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구 외교부 차관보(왼쪽)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2일 태국 방콕에서 만나 협의했다. [사진 외교부]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왼쪽)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2일 태국 방콕에서 만나 협의했다. [사진 외교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관련해 한국이 동참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처음 나왔다.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의 상징인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만료(11월 22일 밤 12시)를 20일 앞두고서다. 미국은 한ㆍ미ㆍ일 협력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으로 본다. 그래서 모양은 한·미 합의인데 실제 내막은 미국의 지소미아 유지 압박용이라는 관측이 외교가에선 지배적이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2일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계기로 태국 방콕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와 양자 협의를 했다. 양국은 협의 뒤 ‘신남방정책과 인도ㆍ태평양 전략간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제목의 설명서(fact sheet)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모양은 합의인데 내용 곳곳엔 숨은 뇌관

설명서는 ▶에너지를 통한 번영 ▶인프라 시설과 개발 금융을 통한 번영 ▶디지털 경제를 통한 번영 ▶사람 : 굿 거버넌스 및 시민사회 ▶평화와 안보 보장 등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 방안을 담았다. 

한미가 2일 차관보 협의 뒤 발표한 설명서.

한미가 2일 차관보 협의 뒤 발표한 설명서.

정부는 이번에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대한 참여를 본격화하면서도 원칙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가장 예민한 안보도 협력 분야에 넣었지만 각론을 보면 아세안 및 태평양 도서 국가들에 대한 개발 원조나 재해 지원, 글로벌 보건 협력 등 전부 ‘비전통 안보’ 분야다. 대중국 견제 요소는 드러나지 않도록 수위 조절을 한 셈이다. 
하지만 곳곳에 향후 미국이 건드릴 수 있는 뇌관이 들어갔다. 양국은 ‘아세안 경제의 원활한 5G 시대로의 전환 지원을 위해 양국이 워크숍을 제공했다’고 했다. 과거 활동을 소개했지만 5G 문제는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와 직결된 만큼 미국이 한국의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예민 현안이다. 또 설명서 모두에서 양국은 ‘국제규범에 대한 존중’을 공동원칙으로 명시했는데 국방부 인도ㆍ태평양 보고서는 이를 ‘항행의 자유’와 직결시키고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견제에 한국도 나서라는 미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 설명서에서 양국은 지난달 한국 기획재정부와 미 재무부 간 인프라 금융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 서명을 언급하며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시설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양자 간 협력을 증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에 대응해 한·미 연대를 강화하자고 제안할 근거가 될 수 있다. 

Secretary of State Mike Pompeo speaks during the Herman Kahn Award Gala, Wednesday, Oct. 30, 2019, in New York. Pompeo received the Hudson Institute`s 2019 Herman Kahn Award. (AP Photo/Mary Altaffe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Secretary of State Mike Pompeo speaks during the Herman Kahn Award Gala, Wednesday, Oct. 30, 2019, in New York. Pompeo received the Hudson Institute's 2019 Herman Kahn Award. (AP Photo/Mary Altaffe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특히 미국 이번 설명서 발표를 통해 지소미아 이후 한국을 상대로 인도·태평양전략과 함께 갈지, 아니면 혼자 갈지를 선택하라고 묻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열 연세대 교수·동아시아연구원장은 “우리는 지소미아를 강제징용, 일본의 수출 규제와 3종 세트로 엮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과 지역질서를 장악하기 위한 각축 속에서 인식하고 있다”며 “지소미아를 종료한다면 미국으로부터 안보 협력 측면에서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나 미ㆍ중 간 선택의 압박이라는 더 큰 문제가 다가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틸웰 차관보는 5일 방한해 한국 외교ㆍ안보 라인 고위 관계자들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는 의견을 전달할 전망이다. 

지소미아 체결부터 종료까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소미아 체결부터 종료까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편 한·미 차관보 협의 뒤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과정에서 미국이 가능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고, 국무부는 “한ㆍ미ㆍ일 삼각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해 묘한 차이를 보였다. 

[출처: 중앙일보] 한미 인도태평양 협력 구체화 첫 합의…지소미아 이후 미국 포석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