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EAI는 2020년을 맞이하여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2020 전망과 전략” 시리즈 총 6편을 아래와 같이 게재합니다.

1. 하영선: 북한의 2020년: 2대 난관의 정면돌파전  (2020년 1월 6일 발간)

2. 전재성: 2020년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과 대미전략 (2020년 1월 8일 발간 예정)

3. 이동률: 한중관계와 한국의 대중 외교전략 (2020년 1월 13일 발간 예정)

4. 손  열: 2020년 한일관계와 대일정책: 시야를 넓혀야 보이는 갈등 해법 (2020년 1월 15일 발간 예정)

5. 이승주: 미중 무역분쟁과 한국의 통상정책: 다자주의의 회복과 지역 경제 질서의 재편을 위한 중견국 외교 (2020년 1월 20일 발간 예정)

6. 최태욱: 2019년의 선거제도 개혁과 2020년의 총선: 전망과 과제 (2020년 1월 22일 발간 예정)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2020 전망과 전략"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로, 북한의 2020년 전망과 전략을 제시한 하영선 EAI 이사장의 논평이 발간되었습니다. 기존의 시정연설과 비교해 2019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발표된 ‘조성된 대내외 형세하에서 우리의 당면한 투쟁방향에 대하여’ 보고는 북한이 직면한 대내외 난관을 특별히 강조하였는데, 대외적으로는 제재와 압박,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지목하여 이에 대한 극복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난관 돌파를 위해 새로운 전략무기 도입과 제2의 병진노선을 선언하였으며 자강력을 통한 경제투쟁 의지를 확인하며 대내외 도전에 대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북한의 이러한 구식 정면돌파전으로는 북한이 직면한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로 미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기 보다 역설적으로 체제를 위협할 것이며, 비핵화 없는 제재 해제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난관에 봉착한 북한에 대한 한국의 진정한 역할은 국제역량과 연대하여 북한의 국내역량이 스스로 달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9년 연말에 열렸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조성된 대내외 형세하에서 우리의 당면한 투쟁 방향에 대하여’라는 보고로 2020년 신년사를 대신했다. 지난 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현단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기본 전략구상을 밝힌 시정연설을 한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보고를 발표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그동안 진행된 대내외 형세를 주관적으로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어떠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월의 시정연설에 비해 12월 보고는 대내외 형세의 난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동안 진행된 대내외 형세에 대해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앞에 봉착한 도전은 남들 같으면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고 물러앉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이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금년의 투쟁 구호를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 로 삼고 있다. 

보고는 대내외 형세를 분석하면서 제재와 압박의 대외적 난관과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대내적 난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형 3단계 비핵화론의 이행 과정에서 부딪치는 난관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2018년 4월 신전략노선의 채택과 최근 10월 초 스톡홀름 실무회담 실패 이후 김명길 대사의 기자회견까지 반복되고 있다. 첫 단계에서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 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 시험장을 폐기하는 선제 신뢰 구축 조치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지를 유도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체제보장을 위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식과 경제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세 번째 단계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시각에서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핵군축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적대적 행위와 핵위협 공갈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단언하면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북한은 2013년 3월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2018년 4월 핵 기반 경제건설 집중 노선을 거쳐 다시 한번 제2의 병진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 핵무기 개발로 미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하여 실질적인 억제력을 확보하려는 정면돌파전은 북한이 직면한 대외적 난관을 돌파하기보다는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핵 억제력이 강화되면 될수록 제제는 심화되어 체제를 보장하기보다는 역설적으로 체제를 위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핵 비확산을 세계질서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미국 또한 완전 비핵화 대신 최소 억제력을 유지하는 핵동결을 시도하는 북한의 노력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보고는 두 번째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정면돌파전에서 기본 전선은 경제전선이라고 지적하면서, 경제의 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장비력을 총 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현시기 경제부문의 우선 당면과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악착같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2019년의 인민경제 거의 모든 부문이 현저한 성장 추세를 보였다고 언급하면서도, 당면한 경제 실태에 대해  “국가경제의 발전 동력이 회복되지 못하여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으며 중요한 경제과업들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미약”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는 북한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 문제를 자력갱생과 제재의 대결로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 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제재 해제를 기다리며 자강력을 키우기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제재 세력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므로,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제재 봉쇄 책동을 총파탄시키기 위한 정면돌파전에 매진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당면한 경제 전선은 자력갱생만으로 정면돌파할 수는 없다. 오늘의 중국 경제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규모의 국민총생산 14조 달러를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준에 이르기 까지는 1978년이래 지난 40여 년 동안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고도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 수준의 북한경제가 21세기 세계 경제 무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중국을 넘어선 장기간의 고도성장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핵화를 통한 제재 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를 끝내면서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서 “우리는 오늘의 투쟁에서 객관적 요인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 객관적 요인이 우리에게 지배되게 하여야 합니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나 핵 억제력과 자력갱생으로 현재의 난관을 성공적으로 돌파하기는 불가능하다. 북한의 진정한 정면돌파전은 비핵화와 개방경제의 길을 질주하면서도 목숨처럼 소중한 안전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 보고에서 지난 시정연설과는 달리 남북관계를 전혀 다루지 않고 국제역량과 국내역량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국제역량과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한국역량이 북한의 오래된 정면돌파전에 큰 도움을 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의 진정한 역할은 국제역량과 연대하여 북한의 국내역량이 스스로 달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북한이 오래된 정면돌파전 대신 새로운 정면돌파전을 선택할 때,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 《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 《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한국 외교사 바로보기: 전통과 근대》,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준일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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