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한미관계

 

2003년으로 한미동맹은 50돌을 맞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양국간 동맹관계는 극심한 피로 증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측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그리고 미국 측에서는 한국의 배은망덕함에 대한 섭섭함이 서로에 대한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미동맹의 전략적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고 말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한미동맹의 피로도(疲勞度)를 가늠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여러 가지 점에서 한국 국민의 미국에 대한 여론이 가장 악화되었을 때는 2002년 12월 무렵이었다.이 무렵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은 즉각 철수 6.3%, 단계적 철수 44.6%, 상당기간 주둔 21%, 계속 주둔 27% 등으로 철수(50.9%)가 주둔(48%) 보다 높게 나왔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촛불시위가 극에 달했고, 이에 비례해서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노무현 후보가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점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 수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그런데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계속 주둔(34.3%), 상당기간 주둔(27.1%), 단계적 철수(33.1%), 즉각 철수(3.8%)로 주둔(61.4%)이 철수(36.9%)를 크게앞지르는 역전현상을 보였다. 이것은 주한미군 문제 뿐 아니라, 지난 1년동안 국민의 대미인식이 전체적으로 보수화하는 경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미국이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답변 결과가 흥미로웠다. 미국의 필요 때문(31.3%)이라는 답변과 한국의반미감정 때문(31.2%)이라는 대답이 거의 같았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주한미군 재배치 작업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적 필요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한국의 점증하는 반미감정이 미국의 시간표를 앞당긴 것도 사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민들이 이 문제의 다면적 측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 중에 ‘미국의 필요때문’이라고 답변한 사람(35.6%)이 많았고,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 중에는‘한국의 반한감정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34.0%)이 상대적으로 다수였다는 점이다. 한편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기 위해서 라는 답변도 14.4%가나왔는데, 여기에는 권영길 후보 지지자들이 22.6%로 상대적으로 많았다.국민 절대 다수는 주한미군 재배치가 한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별 영향이 없다(42.7%)와 한국 안보에크고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31.7%)를 합하면 무려 74.4%의 국민이 이 문제에 대해 별로 우려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북핵 문제의 해결전망에 대해서도 54.9%의 국민이 시간은 걸리겠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는데, 두 가지 모두 만성화된 안보 위기 속에서 단련된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문제에 대해 국민의 52.4%가 전면 개정을, 그리고 35.1%가 부분 개정을 원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현재 소강상태이기는 하지만,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과 같은 것이 다시 터지면 언제든지 발화될 수 있는 휘발성이 높은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