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EAI는 중국의 미래 성장이 인류의 공생과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아태 질서 설계도를 마련하고 한국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2018년부터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이라는 중장기 연구사업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의 첫 단계 연구가 마무리됨에 따라, EAI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지난 4~5월에 걸쳐 영문 워킹페이퍼 시리즈로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속 시리즈로, EAI는 미중 관계의 미래를 조망하는 4편의 보고서로 구성된 “미중 경쟁의 미래: 4단계 경쟁 동학" 스페셜 이슈브리핑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그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로,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이 집필한 미중 무역전쟁에 관한 이슈브리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미중 무역전쟁이 단일 쟁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쟁점과 연계되어 전개되고 있고, 미중 양자 차원뿐만 아니라 우방국을 포함한 다자 차원에서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차원적 복합 게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복합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은 그 근저에 ‘패권경쟁’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국 간 무역전쟁이 점차 세계경제질서 재편을 위한 시스템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지구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들어가며

트럼프 행정부가 공세를 취하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 전개하는 게임의 내면은 매우 복합적이다. 이는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인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현재까지 전개된 무역전쟁에서 미중 양국은 전선을 확대하고 주요 쟁점에 대하여 자국의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하여 갈등 수위를 높이면서도, 결정적 파국에 이르는 선택은 회피하는 ‘투이불파’(鬪以不破)의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무역 불균형 문제에서 시작하여 전선을 기술 및 산업정책, 기술 탈취, 발전모델의 문제로 확대하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 무역협상을 결렬시키는 등 미중 양국은 확전을 과감하게 선택하기도 하였으나, 결정적 순간에는 다시 협상을 재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중 무역전쟁은 일차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이지만, 경제적 파급 효과와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구적이다. 현재의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게임이지만, 동시에 주요국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지구화된 게임임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설치하지 않도록 요청하고(Sanger 2019/1/26), 중국이 이에 대응하여 화웨이(华为技术有限公司: Huawei)와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주요 다국적 기업들에게 요청한 것은 이미 미중 무역전쟁이 지구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Corera 2019).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대로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중국 역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5~25%로 인상할 경우, 2021년 미국과 중국의 GDP는 각각 0.2%, 0.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 전쟁이 자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경우, 미국과 중국의 GDP 감소폭은 0.7%와 0.9%까지 확대되고, 세계 경제를 약 6,000억 달러 감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추산된다(Holland and Sam 2019). 이처럼 미중 무역전쟁은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완화·해소하는 차원을 넘어서 미래 경쟁력의 선제적 확보와 세계무역질서의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회성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갈등의 지구화와 상시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글은 미중 무역전쟁이 ‘다차원적 복합 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 주목한다. 다차원적 복합 게임은 미국과 중국이 단일 쟁점이 아니라 여러 쟁점을 긴밀하게 연계하고 갈등과 제한적 타협이라는 이중 동학을 전개하는 동시에, 양자 협상을 중심축으로 하되 향후 다자 수준의 협상과의 연계를 고려하여 진행하는 게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은 (1) 무역 불균형의 시정, 공급 사슬의 재편, 기술경쟁 등 다양한 쟁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2)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투사된 패권경쟁을 무역전쟁에 투사하며, (3) 경쟁과 갈등의 장으로서 양자/지역/다자 구도를 긴밀하게 연계하여 자국에 유리한 세계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게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는 무역 불균형, 첨단 기술의 지적재산권 탈취, 정부 보조금과 규제 장벽을 포함한 불공정 무역 관행, 미래 경쟁력, 중국 발전 모델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 패권 경쟁 등 다양한 요인들이 혼재되어 있다. 미중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경쟁이 비교적 단기간에 광범위한 쟁점 영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의 경쟁의 경우, 체제 경쟁의 성격을 가졌으나 기본적으로 군사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미일 무역분쟁에서 미국은 양자 차원에서 공세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G7이라는 글로벌 거버넌스 안에서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Beeson and Bell 2009). 반면,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와 안보 분야의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 내에서도 무역 불균형 및 기술혁신, 산업정책, 발전모델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갈등이 짧은 기간 내에 압축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면에서 과거 사례와 차별화된다.

갈등의 압축적·동시다발적 진행은 갈등의 효과적 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선,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이 증폭될 가능성 높다. 갈등이 압축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양국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별 분야의 갈등 수준과 총체적 갈등 수준 사이에 인식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갈등이 여러 쟁점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대다수 쟁점에 대해 합의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쟁점에서 이견이 남아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쟁점에 대한 이견이 부정적 영향을 끼쳐 총체적 갈등의 수준을 높이는 예기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 무역 정책의 특징과 미국의 대중 위협 인식

현재까지 나타난 트럼프 행정부 무역 정책의 특징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실용적 결단’(pragmatic determin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TPP 탈퇴, NAFTA 재협상, KORUS FTA 개정 등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실용적 결단은 비전통적 또는 파격적 방식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무역확장법 201조에 근거하여 구제 조치를 허용한다거나 301조를 발동하고, 전통 우방국을 상대로도 중상주의적 접근을 불사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미중 양국 간 무역의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적극 활용하고 중국에 대하여 징벌적 관세를 과감하게 부과하는 등 실용적 결단은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발견된다.

트럼프 행정부 무역 정책의 두 번째 특징은 국내적 차원에서 의회를 우회하는 수단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는 물론, 미국 정치의 기득권 집단과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301조, 세이프가드 등을 선호하는 것도 미 의회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미 의회를 우회하는 것이 신속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세 번째 특징은 경제와 안보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미국의 번영을 국가 안보의 문제로 정의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2017). 국가안보전략은 “안보 정책과 마찬가지로 통상 정책도 미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일조해야 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가 주권을 수호하고 미국 경제를 강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2017).

네 번째 특징은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이 디지털 경제의 혁신을 선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 경쟁국이 지적재산권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미국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획득하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차별적인 노력(unreasonable and discriminatory efforts)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불공정 관행을 저지하기 위해 301조 발동 가능성을 항상 열어둘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미국이 무역전쟁을 과감하게 전개하는 이유를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의원(플로리다)과 민주당의 태미 볼드윈(Tammy Baldwin) 상원의원(와이오밍)이 ‘대중국 공정무역 실행법안’(Fair Trade with China Enforcement Act)을 제출한 데서 나타나듯이 대중 무역 정책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루비오/볼드윈 법안은 국가안보와 관련이 있는 기술과 지적재산권의 대중국 판매 금지, 연방 기관 및 계약 업체들의 화웨이와 ZTE 통신 장비 및 서비스 구매 금지, 중국 제조 2025 관련 분야 중국 투자자의 미국 기업 주식 보유 상한 설정 등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중국 강경책과 궤를 같이한다(Rubio and Baldwin 2018).

이처럼 민주당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을 적어도 총론 차원에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기술 유출에 대비한 지적재산권 보호, 무역 불균형의 시정 등에 대해 민주당도 기본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고, 전통적 지지 계층인 노동자 집단을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중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은 중국을 압박하는데 있어서 양자주의보다는 주요 동맹국들과의 협조를 중시한다는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내정치적 지형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의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지 않고 대중국 무역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를 우회하는 수단을 빈번하게 활용해도 미 의회가 선언적 차원의 견제에 그칠 뿐, 이를 근본적으로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즉,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양자 갈등 및 협상을 지속하는 한편, WTO 개혁과 다자 차원의 새로운 무역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국내정치적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전쟁에서 확전을 불사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 국민의 대중국 위협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2018년 퓨 연구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일반 대중은 중국의 군사력보다 경제적 부상을 더 큰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미 국민의 29%가 중국의 군사력을 위협으로 인식한 반면, 58%가 중국의 경제력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수치는 2017년보다 6%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대한 미국 일반 대중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Pew Research Center 2018/8/28).

 

<그림 1> 미국인의 대중국 위협 인식(2018)

출처: Pew Research Center 2018.

 

미중 경쟁의 복합 게임

무역 불균형-공급 체인-기술의 연계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양자 협상을 선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무역 불균형 구조와 관련이 있다. 미국 전체 무역 적자의 90% 이상을 중국을 포함한 8개국이 차지하고 있다. 2018년 미국의 무역 적자는 중국이 4,19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여 전체의 65%를 차지하고, 이외에도 멕시코 810억 달러, 독일 682억 달러, 일본 676억 달러를 기록하였다(Amadeo 2019).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미국 무역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양자 협상을 전개하는 것이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고, 중국을 무역 공세의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은 1990년대 초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층 빠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무역 불균형은 더욱 확대되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의 대미 수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2000년대 미중 무역 불균형은 확대일로에 있었다.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2018년에도 무역 불균형의 규모는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4,190억 달러로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그림 2> 참조).

 

<그림 2> 미중 무역 관계의 변화


출처: US Census. 에서 재인용.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역 불균형의 구체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중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 행위는 수입과 경쟁으로부터 국내 기업 보호,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점유율 확대, 핵심 자원의 확보와 통제, 전통 제조업에서 지배력 확대, 핵심 기술 및 지적재산권 탈취, 폐쇄적인 금융시장 등 매우 다양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불공정 무역 행위가 기술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핵심 기술 분야에서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 경쟁력을 견인할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정부 주도의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산업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불공정 무역 행위의 본질은 중국의 ‘경제적 침공’(economic aggression)이라는 것이다(White House Office of Trade and Manufacturing Policy 2018).

미국의 입장에서 낮은 소비 비중과 높은 저축율과 같은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도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주 요인이다. 2016년 기준 중국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39%로 미국은 물론 주요 국가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낮은 소비 비중이 개인 소비 성향의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부 정책 및 규제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며, 따라서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을 뿐 아니라, 무역 불균형이 초래된 데에는 미국 자체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일방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절대 액수 면에서 증가해 온 것은 사실이나, GDP 대비 2007년 9.9%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2017년 1.7%까지 감소하는 등 상대적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미중 무역 불균형이 미국의 주장과 달리 적정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그림 3> 참조).

 

<그림 3>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 변화 추이(GDP 대비)

 
   

출처: Ha (2018).

 

또한 중국 정부는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구적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의 영향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미국 및 EU에 대해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4,195억 달러를 기록하였고, 2019년 5월까지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도 1,370억 달러(수출 1,800억 달러, 수입 429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대만, 일본, 독일에 대해서는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전체 무역 흑자 규모는 483억 달러 규모로 감소한다.

중국은 미중 무역 불균형을 글로벌 가치 사슬 내에서 중간재 중심의 무역이 증가하는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중국의 전체 무역에서 중간재 교역 비중이 전체 무역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이 글로벌 가치 사슬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미국 등 특정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역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주요 다국적 기업들이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중국으로 생산 설비를 이전한 것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무역 적자의 75%를 차지하였으나, 2017년 12% 수준으로 감소한 반면, 미국의 무역 적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10%에서 2013년 73%까지 증가하였다(World Trade Organization 2019).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중 무역 불균형은 세계 주요국들이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최적의 입지를 선택하여 지구적 가치 사슬을 형성한 결과이기 때문에 중국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기술경쟁으로 전화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양적 성장에 그치지 않고 질적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중국 제조 2025’는 주요 첨단 산업에서 대외의존도를 낮춰 자립도를 높이려는 시도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제조 2025는 차세대 정보기술, 로봇, 항공우주, 해양공학, 고속철도, 고효율·신에너지 차량, 농업 기기, 신소재, 바이오 등 미래 핵심 10대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노동집약산업 위주로 성장하였던 중국 경제를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첨단 컴퓨터 기반 기계의 자급율을 80%까지 높이고, 산업용 로봇의 연간 생산량을 10만대까지 늘리며,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컴퓨팅을 IoT와 통합하는 중국 기업의 자립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려는 계획을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공식화하였다(U.S. Chamber of Commerce 2017).

중국의 부상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전통 제조업에 기반하여 이루어져 왔으나, 2010년대 들어 중국의 추격은 첨단산업 분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1년 중국이 중상위 기술 산업(medium high technology industries) 분야에서 미국을 추격하는 데 성공한 것이 이러한 변화의 전조이다. 중상위 기술 산업에서 2016년 중국이 1조 달러를 상회하는 매출을 기록한 반면, 미국은 2011년 이후 매출의 절대 규모가 감소하는 등 미중 양국의 제조업 기반은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National Science Foundation 2018). 중국의 추격은 전세계 ICT 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할 경우, 전세계 ICT 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4%로 24%를 기록한 미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그림 4> 참조). 더욱이 컴퓨터, 통신, 반도체 등 주요 ICT 산업에서 중국은 미국을 추격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통신 분야 등에서는 오히려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National Science Foundation 2018).

 

<그림 4> ICT 산업 국가별 비중

출처: National Science Foundation (2018).

 

중국의 미래 경쟁력은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감지된다. 2017년 미국과 중국의 연구개발 규모는 각각 4,960억 달러와 4,080억 달러로 전세계 연구개발 지출 가운데 26%와 2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비의 증가 속도를 보면, 중국의 연구개발 액수는 2000년 이후 10배(연평균 18%) 증가하였고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도 2배 증가하였다. 반면, 미국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39%(연평균 4%) 가량 증가한 데 그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미국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2024년 중국의 연구개발비는 6,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반면, 미국의 연구개발비는 50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그림 5> 참조).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벤처 캐피털의 규모에서도 중국은 2013년 30억 달러에서 2016년 340억 달러로 증가하여 세계의 27%를 차지하였다. 특허 출원 건수에서도 연평균 13.4% 증가하여 2017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가 되었고, 2018년 세계 1위의 특허 출원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5> 주요국의 연구개발 지출 규모 변화 추이 및 전망 (2000~2024, 백만 달러)

출처: OECD Science, Technology and Industry Outlook 2014.

 

미국은 중국 정부의 이러한 시도가 국내 기업에 대한 철저한 보호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보조금 지급 등 기존의 산업정책을 지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특수 관계를 기반으로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때로는 해외 기업에 차별적 조치를 부과하는 등 포괄적 불공정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문제를 제기하는 산업정책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신에너지 차량(new energy vehicles: NEC)은 정부 주도로 성장한 대표적인 산업이다. R&D 지원, 구매 지원금, 조세 감면, 정부 구매, 충전 인프라 건설을 위한 자금 지원 등을 모두 포함한 중국 정부의 지원 규모는 약 585억 달러 규모로, 이는 민간 기업이 투입한 재원의 약 42%e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Kennedy 2018, VI).

AI 산업 역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산업이다.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 계획, 인터넷 플러스(互联网+), 차세대 AI 발전계획(新一代人工智能发展规划) 등 일련의 정책을 통해 AI 분야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왔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1조 위안(1,500억 달러) 규모의 국내 AI 시장을 형성하고, 2030년까지 AI 선도국으로 부상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 민간 기업들도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시티, 의료 이미지 등의 분야의 AI를 개발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에 가세하고 있다(McKinsey Global Institute 2017). 이러한 노력의 결과, 중국 정부는 음성 인식과 이미지 인식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적응적 자율 학습, 직관적 인식, 집단 지성 분야는 교차 개발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정보 처리, 산업용 로봇, 서비스 로봇, 무인 주행 등은 실용 가능한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내부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State Council 2017).

디지털 무역 분야 역시 중국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분야이다. 중국 국가통계국(国家统计局)에 따르면, 중국의 온라인 소매 시장의 규모는 2018년 1조 3,300억 달러에 달하였는데, 이는 2017년에 비해 23.9% 증가한 수치이다. 중국은 국내적으로 온라인 상거래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무역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다. 미국 통상대표부가 2016년 대외무역장벽보고서(2016 National Trade Estimates of Foreign Trade Barriers)에서 지적하였듯이 중국 정부가 인터넷 필터링을 통해 사실상 해외 공급자들을 차단함으로써 국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실질적으로 조성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중국 당국은 세계적으로 인터넷 트래픽이 가장 많은 25개 사이트 가운데 8개를 차단하였는데, 이는 디지털 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USTR 2016). 또한 중국 당국이 애플 아이튠즈 영화와 아이북스 스토어, 디즈니라이프 서비스를 구체적 설명 없이 중단시키는 등 인터넷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데 대한 미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CRS 2017). IT 기술 도용 역시 디지털 무역의 저해 요인이다. 중국은 지적재산권의 최대 도용 국가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 측은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 측의 지적재산권 도용 규모는 2천 4백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승주 2018).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이 국내 기업에 대한 철저한 보호, 미국 기업의 기술 탈취, 미국 기업에 기술 이전 강요 등 불공정한 방법을 통하여 기술 추격이 이루어졌다(White House Office of Trade and Manufacturing Industry 2018). 물론 특허의 질적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미국이 우세하기 때문에 혁신을 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미국이 기술 혁신과 시장 선도 능력을 얼마나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향후 미중 경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무역 불균형에 대한 갈등을 넘어 기술전쟁으로 확전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인식의 일단은 2018년 4월 미국 통상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가 1,300개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품목을 선별적으로 포함시킨 데서 나타난다.

이에 대하여 중국 정부는 중국의 기술 혁신은 자국 기업들의 자체 역량에 기반한 것일 뿐, 지적재산권의 탈취나 강요된 기술 이전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国务院新闻办公室 2019). 이처럼 미중 양국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 입장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기술 혁신과 주요 산업에서 중국의 부상에 직면하여 AI, 5G 네트워크, 로보틱스, 빅데이터 등 첨단 산업 분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선택일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미래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독자적 플랫폼을 형성하고 이를 확대하기 위한 경쟁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산업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을 연계하는 플랫폼을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표준을 확대하는 제도적 기반으로서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를 주도적으로 수립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다.

협상 전술 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현재의 문제 해결과 미래의 경쟁력 확보라는 복합 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하여 301조를 발동한 데서 잘 나타나듯이, 단기적으로 미국은 무역 불균형을 감축하기 위한 직접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 견제를 통해 미중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접근법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무역 전쟁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찾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같은 맥락에서 미국대외투자위원회(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CFIUS)를 통해 중국의 대미 투자 제한을 강화하고 있다. 미 재무부 또한 미국대외투자위원회가 해외 기업의 대외 투자를 직접 관리하도록 권고한 데서 나타나듯이, 미국 정부는 앞으로도 새로운 입법을 통해 미국대외투자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는 일차적으로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과의 합작, 불공정 라이센스, 미국 기술 기업 인수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미국의 핵심 기술을 불공정하게 획득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미국대외투자위원회의 제도적 강화는 중국이 첨단 산업 분야의 가치 사슬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상향 이동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 목표가 있다. 미국대외투자위원회의 권한 강화가 핵심 기술 보호는 물론, 국가 안보와 미래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위협하는 약탈적 투자 관행에 대처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Lawder and Chiacu 2018).

 

경제-안보 연계

미중 무역전쟁은 주로 현 시점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처럼 보이나, 그 근저에는 기술 경쟁이 작용하고 있다. 화웨이 사태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듯이 미중 양국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기술 경쟁은 무역 불균형의 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문제인 동시에, 미래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무역 불균형을 넘어선 기술경쟁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첨단 기술과 산업 분야의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미래 경쟁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Navarro 2018). 화웨이에 대한 미국 측의 문제 제기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미 의회는 2012년 화웨이와 ZTE에 관하여 작성한 보고서에서 기업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 백도어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결과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Rogers and Ruppersberger 2012).

미국 내에는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안보를 통합하는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 추격이 무역 불균형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이어질 뿐 아니라, 미국의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목표를 위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야 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음에도 과거 행정부들은 경제와 안보의 통합 전략을 수립·실행하는 데 있어서 국내적으로 제도적·정치적 제약에 직면했던 것이 사실이다(Blackwell and Harris 2016).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은 기존 행정부의 비판적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기업이 미국의 핵심 기술을 획득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국가안보검토(national security review)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미중 경쟁의 다차원화: 양자-다자 연계와 시스템 경쟁

이중 동학과 양자-다자 연계

미중 무역전쟁은 일대일 양자 게임인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자국에 유리한 세계경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전초전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다차원화하고 있다. 즉, 미국과 중국은 양자 차원에서 위협과 보복을 포함한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는 한편, 세계경제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략적 경쟁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최근까지 유지되고 있다. 우선, 양자 차원에서 2019년 5월 9일 미중 양국은 상당수 쟁점에 대하여 견해가 좁혀지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지방 정부 보조금, 사이버 보안법, 외국인 투자법 등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결과 협상이 결렬되었다. 2019년 5월 10일 미국 통상대표부가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인상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중국 정부 역시 6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수입품 5100여개 품목에 대하여 5~25%의 보복 관세 부과를 선언하는 등 무역 전쟁은 확전의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6월 29일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추가 관세 부과를 잠정적으로 연기하고 무역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데서 나타나듯이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갈등의 확전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결정적 파국은 선택하지 않았다(Liptak 2019/6/29). 미국과 중국이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무역 전쟁의 수위를 높여 나가면서도 협상을 재개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무역 전쟁의 장기화는 미중 관계가 갈등과 협상의 이중 동학을 유지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향후에도 미중 양국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나 파국보다는 협상과 갈등, 타협과 충돌과 같은 모순이 공존하는 게임을 상당 기간 지속하게 될 것이다. 미중 양국이 협상 과정에서 특정 쟁점에 대해 타협에 도달할 수도 있으나, 타협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과 협상의 이중 동학은 다자 차원에서도 전개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투사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지속하는 한편, 세계경제질서 자체의 붕괴 가능성을 완화하는 데서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찾을 것이다. 다자 차원에서 미중 양국이 경쟁 일변도가 아니라 경쟁과 협력의 이중 동학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경제 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기술 및 산업 경쟁력이 향상됨에 따라 추격 성장의 시대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외국 기업의 기술 탈취보다는 자국 기업의 기술 보호,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 촉진, 해외 투자의 보호 등 일정 수준 미국과 이해를 같이 할 수 있는 쟁점의 영역이 점차 확대될 것이다. 내수 중심의 경제로의 전환, 서비스 부문 자유화, 외국 기업에 대한 친화적 정책 등을 중국 정부가 미국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점진적인 변화를 추진할 분야가 있다. 리커창 총리가 하계 다보스 포럼에서 증권, 보험 등 금융 부문의 외국인 지분 투자 제한을 원래 계획보다 1년 앞당긴 2020년에 개방할 것을 시사하고(Financial Times 2019/7/2),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国家发展和改革委员会)가 네거티브 리스트를 40개로 축소하여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이 중국의 점진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XinhuaNet 2019/6/30).

물론 정부-기업 관계의 변화,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 개인 정보 보호, 사회적 안정을 위한 시민 및 기업 활동의 제한과 모니터링 등의 쟁점에 대해서는 미국과 근본적으로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국제 규범화하는데 있어서 심각한 갈등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미국이 양자주의만 고수하기 어려운 이유는 중국을 양자 차원에서 장기간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것은 미중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공세적 압박을 통해 무역 불균형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게 되면, 미중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의 규모가 감소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불균형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으나, 미국이 원하는 대로 무역 불균형이 축소될수록 압박의 효과가 감소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미중 경쟁이 ‘상호의존적 경쟁’(interdependent competition)이었다면(Wright 2017), 앞으로의 미중 경쟁은 상호의존의 수준을 낮추어 독자적 세력권을 형성하는 가운데 경쟁의 수위를 높이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축소 균형 전략이다. 현재와 같은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미국 정부가 확전을 선택할 경우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미국이 단기적 차원에서 양자 협상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되, 공급 사슬의 재편과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 같은 중장기적 차원의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미국 기업의 본토 회귀(reshoring)를 유도하는 정책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은 자국 기업들의 공급 사슬(supply chain)을 재구성하여 독자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미중 경제의 상호의존도를 낮추어 나가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협상 타결에 이르더라도 양국 기업들이 이미 새로운 공급 사슬의 형성에 착수하였다는 점에서 무역전쟁의 영향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들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국내적으로 상당한 반향을 초래할 수 있다. 공급 사슬의 재편 또는 다양화를 시도할 수 있는 대기업들과 달리,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공급 사슬을 신속하게 재편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Petty 2019). 또한 공급 사슬의 재편이 의도한 정책적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수출 규모가 연간 110억 달러에 달하는 등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미국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인텔 등이 미 상무부의 제재를 피하여 화웨이에 우회 수출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더욱이 제재 리스트가 화웨이에 대한 수출을 전면적으로 차단할 만큼 구체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제3국을 통해 수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일관성 있게 펼치기 위해서는 공급 사슬의 재편을 점진적으로 추구하는 한편, 양자주의와 다자주의를 긴밀하게 연계하는 전략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하드파워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궁극적으로 일방주의의 효과 역시 감소할 것이므로 EU, 일본, 한국 등과의 협력에 기반한 다자 질서의 개혁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도 유리하다. 중국의 부상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따라서 미국은 미중 양국 간 무역의 외형적 균형을 확보하는 한편, 혁신 능력을 선도함으로써 중국과의 질적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양자적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는데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이후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다자경제질서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첨단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 및 디지털 보호주의 문제와 관련해 양자 협상에 주력한 반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서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를 비판하였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한 인도의 조치에 대하여 2019년 7월 트럼프 행정부는 GATT 규정 위배를 근거로 WTO 분쟁 협의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12월 디지털 무역 관련 향후 협상에서 논의될 주요 쟁점들을 검토하는 회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는 등 필요할 경우 WTO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동을 고려할 때, WTO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비판은 WTO 탈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WTO 개혁을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드러내왔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WTO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다자주의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주요 선진국들과 협력하여 WTO를 개혁하고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수립하는 전략이 국내정치적 장애도 크지 않다. 다자 경제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핵심 목표는 국영기업 규제, 보조금 지급에 대한 투명성 확보, 개도국 지위의 세분화와 같은 현안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 경쟁력의 확보와 관련된 디지털 무역에 관한 쟁점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개정과 USMCA 재협상을 신속하게 타결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양자 협상의 결과를 향후 진행될 다른 양자 협상의 준거점으로 삼고, 더 나아가 새로운 무역 질서의 표준으로 설정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향후 일본과 EU 등 주요 선진국들과 첨단산업 규칙을 포함한 양자 FTA 협상을 추진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적으로 주요 선진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양자와 다자 협상을 긴밀하게 연계하는 양면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향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세계경제질서를 재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록 탈퇴 결정을 내리기는 하였지만, TPP는 디지털 무역 분야의 세계경제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준거점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통상대표부가 ‘TPP에서 합의된 규칙들을 디지털 무역 관련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데 활용하겠다.’고 천명한 데서 미국의 의도가 드러난다. 2018년 10월 타결된 USMCA에서도 TPP보다 지적재산권 규정을 한층 강화하고, 한 회원국이 비시장경제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다른 2개 회원국들은 USMCA를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등 미국의 전략적 의도는 재확인되었다. 중국과의 양자 협상과 동시에 세계경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의도이다.

중국 역시 양자 차원에서 미국의 공세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경한 대처를 하는 동시에, 다자 차원의 문제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은 2018년 8월 3일 중국 국무원 관세세무위원회가 공고한 ‘미국산 일부 수입 제품(제2차)에 대한 추가 관세 징수 결정’에 잘 나타나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WTO 원칙과 규칙을 위반하고 있고,’ ‘미국이 수 차례 협상으로 달성한 합의를 위반, 일방적으로 무역마찰 심화시킴으로써,’ ‘글로벌 가치 사슬과 자유무역체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国务院关税税则委员会办公室 2018). 중국은 기존의 다자무역질서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무역전쟁을 양자 게임이 아니라 다자 차원의 게임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가 무역전쟁의 지속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의 발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중국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침범’한다는 점을 함께 밝히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전쟁의 해결이 세계 경제의 발전과 세계경제질서의 안정에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다른 국가들로부터 동조를 구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국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가적으로 밝히는 방식을 통해 미국의 무역 공세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들로부터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려는 의도이다.

 

시스템 경쟁의 복합성

미중 무역 전쟁의 이면은 시스템 경쟁의 복합성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근본적으로 전략경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주요 선진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시스템 경쟁을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무역 전쟁이 미중 양자 관계를 넘어 미국이 주요 동맹국들과 공동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양자주의를 통해 중국에 압박을 가하는 기존의 전략에 더하여 주요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전략을 병행할 것이다.

이 경우, 미국과 중국은 양자 간 경쟁을 넘어 시스템 경쟁으로 돌입하게 된다. 최근 타결된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FTA)은 32조 10항에서 협정 당사국이 비시장경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국가와 FTA 협상을 개시할 경우 사전에 다른 두 국가에게 통보하고, 상대국들은 FTA 협상이 타결될 경우 USMCA FTA를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FTA 안에 이러한 규정이 포함된 것은 유례없는 일일 뿐 아니라 캐나다가 중국과 FTA를 추진할 경우 미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양자 차원을 넘어 지역 및 다자 수준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와 기타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반화웨이’(anti-Huawei) 연대를 형성하려는 데서 시스템 경쟁의 초기 형태가 발견된다.

미국이 전통 우방국들과 ‘패권 연합’(hegemonic coalition)을 형성할 경우, 중국 경제력에 대한 양적 우위와 그에 따른 리더십 동맹을 최소 20년 이상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미중 경쟁 구도의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패권 연합의 유형은 미국이 유럽,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연합 집단 1(Coalition Group 1)과 한국과 일본을 추가한 연합 집단 2(Coalition Group 2)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 6> 참조). 미국이 연합 집단 2를 성공적으로 구성할 경우, 중국은 빨라야 2040년에 미국 진영의 경제력을 추월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6% 이하로 감소할 경우, 이 시기는 2050년 이후로 늦춰지게 될 것이다(Bergsten 2018).

그러나 시스템 경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미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과 EU는 첨단 산업 관련 이슈들을 국제 규범화하는데 있어서 일부 핵심 사안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시스템 경쟁에 돌입하기 전에 유럽과 입장 차이를 좁히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 대결을 회피하는 가운데 경제력을 활용하여 개별 국가들을 설득 또는 압박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패권 연합의 형성을 저지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양자 차원의 갈등과 협력을 지속하면서 패권 연합의 형성과 저지를 둘러싼 시스템 경쟁을 동시에 전개하는 것이다.

시스템 경쟁의 복합성은 세부 쟁점 수준에서도 나타난다. 디지털 무역 관련 쟁점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기반 경제와 무역은 미중 무역 전쟁을 구성하는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전세계 디지털 무역의 규모는 28조 달러로, 최근 5년 간 약 44% 성장하였다(USTR 2018). 미국 통상대표부가 2019년 ‘무역장벽보고서’(2019 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를 통해 디지털 무역 분야의 무역 장벽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과 데이터 국지화에 대한 제한, 클라우드 컴퓨팅 제한, 인터넷 필터링과 차단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USTR 2019).

 

<그림 6> 미국의 연합 집단(Coalition Groups)과 중국의 GDP 변화 전망


출처: Bergsten (2018).

 

EU는 인터넷 검열과 디지털 산업 정책 등 기본적으로는 중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개인 정보 보호, 기술 기업에 대한 조세 부과,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에 대해서는 미국과 상이한 입장을 취하는 등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유럽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때로는 차별화된 입장을 견지함에 따라 미중 경쟁이 일대일 단순 구도에서 복합 게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의 효력을 높이기 위해 유럽과의 견해 차이를 좁혀나가야 하는 반면, 중국은 대안적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이 공고한 패권 연합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유럽 국가들을 개별적으로 압박, 회유하는 복합 게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 국지화는 미국, 중국, EU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 기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82%와 52%가 데이터 국지화를 무역 장벽으로 꼽을 만큼 국지화의 의무화는 기술 기업들의 초국적 활동을 저해하는 장애 요인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주요 정보 인프라(critic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사업자들이 중국 국민의 개인정보 및 중요 데이터를 중국 내에 저장하는 것을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관점에서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제공 비용을 감소시켜 디지털 무역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EU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인터넷 안전법이 디지털 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EU가 미국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EU는 개인 정보의 이전 등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칙은 무역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상당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U의 일반데이터보호규제(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가 데이터를 받는 국가가 GDPR에 부합하는 수준의 보호를 보장하고, 데이터 처리 주체가 적절한 보호 조치를 제공하며, 관련 개인이 데이터 이전에 구체적으로 동의할 때 데이터 이전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초국적 기술 기업에 대한 과세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유럽 사이에 입장 차이가 발견된다. EU는 초국적 기술 기업들이 유럽 각국에서 매출과 이익을 거두고 있음에도 세금을 사실상 회피하는 것은 시장 경쟁의 관점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전세계 매출이 7억 5000만 유로 또는 EU 내 매출이 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기술 기업에 대하여 매출의 3%를 세율로 책정하는 방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의 4대 기술 기업의 이름을 딴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세 도입에 특히 적극적이다. 프랑스 정부는 EU 차원의 협상 결과와 상관없이 2019년 GAFA세를 도입하기로 하였고, 영국 정부 또한 2020년 4월부터 “전세계 매출 규모가 5억 파운드(약 7400억 원)를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디지털 서비스 세금을 부과”할 방침을 정하였다. 이처럼 유럽 주요국들이 미중 경쟁 국면에서 독자적 입장을 추구하는 데서 시스템 경쟁의 복합성이 증가하고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미중 무역전쟁의 기원, 전개 과정, 향후 전망을 다차원적 복합 게임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불균형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중국뿐 아니라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하여 양자적 접근을 신속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적 접근은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하였던 메가 FTA를 중심으로 수립되기 시작한 세계경제질서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았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지대하다.

규모와 수준 간의 차별성을 감안할 때, 미중 관계는 양자 차원에서 구체적 쟁점을 둘러싼 갈등과 제한적 타협을 모색하는 한편, 다자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수립을 둘러싼 경쟁을 동시에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규모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좁혀짐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견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미중 양자 차원의 경쟁은 상당 기간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양자 차원에서 갈등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제한적 타협을 통해 문제를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관리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을 위한 경쟁과 제한적 협력 게임을 함께 전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중 무역 전쟁은 양자와 다자 차원의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는 양자-다자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과 중국은 또한 하나의 쟁점이 아닌 다양한 쟁점을 때로는 연계하는 게임을 전개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경제와 안보를 긴밀하게 연계하며, 경제 영역 내에서도 무역-생산-기술을 상호 연계하는 전략을 앞으로도 추구할 것이다.

향후에는 미중 무역전쟁은 패권경쟁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 경쟁의 모습을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수준 면에서 미중 양국의 격차가 아직 상당하기 때문에, 미국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유럽 및 일본 등 주요국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재설계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주요국들과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양자적 차원의 시도뿐 아니라 전통 우방국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다자 전략을 병행할 것이다.

무역전쟁의 지구화는 한국에게 어떤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가? 무역전쟁의 지구화가 세계 주요국들이 참여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중견국들에게 일정한 역할 공간이 주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은 향후 세계경제질서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제3국들에 대해서도 양자-다자 연계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유사 입장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 연대와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초불확실성의 시대’(Age of Hyper-uncertainty)로 진입하고 있는 세계경제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자주의의 회복이라는 평범한 사실에 공감하는 국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

 

 

■ 저자: 이승주_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최수이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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