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일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5월 기시다 총리의 방한으로 12년 만에 셔틀외교가 복원되었고, 이를 계기로 양국 정부 간 대화와 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방일을 앞두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가깝게 교류해 온 숙명의 이웃 관계”라고 언급하면서, “한일관계는 함께 노력해 함께 더 많이 얻는 윈-윈 관계가 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1] 기시다 총리는 5월 7일 한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앞으로도 한일관계를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셔틀외교를 계기로 그간 경색되었던 양국 관계가 전환되면서 한일 간 미래의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한국의 대외관계 중 한일관계는 지난 10여 년간 가장 논쟁적이었을지 모른다. 한국의 대일관계는 식민지 시기를 거친 역사적 경험을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국제정치이론에서 현실주의는 국가 간의 상대적인 힘의 배분에 따라 국가의 대외정책이 결정된다고 보고, 자유주의는 경제적 상호의존에 따라 국가 간 절대적 이익을 창출하는 대외정책을 강조한다. 한편, 구성주의는 국가가 역사적으로 경험해온 사회문화의 특징에 따라 대외정책이 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점에서 역사적 경험이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대외정책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손열(2018)은 과거를 해석하는 집단적 기억에 따라 국가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한일관계의 독특한 특성이 상대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즉, 한국의 대일관계는 과거사에 대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앞선 언급처럼 한국의 대일관계를 형성하는데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한일관계의 동학(dynamics)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한일 양국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는 양가적 특성을 보였다. 과거사로 인한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존재했다면 한일관계는 갈등적 양상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갈등을 빚다가도 협력으로 돌아서거나, 협력을 하다가도 갈등으로 번지는 복잡한 진화의 경로를 지나왔다는 점이다(남기정 2015). 다만,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미중 전략경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일관계는 협력보다 갈등이 지배적이었다. 국내적으로는 위안부 문제가 재발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재점화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대화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고, 한미동맹을 한반도 방어에 집중했다. 일본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전략을 제시하며 미국과의 동맹협력을 강화했지만, 경색된 한일관계로 인해 한미일 협력은 지체되었다(조은일 2021).
그렇다면 현재의 한일관계는 어떠할까. 미중 전략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르게 한일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중요시하며 한반도 안보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안보에 있어 한미일 안보협력의 전략적 가치를 재고하고 있다. 이어 한국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대일정책도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다시 말해 한국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에 따른 국내정치 갈등, 일본의 초계기 저공비행 사건과 한일 군사협력의 중단,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와 이를 둘러싼 무역 갈등,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통보와 그에 따른 안보 갈등 등 2018년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을 노출해온 한일관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적 관계 개선은 한미일 3자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2023년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한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이 재가동하는 정책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변화는 정책 결정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양국의 국민 여론은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정부가 한일관계를 긍정적으로 다루면 여론에도 반영이 될까. 양 국민 간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만약 양 국민 간 일정 수준의 상대에 대한 호감도나 우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정부 차원의 관계 개선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변화와는 다르게 양 국민 간 상대에 대한 호감도나 주요 이슈에 대한 인식이 차이가 난다면 정부 차원의 관계 개선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양 국민 여론의 상호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겐론NPO(言論NPO)가 2013년부터 실시해온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는 양국의 상호인식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한다. 한일 양국 여론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일정 문항에 대한 조사 결과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여론의 인식 변화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안보 이슈에 한정해서 한일관계의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안보 이슈에 대한 여론의 흐름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보여주는 게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일 양국은 북한 핵문제라는 안보위협을 공유해왔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그 원인으로 양국 간 상호 적대적인 국가정체성이 존재하며, 이에 기반한 대외정책으로 양국관계가 갈등적 양상을 보였다는 주장도 있다(Glosserman & Snyder 2015).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한일 상호인식조사 결과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만약 국가정체성, 대외인식, 역사 문제 등에 대한 상호 인식이 안보 인식과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면 안보 이슈도 한일관계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보 이슈에 대한 인식이 다른 영역에 대한 상호 인식과 괴리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II. 여론조사에 나타난 한일 안보관계
1.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친 안보 이슈
외교정책에서 여론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며, 정책결정과정에 여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2] 외교정책을 형성하는데 여론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더라도 특정 국가에 대한 정책 범위를 제한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론이 한 국가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고정관념과 같이 구축해 놓으면 정책엘리트는 그러한 여론을 반영하지 않는 정책을 만들거나 바꾸기가 쉽지 않다. 민주국가에서 정책엘리트는 여론의 불만과 반대를 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여론은 외교정책을 형성하는데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이며, 여론이 가진 타국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는 연구가 진행되는 게 필요하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한국인의 대일 인식은 확인되지만, 아직 한일관계에서 여론에 대한 연구는 폭넓게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여론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의 통일의식조사,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등에서 비정기적으로 진행된다. 일본 여론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 내각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外交に関する世論調査)가 있다. 그리고 1995년부터 실시한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에 의한 한일공동여론조사는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O와 마찬가지로 한일 공동으로 진행된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한국인의 대일 인식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가능해졌다.[3]
한일 양국은 안보적으로 중요한 협력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한일 양국 간 안보협력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군사동맹 관계도 아닐뿐더러, 함께 참여하는 다자 안보협력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일 안보관계는 냉전기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동맹체제(hub-and-spoke)의 일부로 발전해왔다. 이는 미국이 유럽 대륙 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다자 안보동맹을 구성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Campbell 2016). 미국은 양자 동맹체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개입과 후퇴를 반복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일 안보관계도 영향을 받았다. Cha(2000)는 한일 양국이 상호 군사동맹을 맺지는 않았지만, 미국을 공동의 동맹국으로 공유하는 유사동맹(quasi-alliance)이라고 정의하고, 냉전기 한일 안보관계를 설명했다.[4] 그리고 한일 양국은 평상시에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집중하지만, 미국이 지역 개입을 축소하는 위기시에는 양국 간 안보협력이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Cha의 연구가 한일 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가능한 조건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틀을 제시해주기는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독립변수로 한일 안보관계의 부침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양자 관계에서 안보 이슈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손열(2018)은 안보, 경제, 정체성 변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서로 연계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지적한다. 하나의 변수가 개별적으로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세 이슈가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연계되면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설명이다. 즉, 경제적 상호의존이 진행되면 안보경쟁이 완화되고 유사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반면, 경제적 경쟁이 진행되고 안보 긴장이 지속되면 국민감정이 악화하는 정체성 갈등으로 번지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안보-경제-정체성 넥서스(nexus)로 인해 한일관계가 규정된다.
그렇다면 한일관계에서 어떤 안보 이슈가 중요하게 제기되어 왔을까. 첫째, 미국 변수에 따른 한일 안보관계에의 영향이다. 이는 한미일 협력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연결된다. 그리고 한반도 유사시에 한미동맹을 지원하는 일본 자위대의 개입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도 포함한다. 둘째, 양자 관계에서 다뤄진 안보 이슈이다. 한일 안보관계에서 독도에 대한 영토문제는 지속된 갈등 요인으로 다뤄졌다면, 초계기 문제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는 일시적 갈등 요인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한일 역사 문제로 인해 보다 갈등적으로 다뤄지는 부정적 연쇄반응을 초래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일관계의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2. 여론조사를 통한 실증적 분석
그렇다면 여론은 한일관계에서 안보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일관계에는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는데 역사 인식이나 영토 문제는 장기간 상호 간 부정적 인식을 높이는 원인이 되어 왔다. 한일 여론은 상대를 부정적 이미지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는데,[5] 안보 이슈에서도 유사했는지 여론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특히, 한일 여론이 서로를 위협으로 여기는지, 한일 간 군사분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나아가 한일 간 안보협력은 어떤 수준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지 등 여러 질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그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O에서 2013년부터 수행한 한일 상호인식조사 결과를 활용한다. 다만,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연속적으로 조사된 항목과 비연속적으로 조사된 항목이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개별적으로 조사된 항목도 존재하기 때문에 한일 여론을 수평적으로 비교분석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1) 한일 여론은 상대를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할까
한일관계에서 지속해서 등장하는 영토 문제는 양국에 있어 군사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독도에 대한 영토 문제가 한일관계를 저해하는 원인이 되거나, 한일 정상 간 우선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과제가 되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한일 여론은 상대를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현실주의에 따르면 국가는 상대의 군사력을 통해 위협을 판단하지만, 현실에서 군사적 위협은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주관적 인식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외부의 위협뿐만이 아니라 상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위협인식이 생산되기도 하고 소멸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위협은 주관적 측면을 포함하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관계 변화에 따라 위협 인식도 변화될 수 있다.
<표 1>은 한일 양국이 각각 군사적 위협으로 여기는 국가(혹은 지역)를 보여준다. 한국 조사는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결과이며, 일본 조사는 2021년을 제외한 2013년부터 2023년까지의 결과이다. 한국 여론이 군사적 위협이 되는 국가를 북한, 중국, 일본 등 세 국가로 인식한다면, 일본 여론은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세 국가를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양국은 북한과 중국을 공통으로 위협으로 인식했으며, 한국은 일본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특징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여론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북한에 이어 일본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했고, 2017년부터는 북한에 이어 중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한국이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ir Defense Systen: THADD)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2016년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를 결정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전과 국익을 해칠 수 있다고 배치를 반대했다.[6] 이후 배치가 결정되자 중국은 2017년부터 한국 관광 금지 등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실시했다. 즉,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커지고 중국의 대한 경제 보복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여론이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중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커졌다고 이해할 수 있다.
<표 1> 군사적 위협이라고 생각되는 국가나 지역
한국 조사 결과(단위: %)
일본 조사 결과(단위: %)
한편 일본 여론은 시기에 따라 북한과 중국을 유사한 수준으로 군사적 위협으로 여겼고, 2022년부터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세 국가를 모두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한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응답률이 10% 전후로 존재했다. 이는 한국이 일본을 군사적 위협으로 생각하는 비율과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영토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되는 이슈이다.[7] 그러나 영토문제가 실질적인 군사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양국 여론이 공통적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림 1>은 한일 군사분쟁 가능성에 대한 양국 여론의 인식을 보여준다. 한국 여론은 대체적으로 일본과의 군사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수년 이내가 아닌 먼 장래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일본 여론도 한국과 군사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동시에 분쟁 가능성에 대해 모르거나 무응답이 20~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한일 여론은 단기간에 양국이 군사분쟁을 시작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군사분쟁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를 독도를 둘러싼 영토문제가 양국 여론에 복잡한 모습으로 잔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 1> 한일 군사분쟁 가능성에 대한 입장
한국 조사 결과(단위: %)
일본 조사 결과(단위: %)
한일 양국 모두 높은 비중으로 북한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은 2013년 2월 핵실험을 실시했고, 3월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이후 2016년 1월과 9월, 2017년 9월 잇따라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핵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8년 6월과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현재까지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였고,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얻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일 여론은 북한을 상당한 군사적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위협으로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림 2>는 북핵 위협이 지속될 때 자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찬반 입장을 보여준다. 한국 여론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북핵 위협이 지속된다면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한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일부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2018년 조사 결과에서는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반대한다는 응답이 50.3%였지만, 2019년부터는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찬성하는 응답이 높아졌다. 한편 일본 여론은 북핵 위협이 지속되더라도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에는 반대한다는 응답이 60% 이상으로 다수였다.
<그림 2> 북핵 위협 지속 시 핵무기 보유에 대한 입장
한국 조사 결과(단위: %)
일본 조사 결과(단위: %)
그리고 <그림 3>은 북핵 위협이 지속될 때 상대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한국 여론은 일본의 핵무기 보유에 반대하고, 마찬가지로 일본 여론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에 반대했다. 한일 여론은 자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상이한 입장을 보였지만, 상대의 핵무기 보유에는 반대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림 3> 북핵 위협 지속 시 상대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입장
2) 한일 여론은 안보협력에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지난 10년간 한일관계는 경색된 채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그 결과 양국 여론은 서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계기로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응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중단을 검토했다. 이처럼 역사문제에 기인한 외교적 마찰은 경제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안보 문제를 정치 쟁점화시키는 등 부정적 연쇄반응이 발생했다.
한일관계의 부침은 군사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간 한일관계가 외교적 마찰로 경색되더라도 국방교류나 군사정보 공유 등은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2018년 12월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가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에 저공비행하여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8] 한국은 일본 초계기가 근접 저공비행으로 한국 함정에 위협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은 한국 함정의 레이더 조사로 인해 일본 초계기 활동이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대조되는 주장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경색되었다. 대법원 판결로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던 시기에 한일 국방당국 간에도 초계기 저공비행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건 발생과 관련해서 한국 여론은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표 5>는 일본의 초계기 저공비행 사건에 대한 한국 여론의 인식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61.9%가 한국 정부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다. 응답자의 이념분포에서도 진보(63%), 중도(62.3%), 보수(60.5%) 모두 유사한 수준의 응답률을 보였다. 안보 이슈에 대한 이념적 이질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표 2> 초계기 사건에 대한 입장(2019년 한국 조사 결과, 단위 %)
<그림 4> 갈등 상황에서 한일 안보협력에 대한 입장(2019년 한국 조사 결과)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도 한일 안보협력에 대해 한국 여론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림 5>는 갈등 상황에서 한일 안보협력에 대한 입장을 묻고, 추진해야하는지 아닌지 여부를 답한 조사결과를 보여준다. 갈등이 있더라도 한일 안보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답변이 65%, 추진하면 안된다는 답변이 16%였다. 추진해야 한다는 답변 중 44.9%는 양국 간 신뢰회복이 필요하다고 인식했고, 추진하면 안된다는 답변 중 6.2%는 어떠한 이유라도 한일 안보협력 추진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위협을 공유하는 국가 간 안보협력이 추진되기 용이하기 때문에 북한 위협에 대한 공통의 인식은 한일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양자 협력과 동시에 미국을 포함하는 한미일 삼자 협력의 형태를 발전시켜왔다. 한일 양국은 미국과 각각 군사동맹관계이기 때문에 미국과 안보협력을 진행해왔는데, 이와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일 양국이 협력하는 한미일 관계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림 5>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입장
한국 조사 결과(단위: %)
일본 조사 결과(단위: %)
<그림 5>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한일 여론의 인식을 보여준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조사에서 한국 여론은 그렇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2020년을 제외하고는 60% 이상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찬성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에 부정적인 응답은 10% 내외였다. 일본 여론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데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응답이 다수였는데, 2023년에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찬성한다는 응답(35.3%)이 처음으로 다수가 되었다. 한일 여론 모두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한미일 협력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한국이 일본 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한일 여론의 선호에는 차이가 있지만, 협력을 강화하는데 찬성하는 이유는 유사했다. <표 6>은 한국 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는데 2022년을 제외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70% 이상의 응답자가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일본 조사의 결과도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한일 여론 모두 한미일 안보협력의 역할이 한반도 평화안정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즉, 한일 여론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미국의 관여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 문제에 대응하는 데 있어 한미일 협력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표 3>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찬성 이유(단위 %)
<그림 6>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한국 조사 결과, 단위 %)
한편 한일 안보협력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개입 여부일 것이다. 한반도에 무력 분쟁이 발발하게 되면 일본이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한국 여론의 입장은 <그림 6>과 같이 찬성보다는 반대가 우세했다. 2016년은 반대보다 찬성이 우세한 예외적인 응답이 나왔는데, 북한 위협이 고조되는 한편 중국과의 사드 갈등이 불거지면서 한일 협력이 상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한 배경이 작용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2016년을 제외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0% 이상이 자위대 개입에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2016년 이후부터는 자위대 개입에 찬성하는 응답이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북한 문제에 있어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 문제는 역사 문제로 인해 한국 국내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III. 결론
본 연구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활용해서 한일 여론이 안보 이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한일 양국은 북한 핵문제라는 안보위협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가장 큰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한국 여론은 중국과 일본이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지만, 일본 여론은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 위협으로 여겼다. 한국 여론이 일본을 군사적 위협으로 여긴 배경에는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장기간 해소되지 못한 안보 이슈이기는 하지만 양국 여론은 한일 간 군사적 분쟁의 가능성은 작게 보았다. 그래도 영토 문제는 외교적으로 상호 대립하는 이슈로 남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여론은 초계기 사건과 같이 한일 간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안보협력은 추진해야한다고 인식했다. 북한 핵문제와 같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안보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보협력의 형태는 양자 협력보다는 미국을 포함하는 한미일 협력으로 발전되기 더 쉬워 보인다. 예컨대 한국 여론은 한반도에 무력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일본 자위대가 개입하는 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한일 양국이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공유하면서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양자 협력에는 소극적이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오히려 한국 여론은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였고, 일본 여론도 한미일 협력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여론이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론이 특정 이슈에 뚜렷한 선호를 가지고 있다면 정책 결정을 제약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국가에서 정치지도자는 여론 민감도가 높고,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정책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일 여론의 견해는 한일관계를 추동하기도 하고 제약하기도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일 여론은 현재 상호를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부정적 이미지는 역사나 영토 문제에 기인한 고정관념과 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변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양국 여론이 상호를 긍정적 이미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중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안보 이슈에 있어서 새로운 협력상을 제시하는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
[1] 2023년 3월 21일 국무회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관계 대국민 담화가 발표되었음.
[2] 한편에서 여론은 국제정치 이슈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무지한 경향이 크다고 보며(Guisinger 2009),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이나 위기가 발생할 때 여론이 정책 결정을 제약한다고 주장함(Fearon 1994; Gelpi 2017).
[3] 한국인의 대일 인식이 반일 정서에 기반한다고 평가하는 연구와 한국인의 대일 인식이 이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연구가 존재하며, 한국인의 반일 정서와 외교정책 간 상호작용을 검토하는 연구도 있음(최종호 외 2014; 최은미 2021; Deacon 2022).
[4] 최희식(2011)에 따르면 냉전기 안보협력은 한일 양자적 수준에서 결정되기 보다는 미일 동맹협력의 범위에서 한반도 유사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는 형태의 한미일 협력이 중심이 됨.
[5] 동아시아연구원-겐론NPO 조사 결과 상대국에 대한 인상에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023년 조사에서는 한국은 여전히 일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일본은 한국을 긍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결과가 나옴.
[6]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가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를 직접적으로 표명함.
[7] 일본은 2005년부터 방위백서를 통해 다케시마(竹島,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고 언급해옴.
[8] 2018년 12월 20일 해군 광개토대왕함은 동해상에서 조난한 북한 선박에 대한 인도적 구조작전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저공비행으로 접근하는 사건이 발생함.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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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호 외. 2014. “한국인의 대일본 감정에 미치는 요인에 대한 경험적 분석: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제협력, 그리고 정체성,” 『국제관계연구』 19, 1: 41-76.
최희식. 2011. “한미일 협력체제 제도화 과정 연구: 1969년 한미일 역할분담의 명확화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45, 1: 289-309.
Campbell, Kurt. 2016. The Pivot: The Future of American Statecraft in Asia. NY: Twelve.
Cha, Victor D. 2000. “Abandonment, entrapment, and neoclassical realism in Asia: The United States, Japan, and Korea,”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44, 2: 261-291.
Deacon, Chris. 2022. “(Re) producing the ‘history problem’: memory, identity and the Japan South Korea trade dispute,” The Pacific Review 35, 5: 789-820.
Fearon, James D. 1994. “Domestic political audiences and the escalation of international disput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8: 577-592.
Gelpi, Christopher. 2017. “Democracies in conflict: The role of public opinion, political parties, and the press in shaping security policy,”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61, 9: 1925-1949.
Glosserman, Brad & Scott A. Snyder. 2015. “The Japan-South Korea Identity Clash: East Asian Security and the United States” NY: Columbia UP.
Guisinger, Alexandra. 2009. “Determining trade policy: Do voters hold politicians accountable?”. International Organization 63, 3: 533-557.
■ 조은일은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 담당 및 편집: 오준철_EAI 연구보조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