔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러한 고민이 박규수로부터, 오늘날 하영선 교수님의 사랑방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