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손열)은 국내외 주요 이슈에 대해 전문가의 논평을 보다 쉽고 편하게 들어보실 수 있는 콘텐츠로 'EAI 들리는 논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로 2020년 미국 대선의 전망과 이에 따른 한국의 대비책을 제시한 손병권 중앙대학교 교수의 논평을 소개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후보 당선이 확정된 이후, 그와 맞설 민주당 유력 주자를 가리는 프라이머리로 미국은 현재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샌더스 후보와 바이든 후보는 각각 미국의 노동계급과 약자를 위한 ‘계급적 정체성,’ 그리고 자유, 평등, 법치 등을 바탕으로 한 ‘미국적 가치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백인 민족적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인들이 ‘계급적 정체성,’ ‘가치의 정체성,’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한국이 각각 정체성에 대한 세력판도를 분석하여 총체적인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합니다.

 


 

 

EAI 들리는 논평 스크립트

 

안녕하십니까? 동아시아연구원은 복잡한 현안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보다 쉽고 편하게 제공하고자 ‘EAI 들리는 논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AI 들리는 논평’의 두 번째 주제는 바로 2020년 미국 대선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후보 당선이 확정된 이후, 그와 맞설 민주당 유력 주자를 가리는 프라이머리로 미국은 현재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샌더스 후보와 바이든 후보는 각각 미국의 노동계급과 약자를 위한 ‘계급적 정체성,’ 그리고 자유, 평등, 법치 등을 바탕으로 한 ‘미국적 가치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백인 ‘민족적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은 2020년 미국 대선의 전망과 이에 따른 한국의 대비책을 손병권 중앙대학교 교수의 논평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2월 3일의 아이오와 코커스, 11일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시작으로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시작되면서 미국 대선이 전체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경선 초반 주도권을 잡아가던 샌더스 후보의 기세가 바이든 후보가 승리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한풀 꺾인 후, 3월 3일의 슈퍼화요일과 10일의 미니 슈퍼화요일에서 바이든 후보가 다시 승리하면서 민주당 경선은 매우 흥미 있는 양상을 띠게 되었고, 그 결과 민주당 경선이 양대 후보 간의 경쟁으로 좁혀졌습니다. 샌더스 후보가 캠페인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어서, 경선은 바이든 후보가 상당한 모멘텀을 확보한 가운데 지속될 전망입니다. 3월 17일 아리조나, 플로리다, 일리노이주 등에서 경선이 치러졌으며, 이 중 현재까지 플로리다와 일리노이 경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압승하여 대세론이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샌더스 후보가 캠페인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어서, 바이든 후보가 상당한 모멘텀을 확보한 가운데 경선은 지속될 것입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는 노란 불이 켜졌습니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연구자나 논평자마다 각기 다를 것입니다. 국제정치적으로 미국 우선주의가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중심의 다자 혹은 양자동맹 관계가 회복될 것인지를 중심으로 이번 대선을 주목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압박 등 미국의 과도한 압박이 지속될 것인지의 여부를 주목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국내정치에 주목해서 보자면 2020년 민주당 경선과 그 후 본 선거를 포함한 미국 대선은 서로 다른 세 종류의 미국 정체성 간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정체성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백인 민족주의 정체성,’ 민주당 샌더스 후보로 대변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 그리고 역시 같은 민주당 바이든 후보로 대변되는 ‘미국의 정치적 가치와 관련된 정체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민족적 정체성,’ ‘계급적 정체성,’ ‘미국적 가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정체성은 각 대선후보와 그 지지자의 특징을 중심으로 대강 선별해 본 것입니다. 각 후보의 지지층을 하나의 정체성만을 지닌 집단으로 보는 것은 물론 무리일 것입니다. 각 후보의 지지자들은 이중, 3중의 정체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서 다소 강한 주장을 해 보자면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세 종류의 정체성은 각각 “미국이 누구의 나라인가?” 그리고 “미국정부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기준으로 구별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민족적 정체성’은 2016년 미국 대선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미국의 주인은 유럽계 백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정체성은 미국의 전통적 다원주의와 개방적 이민정책, 그리고 세계화에 불만과 불안을 느낀 저교육.저소득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서 그 특징적 경향이 나타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주권과 백인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고 있고, 반이민정책을 고수하며, 관세를 무기로 하는 보호무역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샌더스 후보의 ‘계급적 정체성’은 미국정부는 기본적으로 노동계급과 약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샌더스 후보는 소득분위로 볼 때 ‘1%의 소득귀족’에 대항하는 ‘나머지 99%’의 고통과 불이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형기업, 월가의 금융세력, 다국적 기업 등이 세계화 이후 자유무역을 통해서 누적되는 부를 사실상 ‘특권화’하는 동안, 노동자, 청년, 이민 빈곤층이 사회적 안전망의 밖에서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샌더스 후보는 미국은 이들 99%를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하며, 미국의 주인은 이 99%에 속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라고 봅니다. 다분히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좌파 포퓰리즘 성향을 감추지 않는 것이 샌더스 후보의 계급적 정체성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이든 후보의 ‘미국적 가치의 정체성’은 민족이나 계급이 아니라 독립전쟁 이후 미국이 지속적으로 표명해온 '미국적 신조,' 즉 “the American Creed”에 대한 헌신과 공약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민족’ 개념과 ‘계급’ 개념은 각각 다원주의의 위선을 벗겨 내고 경제적 양극화의 민낯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 기준은 다민족.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서로 다른 민족이나 인종 간에 갈등을 증폭할 수 있고, 시장의 자율성과 자유 임노동을 추구해 온 미국에서 계층간 이동에 대한 희망을 막아 포퓰리즘의 득세를 더욱 조장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전통적 뉴딜 자유주의자로서 바이든 후보는 사회적 유대감의 강화, 연방정부의 역할 강화 등 뉴딜 이래 민주당의 기조를 바탕으로 자유, 평등, 법치, 인권, 제한정부, 시장의 자율 등 미국적 가치체계에 대한 헌신을 미국 정체성의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든 후보는 소위 ‘백인의 나라 미국’이라는 ‘본질’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샌더스 지지자의 시각에서 보면 바이든 후보는 경제적 양극화의 현실 속에서 혁신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비칩니다. 바이든 후보의 캠페인은 뉴딜 자유주의의 전통적 틀 내에서 미국의 전통적인 정치적 가치를 고수하고 있어서 자극적이지도 않고 폭발력이지도 않으며 그야말로 ‘전통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층 유권자를 끌어들이고 미국 국내와 대외관계를 안정화시키고 예측가능한 것으로 만들기에는 적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한 분류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세 종류의 미국 정체성 담론이 서로 다투고 있는 상황이 미국 민주당 경선과 향후 대통령 본선거의 대결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시기 동안 예전에 일찍이 본 적 없던 미국을 보면서 민족적 정체성의 자극적 마력과 이에 못지않은 파국의 우려는 충분히 드러났다고 보입니다. 샌더스 후보의 계급적 정체성은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 노선과 일맥상통하여, 대외적으로 ‘샌더스판 미국 우선주의’의 지속성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후보가 대변하는 미국적 가치 정체성은 개성이 없고 무자극한 것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 포퓰리즘의 무책임한 자극적 논리에 염증을 느낀 사람에게는 안정감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한다면 경쟁자 샌더스의 계급적 정체성을 어느 정도 담아 대선에 나갈 지도 관전 포인트 입니다. 과연 이 3종의 정체성 가운데 어떤 것을 미국인들이 선택할지는 올해 11월이면 결정될 것입니다. 한국으로서는 각각의 정체성의 세력판도를 분석하면서 3종을 세트로 묶어 총체적인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2020년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3월, 과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과 대결을 펼칠지, 그리고 트럼프가 내세우는 백인 ‘민족적 정체성’과 미국 우선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AI 들리는 논평,’ 김세영 이었습니다. ■

손병권 교수님의 논평 원문은 아래의 "논평_다운로드"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본 논평은 2019년 12월 발간된 EAI 스페셜 리포트 시리즈, [미래미국2030]: 미국 패권의 미래: 트럼프 이후 미국은 어디로? 의 첫 번째 보고서입니다. 미래미국2030 스페셜 리포트 시리즈는 아래 5편의 보고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손병권: 백인 민족주의 정체성 정치의 등장과 미국의 미래 [보고서 읽기]

2. 이수영: 미국의 인구 및 문화적 변동과 미국의 미래 [보고서 읽기]

3. 민정훈: 미국의 선거정치와 미국의 미래 [보고서 읽기]

4. 이종곤: 미국의 행정부 및 행정부-의회 관계와 미국의 미래 [보고서 읽기]

5. 전재성: 트럼프 정부 미국 외교정책의 현황과 미국의 미래 [보고서 읽기]

 

 

■저자: 손병권_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 미국 외교정책, 비교의회 및 정당론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미국 의회정치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형인가?: 정당정치에 포획된 미국의회』(2018), "트럼프시대 미국 민족주의 등장의 이해" (2017)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김세영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I sykim@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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