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과 미국은 오랜 시간 안정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외교적 고집, 중국의 늘어나는 지역적 적극성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한일관계 악화, 미·중 무역전쟁 등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본 논평에서 레이프-에릭 이슬리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전 미국무부 부장관과 빅터 차(Victor Cha)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발간한 워싱턴포스트 공동기고문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이슬리 교수는 중국과의 국방 교류와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에 참여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의향이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한국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일부 사건들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동맹 관리자들이 힘들게 지키고자 노력했던 한미간 바로 그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우려를 부각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전 미 국무부 부장관과 빅터 차(Victor Cha)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66년 간 지속된 한미동맹이 깊은 곤경에 빠졌다(The 66-year alliance between the U.S. and South Korea is in deep trouble)’라는 제목의 논평을 워싱턴포스트에 공동으로 기고하였다. 정책 입안자들과 분석가들이라면 본 기고문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한미 양국간 협력은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외교적 고집, 거세지는 중국의 지역적 야심과 중국-러시아의 군사협력, 한일관계 악화,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으로 인해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의 신뢰에 대한 도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고문에 언급된 몇몇 사례들은 한국 현지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부장관과 빅터 차 교수는 기고문에서 한국 측의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통보는 미국을 향한 ‘동맹 남용 행위(an act of alliance abuse)’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결국 불발로 끝난 문재인 정부의 정보공유협정 종료 시도는, 사실 지난 여름 일본의 한국대상 수출규제에 대하여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한 것은 올바른 결정으로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일본도 수출규제 철회를 위한 논의에 참여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해 한일간 역사 분쟁이 격화되고 해상 레이더사건이 발생하는 등 중요한 순간에 동맹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지소미아를 유지하기 위해 심한 압박과 과잉보상을 감수해야 했다. 한·미·일 3국간 협력을 유지하고 현재 진행중인 논의들의 타협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의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은 초반 미국측의 전례 없는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과 연관지어 해석한다. 정치적 이슈를 만들기 위해 현수막을 들고 미 대사관저의 담을 넘은 소수의 학생들이 한국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한국 시위단체의 미 대사관저 침입은 미국의 탐욕을 향한 한국인들의 분노가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현지의 대체적인 반응은 사건에 연루된 젊은이들이 법에 따라 교훈을 얻어야 하며(실제로 구속됨), 대사관저 주변의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실제로 강화함)는 것이다. 한국의 시위를 언급할 때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는, 최근 조국 전 법무부장관 규탄집회와 검찰개혁집회처럼 첨예하게 대립된 국내정치적 쟁점을 놓고 대규모의 시위가 경쟁적으로 일어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미국을 향한 어떤 대규모집회도, 대사관이나 대사관저 주변을 휩쓰는 분노한 군중도 없다.

외교 정책적 면에서, 일부 미국인은 한국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ž태평양 전략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한탄한다. 하지만 한국은 2019년 11월에 공동으로 발간한 자료(fact sheet) 등을 통해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ž태평양 전략’간 중첩되는 긍정적인 사항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더욱 적극적인 지역적 협조와 성원을 요구할 수 있으나, 미국의 외교 정책 또한 동맹국의 상황과 국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 측 입장에서는 최고의 외교안보 파트너와 최대의 교역국이자 가장 인접한 주변국이 끊임없는 경쟁구도에 돌입하는 것이므로 뛰어난 외교적 수완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한국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비하기 위해 인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리처드 아미티지 전 부장관과 빅터 차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 증거로 한국이 ‘중국이 제안한 다자간 무역협정에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해당 다자간 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중국이 아닌 7년 전 아세안에서 구상한 협정이다. RCEP에 일본, 호주 및 뉴질랜드를 포함한 아세안 10개국이 모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만을 특별하게 언급하는 것은 왜곡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더 높은 수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서 탈퇴하고 동맹국들과 충분히 협의되지 않은 채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아시아에서 무역 관련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을 양보한 것은 다름아닌 미국이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국제적 규범을 준수하고 미국과의 공동의 이해를 도모하는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중견국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아미티지와 빅터 차 교수는 “동남아시아에서 열린 다자회의와 별도로 한국과 중국의 국방장관들이 국방 교류 증대에 합의한 것은 한미 동맹의 약화되는 또 다른 불길한 신호”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중 국방부 관리들의 상호 방문 및 핫라인(hotline) 설치는 신뢰 구축과 위기 예방을 위한 노력이다. 아시아 지역 회의에서 나타나는 미국 리더십 문제의 보다 직접적인 징후는 미국 대통령의 회의 불참이며, 이러한 미국의 공백은 중국이 대신 채울 수 있는 자리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부장관과 빅터 차 교수는 그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광범위한 상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논쟁을 펼쳐왔다. 그들은 앞서 살펴본 문제들이 초래하는 더없이 나쁜 상황(perfect storm)의 결과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로 이어지는 것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다. 정책 담당자들과 분석가들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고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에 경종을 울리는 것은 분명 명예로운 책무이다. 따라서 최근 사건들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들을 읽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나, 불필요한 우려를 부각시키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국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일부 사건들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동맹 관리자들이 힘들게 지키고자 노력했던 한미간 바로 그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자: 레이프-에릭 이슬리_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 교수.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부(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중국, 미얀마, 북한과 연계된 한미일 삼국 협력 등이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원, 류민 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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