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2013년 기초연금 공약파기 부터 연말정산 파동까지 집권 2년 내내 논란

 

‘무능하거나 사기치거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를 이렇게 표현했다. 1월 22일 이 교수는 연말정산 증세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증세효과가 발생할 것인지 모르고 세제개혁을 추진했느냐,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추진했느냐는 의문입니다. 만약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무능입니다. 정부가 간단한 시뮬레이션 몇 번 돌리면 금세 알아낼 수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정말로 용서받기 힘든 일이지요. 그것이 아니고 은밀하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세제개혁을 추진했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셈입니다.”

 

‘모르고 하면 무능 알고 하면 사기’

 

세제개편으로 바뀐 연말정산 논란의 핵심은 5500만원이다. 정부는 5500만원 이상인 사람만 세부담이 늘도록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막상 연말정산을 해보니 5500만원 이하 연봉에서도 세금을 토해내야 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김진영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연말정산 파동을 ‘정부의 무능’ 아니면 ‘사기’라고 말했다. “세법을 개정할 때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 등 계층별로 그 효과를 분석할 수 있다. 이번 파동이 ‘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각종 공제혜택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안 돌려봤던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 하나만 돌려보고 5500만원 이상이면 부담이 있고 그 이하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반면 세제개편으로 국민 대부분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음에도 이를 밀어붙였다면 사기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하거나 사기치거나’는 연말정산 세제개편만이 아니다. 한 조세전문가는 연말정산 파동을 보며 공약가계부 논란을 떠올렸다. ‘증세 없는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장담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은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였다. 그 방법을 담아 2013년 5월 31일 기획재정부와 관계부처는 ‘공약가계부’도 만들었다. 그러나 5개월 후인 10월 30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4년 세입예산안 분석 및 중기 총수입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공약가계부에 있는 재원 조달방안은 잘해야 60%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조세전문가는 “공약가계부를 발표했을 때, 정부가 재원 확보가 안 될 거라는 걸 모르면서 그러는지, 알면서 사기치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개별소비세를 신규 부과하는 것은 세목 신설에 해당하는데, 이를 비과세 감면에 해당한다고 해놨더라. 조세 연구하는 사람 대부분은 공약가계부대로 세수 확보가 안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계속해서 공약가계부를 잘 지키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몇 번씩 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출입기자의 국정 현안 관련 질문을 들으며

메모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DTI(총부채상환비율)·LTV(주택담보인정비율) 완화도 ‘무능 아니면 사기’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주택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DTI, LTV 상한을 각각 60%, 70%로 완화했다. 그러나 주택시장은 활성화되지 않고, 가계부채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가 DTI·LTV를 완화한 지 5개월도 지나지 않은 구랍 10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현재의 높은 가계부채 수준이 발생시키는 여러 위험요인을 감안할 때 LTV·DTI 규제 강화, 이자율 수준 정상화를 통해 적정한 가계부채 접근성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LTV·DTI 규제 완화 및 금리 인하의 동시 진행으로 가계부채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부실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DTI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정책도 국민에게 부담이 갈 것이라는 게 뻔한데,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집값만 띄우려고 한 것이다. 이미 1000조원을 넘긴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누구나 다 예측한다. 그걸 모르고 이 정책을 폈다면 정말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한 것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무능이냐 사기냐’는 비판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기초연금이다. 정부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하겠다고 발표해 비판을 받았다. 선거 기간 중 ‘모두에게 20만원씩 드리겠다’가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기초연금 공약파기 긴급토론회’에서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정말 그때도(대선 전) 증세하지 않으면 지금의 재원 가지고는 어렵다고 할 때, 정말 몰라서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 했다면 사기였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박근혜 캠프가 공약집에는 국민연금과 연계하겠다고 해놓고 TV토론에서는 ‘모두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공약파기는 사기다”라고 주장했다.

 

정책 오락가락 신뢰기반 무너져

 

집권 2년 내내 ‘무능이냐 사기냐’는 논란 속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해 왔다. 이 신뢰는 위기 때마다 박 대통령이 정국을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집권 2년차 박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이 힘이 급격하게 와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은 구랍 3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의 신뢰기반이 균열됐다고 분석했다. 한국리서치가 12월에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지킨다는 주장에 대해 공감비율이 52.7%로 2014년 1월 조사에 비해 11.4%포인트나 하락했다. 공감비율이 68.6%로 지난해 조사 중 가장 높았던 2월과 비교하면 15.9%포인트나 하락한 셈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신뢰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은 정부의 정책들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금문제, 주택문제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대통령 신뢰 평가에 이런 것들이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집권 3년차로 넘어가면서 정권을 평가할 때 경제적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정권 초에는 경제에 대한 책임을 이전 정부나 외부 상황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집권 3년차부터는 지지율에 경제적 요인들이 반영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정 사무국장은 지지율 관리의 세 가지 자산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대통령 지지율 관리의 최대 자산은 뭐니 뭐니 해도 대통령 개인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신뢰기반과 집권 초라는 국정 사이클의 타이밍 효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집권 초기 국정 지지기반 이탈을 가져오는 집권층 내부 파워게임을 효과적으로 관리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집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집권 초의 허니문 기간은 지났다. ‘비선의혹’ ‘수첩파동’으로 집권층 내부의 파워게임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능’과 ‘사기’를 오가는 정책이 거듭되면서 신뢰기반마저 무너졌다. 지지율을 떠받쳤던 세 가지 요인이 모두 주저앉으면서 박 대통령이 지지율을 반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