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하여 중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청나라는 일본에게 한반도에서의 우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을 치렀고, 1949년 수립된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동북지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Lieberthal 2004, 89-90). 한국전쟁이 끝나고 분단된 한반도에서 중국은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에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되고 탈냉전기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중국의 대한반도 인식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1990년대 초반 중국의 변화된 대한반도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1992년 8월 한중 국교 정상화이다. 탈냉전기의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한 반영과 국내경제발전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북한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수교를 맺게 되었고 이후 중국은 한국과 북한사이에서 경제적으로는 한국과 관계를 확대하고, 정치적으로는 북한과 관계를 유지하는 이른바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였다(김재철 2003).

 

(1) 문제제기

 

탈냉전기 이후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핵심적인 기조로 이해되었던 “등거리 외교”는 2000년대 후반 한반도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 행위와 이에 대한 중국의 상이한 반응으로 인하여 과연 중국의 한반도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변수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① 북한 핵실험과 중국의 대응

 

제2차 북핵문제가 발생하고 북한이 두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감행하자 중국은 자국의 대외원칙 기조인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깨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조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006년 10월 9일에 감행된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인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Resolution 1718)에 중국은 찬성표를 던졌고, 2009년 5월 25일에 감행된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인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Resolution 1874)에 대해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와 더불어 중국 외교부의 친강(秦剛) 대변인은 비난성명을 통해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지의사를 표명하였다.

 

“중국은 북핵 실험에 관한 안전보장 이사회의 적절하고 균형 잡힌 조치를 지지하며, 관련회의에 책임 있고 건설적인 태도로 참여할 것이다(중국외교부 홈페이지).”

 

② 천안함 사건과 중국의 대응

 

2010년 3월 26일 한국 해군 초계함 PCC-772 천안(이하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민군 합동조사단을 꾸려 천안함이 침몰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사를 하였고, 5월 20일 사건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서 윤덕용 합동조사 단장은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했다”(<조선일보>, 2010/5/21, 1)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천안함 사건의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월 3일부터 5일간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과 회담을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와 관련한 비난 여론이 한국에서 일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일축한데, 반해 한국 내 중국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북핵 실험 이후로 소원해졌던 중북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평가를 내렸다(<한겨레>, 2010/5/10, 3). 이와 더불어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후 북한에 대한 후속조치에 중국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명시하는 것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천안함에 대한 공격을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이 북한을 공격주체로 명시하지 않은 채 통과 되었고,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친강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 하였다.

 

“관련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빨리 천안함 사건의 페이지를 넘기기를 희망한다(중국외교부 홈페이지).”

 

2000년대 중후반이라는 비슷한 시기에 북한에 의해서 감행된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상이한 대응방식은 중국이 대한반도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의문에서 비롯한 이번 연구의 핵심 질문은 ‘북한 핵실험 때와는 달리 천안함 사건 해결과정에서는 왜 중국은 대북 호의(benign)정책을 선택하였는가’이다.

 

(2) 사례의 선정: 분석수준의 문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결정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 왜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이라는 사례를 택했는지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사례를 비교하기 위해 필요한 분석수준의 문제에 있어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은 사건의 성격에 있어 북한 핵실험은 핵비확산이라는 국제레짐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문제이고,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두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책적인 고려가 다를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두 사례를 선정한 이유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북한이 일으킨 도발행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사건을 사례로 선택함으로써 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위협을 통제할 수 있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는 이 글의 목적과 관련하여 두 사건이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대 중국 인식과 관련하여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표-1] 은 천안함 사건이후 한국의 동북아 주변 5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