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CISS 공동 한중 동북아안보대화

전문가패널

Security Briefings Series No.1-1

 

주 펑 북경대학교 교수

 

 


 

 

서론

 

2009년 2월 이래, 북한은 제2차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 발사, 6자회담 불참 선언, 1953년 정전협정 종결 선언 등 일련의 도발적 행위를 벌이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안보에 대해서도 심각한 위협을 초래했다. 보다 심각한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전면적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최근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제1874호를 통과시킴으로써, 세계 평화와 안보에 대한 북한의 도전적 행위를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치적 수단과 외교적 노력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조치였다. 또한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6자회담이라는 다자적 지역안보 노력이 결국 와해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안보를 지탱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보장하기 위한 6자회담의 노력 이후에 우리가 구상할 수 있는 안보의 수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북한 핵 문제가 점진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북한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지금까지도 ‘북한문제’가 뚜렷한 변화와 융통성을 갖지 못한 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또한 조화롭게 발전하고 있으며, 냉전 종식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기본적 안보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제도적 차원의 안보협력체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의 안보를 확고히 지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지역에 이해를 가진 강대국들과의 관계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주요한 요소이다. 안보 문제와 관련하여 제도와 주요 강대국 간의 관계라는 ‘안보구조’를 무시한다면, 결코 다른 국가들의 안보 요구를 포용할 수도 지역의 안보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냉전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구조는 새로운 조정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 구성원들은 이익의 충돌을 겪고 있으며 강대국이 원하는 안보 질서 수용을 거부하면서 마찰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 전형적인 국가가 바로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두 곳이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이 잔존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냉전이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핵위기를 조성하면서 끊임없이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위협해 왔다. 오늘날 한반도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되었으며 나아가 세계적인 불안정 요소를 잉태하게 되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의 참전국이면서 6자회담의 창도자唱導者이고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국가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을 빼놓고는 북한문제를 생각할 수 없다.

 

한편으로, 중국과 북한은 여전히 우호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가장 중요한 무역 동반자이자 에너지의 주요 공급 국가이기도 하다. 2008년, 중국과 북한의 무역 총액은 28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양국의 무역량은 북한의 대외무역 총계의 73%를 차지했다. 북한은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한국은 1992년 국교 수립 이래 지속적인 관계 발전과 우호 증대를 이루어 왔다. 그리고 양국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진일보하게 되었다. 이렇듯, 한반도 문제와 중국은 결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에, 북한의 핵포기를 달성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한중 간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이에 먼저 중국과 한국 양국의 관계발전 과정 중 북한의 요인에 대해 회고하고, 북핵문제의 핵심 요인과 중국의 핵심 이익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작금의 북핵 위기 속에서 미래 한중관계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한중관계의 발전과 북한의 요소

 

1992년 국교수립 이래, 한중관계는 다방면에 걸쳐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양국은 경제와 무역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문화 분야에서도 ‘한류’와 ‘한풍’漢风은 이미 중국인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 또한 다소 빈약했던 양국의 정치관계도 2008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수립으로 한 단계 격상하기에 이르렀다. 한중관계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견고한 양국관계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중관계의 전반적인 발전과정을 되짚어 보면, 한결같이 지속되어 온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또한 한중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정치 및 전략적으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 중국과 한국 양국의 관계가 특별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던 것이다.

 

1983년, 북경은 제11회 아시안게임 유치를 신청하였다. 만약 북경의 아시안게임 유치가 성공하게 된다면, 한국 아시안게임 이사회의 모든 멤버들이 북경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이에 김일성은 마지못해서라도 중국의 선의를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1991년, 중국은 한국의 UN 가입을 묵인하면서 동시에 남북한의 UN 동시 가입을 실현시키기 위해 북한을 끊임없이 설득하였다. 이 또한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경은 당시 미국이 제안한 ‘교차승인모형’ ─ 중국과 한국의 국교수립, 미국과 북한의 국교수립 ─ 에 찬성하였으나, 이는 곧 북한의 반대에 부딪혔다. 1992년 8월24일 한중 양국은 일련의 교류와 준비를 거친 끝에 정식으로 외교관계 수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김일성은 중국에 대해 “중국이 이미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면 그렇게 하시오. 우리는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고수하며, 설령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것이오.”라고 응수했다. 이 때 형제의 관계로 묘사되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심각한 손상을 경험하면서 금이 갔을 지도 모른다. 설령 훗날 중국이 북한에게 여전히 식량과 원유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말이다.

 

중국과 한국의 국교수립과 양국의 순조로운 관계 발전은 중국의 국가이익과도 부합할 뿐 아니라 북한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한중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 통일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과 한국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자신들에 대한 배반으로 여기며 중국과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고 전 세계와도 멀어져 갔다. 중국은 보다 개방적이며 강대해졌지만,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한층 더 보수적이고 빈곤해져 갔다. 이 같은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은 의심할 것도 없이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의 교착상태이다. 냉전의 종결 후 근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평양은 여전히 냉전에 머물러 있다. 북한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발전은 냉전 후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 과정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러한 까닭에 이미 변화된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환경에서 북한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바로 폐쇄적인 심리상태에서 근거한다. 중국과 한국의 국교 정상화와 지속적인 교류의 증가에 북한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북한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과 폐쇄적 반응으로 일관하였다. 중국과의 신뢰가 깨어졌다고 판단함에 따라, 북한은 증오와 심지어 배반을 당했다는 기분을 갖게 된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