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사회, 노조에 주목하라④] 사회적 책임, 존경받는 노조로 가는 길

 

CBS노컷뉴스는 앞서 고용이 마치 신분으로 고착화 되는, 이른바 ‘고용카스트 현상’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격차가 벌어지고, 이제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공고화되는 이른바 ‘격차사회’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과연 노동조합은 격차사회를 시정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4차례에 걸쳐 격차사회 속 노동조합의 현주소와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씨앤앰 노조는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의 노조설립을 지원해왔다. 사진은 씨앤앰 노조가

협력업체 비정규직의 노동인권 보장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장면 (사진= 씨앤앰 노조 제공)

 

"우리는 한 가족"…기적의 뒤엔 원청 노조가

 

고용불안과 실적압박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케이블 애프터서비스(A/S) 기사들. 그들은 최근 연봉이 360만원이나 오르는 기적을 맛봤다. 그리고 그 기적의 뒤에는 원청업체 정규직 노조의 지원이 있었다. 지역케이블방송인 씨앤앰(CNM) 노조 얘기다.

 

정규직들로 구성된 씨앤앰 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24개 협력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AS 기사들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영세업체인 외주업체 직원들이 스스로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씨앤앰 노조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 2월, 24개 협력사 가운데 16개 협력사에서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조 (케비지부)가 설립됐고, 최근에는 협력사 사장들과 임금협상에서 연 360여만원의 임금인상 성과를 거뒀다.

 

협력사의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던 AS 기사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쾌거도 이뤄냈다.

 

"비정규직 임금 올려달라" 요구하는 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조인 씨앤앰 노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씨앤앰 노조는 사측과의 임금협상을 앞두고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임금인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임단협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측은 결국 정규직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씨앤앰 노조는 원청의 밀어내기 관행도 없애,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떠넘겨졌던 주말 AS작업도 지금은 정규직과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씨앤앰 노조 이동훈 지부장은 “2008년 아웃소싱되는 과정을 보면서 협력업체 직원들도 우리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같이 했기 때문에 더 힘있게 임단협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씨앤앰 노조의 사례는 원청의 정규직 노조가 하청업체 비정규직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보건의료노조, 협약에는 "사회적 책임"

 

산업별 노조인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산별중앙협약서에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명문화했다. 이에따라 산하지부 43곳이 사회적 책임을 단체협약에 명시하고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짜게 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007년에는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3%~1.8%를 따로 떼어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번 협약에서도 비정규직 차별해소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정책실장은 “보건의료 산업은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분야로 책임이 크다”며 “노조 또한 비정규직 고용안정 뿐 아니라 환자의 권리보장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보다 못한 신뢰도…노조에 새로운 역할 요구

 

이처럼 일각에서는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여론을 뒤바꾸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실제로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1987년과 그로부터 20년 뒤인 2007년에 진행한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노조요구가 정당하다'는 의견은 89년 67%에서 2007년 41.3%로 떨어졌다.

 

노조의 사회적 불평등 해소 효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은 69.8%에서 40.2%로 줄어든 반면 '부정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5.7%에서 24.4%로 급증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오히려 우리사회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여론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올해 수행한 ‘파워조직 신뢰영향력 조사’에서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신뢰도 부문에서 전체 24개 조직 중 각각 19위와 21위로 하위권을 맴돌았다. 심지어 전경련(13위)이나 국정원(16위)보다 신뢰도가 낮았다.

 

한때 우리사회의 격차해소와 민주화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자꾸 떨어지는 점은, 이제 우리 사회가 노조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존경받는 노조'로 가는 길

 

더 이상 '기업은 가해자, 노조는 피해자'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은 지난 2011년 국제표준화기구에 의해 ISO 26000이라는 국제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노동조합도 이제는 기업을 넘어 사회적인 책임에도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노조가 연대기금을 통해 협동조합 창업 자금을 조성하거나, 임금인상 자제를 통해 저임금 부문과 임금을 나누는 스웨덴 노조의 사례처럼 선진국 노조들은 이미 사회적 책임 부분에 민감히 반응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운동은 한 사람이 열 걸음 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게 더 중요하다”라며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성을 해야 하고 기업별 노조에서 벗어나 초기업적 단위의 노조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HRD 연구센터의 진숙경 선임연구위원은 제도적 보완을 주문했다. 진 위원은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면서도, “노조가 양보한 것이 사회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할 만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때 민주화와 우리사회의 격차해소를 주도했던 노조가 다시 존경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책임, 그리고 연대와 양보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