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얀마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시사IN>이 2021년 3월부터 약 5개월간 진행한 미얀마 연속 보도(#WatchingMyanmar)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1].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건 언론인으로서 분명 예외적 상황이었다. 한 국가의 반 인륜 범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지만,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혈사태 앞에서 이것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전부일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긴 시대에 고립된 미얀마의 상황을 지켜보던 국내외 언론에게는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언론은 과연 중립적일 수 있는가?’

 

미얀마 반 쿠데타 시위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언론은 <시사IN>만이 아니었다. 4000km 떨어진 해외 이슈에 언론들이 이토록 큰 관심을 보인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우리가 미얀마의 시민 저항을 적극 보도하기로 한 이유, 현지 언론인들과의 연대, 그 안에서의 깨달음과 남은 과제는 무엇일지 공유하고자 한다. 국내 언론의 미얀마 연대 활동을 기록하는 일은,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한국사회에 남긴 ‘흔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일 것이다. 무엇보다 미얀마 보도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교착 국면에 빠진 미얀마 위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또 언론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 시간을 거슬러 1년 전으로

 

미얀마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희생자가 속출하던 당시, 국내에는 ‘유혈사태’ ‘피의 일요일’ ‘지옥의 밤’이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속보가 쏟아졌다.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한국 시민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시사IN>은 국내에서 미얀마 군부 규탄 시위를 열고 있는 재한 미얀마인들을 매주 만나기 시작했다. 당장 취재할 수 있는 현장이 그것뿐이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또 다른 ‘현장’이 이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스마트폰 메시지함에는 치료비, 방탄조끼와 헬멧, 인터넷 연결을 위한 유심카드(미얀마 군부가 인터넷을 끊은 후로 타이 유심카드가 있어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민불복종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생활비 등등 현지 시위대가 보낸 ‘SOS 요청’이 가득했다. 피부가 찢어진 채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사람들의 사진들이 스크롤을 내려도 나오고, 또 나왔다. ‘맨몸으로 군경과 맞서고 있다' ‘턱에 총알이 관통해 치료비가 필요하다' ‘장례비를 지원해달라'…. 이주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주민 등 다양한 신분으로 한국에 정착해 살던 이들의 삶은 2021년 2월 1일을 기점으로 운동가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때 처음 이 질문을 던졌다. “미얀마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국내외 언론사 여럿이 미얀마로 입국했을 것이고, 외신들이 지켜보는 상황이라면 미얀마 사태가 이렇게 손쓸 수 없이 장기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외신 가운데 유일하게 ‘군부 허락을 받고’ 미얀마 양곤에 들어간 해외 취재진은 지난해 3월 31일 BBC 클라리사 워드의 팀뿐이었다. 모든 취재 현장에는 군부가 동행했으며 취재진이 현장을 떠나자 미얀마 군부는 BBC와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을 구금했다. 취재 중에 알게 된 미얀마 현지 언론인은 격앙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왜 어떤 나라도 개입하지 않는가? 우리도 늘 묻는 주제다. 답은 간단하다. 미얀마를 위해 무언가를 해서 얻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미얀마 시위대는 ‘얼마나 더 죽어야 개입할 것인가(#How Many Dead Bodies Need To Take Action)’라는 구호를 들고 거리에 나왔다.

 

3. <시사IN>이 미얀마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가 혼란을 잠재우는 방식은 일종의 ‘고립 전략’이었다. 코로나19 집합 금지 조치를 근거로 시위를 탄압하고, 인터넷을 끊고, 언론인과 언론사를 겨냥하는 것이다. 미얀마 국내에 있던 언론인들은 군부의 첫 번째 타깃이 되었다. 미얀마 군부는 독립 언론의 출판 면허를 취소하고, 시위를 취재하는 언론인과 시민기자들을 ‘가짜뉴스 유포’ ‘선동’ 혐의로 기소했다. 2022년 1월 10일 기준 미얀마 언론인 115명이 체포되었고 여전히 44명이 구금되어있다(Reporting ASEAN 2021).

 

국가에 의한 폭력과 총격, 탄압 등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What’s happening in Myanmar)이 온라인 상에서 더 이상 퍼지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박, 비난의 강도도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미얀마의 한 언론인은 “해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데 힘을 얻는다. 계속 지켜봐 달라”라는 당부를 들었을 때, 미얀마는 군부가 아닌 고립과 싸우고 있는 현실을 직감했다. 시민들을 고립시킬수록 군부 통치가 용이해진다면, 반대로 시민들이 연결될수록 군부 통치는 취약해지지 않을까?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움직여야 하고, 국제사회가 움직이기 위해서 미얀마의 상황이 계속 알려져야 했다. 우리는 그 역할에 동참하기로 했다.

 

편집국이 폐쇄되고 쫓기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미얀마의 참상을 기록하고 있는 기자와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기고를 요청했다. 미얀마 언론인들과의 소통과 협업은 매 순간 난관이었다. 연락을 주고받고 예정된 시간에 기사를 받는 것, 또 원고료를 전달하는 과정 하나하나 순조롭지 않았다. 현지시각 새벽 1시부터 오전 9시부터 인터넷이 끊기는 데다 군경을 피해 기자들은 주기적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연을 맺은 미얀마 언론인들은 2022년 현재 신변 위협을 받다 태국 국경을 넘거나, 국경 지대로 들어가 총대를 잡기도 했으며, 일부는 감옥에 수감 중이다.

 

2021년 4월부터 <시사IN>은 사회적 기업 ‘오늘의행동’과 #WathcingMyanmar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얀마 언론인 원고료(취재비) 모금 활동에 총 8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2021년 5월 20일까지 854명이 참여해 3712만 5386원 모금). ‘언론사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수 개월간 수입 없이 버티는 동료 언론인들에게 원고료가 취재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동력이 되길 바랐다. 무엇보다 언론사가 한 이슈를 고정적으로 의제화한다는 건(agenda keeping, 어젠다 키핑), 쏟아지는 기삿거리 속에서 지워지거나 잊히지 말아야 하는 문제로 끌어올리려는 편집국의 판단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미얀마 반쿠데타 시위의 경우 해외 사안임에도 편집국의 자원과 비용, 인력을 투입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라고 봤다.

 

4. 한국 언론의 미얀마 연대 흐름들

 

미얀마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한국 언론의 미얀마 민주화 시위 보도를 이렇게 평가한다. “이렇게 국제 이슈에 한국 언론이 관심을 쏟아부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알아야 할 의제로서 설정하는 그런 기능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이 있었다고 본다. 한발 더 들어가서 질이 어땠는가, 기사 보도량에 비해서 다양성이라든가, 이슈의 깊이라든가 이면의 분석이라든가 그런 건 굉장히 부족했던 것 같다(KBS ‘질문하는 기자들Q’ 2021년 5월1 7일 자 방송).” 군부의 잔인한 폭력을 중계하는 것 이상으로, 미얀마 군부가 어떻게 21세기까지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소수민족과의 오랜 갈등의 역사는 왜 벌어졌는지 등 미얀마가 처한 민주주의 위기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 언론이 해외 뉴스를 ‘핫 토픽’ 정도로 다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얀마 문제를 알리려는 언론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는 점은 의미 있다. <주간경향>은 2021년 4월 초 미얀마 언론인들의 기사와 사진으로 구성된 특집호 ‘시민은 승리한다’를 제작했다. 당시 이 기획에 참여한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PD는 미얀마 해직 기자들을 모아 현지에서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라는 언론사를 차려 관심을 끌었다. <오마이뉴스>의 경우 2021년 8월부터 온라인 연재 ‘나는 미얀마 기자다-위기의 저널리즘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얀마 사진기자 모임(MPA)’의 기사를 받아 한국어와 미얀마로 전하고 독자들의 후원금을 받아 전달하는 방식이다. 2021년 1월1 4일 기준 2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한겨레21>은 지면과 온라인에 ‘#Stand with Myanmar' 기획연재를 이어가며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지지하는 시민의 글을 매주 미얀마어로 함께 싣고 있다. 그 외에도 KBS <시사기획 창>, <시사직격> MBC 등 방송사들도 미얀마 현지 상황을 알리고 미얀마 쿠데타에 관한 심층 분석을 내놓는 다큐멘터리를 여러 차례 제작했다.

 

무엇이 달랐을까? 한국 시민사회는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열렬한 응원과 연대를 보냈다. 2021년 2월 24일 양곤의 주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제발 도와달라”라고 호소한 영상이 기점이었다. 한국 시민들은 “뭐라도 돕고 싶다”며 모금활동부터 거리 시위, 서명 운동, SNS 캠페인 등을 자발적으로 벌여 나갔다. 이 모습이 다시 SNS를 통해 미얀마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많은 이들은 2021년 미얀마에서 1980년 광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군부 독재와 국가 폭력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과 부채의식,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민주주의 공고화를 먼저 이뤄낸 국가로서의 책임감이 복잡하게 공존했다.

 

3월 2일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내놓은 연대 성명에는 이러한 의식이 잘 드러난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의 참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영상기자들은 미얀마에서 전해지는 비극적 소식과 영상들을 접하며, ‘오월광주’의 참상이 떠올라, 경악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오월광주’에서 한국 영상기자, 언론인들의 무기력과 공백은 독일의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같은 다른 나라 방송, 언론사 기자들의 목숨을 건 치열한 취재, 보도가 대신했다. 그들의 영상취재와 보도가 있었기에 광주는 국내에서는 고립되었지만, 세계적으로는 그 참상을 알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시민들의 항거를 지지, 연대하는 국제적 여론을 만들 수 있었다. ‘얼마나 더 피 흘려야 하느냐?’는 미얀마 시민들의 호소에 응답해, 미얀마의 뜨거운 민주주의 항쟁을 적극적으로 취재, 보도하는 것이 우리 방송 언론인들이 1980년 광주와 대한민국의 시민들, 우리를 지지 연대해 준 세계인들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다.”

 

1980년대 원로 언론인들의 연대 성명도 이어졌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자유언론실천재단 등 5개 언론단체는 4월13일 주한미얀마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외쳤다. “권력과 부를 탐하는 군부의 쿠데타로 국가와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언론인들이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던 아픈 역사를, 우리는 미얀마 국민과 공유하고 있다. 광주민주항쟁을 계승하고 군부독재에 맞서 언론 자유와 민주언론을 위해 강고하게 싸워왔던 우리는 미얀마 국민의 정의로운 항쟁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미얀마 민주 시민사회와의 굳건한 연대를 약속한다.”

 

5. 미얀마를 통해 한국을 들여다보는 계기

 

물론 광주와 미얀마를 섣불리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국가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 정세가 완전히 다른데다, 미얀마는 한국보다 군부 집권의 역사가 길고 소수민족과의 오랜 갈등도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를 ‘알려준다’거나, 미얀마를 ‘시혜적으로’ 혹은 ‘온정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광주의 역사가 미얀마를 포함해 홍콩, 태국 등 아시아 민주주의 위기에 깊이 감응하게 만드는 연결고리라는 점이다. 지난해 5월 홍콩, 태국, 한국(광주), 미얀마 2030 청년들을 한 자리에 모아 아시아 민주주의와 ‘밀크티 동맹(Milktea Alliance)’을 주제로 좌담회를 기획한 적이 있다. 거기서 만난 광주 출신 이희영 씨의 말이다. “광주 시민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5·18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처음 ‘딴뽕띠’ 집회(냄비를 두드리며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과 연대하는 시위)를 열 때만 해도 매주 그토록 많은 어르신들이 꾸준히 참석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우리가 80년대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고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광주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있지만, 그래서 억압받는 목소리를 누구보다 더 잘 들을 수 있는 도시였구나’ 하고.

 

미얀마 사태는 이렇듯 한국사회 전반에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웠다. 이것은 언론에게도 다양한 고민과 숙제를 안겼다. 한때 경제 성장의 주역이라 평가받았던 회사가 쿠데타 이후에 군부의 자금줄 의혹을 받을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 한국사회가 군부 규탄 성명을 쏟아내는 것 이상으로 미얀마 난민을 받을 수 있을까?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 유족들의 트라우마와 진상규명이란 과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별받고 있는 미얀마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얀마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결코 적지 않다.

 

6. 미얀마 쿠데타 1년, 언론에게 남은 과제

 

<시사IN> #WatchingMyanmar 캠페인에 참여한 한 독자의 후기가 기억에 남는다.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미얀마 시민도 아닌데 위로받는 것 같았다. 연대가 쌓여가며 더 큰 힘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연대 자체가 주는 소속감, 친밀감, 위로가 있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되던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한국 시민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포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시민들을 연결하는 일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더 크고 넓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언론의 의무와도 다르지 않다.

 

미얀마 연속 보도를 통해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민주주의 국가는 주위에 더 많은 민주주의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 국제사회가 더 잘 개입하기 위해서는 인접 국가들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 유엔과 아세안 등 국제사회가 미얀마 군부에 공식적인 경고에도 군부가 아랑곳하지 않았던 이유도 오랫동안 지속된 고립화 조치에 이미 적응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8월 2일 ‘1년 뒤 총선 실시’ 약속을 깨고 2023년 8월까지 비상통치 체제를 이어가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스스로 총리에 취임했다. 동남아 연구자들은 군부의 장기 집권 플랜이 시작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얀마는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접어들었다.

 

민주주의 지표인 언론자유지수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지난 4월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1 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아시아 국가들은 타이완(43위), 한국(42위), 일본(67위), 몽골(68위) 등을 제외하고 모두 100위권 밖이다. 군부 독재와 언론 탄압은 동남아시아 기자들이 공유하는 위기의 본질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고군분투하던 아시아 언론인들이 미얀마 위기를 중심으로 모이는 조짐도 나타났다. 태국외신기자협회(FCCT) 등 아시아 언론 단체들도 모금 활동과 장비 지원 등 실질적인 해법을 찾았다. 그웬 로빈슨 전 FCCT 회장은 “그간 태국 언론은 왕실에 대한 언급을 엄격하게 검열하는 법을 따랐다. 그런 태도가 최근 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검열에 반대하는 미얀마 언론의 투쟁을 보며 타이 언론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라고 말한다. 현재 미얀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는 홍콩과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군부와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관심사다.

 

미얀마 쿠데타 1년. 국제사회의 관심은 전보다 떨어졌고 보도량은 확연히 줄었다. 언론계 내부에서는 ‘더 급박한 이슈’들이 물밀 듯 밀려오는 현실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그러나 미얀마 지역 곳곳에서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끊긴 적은 단 하루도 없다. SNS에는 #SaveMyanmar #PrayForMyanmar 해시태그 운동이 매일 이어지고, 그 현장에는 미얀마의 시민 저항과 군부 폭력을 기록하는 기자들이 있다. “누군가는 여기에 남아 보도해야 한다. 군부의 인권유린과 폭력 사건을 기록해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미얀마 시민들이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지금 나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2].(미얀마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 기자, 12월 16일).” 이런 목소리를 충실히 기록해나가는 것이 미얀마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이어가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각국의 이해관계로 얽힌 국제 정세를 움직이고, 미얀마 군부가 무시하기 어려운 국제사회의 압박을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는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론과 시민사회, 정부 단위에서의 고민과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

 

참고 문헌

 

Reporting ASEAN. 2021. https://www.reportingasean.net/.

시사IN. '미얀마 쿠데타 300일, 여기서는 여전히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2021/12/1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206

오마이뉴스. ‘나는 미얀마 기자다-위기의 저널리즘 복원 프로젝트.’ 2021.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list.aspx?SRS_CD=0000014012&CMPT_CD=M0146

주간경향. [표지 이야기]‘미얀마 봄 혁명’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2021/04/05.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104051526391&code=117&s_code=n0002#c2b

한겨레21. #Stand with Myanmar. 2021. https://h21.hani.co.kr/arti/SERIES/2593/

KBS 시사기획 창. ‘혁명은 실패하는가.’ 2021/05/09. https://mylovekbs.kbs.co.kr/index.html?source=mylovekbs&sname=mylovekbs&stype=blog&contents_id=70000000395517

KBS 시사직격.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021/06/18.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19-0280&program_id=PS-2021091763-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ion_code=05§ion_sub_code=06

MBC PD 수첩. ‘#세이브 미얀마.’ 2021/05/18. https://program.imbc.com/Enews/Detail/pdnote?idx=314415

 


 

[1] 보다 자세한 정보는 <시사IN>의 미얀마 민주화 시위 특별 페이지(http://myanmar.sisain.co.kr/)를 참고하길 바란다.

[2] 원문은 시사IN의 미얀마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 기자의 2021년 12월 16일자 기자를 참고하길 바란다.

 


 

저자: 김영화_2018년부터 <시사IN>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정치팀 기자. 2019년 홍콩과 2020년 태국에 이어 2021년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취재 보도했다. 2021년 3월 ‘미얀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미얀마 독립 언론인들을 후원하는 <시사IN> #WatchingMyanmar 캠페인 기획을 담당했다. 격동기에 접어든 아시아 민주주의와 아시아 청년들이 위기를 돌파해가는 방식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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