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재해로 여유잃은 터에 韓사법부 결정·대일비판외교에 분노
"단기간 변화 어렵다" 중론이지만 '한국 중요' 인식은 여전

 

2014년 3월 16일 일본의 극우단체 '재일(在日)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집회가 도쿄 도시마(豊島)구의 번화가인 이케부쿠로(池袋)역 근처 도시마공회당에서 열린 모습.

 

2011년 9월 한류스타 배용준이 일본을 찾았을 때 도쿄 하네다공항에

4천여 명의 팬들이 마중나온 모습.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한 2015년 들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 일로 4월 7일 확정된 2015년 일본 외교청서(외교백서)의 한국 관련 기술 변화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작년까지 포함됐던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이 삭제됐고, 한국이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만 남았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관계에 호재를 찾아도 모자랄 시점에 한국의 '정체성'에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일본 언론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민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역주행이 한일관계 악화의 주범이라는 게 한국인의 전반적인 인식이지만 다수의 일본인은 한국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시민단체 '언론 NPO'가 4∼5월 실시한 한일 공동 여론조사에서 일본 측 응답자의 52.4%는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고 답했고 요미우리신문이 지난달 15∼17일 실시한 조사에서 일본인 73%가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혐한 시위에 대해 자성론은 있지만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정도의 여론이 형성되지 않고 있고, 일본 서점가 베스트셀러 서가에 혐한 서적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한국의 성장에 놀라고, 배용준이 일으킨 한류붐에 열광하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지만 한국을 보는 일본인들의 인식은 이처럼 급속히 얼어붙었다.

 

많은 이들이 분기점이었다고 평가하는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로 치면 불과 3년만의 격변이었다.

 

원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일본 내부 상황의 변화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이라는 '우산'을 한일이 함께 썼던 냉전 시기 안보를 미국에 맡긴 채 경제에 치중한 일본인들에게는 한국과 안보상 이해를 공유한다는 생각과 자국 고도성장에 따른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과거 가해사실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청구권 자금 지급과 그 외 한국에 대한 각종 지원이 별 무리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후 1990년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과 그 후의 양국 문화교류 확대, 2000년대 월드컵 공동개최와 한류붐은 일본 내 한국의 이미지와 위상 개선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20년 장기 불황의 끝에 2010년대 들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 주고 최악의 동일본대지진(2011년)을 겪으면서 일본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경제적 풍요가 주는 마음의 여유를 '상속'받지 못한 터에 '선대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왜 상속받아야 하느냐'는 인식이 제대로 된 근현대사 교육의 부재 속에 일본 기성세대에 급속히 파고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와 국력이 가파르게 성장하자 한국에 대한 '미안함'이 차지하던 자리에 '경계심'이 치고 들어온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1980년대 초반 교과서 문제가 나왔을 때 '근린제국 조항'이라는 검정 기준을 도입, 교과서 기술시 이웃국가를 배려하도록 하고, 역사 망언을 한 관료는 경질하면서까지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일은 이제 '낯선' 과거가 됐다.

 

또 정상교류가 끊긴 최근 2∼3년간 한일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사안들이 결과적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 악화로 연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비판뿐 아니라 한국 사법 당국의 판단도 영향을 줬다.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방화한 중국인 류창(劉强)에 대한 일본의 인도 요구를 거부하고 중국으로 보낸 일, 한국인 절도범이 일본 사찰에서 훔쳐 반입한 고려불상의 원대 복귀를 보류시킨 일, 박 대통령에 대한 '악성 루머'를 기사화한 산케이신문 기자가 약 8개월간 출국금지된 일 등에서 일본인의 생각은 한국인의 그것과 첨예하게 엇갈렸다.

 

이 같은 한국 법원의 조치들은 아베 정권 뿐 아니라 일본 일반인에게 혐한, 반한 정서를 급속히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배경 속에 박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아베 총리를 비판하면 할수록 일본인들은 '자성'하기보다는 '반감'을 키웠다.

 

또 한국이 급속히 친 중국화하고 있다는 인식도 한국에 대한 불신의 배경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양상이다.

 

중국이 '대국굴기'를 본격화하고 있는데 대해, 한때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 갖고 있는 경계심은 한국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 역사인식 문제에서 대 일본 공동보조를 취하는 한국은 결국 중국과 '한 편'이라는 것이 많은 일본인의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단기간에 개선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국 전문가인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니가타(新潟)현립대학 정책연구센터 부교수는 "일본인들이 전반적으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보고 있어 어떤 계기가 있더라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복안(復眼)적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서로 어려운 상황 같다"고 말했다.

 

다만 동아시아연구원-언론 NPO의 조사에서 일본인의 65.3%는 '한국이 중요하다'고 답한 점은 향후 상황 변화에 한가닥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 위협에 맞선 한미일 차원의 안보 협력, 한일간 경제협력 등 호혜적인 협력의 이유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본인 역시 한일관계 정상화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