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SR, 기업불신의 해결사인가?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추앙 받아 온 대기업들은 민주화 및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적 구조조정과 개혁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이재열 2011, 정한울 2013). [그림1]은 2000년대 이후 글로브스캔이 실시한 CSR 국제인식조사에서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뢰도 변화를 보여주는데 2001년 조사만 보더라도 2002년 노무현 등장 전후, 대기업이 사회적 문제해결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응답자가 전체 국민의 35% 수준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반기업 정책이나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 분위기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보수진영의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다(“정말 반기업정서 없나,” 매일경제 2005/09/28; “삼성 때리기는 참여정부의 반기업정서 확대책,” 오마이뉴스 2005/09/28). 반면, 취임 초 비즈니스 프렌드리 정책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진보진영과 야권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은 바 있다(“이대통령, “반기업 정서는 아주 나쁘다”” EBN 2012/02/22). 실제로 한국사회의 대기업에 대한 이념적 갈등은 시장을 강조하는 보수적 입장과 국가의 개입과 규제를 강조하는 진보적 입장 사이에서 매우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반기업정서는 정치권의 대기업정책이나 정치권의 이념적 동원전략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강원택 2010).


반기업 정서에 대한 업계나 기업을 둘러싼 이념적 정치갈등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사회에 소개된 CSR 논의는 기업이나 사회적으로 CSR에 보다 강한 관심과 기대를 갖게 했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CSR활동과 기업 및 이해당사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강화가 기업평판과 신뢰도를 개선시켜 궁극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효과적인 위기관리 수단이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웬만한 대기업들은 CSR 전담부서와 전담 인력을 배치시키며 적지 않은 비용을 사회공헌활동 혹은 CSR 활동에 투입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들 스스로 CSR이 기업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전국경제인연합회 2009, 고동수 2011). 또한 CSR 활동과 그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활동들이 기업 이미지, 브랜드, 구매의도나 기업에 대한 태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경험적 연구결과들이 속속 도출되고 있다(차희원∙박수정 2009, 한은경∙류은아 2003). 즉, CSR이 기업신뢰회복의 해결사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림1]에서 2012년까지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이재열 2011, 홍기현 2011). 이 시기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CSR 관련 지출을 급격하게 늘려나간 시기였다는 점에서 CSR의 기업 신뢰도 제고 효과를 뒷받침하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CSR이 기업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할 때 유력한 대안적 가설인 정치사회적 요인을 충분히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정치사회적 변수를 배제한 채 기업의 CSR 활동이나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기업이미지 혹은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각 요인의 영향력을 통제한 조건 하에서 이들 요인이 기업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한 연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CSR의 기업신뢰도 개선효과가 정당이나 정부에 대한 당파적 태도, 이념적 성향을 고려하더라도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지 의문이다.


또한 기업불신과 반기업정서를 개선하는데 CSR이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지속적인 CSR 지출에도 불구하고 반기업 정서가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요인으로서 정치적 요인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정한울 2013).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경제민주화’ 아젠다가 한국사회 전면에 떠올랐고, 대기업 불신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실제 2013년 1월에 실시한 글로브스캔・동아시아연구원・사회적기업연구소의 조사에서는 대기업 신뢰도가 2002년 수준인 36%까지 떨어졌다.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꾸준히 개선되던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2013년 들어 급감한 현상은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진행하는 기업호감지수(CFI)가 2013년 조사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대한상공회의소 2013). 대한상공회의소는“작년 하반기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경제민주화 이슈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반기업정서가 심화되면서 기업호감도가 상승동력을 찾기 힘들어졌다”고 평가한 바 있다(“박근혜 정부 출범 한달…결정된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아시아경제 2013/03/25).

 

이처럼 현실에서는 반기업정서의 주요 요인으로 정치사회적 요인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는 데 반해, CSR 연구나 논의 과정에서는 정치적 요인에 대한 고려한 논의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기업정서를 둘러싼 정치이념적 갈등 양상은 어느 정도이고 정치사회적 요인을 고려한 조건에서도 CSR은 기업불신을 해소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바라보는 국민여론 수준에서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인식과 함께 정치적 변수가 기업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실증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림1 _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뢰도 변화(%)

 

데이터: 글로브스캔 CSR 국제조사(2001-2007); 글로브스캔ㆍ동아시아연구원ㆍ사회적기업연구소

 


2. 기업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본 연구에서는(1) 통제변수인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변수 (social and economic status)(2) CSR 인식 (3) 정치적 성향이 기업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볼 것이다.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기업 규제에 대한 인식이나 기업 정책에 대한 태도가 세대, 학력, 소득 등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강원택 2010; 이현출 2005). 따라서 본 연구의 중심 주제는 아니지만 CSR 요인이나 정치적 요인이 대기업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볼 때 통제변수로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CSR의 반기업정서 개선효과를 살펴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대한 긍정적이고, 기업의 CSR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효능감(efficacy)과 관여도(engagement)가 높을수록 기업에 대한 신뢰도 강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Orlitzky et al. 2003; 박수정∙차희원 2009; 이은영 2011). 반면, 본 연구는 정치적 요인들이 개인의 대기업신뢰도를 제약하는 영향력을 집중적으로 검증할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태도 역시 이념적 쟁점, 정치적 균열의 중요한 소재였다. 진보성향의 정당은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보수성향의 정당은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강원택 2010; 이내영 2011). 정치변수로서의 정치이념과 정당태도가 대기업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면 보수적 이념성향, 보수 정당 지지자는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우호적이지만, 진보적 이념성향, 진보 정당 지지자는 대기업에 상대적으로 강한 불신을 갖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장에서는 상관관계 분석(교차분석)를 통해 이들 세 차원의 변수들이 기업신뢰도에 영향을 얼마나 미치고 있는지 기술하고자 한다.

 

사회경제적 배경 요인(SES 요인)

 

우선, 통제변수로서의 사회경제적 배경변수가 대기업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도록 한다. 이 글의 초점은 CSR 요인과 정치적 요인이 대기업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사회경제 이슈 및 정치적 쟁점에 대한 태도는 그들이 속한 사회경제적 지위(social and economic status, 이하 SES 요인) 및 소속 집단과 계층에 대한 사회적 집단정체성(social group identity)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Campbell et al. 1960; Eikson and Tedin 2005). 이러한 논리를 대기업의 영역에 적용해보면 기업의 활동과 제품/서비스에 대한 합리적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기 보다 자신이 속한 사회경제적 집단의 이익이나 집단적 심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다. 기업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집단 변인으로는 성(gender), 교육수준(education), 연령(generation), 소득계층(income class)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림2]를 통해 성별, 교육수준별 대기업 신뢰도의 편차(1. 매우 신뢰, 2 대체로 신뢰, 3. 별로 신뢰 안함, 4. 전혀 신뢰 안함으로 측정)를 살펴보자. 성별로 보면 남성과여성간의 대기업 신뢰도는 대체로 비슷하다. 여성과 남성의 대기업 불신의 비율은(3과 4로 선택한 비율) 크게 차이나지 않았고, 실제로 카이제곱 검정결과 역시 통계적으로 성별 대기업 신뢰도의 차이는 유의미한 결과가 아니었다(p > 0.1). 교육수준별로 보면 중졸 이하의 저학력 층에서 대기업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고졸 및 전문대 재학이상 층에서는 대기업을 불신한다는 응답비율이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교육수준별 대기업 신뢰도의 응답분포에 대한 카이제곱 검정결과가 95% 신뢰수준에서 유의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학력 차이가 대기업 태도의 균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2 _ 성별, 교육수준별 대기업 신뢰도(%)

 

성별Ⅹ대기업 신뢰도의카이제곱검정: χ2=5.006, df=3, p=0.171
학력별Ⅹ대기업 신뢰도의카이제곱 검정: χ2=17.642, df=6, p=0.007***
대기업 신뢰도: 1점 매우 신뢰, 2점 대체로 신뢰, 3점 별로 신뢰하지 않음, 4점 전혀 신뢰하지 않음.
데이터: 글로브스캔ㆍ동아시아연구원ㆍ사회적기업연구소

 

[그림3]에서 세대별, 소득계층별 대기업신뢰도간의 상관관계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우선, 세대별로 보면 고연령 세대(5060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대기업 신뢰도가 높고, 저연령 세대에서는 대기업 불신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대나 40대에 비해 30대에서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가장 높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정치사회적 이슈에서도 30대에서 정치적 불신과 사회적 불만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이념적으로도 20대에 비해 진보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곤 하는데 대기업에 대한 인식에서도 유사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30대의 반기업 정서를 일반화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이후 후속 연구들을 통해 그 태도의 공고화 여부 및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득계층에서도 월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의 하위계층에서 오히려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반면, 월 가구소득 200만원 이상의 소득계층별로는 일관된 인식의 편차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종합해보면 저학력층일수록, 고연령 세대일수록, 저소득층일수록 대기업신뢰가 높고, 고학력층, 젊은 세대 특히 30대, 저소득층보다 상위계층에서 대기업신뢰도가 낮다. 저학력-고연령-저소득층은 정치영역에서보면 주로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지지성향이 강하고, 고학력-저연령-고소득층에서 민주당과 같은 야당이나 진보성향의 정치적 태도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강원택 2010).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대기업 신뢰도의 인식 격차는 정치적 성향의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3 _ 세대별, 소득계층별 대기업 신뢰도(%)

세대별Ⅹ대기업 신뢰도의카이제곱 검정: χ2=32.286, df=12, p=0.001***
소득별Ⅹ대기업 신뢰도의카이제곱 검정: χ2=17.642, df=12, p=0.004***
대기업 신뢰도: 1점 매우 신뢰, 2점 대체로 신뢰, 3점 별로 신뢰하지 않음, 4점 전혀 신뢰하지 않음.
데이터: 글로브스캔ㆍ동아시아연구원ㆍ사회적기업연구소
 

 

 

CSR 인식과 대기업 신뢰도

 

한편, CSR이 대기업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CSR 효능감, CSR 활동 결과에 대한 평가에따라 대기업신뢰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CSR 담론이 주장하듯 CSR이 기업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면 기업의 CSR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큰 응답자일수록, CSR 활동을 통해 생산된 산출물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대기업 신뢰가 높을 것으로 가정한다.


교차분석결과를 보면 [그림4]와 같다. CSR 효능감(“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강화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술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따른 대기업 신뢰도의 변화를 살펴보자. CSR 효능감이나 관심도가 강할수록(매우 강함+다소강함 응답자 집단), 반대로 CSR 효능감이 떨어질수록 대기업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이는 CSR에 대한 관여도가 기업에 대한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전통적인 CSR의 시각을 뒷받침한다(이은영 2011).


한편, 국내 기업들의 CSR 활동에 대한 평가(“현재 한국에는 기업들이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고려하여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는 진술에 대한 동의 여부로 측정)에 따라서도 대기업 신뢰도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해 생산한 제품을 충분히 공급할 정도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에 긍정적일수록 대기업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많았고(매우 충분하다는 응답자 집단에서는 58.48%가 대기업을 신뢰한다고 답함), 부정적일수록 신뢰한다는 응답보다 불신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매우 불충분하다는 응답자 집단에서는 대기업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13.78%에 불과했다). 이러한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한지 카이제곱 검정을 해본 결과, 95% 신뢰수준 이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로 확인되었다. 이는 대기업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조건에서 CSR인식은 대기업 신뢰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림4 _ CSR 효능감ㆍ평가별 대기업 신뢰도(%)

 

CSR 효능감Ⅹ대기업 신뢰도의 카이제곱 검정: χ2=27.801, df=12, p=0.006***
CSR 공급평가Ⅹ대기업 신뢰도의 카이제곱 검정: χ2=29.788, df=12, p=0.003***
대기업 신뢰도: 1점 매우 신뢰, 2점 대체로 신뢰, 3점 별로 신뢰하지 않음, 4점 전혀 신뢰하지 않음.
데이터: 글로브스캔ㆍ동아시아연구원ㆍ사회적기업연구소

 

정치적 변수: 정당태도, 정치이념, 정부 신뢰

 

이 글에서 강조하는 정치적 변수로는 정당 지지, 정치이념 성향, 정부를 바라보는 태도를 중심으로 대기업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본다. 개인의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정치적 변수(attitude determinants)는 정당태도와 정치이념이다(강원택 2010; 정한울 2012; Campbell et al. 1960; Lewis-Beck et al. 2008). 어떤 요인이 더 궁극적인 태도결정 요인인가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있지만, 정당태도와 이념적 성향은 경제, 사회 전반의 이슈들에 대한 개인의 포지션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 한국 국민들의 정치사회인식에 미치는 변수 중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보수성향의 정당을 지지고 보수적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은 친기업적인 태도를 갖고, 정보성향의 정당을 지지하고 진보적 이념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반기업적 성향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 한국 소비자들은 기업을 신뢰하는데 있어 정치적 요인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 다시 말해 지지정당과 이념성향에 따라 대기업 신뢰도에 뚜렷한 인식격차가 확인되는 지 살펴보자. 우선, [그림5]에서 정당지지별로 보면 역시 새누리당 지지자는 대기업에 대한 신뢰 비율이 48.82%로 무당파, 민주당 지지자, 진보성향 군소정당(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지지자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대기업에 대한 불신 비율이 각각 72.95%, 76.93%로 매우 높다. 이념성향(주관적으로 스스로 평가한 이념위치)별로 보면, 보수층에서 대기업을 신뢰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불신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념성향별 신뢰도 차이는 카이제곱 검정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림5 _ 정당지지 및 이념성향별 대기업 신뢰도(%)

 

정당지지Ⅹ대기업 신뢰도의 카이제곱 검정: χ2=42.210, df=12, p=0.000***
이념성향Ⅹ대기업 신뢰도의카이제곱 검정: χ2=4.247, df=6, p=0.643
대기업 신뢰도: 1점 매우 신뢰, 2점 대체로 신뢰, 3점 별로 신뢰하지 않음, 4점 전혀 신뢰하지 않음.
데이터: 글로브스캔ㆍ동아시아연구원ㆍ사회적기업연구소

 

한편 정부에 대한 태도 역시 대기업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그 동안 기업에대한 태도는 정부에 대한 태도와 반비례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양자를 정부 주도 對 시장(기업) 주도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림6]의 좌측 그림이 기존의 인식틀을 보여준다. 진보적 이념은 대체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선호하는 반면, 보수적 이념은 대체로 작은 정부-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힘의 크기 역시 기업-정치(정부)-시민사회 간의 관계를 정치(정부) 우위의 관계로 파악했다. CSR 논의가 활성화된 것은 사회적 문제해결에서 정부의 역할은 크게 위축된 반면 기업의 역할이 커진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다. 정부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존의 정부-기업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유럽의 정부 규제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과 미국처럼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동수 2011).


어떠한 입장을 취하건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부와 기업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 지 결정되지만, 두 입장 모두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양 극단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에서 탈피한 새로운 인식도 주목 받고 있다. [그림5]의 우측 그림처럼 양자 간의 접촉면의 크기롤 중심으로 보면 과거에 비해 사회적 문제해결의 영역에서 정부-기업간 접촉면(교집합 부분의 크기)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업-정치(정부)의 관계는 대립적 관계라기 보다는 사회의 공공 문제를 함께 해결할 공동의 이해당사자(stake holder)이자 파트너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간의 관계는 제로섬적인 대립관계가 아닌 협력적,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것이며, 이 경우 대기업 신뢰도는 정부 신뢰도와 반 비례가 관계가 아니라 정 비례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Marrewijk 2003; Tullberg 2004).


[그림7]에서 정부신뢰와 대기업 신뢰간의 관계를 보면 대기업과 정부에 대한 태도가 기존의 전통적인 기업-정부간 관계 인식처럼 상극의 관계가 아닌 높은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Tullberg 2004). 정부를 불신하면 기업을 선호하고, 역으로 기업을 불신하면 정부를 신뢰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대신 대기업을 신뢰할수록 정부를 신뢰하고, 대기업을 신뢰하지 않으면 정부도 불신하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정리하면 기업에 대한 인식은 정당지지 및 이념적 성향에 따라 엇갈리고 있지만 정부에 대한 태도와는 상호보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정부-기업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해석과 달리 한국 국민들의 다수가 정부-기업 관계를 양자 택일이 이분법적인 틀이 아닌 공동의 협력 관계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림6 _ 국가-기업-시민사회 간 관계 개념도(Marrewijk 2003)

 

그림7 _ 정부신뢰도에 따른 대기업 신뢰도의 변화(%)

정부신뢰도Ⅹ대기업 신뢰도의 카이제곱 검정: χ2=164.591, df=9, p=0.000***
대기업 신뢰도: 1점 매우 신뢰, 2점 대체로 신뢰, 3점 별로 신뢰하지 않음, 4점 전혀 신뢰하지 않음.
데이터: 글로브스캔ㆍ동아시아연구원ㆍ사회적기업연구소

 

 

3. 대기업 신뢰도 결정요인 검증 : 순서 회귀분석 모델

 

상관관계 분석은 다른 변수들의 영향력을 통제하지 않은 조건 하에서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의 유무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변수의 설명력을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3장에서는 순서회귀분석모델(ordinal regression; Polytomous Universal Model)을 적용하여 앞에서 살펴본 세 요인들이 실제 대기업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다 정교하게 검증하도록 한다. 즉, 정치, 사회적 요인들을 통제한 조건에서도 CSR의 효과가 유의한 변수로 판명되는지 확인할 것이다.

 

분석모델

 

순서회귀분석은 종속변수가 서열변수(ordinal variable)일 때종속변수에 대한 여러 다양한 독립변수들의 설명력이 다른 변수들을 통제한 조건에서도 유의한지 검증하는 통계분석방법이다. 본 연구의 종속변수인 대기업신뢰도는 1. 매우 신뢰 2. 대체로 신뢰 3. 별로 신뢰하지 않음 4. 전혀 신뢰하지 않음의 순으로 측정된 서열변수라는 점을 감안하여 순서회귀분석 모델을 적용한다.


독립변수로서 CSR 요인은 앞에서 살펴본 CSR 효능감(1=매우 강함~4. 매우 약함), CSR 활동평가(1=매우 충분~4. 매우 불충분) 변수이다. 이와 함께 응답자의 윤리적 소비행동 수준(“나는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기업의 제품 서비스만 구매한다” 1. 매우 동의~4. 매우 동의 안함) 역시 개인의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아 CSR 요인에 포함했다. 정치적 요인으로는 사회적 문제해결에 대한 정부신뢰(1. 매우 신뢰~4. 매우 불신), 이념성향과 정당지지 변수를 분석모델에 포함했다. 그 중 이념성향과 정당지지는 범주형 변수(categorical variable)이므로 진보 및 진보정당 지지자를 비교의 준거집단(reference group)으로 설정하여 더미변수로 만들었다. 통제변수인 사회경제적 배경요인으로는 성별, 세대(1. 20대~5. 60대 이상), 교육수준(1. 중졸이하~3. 대재이상), 가구소득(1. 200만 이하~5. 500만원 이상) 변수를 분석모델에 포함했다. 성별과 정치변수를제외한 변수들은 종속변수에 맞춰 그 수치가 적을수록 대기업 신뢰를 강화하고 클수록 대기업 불신을 강화하는 방향이 되도록 조정하였다.

 

분석결과

 

순서회귀분석결과표를 살펴보면, 전체 500명의 샘플 중 결측값을 제외한 412명이 실제 분석에 포함되었다. 모형 적합도 검증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모델의 설명력은 Cox와 Snell Pseudo R2 기준으로 종속변수 변화량의 24.1%, McFadden R제곱 기준으로 12.4%이다. 주요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사회경제적 배경 변수들은 CSR 효과 및 정치적 태도변수를 고려할 경우 대기업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서 사회경제적 배경요인들과 기업신뢰도 간의 상관관계가 사실은 정치적 태도요인 등 제3의 인과 요인을 매개하는 변인이라는 추론에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이다.

 

한편 기존 연구에서 주목해온 CSR 효과 역시 95% 신뢰 수준을 기준으로 하면 CSR에 대한 태도를 측정하는 세 변수 공히 대기업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은 유의하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 (*)은 90% 신뢰수준, (**)는 95% 신뢰수준, (***)은 99% 신뢰수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CSR 평가 변수의 경우 90% 신뢰수준으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야 대기업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CSR 활동이 기업이미지와 평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기존 연구들과 달리 정치적 요인들을 통제할경우 CSR이 대기업 신뢰도를 개선하는 효과는 미약(marginal)한 것이다. 이는 본 연구의 가장 중요한 함의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계수의 방향이 (+)인 것으로 보아 CSR 효능감과 CSR 산출물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일수록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부정적일수록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짐을 알 수 있다. 다만 CSR 소비행동의 경우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은 아니지만 부호가 (-)로 나타나 CSR 소비행동이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소비자 행동이 부정적 동기에 의한 것일수 있음을 시사한다. 


분석결과 중 가장 중요한 결과는 역시 본 연구의 가정대로 대기업 신뢰도에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변수들은 정치적 태도 요인들이라는 점이다. 계수 추정값(B)와 Wald 계수의 절대치를 봐도 CSR 요인들에 비해 정치적 변수들의 계수값이 크다. 또한 통계적으로 유의한지를 기준으로 보면, 최소한 본 분석모델에 포함된 지표들 중 정치적 변수의 영향력은 다른 변수들에 비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영향력의 방향을 살펴보더라도 정부불신이 클수록 대기업 불신도 커지며(+), 진보층에 비해 보수층에서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진보정당 지지자에 비해 새누리당 지지자 및 무당파에 속할수록 대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의 가정대로 진보성향은 반기업적 태도를, 보수성향의 응답자는 친기업적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정치이념적 해석이 실제로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진보정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진보층과중도층 간의 대기업 신뢰인식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한편, 계수 추정값(B)과 Wald계수의 절대치를 비교해보면 정당지지나 이념성향의 영향력보다 정부 요인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기업 신뢰도에 정부신뢰도가 미치는 영향의 방향이다. (-)는 정부와 기업간의 대립적인 관계, (+)는 정부와 기업 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나타내는데 본 분석의 결과는 계수의 부호가 (+)로 나타나 정부 신뢰가 높을수록 기업신뢰도 높고, 정부 불신이 크면 기업 불신도 크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기업 간 관계를 이분법적인 대립관계 보다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인식한다는 해석이 경험적 검증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표1] 대기업 신뢰도 결정요인 분석 결과

*p<0.1, **p<0.05, ***p<0.01

 

 

4. 맺으며

 

이상의 분석결과를 종합하면 기존 연구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업의 CSR 활동이 기업 신뢰도를 개선하는 효과가 정치사회적 요인 특히 정치적 요인을 통제할 경우 크게 약화된다는 점이다.이는 본 연구의 가장 큰 발견이다. 기존 연구들은 CSR 활동과 대기업에 대한 신뢰 및 평판 간의 관계를 검증하는데 있어 정치적 요인들을 간과하여 왔다.하지만, 정치적 요인을 고려할 경우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설명하는데 사회경제적 배경변수들이나 CSR 요인의 영향력은 크게 반감된다. 물론 정치적 요인의 측정 지표가 오랜 기간 검증되어 온 타당성 높은 지표이지만 본 연구에서 활용된 CSR 요인의 측정 지표는 충분한 타당성 및 신뢰도 검증을 거친 지표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 연구의 통계 검증 결과를 절대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CSR 관련 연구들이 배제해온 정부신뢰, 정당, 이념 등의 정치적 변수들이 그 유의성과 설명력 차원에서 CSR에 따른 기업의 평판 및 신뢰도 연구에반드시 고려해야 할 변수라는 점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신뢰와 불신의 상당부분이 정치적 이념과 지지하는 정당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정치적, 이념적 프리즘을 통해 “채색”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치적 성향에 의해 기업에 대한 신뢰여부가 상당부분 결정된다는 본 연구의 결과를 수용한다면 반기업 정서를 완화하고 개선하는데 CSR 활동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CSR이 해당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장미빛 환상이 아닐 수 없다. 즉,본 연구의 결과는 반기업 정서의 극복을 위해한국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함을 일깨워 준다. 일관되고 진정성 있는 CSR 만 강조하기 보다는 기업에 대한 이슈가 정치쟁점, 이념 쟁점으로 손쉽게 비화될 수 있는 정치 문화 및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기업 신뢰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상호의존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정치권과 언론의 경우 기업과 정부를 대립적인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분석해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규제냐 자율이냐, 정부냐 시장이냐라는 전통적인 경제이념의 논쟁 축이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 일반 소비자들은 이미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기업과 정부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해야 할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나 기업이 단독으로 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회 문제의 등장으로 상호간의 협력 및 공동 책임을 중시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이 국민들과 소비자로부터 존경, 신뢰받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념적 당파성에 따라 기업에 대한 태도가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에 대한 태도가 기업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기업 주도냐, 정부 규제 중심이냐의 낡은 인식 구도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와 노력을 경주하는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정부 및 기업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린다.  

 


 

 

 

 

본 보고서의 주장과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공동연구기관인 동아시아연구원과 사회적기업연구소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본 보고서의 데이터를 인용하실 때는 “GlobeScan(혹은 글로브스캔)∙사회적기업연구소∙동아시아연구원(혹은 EAI) 조사”임을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