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나 연구기관들은 이따금씩 국가기관들의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들을 내놓는다.

 

가장 최근의 것은 지난 2013년 8월 중앙일보가 동아시아연구원과 조사해 발표한 것인데 여기서 검찰과 국세청, 국정원, 새누리당 등 전통적인 권력조직들은 높은 영향력을 누리고 있는 것에 반해 그에 걸맞는 신뢰도는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3013년 8월 22일자, 24개 파워조직 국민인식 평가 조사)

 

특히 검찰은 국가기관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신뢰도는 꼴찌에서 두번째였다. '영광스런' 꼴찌는 국정원이 차지했다.

 

영향력과 신뢰도 격차가 가장 심한 조직은 단연 검찰이었다. 국민들은 검찰이 힘은 세지만 그 힘을 올바로 쓰는지는 가장 미덥지 못하다고 본다는 의미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검찰은 지금 증거위조 '주범'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방조범'으로 몰리고 있다.

 

1심이 무죄가 났고 항소심 과정에서도 변호인은 여러차례 피고의 북한 출입경 기록이 위조됐을 가능성을 제기했기 때문에 검찰에겐 이를 검증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평소 국민적 신뢰가 굳건한 조직이었다면 검찰은 애초부터 '용의선상'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증거를 조작한다니 이런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어디 있나'라고 검찰은 억울해 하지만 지금의 싸늘한 시선은 여태 쌓아온 스스로의 신뢰 성적표 탓이다.

 

 

'신뢰받는 검찰'.

 

역대 검찰총장들은 취임사에서 거의 모든 이가 빼놓지 않고 '신뢰'를 거론했다.

 

거악을 척결하고 국가기강을 세우고 사회전복 세력과의 전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최전선에서 치르고 있는 검찰이라는데 그 검찰이 왜 이런 무너진 '신뢰의 잔해'를 헤매고 있는 건가.

 

지금은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예전에 한번 대통령과 평검사들이 TV에 나와 맞장토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때 검사들은 대통령에게 '정치권이 검찰 인사에 관여하지 말라' '대통령이 청탁 전화를 했다' '제압하려 하지말고 검사들 얘기를 들어라'라며 할말을 다했다.

 

아마도 검찰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시기는 대략 그때였던 것 같다.

 

검찰은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던 안희정 충남지사를 불법 정치자금 연루 혐의로 법정에 세웠고 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 역시 불법자금 수수로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몰아친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는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에게 '국민검사'라는 별칭도 만들어줬다.

 

아마 살아있는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정면으로 칼날을 겨눈 일은 검찰 역사상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일본의 검찰이 굳건한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온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 검찰의 역사는 살아있는 권력과의 싸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 검찰은 지난 1976년 록히드마틴 사건에서 당시 정계의 최고 거물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1989년에는 자민당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리쿠르트 사건을 해결했고, 1992년에는 가네마루 전 자민당 부총재를 구속한 사가와규빈 사건, 93년부터 94년에 이어 벌어진 제네콘 사건, 금융계와 야쿠자 연계를 밝혀낸 97년의 노무라 증권 사건 등을 잇따라 처리하면서 일본 검찰은 권력을 가진 거악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했다.

 

살아있는 권력과 거악에 용맹하게 맞선 이 혈투에 일본 국민은 열광했고 그 결과가 오늘날 일본 검찰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뢰다.

 

공익을 지키기 위해 직을 걸고 권력과 싸우는 검사들에게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수사결과로 감옥에 가야할 피의자밖엔 없다.

 

한국 검찰 역시 현직 대통령에게도 대쪽같은 소신을 펼치면서 용맹하게 맞서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개는 정권이 바뀐 뒤엔 확연히 달라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고등검사장 이상 고위직으로 임명해 청와대의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확연히 키운 MB정권 하의 검찰은 BBK사건 무죄를 비롯해 PD수첩 수사,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수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미네르바 사건, 내곡동 사저 사건, 민간인 사찰수사 등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에 딱 맞는 결과만을 내놨다.

 

정권에 유리한 사건들은 무리하게 기소해 결국 법원에서 무죄가 나온 사건이 태반이고 권력에 불리한 수사는 늑장 수사, 부실 수사 논란이 끊이지가 않았다.

 

지난해에는 검찰총장과 대검 중수부장이 서로 나가라면서 볼썽사나운 극한 갈등을 보여줬고 총장에 대한 항명사태가 벌어졌다.

 

피의자 성추문 검사에 그랜저 검사, 해결사 검사가 나타났고 심지어 여기자를 추행한 검사가 감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 와중에 현직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총장과 윤석렬 검사는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바로 검찰 신뢰도 꼴찌를 만든 주범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간첩사건 증거조작에 관련돼 있는거 아니냐는 의심은 그리 불합리해 보이지가 않는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어지간해서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회복된 신뢰도 애초에 아무 의심이 없던 때와 같지는 않다. 검찰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먼저 신뢰를 회복할 생각은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