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미래일본 2030" 특별 논평의 첫 번째 보고서로, 일본의 대내외 구조변동 요인과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분석한 이정환 서울대학교 교수의 워킹페이퍼가 발간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은 중국의 부상, 인구구조 변화, 기술혁신 등의 핵심적 구조변동 요인을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가까운 미래에 심화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일본은 미중 경쟁 속에서 국제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으나 인구구조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을 포함한 기술혁신 등의 구조 변동이 야기한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산업경쟁력 확보와 같은 과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미중 경쟁을 포함한 대외적 구조변동 요인에 대해 현 아베 정권은 유연한 ‘국제주의’와 전략적 유연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혁신 등의 대내적 구조변동 요인에 대해서는 점진적 제도개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 아래는 본 워킹페이퍼의 서론입니다. 전문은 하단의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I. 서론

케네스 파일(Kenneth Pyle)은 근현대 일본 정치외교사를 국제구조 변동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하고 있다(케네스 파일 2008). 자원조달과 수요확보에서 해외의 중요성이 큰 일본은 국제구조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일본의 근현대사가 국제구조 변동 요인에 의해서 강하게 제약된다는 거시적 조망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일본의 대외정책과 국내체제는 국제구조가 크게 변화되는 시점에서 큰 폭의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의 성패는 변동하는 국제구조에 어떻게 잘 적응했는지에 달려있다. 1945년 이전 일본의 침략전쟁이 국제구조에 대한 대응의 대표적 오류로 간주되는 한편, 1945년 이후 냉전체제와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로 대표되는 국제구조에 대한 요시다 노선에 입각한 대응이 긍정적인 사례로 간주된다. 한편, 인구구조로 상징되는 국내적 사회구조는 노동력 제공, 수요 창출, 해외와의 관여 등에 대한 국가적 진로의 원인이 된다.

구조적 변수가 일본의 대외정책과 국내체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정치적 현상이 그렇듯이 구조적 변수는 행위자의 선택에 의해서 현실화된다. 일본의 구조 변동에 대한 대응도 일본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한 현실 인식과 대응방법에 대한 선호에 의해서 상이해질 수밖에 없다. 침략전쟁도 요시다 노선도 일본 정책결정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과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선택이 일본 내에서 구조적 성격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대응방법에 대한 논쟁, 대립, 수렴의 과정을 거쳐 국가적 대응으로 선택되었다. 즉 일본의 대외정책과 국내체제를 이해하는 것은 구조적 변수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에 더해서 이러한 변수가 일본 국내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대응책이 모색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제구조와 국내적 사회구조가 큰 폭의 변화를 겪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중국의 부상, 인구구조 변화, 기술혁신 등으로 대표되는 대내외적 구조변동이 일본만의 사정은 아니다. 하지만, 1945년 이후 번영과 평화를 누려온 일본에게 이러한 구조변동은 일본의 번영과 평화의 기반을 침식하는 요인이다. 현재 일본이 직면하고 구조변동에 대해서 일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본의 정책결정자들은 어떻게 인식 속에서 일본의 진로를 선택할 것이고, 이에 대한 국내적 논쟁과 대립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일본 사회는 정책결정자 레벨(level)에서의 구조변동 요인에 대한 대응방식의 선택 과정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모두 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구조변동 요인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일본의 대응을 둘러싼 국내적 논의의 진행 방향에 대해 전망하고자 한다. 향후 10-20년 후 일본의 근미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각 분야의 향방은 중국의 부상, 인구구조 변화, 기술혁신 등으로 대표되는 구조변동이 제공하는 제약과 기회에 대한 일본의 대응으로 구성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게 주어진 구조변동의 제약요인적 성격과 기회요인적 성격을 분석하는 것은 일본의 미래 전망에 가장 선결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해서 구조변동 요인들에 대한 일본의 대응전략의 기초가 되는 국가구상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일본의 국가구상을 분석하는데 핵심적인 변수는 아베 정권이다. 2012년 12월 26일 출범하여 7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제2기 아베 정권은 근현대 일본정치사에서 이례적으로 장기 지속하고 있다. 현 아베 정권의 장기지속성은 최근 일본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의 변화에 대한 분석의 초점을 아베 정권의 정책 성향에 모아지게 만들고 있다. ‘전후 체제의 탈각’을 슬로건(slogan)으로 내세운 아베 정권의 국가구상은 가치관외교, 적극적 평화주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표되는 외교안보 정책노선과 아베노믹스, 일본재흥전략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사회 정책노선의 일체화된 추구로 파악된다. 아베 정권은 장기 지속은 아베 정권의 국가구상이 일본 정책결정자들과 일본 사회 전체에서 동의되고 수렴된 것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편, 아베 정권의 경제사회 정책노선은 효율과 분배, 시장과 공동체, 내향성과 외향성의 가치 기준에서 확실한 구상이라기 보기 어렵고, ‘강한 일본’의 재확립을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다 동원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아베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사회 정책노선의 지향부재는 아베 정권 이후 또는 도쿄 올림픽 이후 일본의 경제사회 정책노선에 대한 경쟁이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대내외적 구조변동 요인이 일본에 어떠한 과제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현재 아베 정권이 이에 대해 대응 차원의 정책 내용의 성격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 가운데 구조변동 요인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향에 대한 국가구상 논의가 잠복되어 있는 현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저자: 이정환_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주요 논서로는 <현대 일본의 분권개혁과 민관협동> (2016), "일본 지방창생 정책의 탈지방적 성격" (2017), "아베 정권 역사정책의 변용: 아베 담화와 국제주의" (2019)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김세영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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