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제기 : 동북아 안보정세와 천안함 사건

 

한반도가 중심에 위치한 동북아시아는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초강대국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북아의 주요 행위자로 간주된다. 냉전기 남북한을 경계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팽팽하게 대립했던 동북아는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도 다양한 긴장요인이 존재한다. 남북한은 여전히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대치중이며, 중국과 대만도 분단 상태로 남아있다. 일본은 주변 3개국과 모두 영토분쟁 중이다. 남북한을 둘러싸고 한국은 미국과, 북한은 중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은 일본과도 동맹관계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모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동시에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적 수준의 강대국이 이 지역의 행위자로 집중되어 있으며 다양한 긴장과 제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의 최상위 3개국이 위치하고 있으며 상호간의 경제교류와 인적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 국가 간의 경제적인 상호의존도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의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이 포함된 동북아의 경제력이 더욱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결국 동북아는 대립과 경쟁, 그리고 협력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복잡한 안보환경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지역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정전 상태인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을 위협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한반도 안보에 치명적이다. 남북관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한국의 군비증강을 유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북아 안보환경 측면에서도 북한의 핵보유는 사실상 핵개발 능력을 충분히 보유한 일본이나,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대만의 핵보유 등 역내 연쇄적 핵보유 가능성을 소지하고 있으며, 일본과 대만의 군비증강에도 영향을 주어 역내 군비경쟁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 중심이 되는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위협을 동시에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체제의 붕괴가능성이 관측되는 가운데 김정일의 건강악화와 이에 따른 후계구도에 있어서 정권의 안정성을 얻기 위해 핵보유가 필수적이라는 대내적인 의도와 함께, 냉전 이후 남북 간의 군사력 불균형이 심화됨에 따라 핵보유를 통해 이를 만회하고 동시에 비핵화를 조건으로 하여 미국이나 한국과의 협상과정에서 필요한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는 대외적인 의도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신성호 2010, 140-144; Wang 2009, 52-53).

 

미국은 북한 핵문제가 처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1993년 1차 북핵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이래로 미국정부는 북핵을 단념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북한은 클린턴과 부시와의 핵협상을 통해서 미국으로부터 필요한 보상을 얻는 한편 은밀하게 핵개발을 지속시켜왔다. 반대로 미국은 협상의 결과로 기대했던 북한의 비핵화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이 보다 발전되고 실체화된 핵개발을 통해 더 큰 위협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두 행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인한 것으로 이번 오바마 행정부는 그러한 과오를 재차 범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오바마는 취임 이전부터 북핵문제 해결에 관한 의지를 보여왔으며, 분명하게 북한의 핵문제를 최상위 국가안보의제로 상정하고 있다(The White House 2010, 4; 23-24). 따라서 다양한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였으며, 그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2차 북핵실험 이후 안보리 결의안 1874호에 의해 발효된 경제제재였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 역시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주며 이전 정부와 다른 자세를 견지해왔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핵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압박하는 가운데, 지난 3월 26일 북한이 한국해군의 천안함을 공격하여 침몰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휴전 이후 여러 차례 남북한이 교전하기도 하였으나, 이번 천안함 사건은 한국해군 4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명백한 북한군의 도발행위였다. 천안함 사건 이전에 남북관계와 미북관계는 이미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사건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동북아의 복잡한 안보환경과 그 안에서 발생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동북아 정세를 급격하게 긴장시켰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이러한 북한의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이미 북한 핵문제 처리를 위해 고심하고 있던 미국의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 이후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보다 강경해 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게 천안함 사건이 미국의 대북정책, 특히 북핵문제 정책에 있어서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분명하게 대북 강경책으로 대응하는 가운데,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대북정책에 중요한 변화가 관측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북한 핵정책 옵션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검토가 요구된다.

 

2. 미국의 대북 핵정책 옵션

 

미국의 대북 핵정책 목표는 북한이 핵을 단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핵 프로그램의 폐기는 물론 미래에도 핵 보유의 의지를 갖지 않도록 함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강압(coercion)에 관한 정의는 합의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군사력의 사용이라는 위협과 그 위협을 증명하기 위한 제한적인 군사력의 사용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다르게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강압이라고 정의된다(Byman and Waxman 2002, 30). 이와 유사하게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 전략은 상대국의 위협적인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위협이나 제한된 군사력을 통해 설득하는 것이다(Craig and George 1983, 189).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압력을 가해 상대국가로 하여금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하거나 단념토록 하는 것을 강압(coercion), 또는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압외교는 상대국으로 하여금 위협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보상이나 보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George 1991, 10-11). 즉 위협 또는 제재와 함께 유인(inducement)을 통해서 상대국으로 하여금 강압국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크게 강압외교의 범주에 해당된다. 오바마 행정부의 첫 국가안보전략(NSS)에서는 “만약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시키면 국제공동체와 함께 정치적, 평화적 통합의 과정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지만, 북한이 이러한 국제적 의무를 거부할 경우 우리는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국제적 비확산 규범에 순응하도록 다양한 수단(multiple means)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The White House 2010, 23-24). 이는 미국의 대북 핵정책이 수사적이기는 하지만 유인과 함께 강압외교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을 나타낸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 핵정책은 강압의 차원과 일종의 유인의 차원에서 크게 세 가지 옵션으로 나타난다. 강압의 차원에서 미국이 선택 가능한 대북 정책의 선택지(option)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제한된 수준의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제재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surgical strike)으로 나타나고 후자의 경우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로 나타난다. 유인을 통한 북한 핵포기의 옵션은 북한을 설득하여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방법, 즉 외교적 협상(diplomatic negotiation)을 의미한다.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일정 수준의 보상을 통해 핵개발보다 핵포기가 이익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여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각각의 옵션은 모두 그 가능성이 전제된 상태로 미국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선택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러한 미국의 옵션들, 즉 군사적 타격(military strike), 경제제재, 그리고 외교적 협상은 이미 지난 클린턴 행정부의 1차 북핵 위기 시에 고려되었던 것들이다(Chung 2007, 87).

 

(1) 제한적인 군사력 사용(surgical strike)

 

강압의 수단으로 제한적인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중요하게 사용되는 옵션이다. 대표적으로 코소보 내전에서 밀로셰비치가 알바니아계 인종에 대한 억압정책을 중단시키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공습을 단행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대북 핵정책 옵션에서는 영변 핵시설과 같은 핵개발 관련 지역에 대한 정밀폭격이나 기타 군사시설에 대한 정밀폭격 등을 상정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강압은 전면전을 통하지 않고 제한된 군사력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므로 제한적인 정밀폭격은 강압외교의 가장 대표적인 옵션이다.

 

물론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하는데 있어 강압이 아닌 이라크전과 같은 전면전도 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낮고 사실상 선택할 수 없는 옵션으로 생각된다. 이는 전면적인 군사력 사용이 가능한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적 개입(military intervention)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냉전기에는 동서간의 진영으로 강대국들이 분할하여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경쟁하였으며, 남반구와 북반구간에는 발전의 정도와 격차로 인해 조화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유엔과 같은 국제공동체가 의견일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Cronin 2002, 157). 그러나 탈냉전을 통해 그동안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던 유엔 안보리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하여 신속하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 없이 무력개입을 승인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위해서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유엔 안보리를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다만 걸프전 이후 단 한 번도 이러한 무력사용의 명시적인 승인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적어도 사후에 정당성을 승인 받거나 아니면 적어도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과 같은 경우는 9.11 테러로 인해 미 본토가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어 미국의 전면전이 가능했다. 결국 미국이 대규모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북한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북한과 동맹관계인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남아있는 한 유엔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북한에 의해 미국이 공격받는, 즉 유엔 헌장에서 명시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북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에 사용할 수 있는 군사력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제한적인 군사력의 사용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위의 옵션인 것이다. 그러나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과 같이 제한적으로 군사력이 사용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중국의 외교적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중국과 체결한 동맹조약에는 외부의 침략에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가 중국에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점을 본다면, 제한적인 군사력 사용 옵션은 이후 중국의 반발과 그에 대한 대응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게 평가된다.

 

(2)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

 

국가 정책으로서 경제적 수단을 통해 다른 국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재와 유인을 모두 포함한다. 그 중 경제적 제재는 대상국으로 하여금 제재국의 의도에 순응하도록 강압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Blanchard, Mansfield, and Ripsman 2000, 3). 이는 금융지원의 감소, 무역과 투자의 금지, 자산의 봉쇄와 같은 방법을 통해 상대국의 행동의 변화를 강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재는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도 대상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실제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의 확산을 저지하거나, 인권의 증진, 테러지원의 중단, 마약의 근절, 환경보호, 무력침공의 중단, 정부의 교체 등을 목적으로 경제제재를 사용해왔다(Haass 1998, 1-2). 이러한 경제제재는 군사력 사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북한 핵정책에 있어서도 미국은 이러한 경제제재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이 실시한 두 번의 핵실험을 통해서 유엔 안보리는 각각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러한 제재를 발효시켰다. 오바마 행정부는 결의안 1874호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경제제재를 진행 중이다. 제재의 영향과 효과는 제재 자체가 대상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 이외에도 보다 궁극적으로는 대상국의 외교적, 군사적 행태변화를 이끄는 측면도 고려할 수 있다(성채기 2009, 11). 따라서 이러한 경우 미국에 있어 대북제재의 목적, 즉 북한으로 하여금 이끌고자 하는 최종상태(end state)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통해서 이미 심각한 북한의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켜 체제를 전복시키는 목적을 세울 수도 있고, 아니면 강력한 경제적 압박을 통해 핵 포기 자체를 강요하는 하는 목적을 세울 수도 있으며, 북한이 협상에 임하도록 강요하는 목적을 세울 수도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