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천안함 사건이 동아시아에 몰고 온 위기상황과 한반도비핵화 과정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면 우선 동아시아에서의 국제정치 역학구조와 주요 국가들의 전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본문은 동아시아에서 냉전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중국 양국의 경쟁협력체제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북한 상황에 가장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전략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 연구를 기초로 한국과 중국의 대 북한 인식과 딜레마를 설명하고 한중 협력의 필요성을 제시할 것이다.

 

한국정부의 대 북한 전략은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으로 표현된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닌 실용과 생산성에 기초하여 주도적으로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한반도 통일의 실질적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통일부 2009).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로서 주은래 총리가 ‘입술과 이’의 관계라고 표현하였다(周恩来 1990).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국가전략의 변화와 더불어 특히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중국 내부에서는 중북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沈驥如 2003; 金強一 2008). 중국의 대 북한 정책은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인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지지’ 등 정책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대 북한 전략은 대체적으로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외면으로 보기에 맥락을 비슷하게 유지해 오던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관계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그 모순과 취약함을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북한을 사이 두고 모순되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한국과 중국은 천안함 사건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협력의 공간을 만들어 갈 수는 없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문은 한중 양국의 전략적 고민, 천안함 사건과 한반도비핵화 과정의 관계 등을 토론할 것이다.

 

본문은 제2장에서 천안함 사건과 그로 인한 동아시아에서의 위기상황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동아시아에서의 국제정치 역학구조에 대해 언급할 것이고 제4장에서는 북한문제에 대한 한중 양국의 전략적 안보고민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한반도비핵화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2. 천안함 사건과 동아시아의 위기상황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서해(중국 황해) 백령도 부근에서 침몰되었다. 4월 20일, 국제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적인 어뢰공격으로 침몰되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고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을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로 규정하면서 대 국민 담화문을 발표하였다(청와대 2010). 이로써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확정되었고 한국은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하였다. 7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였다(외교통상부 2010). 비록 의장성명에는 북한을 공격주체로 표시하는 표현이나 문구를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은 이로써 정리되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시작된 동아시아의 위기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의 양상을 보이며 발전하였다. 결국 이번 위기는 한반도의 범위를 벗어나 중국과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 경합으로 승격하였다. 한국은 5월 27일 서해에서 반 잠수함 훈련을 진행하였고 한미 양국은 6월 서해에서의 합동군사연습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는 미국 ‘조지 워싱턴호’ 항공모함의 서해(중국 황해)진입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강렬한 반응을 촉발하였다. 한미 양국은 합동군사연습의 목적은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중국은 북경을 포함한 자신의 핵심 지역이 미국 항공모함의 위협에 노출하게 된다고 반발했다. 중국은 한미 군사연습에 앞서 6월 30일부터 7월 5일까지 중국 동해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은 7월과 8월에 각기 ‘불굴의 의지’와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 Ulchi-Freedom Guardian) 군사연습을 진행하였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호’ 항공모함은 동해(일본해)에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 중국 정부 특히는 군부의 고위인사들이 한미합동훈련에 대하여 강력한 발언들을 하면서 위기는 더욱 고조되는 듯 했다(羅援 2010; 楊毅 2010) .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 참가한 미국 힐러리 국무장관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이라고 발언하고 베트남은 중국에 영토문제를 제기하고 나왔다. 8월 초에 미국 ‘조지 워싱턴호’는 베트남을 방문하였고 미국과 베트남은 연합군사연습을 진행하였다. 천안함 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9월 7일 댜우위도(일,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영토분쟁도 중국에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그에 반응해 중국은 천안함 직후인 6월부터 중국 황해, 동해, 남해에서 최소한 9차례의 군사연습을 진행하였다(<환구시보> 2010/9).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안보위협을 느끼고 한미동맹을 강화하였고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은 중국의 안보불안을 야기시켰다. 중국의 강력한 반대 입장과 군사대응은 미국의 한층 수위 높은 억제정책으로 표현되었고 급기야는 중국과 미국 사이의 안보 전략 모순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은 이번 위기 속에서 지역 사무에 미국을 끌어들인 한국에 불만이 많을 것이다. 한국 또한 중국의 ‘막무가내’식의 ‘북한 감싸기’에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이번 천안함 사건과 그 후속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분석해보면 가장 크게 손해를 본 국가는 한국과 중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천안함 사건으로 46명의 군인이 사망하였다. 4,800만 명의 인구와 60만 명의 한국군인 수에 대비해 보면 대략 백만분의 1의 인구와 1.2만분의 1의 군인을 잃은 것으로 된다. 이 비례치를 중국의 인구와 군인 수에 대입해 보면 엄청난 숫자가 얻어질 것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이래 견지해 왔던 “경제건설을 위한 안정된 주변 환경 구축” 이라는 전략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 원활하게 진행되어 왔던 중미관계에 불협화음이 생기고 미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본격적으로 억제정책(containment)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공격 주체로 지목되는 북한은 비록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제재를 받게 되었지만 원체 국제사회와의 연계가 취약한 특성 때문에 큰 손해는 없어 보인다. 반면에 북한이 추구하는 미국의 주의력 끌기와 한국 해군에 대한 보복, 국내체제에 대한 결속력 제고 등 측면으로부터 볼 때 이번 사건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자체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하여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와는 다른 조사결과를 주장함으로써 천안함 사건과 이후 한반도문제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연장선에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 때문에 일본은 하토야마 총리의 사임을 맞았지만 7월 25일 한미군사연습에 관찰자(observer)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특혜를 얻게 되었다. 베트남은 비록 남해문제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 같았지만 그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일 것인가는 더 관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통하여 가장 큰 이득을 본 국가는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역외 국가로서 이 지역에서의 “공제할 수 있는 정도의 위기”를 이용하여 지역사무에 관여해왔다(金強一 2004).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아시아에 되돌아 올 수 있게 되었으며(return back to the Asia) 북한을 압박하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시피 한국과 중국은 이번 천안함 사건의 직간접적인 피해자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17.5km 의 국경을 가지고 있는 외에 중국과는 1,334km, 한국과는 248km 의 국경을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특성상 한국과 중국은 북한형세에 가장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동시에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이다. 공통의 문제의식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광범위한 협력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포함한 북한문제에서 전략적인 상호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천안함 외교를 통하여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차이는 다시 한 번 증명되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은 자신의 전략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일방적인 ‘미국 일변도’ 전략은 합리적인 것인지, 중국의 지속적인 ‘북한 감싸기’ 또한 합리적인지 고민해 보는 동시에 한중 양국의 상호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넓은 범위와 더 높은 차원에서 토론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3.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와 미중 G2체제

 

동아시아는 현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체제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중국 두 대국의 ‘공동 관리’ 체제가 형성되고 발전하는 시기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은 동아시아지역이 아직도 냉전체제 속에 처해 있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미연합군사연습에 대한 중국의 수위 높은 대응도 동아시아가 더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1)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

 

제2차 세계대전이 동맹국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을 무렵 미국과 소련은 얄타회의, 카이로 회의, 포츠담 회의 등 일련의 회의를 통하여 전후처리와 세력범위에 관해 합의를 달성하였다. 얄타체계는 동아시아를 소련과 중국대륙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진영과 미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진영으로 갈라놓았다. 1950년의 한국전쟁과 3년 후의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북위 38도 군사분계선을 사이 두고 동아시아에서 냉전체제가 확립되었음을 공식화하였다.

 

45년 동안 진행되어 왔던 전 세계적 범위의 냉전은 소련의 몰락으로 일단락이 되는 듯 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가 법률적인 계승자가 되었고 이전의 사회주의 동유럽권은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냉전의 상징이었던 두 개의 동맹기구는 부동한 운명을 맞이했다. 사회주의진영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된 반면 자본주의진영의 북대서양조약기구는 그 세력이 강화되는 특성을 보였다. 동시에 한반도의 분단과 러시아의 북방열도에 대한 점령 등은 동아시아에서 냉전체계가 아직 해체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동아시아에서의 냉전 상태는 남북한의 분단으로 표현되는 한국과 북한의 갈등과 미국과 북한의 대립이다. 더욱이 북한이 핵개발과 핵무장을 추구하고 있어 지역 정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상당기간 누적된 국가실력의 차이로 북한의 전략목표가 비록 한반도 남반부에 대한 통일이 아닐지라도 미국과 한국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중국의 미국 세력에 대한 위협감으로 인해 중북협력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나아가 동아시아지역에서의 냉전구조를 장기화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